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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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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963

작성
19.02.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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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이세계로 전생하다

DUMMY

어느새 나는 초록색이 만연한, 드넓은 평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


신선한 풀내음이 실린 바람은 너무나도 리얼했다.


“갓난아기부터 시작하지 않는 건가.”


내가 받은 역할 때문인지, 일반적인 사람의 삶과는 조금 다른 시작이었다.

평야에는 인기척은커녕 동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억센 풀들과 드문드문 있는 나무, 그리고 바로 가까이의 연못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내 옷차림이 바뀐 정도일까.


방금까지는 분명 교복이었다만 지금은 전부 검은색으로 도배가 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림질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검은 셔츠에 코트, 그리고 밑에도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바지와 워커 비슷한 것을 신고 있었다.


나는 조사 겸 연못에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금붕어 같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것을 예상했지만, 흉측한 도마뱀 같은 것들이 물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의 이마에는 뿔까지 나있었다.


“이건 도대체ㅡ”


나의 익숙한 얼굴이 연못에 비쳤다.


그리고, 나의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강제로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내가 평생 모르고 살았던 무언가가, 갑자기 내 지식의 범주에 들어왔다.


새롭게 이해를 할 필요도 없었다. 학습의 중간과정은 전부 생략됐으며, 오직 결과만이 존재했다. 마치 머리를 열고 교과서를 집어넣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건 덤이었다.


나는 두통에 신음하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저었다.


그 순간,


[ 푸 쾅! ]


거센 바람이 일고 폭발음이 들렸다.


내가 손을 내저은 쪽의 평야에 거대한 불구덩이가 생겨있었다.


“... 뭐지?”


모른 척 혼잣말을 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저건 내가 한 짓이다. 정확히 어떻게 한 건지도 이제 전부 이해하고 있었다.


불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평야에 퍼져가려 하고 있었다. 산불을 낼 의도는 아니었다만.


“아이시클 블라스트.”


주문명을 외웠다. 크고 작은 얼음 덩어리들이 무수히 생겨나더니 불구덩이를 뒤엎었다. 이제 얼음구덩이가 된 그것은 웬만한 운동장보다 큰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 손을 빤히 쳐다보았다. 겉으로만 봐서 달라진 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이가 없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쓴 것이 마법이며, 무엇을 외면 무엇이 써지고, 무엇을 쓸 수 있는 것까지 전부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지식은 분명, 방금 전의 내게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그 남자가 말한 ‘역할에 필요한 정보 제공’인가. 그렇다면 내 역할은 어딘가의 마법사인가 뭔가 하는 건가?


나는 짧았던 인생 내내 귀신은 물론이거니와 마법, 초능력 같은 것은 믿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방금 몸에 지져지듯 각인된 지식은 나의 그런 '상식'과 일치하지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내게 약속한 특전은 확실히 주어진 것이다. 그 특전은 스킬ㅡ고유능력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나는 특전이랍시고 받은 스킬을 발동하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옮겨진 것이다.


일단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원하면서 어딘가 그리운 향이 났다.


“확실히, 받았다. 받았지만 말이야.”


초ㆍ지각 마법을 발동했다. 일정 부분의 마나를 사용해서 사방으로 쏘아보내고, 그에 따라 시각, 촉각 등의 정보등이 내게 바로 전달되는 원리다. 그제야 주위가 다시 보였다.


비가 주춤주춤 내려 땅이 젖기 시작하고 있었다. 별로 비를 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모순을 느낀 나는 강렬한 위화감에 휩싸였다.


“어째서 비를 맞고 있지 않는 거지?”


손을 활짝 펴서 내밀었다. 그럼에도 비가 내 손에 닿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 손을 피하는 형태로 빗방울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방어마법을 발동한 기억은 없었다.


나는 문득 하나의 가능성을 깨닫고 스킬을 해제했다. 그제야 비가 내 머리칼을 적시기 시작했다. 초ㆍ지각 마법을 해제하고 나서도 다시 어둠에 갇히는 일은 없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잭팟이 터졌군.”


