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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710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2.24 00:27
조회
6,953
추천
77
글자
11쪽

한 번, 죽다.

DUMMY

나는 고등학생이 될 때 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겨왔다. 물론 중동의 분쟁지역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태어난 곳은 미국 동부로, 결코 치안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또래의 놈들은 태평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다면 왜 나만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았느냐, 하면. 그것은 아마도 가업이 문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남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많게는 수십 명의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일이라고나 할까.


마피아.


그래, 마피아였다.

사업 분야는 약물거래부터 사채 운영, 인신매매까지 폭 넓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본인과 다른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매우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어째서 마피아 같은 걸 생업으로 하고 있는지 물어봤을 때, 아버지는 "그건 간단하단다, 아들아. 돈이 되기 때문이지." 라고 답했다.


학생일터인 나는 결국 학업에만 매진하지 못하고 학교->일->집. 학교->일->집 생활을 반복해야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이라는 건 대금 회수, 카지노 운영 관리, 그리고 우리 조직에 반항하는 놈들을 흔적이 남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 등이다.


그런 일에 직접 마피아 간부로서 나서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내 인생은 나를 납치하거나 죽이려는 놈들과 숱하게 마주치는 나날이었고,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나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칼을 품고 달려들다 도리어 총에 맞아 쓰러진 남자가, 내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발로 살짝 건드려보자 움찔거리는 것을 보아 아직 살아있었다.


“그보다 이 놈, 아직 안 죽은 거 같다.”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자 그는 쓰러진 남자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는 아버지 소유의 건물 로비. 1층이지만 총성이 밖으로 새어나갈 일이 없을 정도로 방음이 철저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건데.”


아버지에게 호출되어 시답잖은 훈계를 듣고 집에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출입문 바로 앞이라고는 해도 회사의 보안이 뚫렸다는 건 문자 그대로 보안책임자의 손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 때마침 검은 양복을 입은, 아버지의 수하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몰려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저도...”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앞을 가리켰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나섬과 동시였다.


내 심장에 뜨거운 게 느껴진 것은.


“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쓰러지고 있었다.


그걸 인지했을 때는 이미 한여름의 땡볕에 달궈진 아스팔트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


소리가 들렸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꼴이 방금 전에 봤던, 그리고 이때까지 많이 보아 왔던 암살미수범들의 최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뜨거운 것이 내 몸에 생긴 구멍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그런가, 저격당한 건가.


아까 죽은 놈에게 굳이 칼을 들려 보낸 건 내가 이렇게 방심할 거라 생각한 것이겠지. 이번엔 고작 나이프인가, 하고 건물 밖을 나가는 나를 멀리서 저격한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제법 공을 들였군.


내가 죽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불명확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여긴...?”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부서 안에 중간관리직을 위해 마련한 개별 사무실 같다. 유리벽 너머로는 책상을 하나씩 차지한 회사원들이 전화를 받거나 뭔가 메모를 하거나 하며 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90년대의 주식회사 사무실 같았다.


“아, 부디 앉아주게.”


멍하니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밖의 사람들처럼 양복을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나는 내 가슴팍에 손을 가져갔다. 교복은 여전히 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렇게 심장에 구멍이 뚫렸음에도 아무런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죽은 건가?”


남자가 권한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는 서류철에서 클립보드를 꺼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죽었다. 사망시각은 15시 27분, 사인은 총상.”

“그런가.”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자네는 당황하지 않는군? 보통 이곳에 오는 자들은 본인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날뛰는데 말이야.”


남자는 내가 침착한 것에 흥미가 동하는 듯 사무적인 표정을 풀었다.


“내가 총에 맞은 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설령 그대로 납치당해왔다 해도,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멀쩡히 말하고 있을 리가 없어.”


나는 그렇게 대꾸해주었다.


“눈여겨보고는 있었지만 특이한 소년이군. 정말 궁금한 건 없는 건가?”


나는 기다리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


“당신은 신인가?”


남자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분명 지상의 주민들이 생각하는 신과 제일 비슷한 것이긴 하지만, 조금 다르다네. 밖을 봤을 때, 신과 같은 존재로 보였나?”

“전혀, 일반 회사로밖에.”

“우리들은 세계의 섭리일세.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생명을 관리할 뿐이지 마음대로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힘은 없지.”

“생명의 관리?”


남자는 머그컵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아마 커피일 것을 한 모금 마셨다.


“모든 생명은 죽으면 다시 다른 형태로 태어나고, 우리는 매뉴얼대로 일이 진행되는 걸 도울 뿐이지. 시간이 촉박하니 설명은 이만하고 사후 업무를 진행하겠네.”


그는 만년필을 들고 클립보드의 내용을 꼼꼼히 작성하기 시작했다.


“류셀 블레이크. 자네는 본인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나, 아니면 다른 세계를 원하나?”

“내가 있던 세계 말고도 다른 세계가 있다고?”

