Show me the 국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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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이지강의 얼굴이 호기심에 물들었다.
“국용을 쓰지 않고 도로를 만들 방도라니 참으로 궁금하옵니다.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사옵니까?”
“먼저 내탕고와 대장간의 예산을 들여 제물포와 영등포, 마포와 한성, 광나루와 한성, 개성과 한성 등의 도로를 정비할 것이오. 그러니 경기의 도로에는 국용을 들일 걱정을 하지 마시오.”
이지강이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하, 말씀하신 도로들은 역을 세웠을 때 재물을 벌기 좋은 곳이옵니다. 그런 곳이라면 응당 국용을 들여 지은 뒤 국용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게 맞지 않을는지요?”
‘수익 높은 도로만 쏙 빼먹어서 한탕 하려는 거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하하!”
향이 쾌활하게 웃었으나 속은 정반대였다.
‘에라이, 걸렸네!’
마차의 통행이 잦을 수밖에 없는 곳을 왕실과 향이 나눠 먹어 왕권 강화에 쓸 생각으로 알짜배기 도로에 왕실과 향의 개인 자산을 투입할 생각이었는데 그걸 이지강이 간파한 것이다.
‘이렇게 된 거 뻔뻔하게 나가자!’
“흠흠.. 호판. 이 나라의 모든 땅은 임금의 것이오. 왕실의 지엄함을 유지하기 위해 약간의 재물을 버는 것이 무에 문제가 있겠소? 외려 왕실의 행사를 할 때 국용을 들일 이유가 사라지니 좋은 것 아니겠소!”
이지강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향을 쳐다봤다.
‘낯짝에 철판을 깔았구나! 군자미를 15만 섬이나 빼서 쓰면서 좋은 도로는 왕실이 차지하다니 안될 말이다!’
이지강이 절절한 목소리로 간했다.
“저하, 임금은 백성을 진휼(賑恤)하고 보살피는 어버이이옵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에게 재물을 거두려 하시옵니까? 청컨대 국용으로는 동북면이 아니라 경기의 도로를 먼저 닦으시고 동북면 등 나머지 지역은 시일을 두고 진행하거나 내탕금으로 닦으소서.”
이맹균이 맞장구를 쳤다.
“맞사옵니다. 후에 재물이 생기면 동북면을 포함한 나머지 도로를 닦아야 하옵니다.“
향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잇! 그러면 강철 생산이 늦어지잖소!”
빠른 산업화, 빠른 전차 생산이 인생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향에게 강철의 생산이 늦춰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지강은 아니었다.
“당장 전쟁을 할 것도 아닌데 강철이 급할 게 무엇이옵니까?”
‘산업화하고 탱크 만들어야 한다고!’
향이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이를 티 낼 수는 없었다.
초중전차를 만들기 위해 군량미 15만 섬을 태우려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다른 말을 꺼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변명이었다.
향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이지강을 쏘아보았다.
“이보시오 호판. 나라의 명줄에 이익을 따지는 게 옳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향이 이지강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동북면의 벌시온, 강원도의 삼척 도호부, 황해도의 연안 도호부에서 나오는 역청탄, 석회석, 흑연은 가장 중요한 전쟁물자인 강철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자요. 따라서 이는 전쟁을 다스리는 ‘전략물자(戰略物資)’라 할 수 있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조판서 이맹균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략물자라.. 적절하고 이치에 맞는 표현 같사옵니다.”
이맹균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향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소. 이런 전략물자는 군자미처럼 전쟁 이전에 충분한 수량이 확보되어야 하오. 지금 강철의 소용이 크지 않다고 하여 도로의 건설을 미뤘다간 후일 크게 낭패를 볼 수 있소. 그러니 이런 중한 도로에 국용을 먼저 투입하는 것이 맞지 않겠소?”
“저하의 말씀이 실로 합당하옵니다. 하오나 저하의 말씀대로라면 군자미 역시 전략 물자이옵니다. 지금 당장은 강철보다 군자미가 부족하온데 어찌 군자미를 쓰자 하시옵니까?”
“군자미는 충당할 방법이 있는데 강철을 충당할 방법은 도로를 세우는 것뿐이기 때문이오.”
이지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자미를 충당할 방도가 있다고 하셨사옵니까?”
