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천재공학자 35화
.
똑똑―
“부르셨습니까 본부장님?”
“응, 여기 와서 앉아 봐요.”
TK 그룹 PKG 연구팀의 김준하 과장.
여타 다른 연구원들과 비교하여 실적이 저조한 탓에, 눈칫밥을 먹은 것도 어느덧 5년째이다.
지금 이 순간 김준하 과장은 거듭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다리를 꼬꼬 앉아 서류만 들여다 보던 황용준 본부장이 이내 테이블에 파일을 내려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김 과장님 요즘 업무는 좀 어떠세요?”
“모쪼록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라. 지금 연구 중인 게 어떤 거죠?”
“현재 양산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 개선할 점을 연구 중입니다.”
“음······. 이미 있는 걸 연구 중이시다. 지금 계시는 팀에서는 선행 개발이라거나 이런 업무는 아예 안 하고 계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별로 하는 게 없으시다는 거네요?”
반박할 수 없었다.
TK 그룹에 입사해 연구 개발팀의 과장직을 달기까지 18년. 김준하 과장은 그 시간 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TK의 입장에서 보나 뭐로 보나, 김준하 이 인간은 굳이 아직까지 곁에 둘 필요가 없는 인물이란 뜻이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시기가 좀 그래요. 아무래도 성과에 따라 인사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게 갈리는 거니까. 속 시원하게 한 번 다 말해 봐요. 김 과장님이 지금 우리 TK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죠?”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었던 김준하 과장이었지만, 막상 황 본부장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자니 순간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
“음?”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그럴 필요가 하나 없는데, 그냥 다 말해 봐요, 과장님이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큰 공헌을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팀 내에서 연구에 필요한 자재비를 최대한 아껴 회사에 손해를 최소화했고, 또······.”
“또요?”
“몇 번 TF 팀에서 활동도 했었고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느 정도 이 인간에 대해 파악이 됐다고 생각했던 건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래요 뭐, 알겠습니다. 그 정도가 전부인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런 얘길 드리는 게 좀 뭐하지만, 과장님 올해 근속연수가 어떻게 되십니까?”
“18년입니다.”
“언제 입사하셨죠?”
“제가 27살 때 입사했습니다.”
“꽤나 오래 하셨네요. 동기들은 지금 어느 정도 위치에 가 있으십니까?”
“뭐······. 대개 보통은 과장급 이상이고, 팀장을 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요.”
“근데 김 과장님은 아직까지 과장이시고······.”
연신 볼펜을 딱딱 거리며 무언가 고민에 찬 듯한 황용준 본부장의 모습.
이내 혀를 끌끌거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보통 동기들이 자기보다 높이 올라가는 걸 계속해서 직면하게 되면 자괴감 같은 게 들지 않아요?”
“네?”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자기 손으로 털고 나갔을 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장님. 근성 하나는 제가 따라갈 수가 없겠네요. 나였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금방이라도 뛰쳐 나갔을 텐데.”
너무나 치욕스러운 발언에도 감히 반기를 들 수가 없었던 김준하 과장이었다.
애초부터 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고, 자기 스스로도 이 남자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지냈으니까.
“김 과장님. 죄송하지만 이것 좀.”
툭―
테이블에 올라오는 서류 한 장.
그 안에 유독 눈에 띄는 문장 하나 ‘희망퇴직 제안서’.
“죄송하지만, 지금 TK는 변화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보, 본부장님.”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김 과장님이시니까, 제가 특별히 남들보다 위로금에 대해 더 신경 써 달라고 말씀 남겨 드릴테니. 잘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싸인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계속 일을 할 수가 있었지만, 이미 한번 희망퇴직 제안서가 날아온 이상. 거부한다 하더라도 그안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집안에 가장이라곤 저밖에 없는데 갑자기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게 일을 좀 잘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차라리 눈에 띄지나 말던가.”
털썩―
급기야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어 보이는 김준하 과장이었다.
“본부장님. 제발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날 때 까지만이라도.”
“이거 왜 이러십니까. 그거 돈도 안 되는 프로젝트 끝내봤자 뭐 하겠다고. 그리고 제가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팀장님만큼 할 줄 아는 애들이 제 나이대에도 쌔고 쌨어요.”
“그래도 아직은 안 됩니다. 아직 저희 애들 졸업도 안 했는데,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하나 그런 개인적인 내용을 귀담아 들을 리가 없었던 황용준 본부장.
삑―
― 네, 본부장님 무슨 일 이십니까?
“오늘 대형물산 정 이사님이랑 라운딩 약속이 있어서요. 차 좀 대기시켜 주세요.”
― 알겠습니다. 5분 뒤에 내려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윽고 본인의 골프백을 챙겨 방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계속 그러고 있을 겁니까? 누가보면 내가 벌이라도 세운 줄 알겠어요. 얼른 일어나세요.”
“······.”
“어린애도 아니고 무슨 똥고집입니까. 팀장님 지금 이런 고 있는 것도 근무 태만입니다? 이러면 희망퇴직이 아니라 해고처리도 할 수 있다는 거 알고 그러시는 거죠?”
“······.”
“에휴, 됐다 됐어.”
머리를 싸매고 본부장실을 빠져 나가는 황용준.
