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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706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2.28 00:20
조회
2,974
추천
50
글자
10쪽

거처를 얻다

DUMMY

시이나의 집은 한참 성벽을 따라 걸어가고 나서야 나오는 거주구역에 있었다.


주민들은 외지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각기 허름한 집 안에 들어가 모습을 숨겼다.

땅따먹기를 하다 나를 보고 급히 달아나는 꼬마들은 하나같이 동물 귀나 날개가 달려있었다. 번화가에서 마족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렇게 한 구역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셀 씨는... 살인이 익숙하신가 봐요.”


시이나가 벗은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후드를 포함한 웃옷을 벗고 거의 속옷 차림이 되어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스포츠 브라와 핫팬츠를 입었다.


그걸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자, 그제야 시이나가 몸을 움츠렸다.


자신의 집에 나를 들인 걸 생각하지 못하고 평소 하던 대로 행동한 것 같다.


“그렇게 보였나.”


나도 자연스레 코트를 벗었다. 굳이 내가 있는 걸 의식하게 해서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남자 대 여자의 로맨틱 시추에이션을 만들려고 따라온 게 아니니까.


다행히 시이나는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아까부터 너무 웃고 계신 걸요?”

“그럴 리가ㅡ”


나는 입을 더듬었다.


“...”


서둘러 표정을 풀었다.


나는 그 자들을 죽이고 흥분한 것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살인에는 묘한 희열이 따라왔다.


사람이 죽는 건 질리도록 봐왔다. 직접 죽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죽이라는 명령도 몇 번이고 내린 적이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 그들은 사실상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다.


단지 조금 열기에 취했을 뿐, 이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조금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버스트로 너무 쉽게 죽여 버렸다는 것이겠지.


아니,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살인에 쾌락 따위 느끼지 말아야 할 터인데...


“시이나. 그 놈들은 너를 범하려 했어.”


흑발의 웨어울프 소녀는 내가 죽인 양아치가 생각났는지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래가 성립됐을 터인 너에게 해를 끼치려 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그 생각을 억지로 치워버린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당연히 죽여도 되는 거다. 그렇지?”


시이나의 눈에 비친 내 눈에는 아마도, 광기가 서려 있었다.


“... 인간에 한해서라면 동의할게요.”


시이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인간들은 믿을 수 없어요... 저는 알아요.”


어두운 감정이 내비쳤다. 시이나의 인간을 향한 불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몰라도 근원은 확실하겠지. 분명 좋지 않은 기억.


집안을 둘러보다 보니 거실 한 구석에 걸린 대검이 눈에 띄었다.


“뭐지? 장식용인가?”

“아, 저거요.”


시이나는 대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옛날부터 저희 집안에 내려오는 물건이에요. 가보, 라고나 할까요. 일단 쓰는 법은 알고 있지만 그다지 쓸 일이 없어서요.”


시이나의 눈에 외로움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오늘은 밖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죠.”


나는 시이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사람이 실종됐다. 범인을 찾고 있겠지.”

“네. 위병들이 깔렸어요.”


시이나는 창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능력은? 마법이나 검술에 뛰어난 자가 있어?”


나는 그 위병이란 것들이 내게 위협인지부터 확인하려 했다.


“없어요.”


시이나가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면 안 돼요. 왕국기사단도 있으니까요.”

“왕국기사단?”


시이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실력자들이 있는 집단이에요. 기사단의 마법사는 4급 마법까지 쓸 수 있을 걸요. 국왕의 직할이기도 하고요. 마법의 급수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그래. 10급부터 1급까지 있지 않나? 제일 기초적인 발화 마법 등이 10급에 속하지.”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류셀 씨, 배고프지 않아요?”

“아니. 허기는 전혀.”


식사를 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었다. 내 몸은 마력이 뭉친 덩어리 비스 무리한 것이었으며,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마력은 대기 중의 마나로부터 계속 보급되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특이한 경우로, 일반 마족은 그래도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내 몸은 무척 편리한 몸이었다.


“류셀 씨도 마족이란 건 알지만, 혹시 무슨 종족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글쎄. 그것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그것까지 모르시다니.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일이 뭐예요?”

“서부 평야지대에서 눈을 뜬 것. 그 전의 일은 기억하고 있지 않다.”


시이나가 턱에 손을 괴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태어난 곳도 모르시겠고... 겉으로 봐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차차 알아가는 걸로 하죠.”

“나는 역시 시이나의 집에서 지내게 되는 건가?”


당연하다는 대꾸가 날아왔다


“류셀 씨, 무일푼이니까 따로 지낼 곳도 없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니 가슴이 아프네.”


시이나가 쿡쿡 웃었다. 검은색 꼬리가 흔들렸다.


“류셀 씨는 엉큼한 짓 안 할 거라고 믿어요, 뭐...”


그러더니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쌓여있으면 가슴 만지는 정도까진 봐줄게요.”

“... 농담이지? 그리고 류셀이라고 불러라. 존대 안 해도 되니까.”

“그래도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됐으니까.”


시이나가 꼬리를 내렸다.


