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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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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694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8.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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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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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신의 사자

DUMMY

소환의 의식은 마계나 천계의 존재를 부르고, 그 중 부름에 응한 자를 현계에 현현시키는 마법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보통 소환되는 것은 악마로 한정된다. 지상의 욕망에 제일 쉽게 응답하는 게 악마니까.


“이봐, 가름. 땅이 울리고 있으니 으르렁대는 건 자제해라.”


나는 당장이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 달려 나갈 기세인 가름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보스!”


사나운 반응을 보이는 건 가름뿐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뜬 린이 낮게 말한 것이다.


“이 냄새...”


왕국을 전부 뒤덮은 마법진의 중앙으로 눈부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밝게 비치는 빛의 한가운데에는 흰 공 같은 것이 있었다.


이 거리라면 단지 무언가가 빛나고 있다고밖에 알지 못하겠지만, 늑대들의 눈과 코는 이미 정확하게 소환된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순간, 빛의 구슬로도 보이는 것이 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보스!”

“마왕님!”


린과 가름이 내 앞에서 방어태세를 취하고 스키잔이 바람의 막을 둘렀지만 정작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소환수가 주인을 찾아오는 게 그리 호들갑 떨 일인가.


이쪽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오던 구슬은 나를 둘러싼 부하들의 코앞에서 멈춘다.


눈을 아프게 하는 빛이 점점 사그라지자,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 무엇인지 드러났다.


백색 날개로 몸을 가려 둥글게 만 것이다.


촤악, 소리를 내며 날개가 펼쳐지자 감탄인지 경악인지 모를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무척 가벼워 보이는 흰 옷을 입은 자그마한 소녀가 눈을 감고 있었다. 입었다기보다 걸쳤다는 표현이 맞겠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토가는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그것은 두르고 있는 분위기부터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흰 고리가 아이의 머리 위에 고정되어 빛났고, 마찬가지로 등에 달린 새하얀 날개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 있어도 살짝 지상 위에 떠있는 소환수.


이 정도쯤 되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소환된 것이 무엇인지쯤은 알 수 있다.


“천사.”


나는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닫혀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것은 잔뜩 이를 갈고 있는 가름과 린에 시선을 주지도 않고 나와 눈을 먼저 맞췄다.


적의가 느껴지는 시선은 아니었다.


“주인.”


겉모습답게 열 살 배기의 목소리가 나왔다. 맨발로 지면을 딛고 선 천사는 양 무릎을 꿇더니 기도하는 손을 만들고 다시 눈을 감는다.


“주인의 부름에 따라 지상에 내려왔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주인. 주인이라고?


“30만의 목숨 값으로 얻어낸 게 설마,”


전혀 예상 못했던 일에 내가 고개를 젓는다.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일어난 일은 전부 사실이다.


“천사일 줄이야.”


이 세계는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천사가 아니고 여전사 발키리가 나타났어야 했겠지.


계속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역시 모든 세계를 통틀어 신에 제일 가까운 건 나를 이 세계에 전생시킨 세계의 섭리라는 놈들이 분명하다.


한편, 마족들이 본능적으로 발산하는 수많은 적의에도 불구하고 천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악을 몰아내고 인간을 구원한다는 신의 사자를 앞에 두고 보내는 적대감과 살의는 느끼지 못할 레벨이 아닐 텐데도.


“보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가름과 다르게 린은 꽤 차분하게 물어왔다.


“그렇군. 일단 몇 가지 물어봐야 하겠지.”


인간의 목숨 값으로 불러낸 천사다. 단지 이쪽이 마족이고 상대가 천사라는 것만으로 내버린다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네 이름은 뭐지?”

“가브리엘. 3대 천사 중 하나.”


아는 이름인가 싶어 뒤를 슬쩍 보자 린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 자체는 내가 살던 현대에서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다. 이런 어린이라고는 알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왼쪽에 선다는 대천사다.


“내 정체에 대해서 알고서 나를 주인이라 부르는 건가?”

“그대는 마왕, 인류에 해악을 불러올 존재. 천계에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내가 해온 짓을 보고도 나를 긍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천사는 본질적으로 선할 터. 내 성향이 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이해가 안가는 군. 내 소환에 일부러 응한 이유는?”


감고 있던 가브리엘의 눈이 뜨였다. 그리고 나온 말은 그 자리의 모두를 경악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계시의 천사. 그리고 주인은ㅡ 신의 대행자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 ◆ ◆ ◆ ◆ ◆ ◆




“그런가. 바르포르도가 붙잡히고 우리군 30만이 전멸했다고.”


레스트 바실루스 황제는 암울한 소식 앞에서 불쾌감을 숨기지도 않았다.