“그렇소. 군자미를 단숨에 벌어들일 방법이 있지.”
“그게 무엇인지요?”
“세 번째 방도인 경매요. 평양, 전주, 경주 같은 대읍의 도로 운영권을 거상들에게 팔고 도로에서 얻은 재물을 세금으로 걷읍시다. 전국의 도로를 대상으로 경매를 진행한다면 군자미의 부족을 메울 수 있겠지.”
이지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하, 도로는 나라의 일이라 천한 상인들이 맡을 일이 아니옵니다.”
“나라에 필요한 도로를 전부 국용으로 닦고 관리하려면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이 걸려도 전국에 도로를 깔지 못할 것이오. 아주 수익이 좋거나 반드시 도로가 필요한 곳은 국용으로 하되, 애매한 곳은 백성이 스스로 닦게 하는 게 맞소.”
100% 세금과 공무원만 써서 도로를 짓는 건 현대 한국도 못 하는 비효율적인 일이다.
애매한 도로는 민간이 운영하게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하오나 도로를 상인들에게 재물을 받고 넘긴다면 도로를 오고 가는 비용을 백성에게 전가할 테니 백성의 도탄에 빠질 것이옵니다.”
향이 고개를 저었다.
“도로의 통행세를 일정 이상 거두지 못하게 제한하고, 도로의 상태와 운영을 감시하는 이를 어사로 파견하면 될 것이오.”
“그래도..”
“하.. 상인들이 도로를 닦는 게 그리 걱정된다면 사대부가 나서게 하면 어떻겠소?”
이지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그리하시겠다는 것이옵니까?”
“유향소에 적을 올린 사대부에게 도로를 닦기를 권하고, 사재(私財)를 내놓은 이의 이름을 해당 도로에 명판에 새기는 것이오.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백성을 아끼는 사대부라면 응당 사재를 털어 가문의 위엄을 떨치려 하지 않겠소? 천한 상인과 다르게 말이오.”
“..”
이지강이 말을 잃었다.
재물이 들어간 이상 아무리 명예를 드높여 준다 하더라도 응할 사대부가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향이 그런 이지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농담이오. 명판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이 쓴 재물의 절반을 ‘국채’로 보상해줄 생각이오.”
“국채가 무엇이옵니까..?”
“나라에서 빚을 졌다는 증서요. 예컨대 이자가 5푼(5%)인 1만 섬짜리 10년 만기 국채 증서를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10년 뒤에 나라에서 1만 섬의 곡식과 약속한 이자를 내어주는 것이지. 내 생각에는 해마다 5~10만 섬 정도 국채를 낸다면 10년 안에 전국의 모든 길을 포장할 수 있을 것이오.”
이지강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너무 위험하옵니다! 매해 5만 섬만 빌려도 10년이면 50만 섬이옵니다. 거기에 이자까지 내야 한다니.. 10년 뒤에는 조창(漕倉)의 쌀이 바닥날지도 모르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로를 지어야 할 이유를 소신은 도저히 알 수가 없사옵니다.”
이지강의 입장에서 도로 사업은 그 결과를 점칠 수 없는 신사업이었다.
그런 사업에 막대한 빚을 지자는 향의 이야기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도로를 열심히 닦았는데 백성이 다니지 않으면 도로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사옵니까!”
이지강의 절절한 호소에도 향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지강을 다독였다.
“걱정 마시오. 도로는 지으면 다 쓰게 되어 있소! 장담하건대 내가 키울 산업을 생각하면 13미도(m)도로는 외려 부족할 것이외다.”
향은 이지강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현대인의 정신을 가진 향은 이지강의 걱정에 공감할 수 없었다.
‘기차가 없다고 철도 짓지 말자는 이야기지.’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산업의 발전을 고려하면 이후 도로를 쓸 사람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때 가서 도로를 지으려 하면 성장에 발목이 잡힐 게 뻔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산업이 성장하고, 그러면 세수가 크게 는다. 고작 쌀 수십만 섬을 갚는데 절절맬 일은 없어질 거야. 게다가.’
향은 조정의 쌀 보유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비책을 짜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50만섬의 쌀을 갚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설명하더라도 이지강이 납득할 것 같지 않았다.
이지강의 불안을 불식시킬 만한 다른 해법이 필요했다.