“알았어, 류셀.”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시이나는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해 답해주었다. 먼저, 나의 종족에 관해서다. 내가 마왕인 것은 숨기고 그냥 궁금하다는 식으로 물어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어느 ‘종’에 분류되지 않았다.


나 같은 마왕은 두 종류가 있다. 마족이 엄청난 힘을 얻어서 마왕의 자격을 얻는 경우, 그리고 자연재해처럼 무작위로 발생하는 경우다.


나는 후자였다. 특별하다고 볼 수 있는 이 경우에 내 종족은 흡혈귀도, 웨어울프도, 악마도 아니었다. 애초에 생물로 볼 수 있을지도 애매했다.


“그렇게 태어난 마왕은 온 마족들 위에서 군림하는, 말하자면 신적인 존재야. 처음부터 고귀하게 태어나는 거지.”


시이나가 침대에 누워 다리를 흔들거리며 얘기하는 걸, 내가 의자에 앉아 경청했다.


“그럼 우리가 있는 이곳, 알트레아 왕국에 대해 설명해줄게.”


현재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건 지오돌프 국왕. 60세의 늙은 나이지만 정작 왕위를 이어받은 지는 수년이 채 되지 않았다. 마왕을 물리친 선대가 장수하여 사망하기 전까지 집권했기 때문이다.


짧은 집권기간이지만 그 2년 동안 왕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급락했다. 국방력을 키운다는 명목 하에 불어난 세금과 식료품의 가격은 빈곤에 허덕이는 거리를 만들었다. 국왕은 경제 침체가 본인의 탓이 아니라고 내두르기 바빴고, 대중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국왕을 욕할 수는 없다보니 자연스레 힘이 없는 취약 계층으로 분풀이가 이어졌다.


본래, 마족이라면 치를 떨었다던 선대 국왕이 마왕 및 마왕군과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반복한 끝에 거둔 승리는 인간들에게 일종의 메달 같은 것이었다. 마족들은 패배자며, 본인들은 승리자. 그런 인식이 사회에 각인되며 마족은 당연히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짐승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했다.


현재, 마족들은 범죄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시이나 렌이 그 양아치들에게 저항을 못한 것이 그 때문이다. 노예로 삼아도 좋고, 죽여도 좋다. 다른 인간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마족을 살리고 죽이는 일의 재량권은 누구나 보장받았다.


그나마 모험자를 하는 마족은 어느 정도 사람대우라도 받는 모양이다. 경멸의 시선을 받긴 하지만, 국가에 공헌하는 게 있으니 직접적으로 뭐라 할 수도 없다. 강력한 마족들이 동시에 들고 일어나면 곤란하고. 물론, 시이나를 보고 문을 열어준 문지기 같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대다수는 마족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언어 체계는 생각보다 잘 잡혀 있었다. 내가 있는 왕국 일대에서 쓰이는 언어 말고도 꽤 많은 언어들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일 많이 쓰이는 트란어로 통일해 쓴다고 했다. 적어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그걸 듣고 나서야 내가 아무 위화감 없이 이세계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꺼번에 주입된 지식의 양이 너무 많아서 언어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와서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일단 감사를 표하자.


그 말고도 은화니 금화니 하는 통화 단위, 주변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시이나는 인간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듣자하니 70년 전에 일어난 인간과 마족간의 인마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했다.


“그 전쟁을 승리로ㅡ인간 측 승리로 이끈 게 선대 알트레아 국왕. 그가 마왕을 무찔렀어. 덕분에 우린 이런 꼴이 됐지.”

“마족이라고 차별받는 건가?”

“류셀도 봤잖아? 그리 좋은 대우는 아직도 받지 못해. 알게 모르게 차별은 계속되고 있어.”


시이나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뭘,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거래는 거래다. 내가 시이나의 신변은 지켜주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호언장담이라 하겠지만... 류셀은 강하니까. 기대하고 있을게.”


오랫동안 말하는 것에 지쳤는지 소녀는 어느새 그대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고스란히 드러난 무방비한 몸을 담요로 덮어주었다.


“자, 이제 뭘 하면 좋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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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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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첫 퀘스트를 받다 +5 19.03.08 1,868 43 7쪽
11 세계 정복의 시작 +2 19.03.06 1,998 42 10쪽
10 능력 판정을 받다 +3 19.03.06 2,092 37 10쪽
9 피로 얼룩진 계약을 맺다 +2 19.03.04 2,213 39 8쪽
8 소녀는 순수하지 않다 +3 19.03.04 2,401 44 10쪽
7 퀘스트를 제안 받다 +3 19.03.03 2,503 45 7쪽
6 살육에 취하다 +8 19.03.02 2,730 52 9쪽
» 거처를 얻다 +8 19.02.28 2,975 50 10쪽
4 사람을 죽이다 +14 19.02.26 3,419 56 9쪽
3 아인종 소녀와 만나다 +10 19.02.25 4,125 56 9쪽
2 이세계로 전생하다 +9 19.02.24 5,072 74 13쪽
1 한 번, 죽다. +10 19.02.24 6,953 7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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