“물론, 하지만 자세히 설명은 해줄 수 없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세계일 수도 있고, 불행이 넘쳐나는 세계일 수도 있지. TO가 나는 대로 랜덤으로 배정된다고 생각하면 좋아. 어떻게 하겠나?”


복불복이라는 것이다. 이세계를 선택할 경우 원숭이들밖에 없는 세계에 바나나로 태어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세계가 있다고 들으니 역시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세계가 있다고 하는 것인가.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한 가지. 세계는 서로 완전히 다른 법칙 아래 움직이고, 세계끼리 서로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네. 그 어떤 구성물도 원래의 세계를 벗어나게 되면 다른 세계에게 전력으로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야.”


수수께끼같은 말이었다.


“그럼 다른 세계에 가는 걸로 선택하겠어.”


남자는 내 선택에 이유를 묻지 않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환생에 따른 기억소거 동의를 받도록 하지. 여기에 사인을 해주게나.”


난 남자가 내민 클립보드를 받아들었다. 확실히 내 이름이 들어갈만한 박스가 하나 있었다.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환생하는 건 안 되는 건가?”

“그걸 결정하는 건 우리들이 아닐세. 기억 유지를 희망하나?”


그는 서랍에서 주사위 두 개를 꺼냈다. 내가 알고 있는 사각주사위와 형태는 비슷했지만, 눈이 희푸르게 빛나며 계속 형상을 바꾸고 있었다. 그는 주사위 채로 주먹을 쥔 채 내게 내밀었다.


“여기에 입김을 불어 넣어주게.”


조금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자, 남자는 바로 주사위를 굴렸다.


“오오... 운이 좋군. 기억유지는 허가되었네.”


주사위의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전생의 기억은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다음은 기억유지의 특전이라네.”

“특전?”

“전생의 기억을 유지하는 자에게는 한 가지, 살던 세계에서 원하는 것을 가져올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지지. 무엇이든 좋네, 말해보게나.”

“...”


무엇이든 좋다라.


“혹시나 해서 물어보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불가능 한 거지?”

“불가능하네. 죽은 자가 있다면 이미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바뀌어 있든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걸세. 특전으로 고를 수 있는 건 지금도 그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뿐이네.”


나는 잠시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내가 태어난 마을, 그곳의 뒤편 언덕의 공기. 그걸 원해.”


내 대답을 들은 남자의 눈이 커졌다.


“정말 그런 걸로 괜찮은 건가?”

“그래. 아무거나 된다고 했지? 기왕이면 어디서나 그리운 향기를 맡고 싶군. 별로 내 세계에 미련이 있지는 않지만, 다른 세계에 완전히 떠나버린다면 그 정도는 있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으음... 조금 까다로운 일이긴 하지만.”


남자는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일단 알았네. 어떻게든 처리해보지. 그렇다면 이제 자네에게 물어볼 건... 아, 여기 있군. 자네는 역할 배정을 신청할 자격이 있네. 신청하겠나?”


내가 그에 관해 질문할 걸 예측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설명했다.


“세계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고, 새롭게 환생하는 자가 그 빈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네. 자네 세계에서는... 마더 테레사, 레닌 같은 사람들이 있지. 저마다 역할은 다르지만 세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기둥 같은 것이야.”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만.”

“문명이 보다 나은 쪽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일정 간격을 두고 배치하는 촉진제라고 보면 되네. 쉽게 비유를 들자면 생쥐가 미로를 통과하는 걸 돕기 위해 군데군데 치즈조각을 놓아두는 것과 비슷하지.”


요컨대 치즈조각이라는 건가. 내게는 전혀 메리트가 느껴지지 않는 제안이었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한 몸 바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신청하지 않는 쪽으로ㅡ”

“아, 미안하네. 실수로 역할에 이미 마크해버렸군.”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이 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그건 그쪽의 실수니까 수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할 수 없네.”


남자는 뻔뻔할 정도로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말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실수 하나라도 전부 규칙에 의거해서 발생한 일들이니까. 역할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네. 그럼 어디에 배정을 하면 좋을까.”


남자가 태평하게 머리를 굴리다 손가락을 튕겼다.


“그 자리가 남아있었군.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 시기도 적절하지.”


남자는 도장을 쾅 하고 찍었다.


“좋아, 전부 결정되었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바라네, 류셀 군.”


그의 말과 함께 내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갔다.


“다음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군.”


정신이 아득해지면서도 기어코 불평을 말하자, 남자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고하겠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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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계 정복의 시작 +2 19.03.06 1,999 42 10쪽
10 능력 판정을 받다 +3 19.03.06 2,092 3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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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 +3 19.03.04 2,401 44 10쪽
7 퀘스트를 제안 받다 +3 19.03.03 2,504 4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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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처를 얻다 +8 19.02.28 2,975 50 10쪽
4 사람을 죽이다 +14 19.02.26 3,420 56 9쪽
3 아인종 소녀와 만나다 +10 19.02.25 4,125 56 9쪽
2 이세계로 전생하다 +9 19.02.24 5,072 74 13쪽
» 한 번, 죽다. +10 19.02.24 6,954 7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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