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손손 칭송받을 세종이지만 몇가지 정책은 후세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부민고소금지법. 지방의 호족들이 왕처럼 군림하면서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을 허수아비로 만들던 시절에 필요한 '악법'이었죠.
이 당시엔 분명 매우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중앙집권체제가 완료되면 반드시 폐기히야할 악법이었죠. 그러나 그 법을 만든 왕이 누구도 아닌 세종. 그래서 후세의 왕들은 폐기하고 싶어도 명문에서 밀려 폐기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종이 집권하는 지금 법의 유효기간을 100년으로 못 박고 그 이후에 반드시 폐기하란 말을 남겨야 합니다.
비슷한 정책으로 세종은 단군신화를 비롯해 예맥족(한민족)의 영광을 증명하는 사서들을 '분서갱유'수준으로 몰수했습니다.
얼마나 강력했냐면 제법 방귀 뀌는 관리의 집이라도 금부의 장졸들이 불시에 대문을 깨고 난입해 서책을 몰수하고 심하면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관점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당시엔 꼭 필요했습니다.
왜? 무식한 주원장에 이은 피에 미친 학살자 영락제가 조선의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침략할 명분을 찾던 매우 엄혹한 시대였으니까요.
실제의 예로, 명나라는 조공으로 조선의 군마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노비가 100의 가치라면 일반 말은 1,000. 군마는 10,000~ 20,000의 가치를 지녔죠.
그런 군마를 만 단위로 바치라면 조선의 국방력이 개판이 되죠.
물론, 공짜로 보낸 건 아니었죠.
비싸디 비싼 군마의 가치 3배를 꼬박꼬박 받아냈으니까요.
보다 정확하게는, 명이 조선에게 3배 이상의 가치를 되돌려주지 못하면 패권국가라고 말할 수가 없었죠.
여기에 태종은 잔머리까지 쓰는데 여진에서 잡말을 몰려 들여와 군마라고 속여 납품? 군마 가격의 3배 이상을 받아냈습니다.
"야~ 조선 사신아. 아무리 봐도 이거 군마 아닌데?"
"이건 짐말이잖아. 어디서 사기를 쳐?"
"이보시오 대인~ 대국에선 짐말이지만 우린 조선에선 이거 군마요."
"진짭니다. 상국에게 군마를 모두 바쳐 이런 비실비실한 말을 군마로 사용하고 있다고요."
"그,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없지. 그럼 짐말 가격의 3배...."
"잠깐! 이거 왜 이러세요?"
"계산은 똑바로! 우린 분명 군마를 납품 아니, 조공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명나라 군마 시제의 3배를 되돌려줘야죠. 안 그래요?"
이렇게 사기를 쳐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기도 했죠.
아무튼, 당시 영락제는 다른 나라를 침략을 못해 벌벌 떠는 호전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침략할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알아서 기어야했고
그런 와중에 예맥족의 영광을 서술한 역사서를 몰수하게 됐죠.
이때 몰수된 책들은 일부 불사르고 보관했다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기도 했고 끝내 살아남은 사서는 일제가 식민지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한 즉, 역사를 날조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활용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소실될 역사서들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지금 손을 쓰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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