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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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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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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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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16,019

작성
10.12.2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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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평범 (127) - 終章

DUMMY

" .....이거 지금 뭐하자는 짓거리냐? "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진우 자식이 바람펴서 낳은 자식을 데려온 남편이 아무것도 모르는 부인을 대하듯 입구에서부터 철퍼덕 무릎꿇고 고개숙여 있고 그 곁에는 생판 처음보는 사내새끼인지 계집애인지 모를 쥐톨만한 꼬맹이가 있었다.


" 저기, 여기에는 깊은 사정이... "


기가막혀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쭈뼛거리면서 사연을 늘어놓는데 아주 가아관이다. 옷 사입으라고 돈 줘서 보내놨더니 옷값은 도둑맞고 엉뚱하게 고아 계집애를 줏어왔다는 간단한 말을 말을 십분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하는 놈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뒷목이 뻐근하다.


"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야? "


한줄짜리 뻔한 내용을 책 한권 분량으로 늘려 지껄일 것 같은 기세에 중간에 말을 끊고 결론을 물었다. 어차피 들으나마나 뻔할 이야기지만.


" 이 아이, 우리 집에서 키우면 안될까요...? "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진짜 뻔한 이야기였다. 아, 이 개념 밥말아먹은 고문관 새끼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고 있냐? 이놈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까. 어휴... 꼴통새끼. 어쩌다 이런걸 줏어와가지고.


마음속으로 천불이 났지만 그래 뭐. 이해못할 건 아니다. 몸만 컸지 어차피 애새끼 아니냐. 잠깐 고생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거야 꼴랑 1주일, 그것도 몇 달이나 전의 이야기니까 편하게 지내는 동안 대가리가 리셋됐다고 한들 이해못할 것은 없다. 나는 어른답게 인내심을 발휘해 점잖게 타이르려는데 분위기 돌아가는걸 살피며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던 꼬마 계집애가 선수를 쳤다.


" 저, 저기! 저 받아만 주신다면 뭐든지 할게요! 청소, 빨래, 요리, 뭐든지 시켜만 주신다면 잘 할 수 있어요! 제발 부탁드려요. 여기서 쫒겨나면 겨우내 지낼 곳이 없어요... "


눈물이 그렁그렁한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진우의 표정은 이 불쌍한 애를 이대로 내다버리면 당신은 사람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더더욱 마음에 안든다.


뭐, 딴에 틀린 말은 아니다. 고아 계집애가 있는거야 이 험한 세상에 이상할 것도 없고. 집도 절도없는 꼬마가 혹독한 겨울을 살아남기란 실로 녹록치 않은 일이니까. 내 심장이 얼음으로 되어있지 않은 바에야 불쌍하다는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느낌이 딱 오잖아. 이 계집애, 말에 진심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 무엇보다 치고들어오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 놈과의 대화는 한국어였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했을 텐데도 정확히 끼어들었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이야기겠지. 더군다나 언행이 지나치게 작위적이야. 나이치곤 눈치도 빠르고 자기 처지를 이용해먹을 줄도 안다라.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에 떠는 표정까지도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보였다.


" 그렇게 겁먹을 것 없다 꼬마야, 옳지. 눈물 뚝! 그래, 이름이 뭐지? 고아가 된지는 얼마나 됐어? "


느낌은 왔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확인차 친절의 가면을 쓰고 물었다. 그러자 꼬마는 힘겹게 눈물을 참으려는 듯, 주먹으로 눈을 부볐지만 여전히 벌건 눈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 피, 피리. 피리는 피리에요. 엄마랑 아빠는 올 여름에 일을 나가셨다가 나쁜놈들에게... 우애애애애앵!!! "


피리라는 애새끼가 울기 시작했지만 중요한건 그런 연막이 아니다. 여름이라 이거지. 분명히 살림 가에서 줏어왔다고 했겠다? 순진한 꼬맹이가 이 험한 세상에서, 더군다나 하층민의 거리에서, 여름부터 겨울이 되도록 순진한 채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 십중팔구는 굶어죽든 맞아죽든 한달이 지나기 전에 결딴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겉모습과 달리 시꺼먼 속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꼬마 창녀 아니면 도둑년이구만. 혹은 둘 다.


머저리같은 진우 놈이 도둑을 만난 직후에 이 꼬맹이를 구했다고 했으니 십중팔구 이년이 그 도둑년임에 틀림없다. 거지새끼들 만큼 돈 냄새 잘 맡는 족속이 또 어디있는가? 십중팔구 훔친 돈을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실컷 두들겨맞고 겁탈당할뻔 한거지.


적어도 겉모습은 아무것도 없는 더러운 꼬마 남자애로 비춰졌으니 거지놈들이 처음부터 성욕해소를 목적으로 덤볐다면 굳이 이런 애보다는 멀쩡하고 허름한 여자애를 노렸을 것이다. 뭐, 꼬마 남자만 노리는 변태 남색가였을 수도 있으니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것으로 결론은 났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 꼬마 도둑년을 집안에 들여놔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이러면 욕을 좀 먹더라도 한층 단호하게 끊어줄 필요가 있겠지. 나는 어른의 위엄을 세우는 대신 군대 선임으로 빙의하기로 결정했다.


