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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711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3.04 00:32
조회
2,401
추천
44
글자
10쪽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

DUMMY

밖은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야 착용자가 비에 젖지 않게 해주는 기능도 있는 마법코트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상관없었지만, 이스는 산맥에서부터 비에 맞고 있었다.


상대방의 비치는 가슴과 엉덩이 라인이 아무래도 신경 쓰여, 기초적인 열 마법을 사용했다. 비척비척 내리는 비에 젖어가던 이스의 옷이 금세 말랐다.


“... 고마워요.”


술집이 있는 거리를 벗어나니 빗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일찍이 문을 닫은 한 상점의 지붕 아래서 비를 피했다.


“저는 국왕과 만나야 해요. 어떻게 해서든.”

“만나서 어쩔 생각인데?”

“얘기해야죠. 만약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죽일 거예요.”


이스는 태연히 그런 말을 뱉었다. 제국은 왕국과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들었지만.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서예요.”


왕국의 수장인 국왕의 암살에 협조하라는 거면 이상할 만큼 많은 보수 금액도 이해가 갔다.


“내가 너를 고발할 거란 생각은 안 하나? 어째서 그렇게 쉽게 신용할 수 있지.”

“감이에요. 류셀은 왕국의 사람도, 제국의 사람도 아닌 것 같아서요. 정당한 대가가 있다면 뭐든지 해줄 사람처럼 보였어요.”


안이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느 정도는 정답이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이스는 덧붙여 말했다.


“게다가, 류셀은 엄청 강한 걸 아까 봐서 아니까요.”


나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빼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까의 직감은 역시 맞았던 모양이다.


“이스. 그러고도 단순한 시민이라는 건 아니겠지. 정체를 밝혀라. 그러면 이야기를 더 들어주지.”


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질문은 이상하네요. 오히려 제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붉은 두 눈이 나를 보았다.


“류셀은 그 정도의 검술,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사단에 속한 것도, 마법 협회의 사람도 아니죠?”

“싸울 때 마법은 쓰지 않았다만.”

“옷만 그렇게 말릴 정도로 섬세하게 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자는 몇 되지 않아요.”


괜한 짓을 했군. 감기에 걸리든 말든 참견하지 말 걸 그랬다.


“류셀의 도움이 필요해요. 저 혼자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뭣하면 저를 대가로 드려도 좋아요.”

“너를?”


이스가 자신의 가슴을 펴보였다. 흰 셔츠 너머로도 또래에 비하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섹스는 아직 해본 적 없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괜찮겠죠.”

“네가 말하는 대의라는 게 뭔지 모르겠군.”

“협력만 해주신다면 굳이 이해를 바라진 않아요.”

“고작 섹스 한 번 하겠다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네. 창녀촌에 가면 보다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가 있겠지.”

“나...낫!”


평정을 유지하던 이스의 얼굴에, 경악이 나타났다.


“저 정도 되는 미소녀가 자신의 처음을 바치겠다고 하는데... 류셀은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필요한지 아시나요?!”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이스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였다.


“너무해요...”

“아니, 애초에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 나라의 제일 잘나신 분을 죽이자니, 그것부터가 이상해. 너, 계획은 가지고 있는 건가?”


실망을 숨기지 않고 쪼그리고 앉은 이스는 그 말을 듣고, 내 눈을 피했다.


“정면으로... 들어가기? 아니면 밤에 숨어드는... 것...도...”


말을 하며 몇 번 나를 올려다본 이스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너. 생각보다 덤벙거리는 성격이군.”

“저는 덤벙이가 아니에요! 나름의 각오를 하고 온 거란 말이에요.”


이스의 항변을 나는 무시했다.


“이제까지 너와 같은 목적으로 왕성에 숨어든 자가 없을 것 같은가? 밤에 숨어드는 자객이 몇이나 될 거 같아? 당연히 그에 대한 대책은 만반이겠지.”

“... 그... 그건 그렇지만.”


순진한 건지, 아니면 바보인건지.


“내가 너였다면, 특수한 상황을 사용해 기회를 만들겠다.”

“특수한... 상황이요?”


나도 시이나에게 들어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실이지만.


“10일 후, 왕성에서 상위 모험자들을 모아 성대한 연회를 연다고 한다. 제국에서 온 너라면 모험자가 뭔지도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모험자란, 국가에 속하지 않으면서 국가의 이익에 여러 가지로 기여하는 사병 같은 것이다. 채집, 경호부터 마물 토벌까지 돈이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한다.


제대로 통솔이 되는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모험자 길드라는 것에서 등록제를 실시한 덕분에 각각의 실력에 따라 다른 레벨의 퀘스트가 배정된다. 국경 주변의 마물들을 퇴치해주니 국가로서도 어느 정도 대우는 해주는 모양이었다.


“국왕이 몸소 참가하는 연회는 드물어. 게다가 왕국의 고위 귀족이 아닌 이상 그런 자리에 참석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 열흘 뒤의 연회는 유일한 기회다.”


이스의 눈에 강한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많이 봐와 알고 있다.


신념. 강한 믿음.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버릴, 위험한 자의 눈이다.


