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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7.07 21:42
연재수 :
309 회
조회수 :
137,853
추천수 :
3,291
글자수 :
1,720,011

작성
19.03.04 21:35
조회
2,214
추천
39
글자
8쪽

피로 얼룩진 계약을 맺다

DUMMY

나는 내 목을 노리는 단검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시험해보겠나?”


그 말과 함께, 내 몸을 둘러싸듯 마력이 방출되었다. 내 발치에 있는 도로가 움푹 파이고 나무수레가 박살난다. 동시에 몰아치는 강풍에 이스는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나의 일부여, 나를 지켜라.”


주인을 닮은 것인지 검은색으로 아른거리는 마력은 나를 보호하듯 둘러쌌다. 쉭 쉭 거리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한 마리의 거대한 뱀과 닮은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적을 물어뜯을 것처럼 사나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건 페인트. 내가 있던 세계의 공기를 불러오는 고유스킬은 이미 발동해두었다.


“뭔가요... 류셀 씨, 갑자기 검은 실루엣으로 바뀌셨는데요?”


다른 세계의 공기를 사이에 두고는 빛도 통하지 않으니 이스에게 보이는 건 내 실루엣 뿐이겠지. 고전 플래시 게임에 나오는 스틱 피규어 정도로 보일까.


그걸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짧은 고민 끝에 고유 스킬을 해제했다. 나름 마왕의 고유 스킬인데 발동하면 상대의 눈에는 자동으로 스틱 피규어라니.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문제는 돌아가서 찬찬히 생각해봐야지.


“이제 잘 보이겠지.”

“네, 잘 보여요.”


이스가 단검을 내던지더니 예의 쌍검을 소환해 순식간에 찌르고 들어온다.


일품이라고 해도 좋을 최고의 찌르기. 하지만 무엇이라도 베어버릴 것처럼 나아가던 백색의 검은, 허공에 일렁거리는 뱀처럼 보이는 나의 마력에 닿자마자 어이없게 멈춰버린다.


몇 번이고 휘둘러보지만 애먼 금속음이 강하게 울릴 뿐이고, 이스는 충격 받은 얼굴로 물러났다.


“마력은 이런 식으로 응용이 가능하다. 하려고만 한다면 사역마처럼 부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제 공격이 하나도 안 통하다니... 하지만 이 검은...!”

“일단 이쪽도 반격은 해줘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마력을 응축해 탄환 모양으로 만든 것을, 이스의 양다리에 쏘았다.


“큭!”


새하얀 허벅지에 빨간 선혈이 흐른다. 이스는 비틀거렸지만 겨우 쓰러지는 것을 면하고 이쪽을 직시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려는 것처럼,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를 노려본다.


이윽고 손가락만한 날붙이 몇 개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앞서 이스가 소환한 무기와는 달리 평범한 철제 무기인 그것들은 뱀에 닿자마자 파사삭, 하고 바스러졌다. 그걸 본 이스의 눈이 커졌다.


“이... 무슨 막대한 마력... 류셀, 당신은 도대체...”

“선택해라. 이스. 그 정도 여유는 주지.”


나는 검지를 들어 이스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다리가 아니라 머리를 겨냥했다.


선택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이스가 고를 수 있는 건 두 가지.


나와 적대할 것인가, 아니면 검을 내릴 것인가.


“아까는 손대중을 해주신 거였나요? 후후, 자존심이 조금 상하네요.”

“...”


내게서 대답이 없자 이스는 검을 떨어뜨렸다. 굴복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로서는 당신에게 이길 수 없어요. 접근 자체를 할 수 없는 상대에게 접근전을 건다니, 말이 안 되죠.”


야심한 밤, 이제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이제 그친 비는 도로에 그대로 고여, 조용히 밤을 비추는 달을 보여주었다. 이스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도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겠어요. 제 어깨에 걸린 건 저 하나만의 목숨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를 죽이시지 않는다면... 주제넘은 부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궁지에 몰린 자의 목소리도, 허세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응변도 아니었다. 비록 무릎은 꿇었지만 이스의 눈은 달보다 환하게 빛났고, 가지런히 무릎을 모은 자세에는 품위까지 느껴졌다.