" 야, 이 꼴통 고문관 새끼야. 너 어께 위에 그거 장식품이지? 그렇지? 니 눈깔엔 내가 부잣집 아드님으로 보이냐, 재벌 총수님으로 보이냐? 응? 고향사람이란 이유하나만으로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서 사는 소시민에게 빌붙어 사는 주제에 어디서 짐덩어리 하나 줏어와가지고 키워주세요 그런 말이 나와! 내가 누누히 말했지. 먹고사는거 우습게 보지 말라고! 니가 편안히 얹혀사니까 까먹는 모양인데. 니 밑에 들어가는 비용만해도 내 월급이 반토막이 나요. 응? 사태의 심각성이 좀 느껴지냐? 그런데 뭐어? 애새끼이이? 저게 지 입하나 덜려면 몇년을 키워줘야할지 감도 안잡히구만 그걸 나더러 키우라고? 니가 완전히 돌았구나! 당장가서 내다버리고 와! "


일부러 심하다 싶을 만큼 면박을 줬다. 똑바로 고개를 쳐다들고 마주보는 놈의 눈동자가 불만으로 타오른다. 실패다. 칼을 배워서 그런지 아니면 꼴에 남자라고 자존심이 있다는건지 반발 심리만 키워버렸다. 이럴까봐 일부러 강하게 나갔는데 쯧, 역효과만 났다.


" 형! 솔직히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형한테 빌붙어 사는거 저도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해요. 제 주제에 형한테 뭐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구요.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 애를 보세요! 이렇게 작고 나약한 애를 11월에 길거리로 내쫒을 수가 있어요? 하다못해 이번 겨울만이라도, 따악 이번 겨울만이라도 좋으니까 잠시만 머물다 가게 해주세요. 네? "


그래도 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평소부터 자기 처지가 어떤지 자각은 하고 있었는지 생각만큼 강한 반발이 돌아오진 않았다. 오히려 감정을 누르고 사람의 도리를 내세우는 한편 타협책을 제시하며 결론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대책없이 버럭버럭 화만 내다가 말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그런다고 바뀌는건 없지만.


" 안돼. 당장 내다버리고 와. "


이런 류의 눈치빠른 꼬맹이는 반드시 해가 된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다. 왜냐고? 말할 것도 없이 머리가 좋기 때문이다. 꼬맹이가 뭘 아냐고? 오히려 꼬마라서 더더욱 이 차가운 세상에서 사람만큼 믿을 수 없는 것은 없다는걸 잘 알고 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 능력, 그리고 금전이라는걸 고아는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내 태도를 봐서 여기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걸 이미 확신했을 터.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고 꽁지가 빠져라 내뺄게 눈에 선한데 내가 돌았다고 이 꼬맹이를 집안에 들일까? 어림없는 소리.


" 비용이 많이 든다면 제가 나가서 벌어올게요. 검술도 그만둘게요. 혹시라도 얘가 문제를 일으키면 제가 전~~부 다 책임질테니까 제발 버리지만 말아주세요. 부탁합니다. "


태도가 변하지 않자 진우놈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분노를 죽이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건 확실히 마음에 와닿는 바가 있었다. 그만큼 저 꼬마를 불쌍히 여긴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진우놈이 아니라 저 꼬마가 이런 진심을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변함없다. 제 아무리 진심으로 부딛친들 세상을 알아버린 꼬마가 인간을 믿고 긍정적으로 변할 턱이 없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내 대답은 아까와 약간 달라져 있었다.


" 좋아. 뭐,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잠자리 정도는 재공해주지. "


녀석의 얼굴에 희색이 비친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 대신, 오늘부로 너랑 저 꼬마는 네가 벌어서 온 돈으로 사는거다. 난 딱 잠자리만 제공할테니까. 검술을 계속 배우고 싶으면 다음달 부터 수업료를 네 손으로 벌어오고 배를 체우고 싶으면 음식 재료를 벌어서 사오고 옷이 헤졌으면 네 돈으로 새로 사입어야 한단 말이다. 알겠나? 또 네 말대로 저 꼬맹이가 저지르는 모든 사건 사고는 다 네 책임인거 명심하고. 왜, 싫어? 자신 없으면 당장 저 꼬맹이를 내다버리고 와라. 그럼 아무 일도 없을테니까. "



진우의 표정에 갈등이 서린다. 그러나 눈물 범벅이 되어있는 꼬맹이를 돌아보는 순간, 젖비린내나는 머저리는 어엿한 성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할게요. 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일하러 나가겠습니다. "


과연, 그런 것인가. 남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것이 생겨서야 마침내 어른이 된다. 리디아를 지키기로 결의한 그 날의 나도 저런 얼굴이었을까. 추억을 떠올리는 내 입가에 어느덧 미소가 걸렸다.


" 좋아.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으니 말 바꾸기 없기다. "


" 물론이에요. "


의욕이 앞선 풋내기 어른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연, 얼마나 갈런지...


============================================================


말이 칼집에 넣은 칼이지 4kg짜리 쇠몽둥이나 다름없는데 근육질 장정이 그걸 가지고 뒷통수에다 풀스윙을 날리는데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거죠. 궁시렁궁시렁...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38 스마우그
    작성일
    10.12.30 18:08
    No. 1

    ㅋㅋㅋ주인공 진짜 산전수전 다겪은 용병같아요ㅋㅋㅋ 나이는 그렇게 안많은데ㅋㅋ 고향돌아가도 굶어죽지는 않을듯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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