“그 자리에서 결판을 짓는다... 확실히 좋은 방법이네요. 류셀은 그러면 어떻게 그 상위 모험자들만 초대받는 연회에 가겠다는 건가요?”

“간단하다. 상위 모험자가 되면 된다.”


이스는 내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저... 류셀? 연회까지는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불가능해요.”

“도리어 내가 묻지. 이스, 전설이라고 불릴 정도의 모험자는 무엇을 해내는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아니,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의 얘기예요. 정말 열흘 안에 그런 유명인사가 되는 건 드래곤이라도 처치하지 않고서야 불가능이라고요.”


내가 답이 없자, 이스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류셀은 설마 광맥의 자이언트 드래곤을 잡을 생각인가요?! 자살행위라고요!”

“자꾸 내 이름을 들먹이지 마. 난 참가한다곤 안 했다.”


망상에 망상을 거듭하는 건방진 소녀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류셀의 말대로라면 그게 유일한 방법... 할 수밖에 없겠네요. 우리.”

“아니, 자꾸 나를 말려들게 하지 마. 나는 네가 국왕을 어째서 해코지 하려는지도 알지 못하고,”


뒤이어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ㅡ고 덧붙이려했지만 이스는 내 말을 끊었다.


“알았어요. 설명해드리죠. 왜 제가 국왕과 담판을 지어야하는 것인지.”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질색이었지만, 이스는 꽤 조리있게 요약해주었다.


현 국왕은 이웃나라인 제국의 황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각국이 국교로 삼은 종교는 확연히 달랐고, 영토를 두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크고 작은 싸움 때문에 국민들 사이의 관계는 도저히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특히 최근 들어 제국이 왕국의 교역로를 통해 들어오는 상품에 보다 높은 세금을 매기기 시작한 것에 분노한 국왕 때문에, 최소한의 상업 거래 또한 중지된 상황.


양국 간의 평화 협정은 어디까지나 선대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현재의 권력자들은 그것을 아니꼽게 생각했다. 서로가 자신에게 치욕이라고 생각했다.


황제는 그것을 생각으로 그친 반면, 국왕은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였다. 국왕은 현재, 비밀리에 제국을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병력의 숫자만 해도 10만. 어느 쪽이 이긴다 한들 양쪽의 피해는 막대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물론 제국이 이기는 건 당연한 결과지만요.”


이스는 뻔뻔하게 그런 사족을 달았다.


“하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제국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전 그걸 용납할 수 없어요. 이쪽에선 화평을 주장하고 있는데.”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건 극비정보다. 어디서 손에 넣었지?”

“그건, 일이 성공하면 알려드릴게요.”


나는 이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국군에서 보냈나. 아니, 군 소속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퍼.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민감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제국 귀족. 그것도 상위겠지. 더 나아가자면 왕족ㅡ”


이스의 손에는 어느 새,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것이 맞닿고 있는 것은 나의 목.


“거기까지 해주세요, 류셀. 농담도 그 정도가 되면 간단히 넘길 수 없어요.”

“타인이 당연히 본인에게 맞춰줄 거라 생각하고, 우를 범해버리는 것은 위에 선 자들의 오만이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추측을 계속했다.


“하나, 왕도 침입 같은 터무니없는 것을 입에 담으면서도, 당연히 공공장소이니만큼 옆의 누가 듣고 참견을 해올 것을 생각지 않는다. 공공장소라는 것을 많이 사용해보지 못했다는 뜻이지.”

“류셀, 그만ㅡ”

“둘, 정식으로 배운, 간결한 검술을 사용한다. 내가 배운 게 맞다면,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교육이 아니야.”


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가, 단검이 내 목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무기로 내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 것쯤은 알고 있다.


“셋, 그 금화 자루에 새겨진 문양. 어디의 것이지?”


이스가 허를 찔려 뒷걸음치는 것을 잡아, 허리에 매단 자루를 들어보였다.


“나는 제국에 가본 적이 없어. 문양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어디의 것인지 조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스는 분한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쓴 미소를 띠었다.


“거기까지 간파할 줄이야. 하지만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어떻게 할 거죠? 이제 당신은 제게 협력할 수밖에 없어요. 제 정체가 탄로 나는 건 막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저와 함께 왕도 침입에 협력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는 이스가 의식적으로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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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첫 퀘스트를 받다 +5 19.03.08 1,868 43 7쪽
11 세계 정복의 시작 +2 19.03.06 1,999 42 10쪽
10 능력 판정을 받다 +3 19.03.06 2,092 37 10쪽
9 피로 얼룩진 계약을 맺다 +2 19.03.04 2,213 39 8쪽
»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 +3 19.03.04 2,402 44 10쪽
7 퀘스트를 제안 받다 +3 19.03.03 2,504 45 7쪽
6 살육에 취하다 +8 19.03.02 2,730 52 9쪽
5 거처를 얻다 +8 19.02.28 2,975 50 10쪽
4 사람을 죽이다 +14 19.02.26 3,420 56 9쪽
3 아인종 소녀와 만나다 +10 19.02.25 4,125 56 9쪽
2 이세계로 전생하다 +9 19.02.24 5,072 74 13쪽
1 한 번, 죽다. +10 19.02.24 6,954 7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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