“본부장님. 어디 다녀오십니까?”
“응, 약속이 있어서요. 그것보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김준하 과장 저 인간 똑바로 해서 내보내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한 발자국을 뗴려던 그 순간.
문득 황용준 본부장의 머릿속에서 기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니, 잠깐만. 오늘 약속 취소시키고. 내 방에 문서 파쇄기 좀 갖고 와봐요.”
* * *
부푼 꿈을 가득 안고 떠난 우리의 장비가 미국으로 건너 간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연일 미국 언론지에서는 ‘열 보관 장치’에 대한 보도자료가 끊임없이 내려왔고.
어제는 미 대통령 연설문에서 우리의 장비가 거듭 언급됐다.
덕분에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우리 회사의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좋냐?”
“그럼, 내가 또 언제 이런 걸 받아보겠어.”
한국 첨단 산업 기술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내용으로 대통령이 상을 하사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 제시카한테 연락받았어?”
“제시카?”
며칠 전 미국으로 돌아간 제시카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제시카는 귀국을 하자마자 본인의 어머니 클로이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 애기를 들은 클로이 회장이 나와 황지훈을 미국으로 초청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계속 걱정됐던 생산라인 문제 또한 시즐에서 책임지고 미국에 자리를 잡아주겠다 약속을 해둔 상태였다.
문제는 황지훈도 같이 가게 된다면 이 회사를 지킬 사람이 없다는 건데.
“그러지 말고 형은 한국에 남아 있는 거 어때? 아무래도 내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보고를 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은 형이랑 달리 바빠서 부탁 할 수가 없잖아.”
“뭐 인마? 나도 바쁜데 매일 야근하면서 보고까지 같이 했던거야. 그리고, 나도 휴가 좀 가보자. 맨날 자기만 어디 놀러다니고.”
그것도 그거지만 제일 걸리는 건 오늘 아침 한경아가 나에게 건넸던 말 때문이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 기대해도 좋을 거라는 한경아의 말.
무슨 뜻인지 의아했지만, 가만히 혼자서 유추해 봤을 때 분명 기가 스틸 개발에 대한 얘기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밝게 얘기했던 걸 보면 분명 개발에 진전이 있다는 거나, 그게 아니면 벌써 완성을 했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럼 어쩔 수 없네. 형만 혼자 다녀와.”
물론, 당장 열 보관 장치의 양산화도 중요하긴 했지만, 이건 공동 개발자인 황지훈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동안 곧 개발이 완료될 기가 스틸을 이용해 계획했던 일을 슬슬 시작해야만 했다.
“나 혼자?”
“응, 어차피 경영 그런 쪽으로는 형이 나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야.”
“너는 그럼 여기 남아서 뭐하게?”
“뭐하긴? 돈 벌어야지. 회장님한테는 다음에 뵙겠다고 말씀 좀 전해드려.”
* * *
한껏 신난 얼굴로 마중을 나와있는 소학준 연구 이사와 한경아 주임.
“왜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시지.”
“대표님 오시면 같이 들어가 보려구요.”
“저는 한 주임이 이러자길래······.”
지난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왜인지 모르게 낯설 정도로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언제는 삐져있었다가, 또 지금 와서는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굉장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얼른 들어가 보시죠.”
이윽고 연구소 안으로 들어온 순간.
기가 스틸의 실물이 영롱한 빛깔로 반짝거리며 나를 환대하고 있었다.
“대표님. 어떻습니까?.”
“네, 뭐 기가 스틸이군요..”
당연히 그토록 고대하던 소재의 탄생에 기쁘긴 기뻤지만, 막 날아갈 정도의 기분까지는 아니었다.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전생에서 내가 많이 사용했던 것이었으니까.
무미건조한 내 반응에 소학준 연구 이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물었다.
“반응이 마냥 신나 보이시지는 않네요.”
“아닙니다. 지금 굉장히 신나있는 건데요? 그것보다 테스트는 해보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러곤 총 7일간 진행했던 테스트 시트를 내 눈앞에 건네보였다.
과연 그랬다.
아니, 소학준 연구 이사가 만들어 낸 기가 스틸은 이미 내가 2030년에 알고 있던 어느 평범한 기가 스틸보다 그 효율이 최소 5배 이상은 더 좋았다.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일 뿐.
실제로 양산화에 돌입하게 된다면 성능의 차이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아주 좋네요. 근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이 성능이 과연 양산화에 돌입해서도 유지가 될 수 있을지가 의문인데요?”
“물론 어느 정도는 감수를 하셔야 하겠지만, 양산에 들어간다면 제가 당분간은 품질면으로 유지하는데 힘을 좀 보탤 생각입니다.”
역시 소학준 연구 이사.
내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업무를 추진하는 능력만큼은 이 회사에서 소학준을 따라갈 자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설비를 마련해 드릴 테니, 이사님은 지금 테스트 시트에 나온 성적만큼 양산화 에서도 그 품질을 유지하는데 힘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대표님.”
설비가 들어오기만 한다면 양산화도 금방 진행될 수 있을 것이고, 황 회장과 약속한 납품 역시 순조롭게 이어질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일은 수소 자동차와 그에 상응하는 인프라 구축.
“우선은 인프라 구축 먼저.”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