높으신 분이 이렇게 무릎 까지 꿇어가면서 부탁한다면, 보통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겠지.


하지만 단순한 말에 현혹된다면 그건 우매한 행위다. 사람은 언제라도 실익을 따지고,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 상황은ㅡ 내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스. 넌 자신의 목숨보다 이 일을 성공시키는 게 더 중요한 모양이군.”

“당연해요. 저는 제국의 사람이니까요.”


나는 잠시간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했다.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이스를 죽여 금화를 취할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발생할 이득을 우선시할지. 결론을 내리는 건 금방이었다.


“내가 네 계획을 도와준다는 가정 하에 계약을 하지.”

“계약...이요?”


내게 새겨진 지식에는 ‘마의 계약’이라는 것이 있다. 계약자가 인간이든, 마물이든, 천사든, 악마든 이 계약이 맺어지는 순간 그에 종속되어 버린다. 푸는 방법은 죽음, 즉 존재의 소멸 외에는 불가능. 혼에 직접 새기는 계약이니만큼 번복도 없다.


“나, 류셀은 이스 네가 왕국의 현 국왕에게 접근, 그리고 암살하는데 조력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내 입에서 나올 때마다 허공에 흰 문자가 떠올랐다.


그걸 이스는 신기함이 반, 경계심이 반으로 가만히 보고 있었다. 허벅지의 부상은 벌써 잊어버린 듯했다.


“국왕 암살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이 계약은 파기. 하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이스 너는 나의 것이 된다.”

“네...네?”


이스가 돌연 볼에 홍조를 띠고 당황했다.


“제 몸에는 흥미가 없지 않으셨나요?”


“이스. 그게 아니야. 내 것이 된다고 하는 것은, 삶, 죽음 모두 나의 결정권에 맡기는 것이다. 즉, 너는 본인의 자유의사보다 내 의사를 우선시하게 된다는 소리지. 내가 죽으라 하면 죽어야 하고 친지를 죽이라 하면 죽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유의사를 잃는다는 건 생각보다 중대한 일이었는지 이스는 더 이상 농을 던지지 않았다.


“어찌하겠나. 계약 내용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말한 내용을 네 입장에서 다시 말하면 된다.”

“이 계약은... 절대적인 모양이군요. 류셀 씨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정도니.”

“그렇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파기하려 한다면 그 즉시, 죽는다.”


나는 다시 이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국의 국민은, 네가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킬 가치가 있는가?”

“...”


이스가 무릎을 꿇은 채, 잠시간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대답이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가치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해야만 합니다. 그런 의무가 있어요.”


본인의 국가를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스와는 만난 지 수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올곧고, 본인보다 타인의 안녕을 우선시한다. 이곳이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이었다면 그야말로 용사의 자질이었다.


“계약, 맺겠습니다.”


소녀는 흔들림 없이, 맑은 목소리로 계약 내용을 한 번에 읽어 내려갔다. 서로간의 계약 내용 확인이 이루어지자 문자들은 크게 한 번 진동하더니 나와 이스의 몸에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계약의 완료를 알리는 표시다.


나는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인 이스에 손을 내밀었다. 이스는 아무 의심 없이 그 손을 잡아 일어났다.


“어...라? 다리가 어느새...”


이스의 다리의 부상 정도는 순식간에 치료 가능한 범위다. 이스는 아픔이 사라지자 놀랐는지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어보았다. 상처는커녕 흉터하나 남지 않은 것은 힐 마법 덕분이다.


“내 손이 닿았을 때 치료해 두었다. 밤이 늦었군.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모험자 길드에 가서 등록부터 하지.”


나는 손을 놓고 시이나의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저, 지낼 곳 없는데요? 이 시간에 여관을 찾아보기도 힘들 것 같은데.”


이스가 웃는 얼굴로, 하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녀석, 내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류셀 씨, 조력해준다고 말했죠? 그렇죠?”


나는 계약 내용에 조력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쓴 것을 깊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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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09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1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0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9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9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7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6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8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8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0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7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4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6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8 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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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1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67 38 8쪽
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51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5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8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9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6 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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