하지만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어느 범위까지 가능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아까처럼 광범위한 마법은 굳이 쓸 필요 없겠지. 그렇다면...”


나는 다시 스킬과 초ㆍ지각 마법을 발동한 채로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 그것에 마법을 조준했다.


“버스트.”


검은 빛이 쏜살같이 내 손가락을 휩쓸고 지나갔다. 손가락을 일시적으로 하나 잃을 각오를 하고 쓴 마법이지만, 멀쩡히 붙어있는 손가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법은 통과인가.”


그 뒤로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를 가지고 몇 가지를 시험하고 나서야 내 확신이 섰다.

내가 특전으로 받은 고향 언덕의 공기라는 것은 내 몸을 휘감는 형태로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어떠한 것, 그것이 생명이든 무기물이든 마법이든 간에 이 공기를 넘어 내 몸에 닿지 못했다.


“왜지? 단순한 언덕 공기일텐데.”


특별한 술수를 부리지는 않았다. 아무리 맡아도 단순한 공기다. 그러다 나는 그 남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어떤 구성물도 원래의 세계를 벗어나게 되면 다른 세계에게 전력으로 거절당할 수밖에 없다...라,”


스킬을 발동한 채로 물건을 집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초ㆍ지각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촉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남자의 말이 내 특전에도 포함된다고 한다면, 이 공기는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것이다. 즉,


“이 세계의 모든 것에 의해 거절당하는 건가...”


스킬을 발동했을 때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은 것이 설명이 됐다. 반사되어 내 눈까지 도달해야 할 빛, 그리고 음파 또한 마찬가지로 중간 과정에서 막혀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손가락에 대고 마법을 쏘았을 때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어째서 내가 다른 손으로 마법을 쏘는 건 그대로 발동되는 건가?


마법은 체내의 마나를 사용해서 발동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내 스킬을 거부한다면 어째서 정작 내가 쓰는 마법은 문제없이 기능하는 것인가.


“밖에서 들어오는 건 안 되고, 이쪽에서 나가는 건 된다는 건가?”


시험 삼아 빠르게 손을 움직여보였지만 스킬은 꾸준히 내 몸을 기준으로 극히 얇은 공기막을 형성했다. 스킬 발동 중에 내 육체를 억지로 스킬 범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불가능인 듯했다. 내 마법은 육체에 해당되지 않으니 괜찮다는 것인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특전일지도 모르겠군.”


스킬을 발동한 상태에서도 생활은 문제없었다. 평범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초ㆍ지각 마법으로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것도 가능했다. 이 상태에서 음식물 따위를 섭취할 수 있을지는 나중에 시험해봐야겠지만.


그 무렵, 바람이 다시 내 쪽으로 불었다. 그 공기의 흐름은 점차 뭉치더니 모양을 만들고 색을 띠었다.


이윽고 소녀의 모습으로 변한 그것은 내 앞에 서서, 거리를 두더니 무릎을 꿇었다.


“만물의 통치자, 그 무엇보다 고귀하신 분께 인사드립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놀랄 만한 광경이었지만 나는 이미 '머리로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내게 주입된 지식에 포함된 것은 마법, 들어본 적도 없는 생물의 종류, 그리고 새로운 전투방식.


그 낯선 지식에 의하면 내 앞의 생물은 정령. 속성은 바람. 즉 바람의 정령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이 나이에 여자의 알몸을 봤다고 해서 동요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정령은 원래 '그런' 존재이다. 그렇게 이해했다. 새로운 지식이 내가 그렇게 이해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식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 남자가 무슨 원리로 내게 초단기 학습을 시킨 건지 모르겠지만, 지식은 불완전했다. 군데군데 빈틈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이 세계의 역사를, 나는 하나도 몰랐다. 생명들이 서로 어떻게 대하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마법이 이곳에서의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한다면, 그 외의 상식 대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부족은 곧 패착으로 이어진다.


나는 그 빈틈을 채울 겸, 바람의 정령을 만난 것을 기회로 삼았다. 다행히 언어에 관한 지식은 머리에 들어있었다.


“정령, 이름을 묻지.”