국민들의 갈채를 받으며 왕국으로 원정을 나간 6개 군단급 병력이 국경에 남겨둔 수천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다는 걸 곱씹어듣는 중이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군. 그가 위험인물이라는 건 대충 눈치 채고 있었지만 마법 하나로 그 수의 군세를 없애는 게 가능하다니.”


드문 재능을 인정받은 궁정 마법사라 해도 홀로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간은 없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군의 더 큰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게 마법사라는 존재. 전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있었지만 전쟁의 판도를 결정지을 만큼의 최종병기 취급은 아니었다.


“확실히 이번 건은 제국의 뼈아픈 패배다. 하지만 이 패배로 인해 알트레아 왕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지.”


시가를 깊게 빨아들인 레스트의 입에서 짙은 연기가 나왔다.


“사태도 사태다. 한번쯤은 눈감아주지 않겠어, 레이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황제.”


전령의 보고서를 다시 읽던 레이아 바실루스가 담배 연기에 살짝 눈을 흘기면서도 말을 꺼냈다.


“후일을 위해서라도 더 큰 공세를 펼쳐 싹을 없애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에 군을 더 쓰자고?”

“고 바르포르도 중장의 전 방위 공격으로 인해 주력 방위군은 괴멸상태입니다. 적도 저런 대규모의 마법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을 터, 희생을 더 낼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만.”

“아니다, 레이아. 지금은 공세에 나서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무엇입니까?”


레스트는 피다만 시가를 재떨이에 문질렀다.


“아무리 대외적인 명분이 있었다 해도 제국은 왕국, 아니 왕국이었던 것에 이빨을 드러냈다.”

“주변국의 불만을 잠재우는 거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요.”

“내가 다른 나라의 눈총이 따가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싸움을 건 나라는 더 이상 이전의 왕국이 아니야. 이번 일로 의심할 여지가 없어졌다. 지그문드 놈이 즉위한 뒤로 왕국은 존재 자체가 세계의 섭리를 가볍게 뛰어넘는 조력자를 얻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다.”

“그 소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정말 그 정도의 힘을 가졌으면 어째서 좀 더 일찍 전선에 나서지 않았던 걸까요?”

“그건 나도 심히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레이아.”


레스트는 무의식중에 시가를 하나 더 꺼내려고 하는 자신의 손을 멈췄다.


“진정한 의미로 왕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면 국경을 넘기도 전에 우리 군을 쓸어버리는 게 가능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르...포르도가 참전한 이상 군이 어떤 모토를 가지고 침공해왔는지는 뻔했을 텐데 말이다.”

“마치 왕국을 제국의 손에 멸하고 싶었던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래. 하지만 그 꿍꿍이는 지금 아무래도 좋다. 다시 말하지만 제국은 그 누군가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적대관계가 된 거지. 아무리 우리라고 해서 왕국과 같은 길을 밟지 않으란 법은 없어.”


레이아는 레스트가 우려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렸다.


“제국에 침공해올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이 넓은 땅이 전쟁터로 변한적은 적지 않다. 그때마다 외적을 물리쳐왔기에 지금의 제국이 있는 것이고. 하지만 왕국에서의 참사가 여기에서도 반복된다면 제국이라는 나라가 와해되어버리고 말아.”

“보고에 과장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레스트와 달리 레이아는 아직 마법 일격으로 30만이 스러졌다는 걸 완전히 믿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드래곤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 해도 역시 너무 허황된 소리가 아닌지요. 그런 건 고대 문헌에 실려 있는 신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 단체로 환각에 걸렸을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이 보고는 그 유리에가 직접 전달한 거다. 생존 병력이 전달한 보고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리고 레이아. 바르포르도는 그렇게 쉽게 당할 장군이 아니다.”


레스트의 마지막 문장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분노가 실려 있었다.


“어떤 마법을 썼느냐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정벌을 위해 떠난 우리 군이 괴멸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와 화해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았지만 류셀의 곁에는 이스를 심어두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아직 제국 소속입니다. 잘 활용하면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차하면 암살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암살자도 아직 있으니까요.”

“일단 연락해서 나쁠 건 없겠지. 하지만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힘의 판도가 변하려고 하고 있어. 그녀가 제국을 배신해도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야.”


대외적으로는 승전을 발표해도 될 정도로 왕국에 크나큰 타격을 입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기루일 뿐.


일전에 느꼈던 불길함은 이것이었구나, 라고 레스트는 후회했다.


공주가 망명한 것도, 제국이 토벌대를 보낸 것도, 왕국이 쉽게 밀리던 것도 전부 그의 계산대로였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소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병사들과 유능한 장군 둘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 이러고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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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사자 +1 19.08.25 562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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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49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0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0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42 17 10쪽
49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1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20 12 1쪽
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66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09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1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0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9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9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5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8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9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7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4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5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3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1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67 38 8쪽
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49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7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9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3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80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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