‘뭐가 좋을까.. 뭐가.. 아!’
향이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지강을 바라봤다.
“호판, 결국 지금의 문제는 국용의 크기 자체가 터무니 없이 작은데 그걸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서 쓰려니 생기는 것 아니오?”
“15만 섬만 안 써도 그리 모자라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만..”
“아잇, 쓸 때는 써야지! 내 생각에는 나라의 국용을 크게 키워야 문제가 해결될 것 같소.”
“그 말씀은 조세를 더 거두자는 말씀이옵니까?”
“아니, 내가 준비한 방도를 쓴다면 조세를 더 거둘 필요는 없소. 쌀보다 귀한 것을 대량으로 확보할 방법을 찾았거든. 그것도 아주 반짝거리는 녀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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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일러, 싸워야 합니다!”
“맞습니다. 놈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기 전에 먼저 쳐야 합니다!”
오도리의 추장 동맹가첩목아는 전쟁을 부르짖는 부족민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아목하에 차려진 조선의 군진이 문제였다.
군진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다.
100명 정도로 이뤄진 작은 군진으로 아직 목책조차 다 쌓지 못했다.
문제는 그들의 행동이었다.
부족민들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아목하 인근에서 사람이 살기 좋고 방어하기 좋은 곳을 찾고 있었다.
이 사실이 가리키는 바는 명백했다.
대규모 정착.
조선은 동북면 전체를 장악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버일러, 저놈들을 가만뒀다간 곧 수백 수천의 조선 놈들이 이곳에 몰려들 겁니다. 벌시온을 보십시오. 이미 수백이 넘는 조선 놈들이 벌시온에 자리잡았다지 않습니까. 다음은 우리입니다!”
첩목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과의 싸움을 피해 도망쳤다가 겨우 돌아왔거늘. 오자마자 조선과 전쟁을 하게 생겼구나.”
동맹가첩목아는 모련위의 추장 파아손과 손을 잡고 조선을 공격했었다.
그래서 조선군이 모련위를 쳐 파아손을 죽였을 때, 조선의 보복을 피해 부족민을 이끌고 북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북방에서의 생활은 고됐다.
강인한 전사조차 새 거주지에 사는 것을 힘들어했다.
결국 첩목아는 조선의 보복을 감수하고 귀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1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런데 귀향한 지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조선의 군진이 부족의 코앞에 생겼다.
다시는 고향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오도리족에게 조선의 군진은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버일러, 뭘 걱정하십니까? 모련위를 비롯해 인근의 부족들이 모두 조선에 맞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강하다 하나 다 함께 들고 일어나면 이길 수 있습니다!”
“탑사불화의 말이 옳습니다! 파아손과 손을 잡았을 때는 인근의 다른 부족들이 우리를 외면했지만 이번엔 모두가 함께입니다! 해볼만한 싸움입니다! 버일러,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첩목아가 고개를 저었다.
“양목답올이 죽었다.”
양목답올은 오도리족 인근에 있던 올적합의 부족장이었다.
그의 부족은 오도리족에 비하면 약하다지만 200명의 전사를 가진 나름 큰 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이다.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이백에 달하는 전사가 도망치지도 못하고 전멸당했다.”
“..”
전쟁을 부르짖던 부족민의 입이 닫혔다.
이징옥이라는 자가 이끄는 조선군이 양목답올의 부족을 몰살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첩목아가 조선의 군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니 저 군진을 부수려면 전사 2백이 죽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조선의 토벌군과 맞서야 하지. 쉬운 싸움이 아니야.”
“그래도 눈 뜨고 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고향을 또 버릴 수는 없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고민하는 거다. 때로는 이기기 힘든 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법이니까.”
첩목아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심에 잠겼다.
바로 그때.
“버일러, 버일러!”
부족민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막사의 장막을 열고 들어왔다.
“뭐냐.”
“모련위의 아아가 회동을 연답니다.”
첩목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애송이가 회동을 열겠다고 한 걸 내가 모르겠나. 그게 끝이면 짜증나게 하지말고 나가라.”
“더, 더 있습니다.”
“뭔가?”
“이번 회동에 아합출의 손자가 온답니다!”
깜짝 놀란 첩목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냐?!”
“확실합니다.”
첩목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합출이 합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이 전쟁, 여진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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