“황송합니다. 소녀, 불리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스키잔이라 합니다.”


바람의 정령은 내게 깍듯이 예를 표하고 있었다. 내게 말을 할 때 감히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래, 스키잔. 미안하지만 내 기억에 혼란이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어째서 네게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아. 알려주지 않겠어?”


솔직한 것은 독이 될지도 몰랐지만, 말을 몇 번 하다 보면 상식이 결여된 것이 금세 들통 날 테니 거짓말을 해서 볼 이득도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고귀하신 분이시여. 대단한 실례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눈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마왕님은 방금 태어나셨습니다.”


방금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마왕?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식으로 물었지만, 바람의 정령ㅡ스키잔은 진지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처음부터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마왕님께서는 방금 태어나셨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의 실수로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게, 마왕이라고?


“선대 마왕께서 예언을 남기고 돌아가신지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직접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마왕님. 축하드립니다.”


스키잔은 정말 기쁜 모양인지 엄숙한 표정을 유지하려는 와중에도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려고 했다. 나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크나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마왕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 판타지 소설, 만화, 게임 같은 것에 자주 등장하는 악의 화신이다. 잘은 몰랐지만 일단 악의 축이란 것은 자명한 사실. 내가 악의 축이라고?


그건 아버지겠지.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여기는 어디지?”


마왕의 어투나 행동거지 같은 건 전혀 몰랐기에, 나는 평범하게 물어보았다. 지금부터 갑자기 마왕 행세를 하라고 해도 무리다.


“알트레아 왕국의 서부 평야지대입니다.”


왕정제가 있다고 해서 전부 중세시대인 건 아니지만, 문명 수준에 큰 기대를 하면 안 되겠군.


“마왕님. 본디 저 같은 바람의 정령은 소식을 전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스키잔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마왕님의 강림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부디 그 존함을 들을 수 있는 영광을 하사해주십시오.”


이름이야, 달라질 필요가 없겠지. 빌어먹을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지만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그 쪽으로 불리는 편이 편했다.


“류셀. 류셀이다.”


성까지 말해줘야 되나 고민했지만 집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했을 때, 차라리 성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넘기려던 나는 문득 하나를 깨달았다.


“스키잔, 그렇다고 해서 내 이름을 같이 떠벌리고 다니는 건 자제하도록. 그리고 마왕강림에 대한 사실도 신용할 수 있는 자에게만 알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선별한 자들에 한해 전달하겠습니다.”


내가 진짜 마왕이라면 지금부터 괜히 마왕이라고 광고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다. 아직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류셀 마왕님...”


스키잔이 감격에 젖는지 몸을 떨었다. 특정 부위도 젖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분명 내 착각이리라.


“드디어, 드디어 저희 마족들을 다시금 번영의 길로 인도하실 고귀하신 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저 스키잔, 최선을 다해 이 기쁜 비보를 전하겠습니다!”


마족이라. 요컨대 마왕은 마족들의 왕이라는 건가. 스키잔이 '다시금'이라고 말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이 세계의 '생물'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역사'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으니까.


“잠깐, 그거에 대해서 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ㅡ”


불러 세우려 했지만, 스키잔은 이미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사라진 후였다.

백화점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나는 멍하니 평야에 홀로 섰다.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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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계 정복의 시작 +2 19.03.06 2,000 42 10쪽
10 능력 판정을 받다 +3 19.03.06 2,092 37 10쪽
9 피로 얼룩진 계약을 맺다 +2 19.03.04 2,213 39 8쪽
8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 +3 19.03.04 2,402 44 10쪽
7 퀘스트를 제안 받다 +3 19.03.03 2,504 45 7쪽
6 살육에 취하다 +8 19.03.02 2,730 52 9쪽
5 거처를 얻다 +8 19.02.28 2,975 50 10쪽
4 사람을 죽이다 +14 19.02.26 3,420 56 9쪽
3 아인종 소녀와 만나다 +10 19.02.25 4,125 56 9쪽
» 이세계로 전생하다 +9 19.02.24 5,073 74 13쪽
1 한 번, 죽다. +10 19.02.24 6,954 7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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