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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559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7.06 13:12
조회
750
추천
33
글자
9쪽

잃어버린 기억

DUMMY

내 그림자에서 무수히 많은 검은 촉수가 쏟아져나왔다. 유리에는 지팡이를 다시 휘두르려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닫는다. 금색 밧줄이 유리에의 사지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었다.


“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몸을 뜯어먹으려 쇄도하는 그림자 촉수들을 눈 앞에 둔 유리에는 탄성을 한 번 내더니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마치 병든 나무처럼 밧줄이 빠르게 시들어가고, 몸의 자유를 되찾은 유리에는 지팡이를 한번 젓는 것으로 촉수들을 날려버렸다.


“방금 건 훌륭ㅡ”


나는 유리에가 말을 끝내게 놔두지 않고 그녀를 포위한 형태로 빙창을 소환, 그대로 사출시켰다. 완벽히 급소만을 노렸지만 빙창이 스스로의 의사를 가지고 유리에를 피하는 것처럼 비껴갔다. 저쪽에서 제 때 쓴 회피 마법의 여파다.

유리에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고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준비했던 다음 마법의 발동.

빗나가서 유리에의 사방에 박힌 빙창의 동시폭발이다.


“뭣?!”


재차 달려드는 그림자 촉수들을 상대하기 바쁘던 유리에의 몸을 성대한 폭발이 뒤덮었다. 나는 그걸로 상대가 당했을 거란 자만은 품지 않고 공간을 절단시키는 검격을 세 번 날려보냈다.


챙, 챙, 챙.


탐지마법을 쓸 것까지도 없었다. 내 검격을 그대로 받아낸 날붙이 소리로 충분했다. 방대한 마력을 담아 휘두르는 그것은 보통 인간이라면 절대 받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위험하네, 그런 걸 막 날려보내면 여자들한테서 좋은 소리는 못 듣는다구?”


다시 한 번 말투가 돌변한 유리에가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염세적인 말투로 고개를 기울여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지팡이 대신 검이 들려있었다.


“루코브, 이 멍청한 자식. 적당히 간만 보고 바꾸란 소리 못 들었어? 유리에의 몸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떡할 건데. 소년은 마왕이니까 네가 이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잖아? 잠자코 구경이나 하고 있어.”


혼잣말을 마친 유리에가 두 손으로 고쳐쥔 검은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도신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다르군.”

“그래, 나는 페리스. 현역에 비하면 많이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나로 참아줄래?”

“...”


아까의 빛 마법과 마찬가지로 저 검은 위험하다. 나와는 상성이 극악이다.


“핫!”


유리에가 기합을 넣어 벤 검이 내 첫 번째 방어막을 돌파. 하지만 아까 손쉽게 깨진 것으로 준비를 해놓고 있던 서른 다섯 개의 방어막이 일제히 유리에 쪽으로 들이닥쳤다. 그대로 작은 몸을 으깨버릴 생각이었지만.


유리에는 흐읍,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빛이 한층 더 강해진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모든 방어막을 깨버렸다.


“이쪽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슬슬 본 실력을 보여주지 않을래? 어린 마왕 씨.”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유리에가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숨기고 있잖아? 그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이쪽은 전력으로 가고 있는데 힘의 절반만 쓰면서 대충 상대할 생각이면 조금 너무한 걸.”

“...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군.”


나는 셔츠 윗 버튼을 하나 풀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자만한 것 아닌가? 피라미 주제에.”

“뭐? 나는 이래뵈도ㅡ”

“내가 힘의 반절이나 썼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우습군.”

“이게...!”


내 도발에 얼굴이 붉어져 달려들려 하던 유리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어... 어째서? 네 마법에 대한 저항은 완벽할텐데...!”

안간힘을 써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유리에가 울분을 토로한다.


“소용없다. 내 진심을 반절이라도 바란 네 소망을 탓해라.”


코트 안쪽으로 손을 넣으며 내가 다가가자 유리에는 고개를 크게 젓는 것 같더니 허공에 고정된 상태로 축 늘어졌다. 다시 고개를 들은 그녀는 처음 봤을 때의 어린아이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빠, 역시 대단하네? 페리스랑 루코브 상대로 이겼어. 둘 다 엄청 센데.”

“다중인격인가.”

“응? 그건 아니야~”


유리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둘 다 좋은 친구들이라구. 처음엔 유령이라서 무섭긴 했지만.”

“유령?”


나는 마안을 사용한 채 유리에에게 질문했다.


“너는 유령을 몸에 빙의시킬 수 있는 건가?”

“오빠도 참, 눈치가 빠른 건지 느린건지 모르겠어, 후후.”


예상외의 대답이다. 이 소녀에게 내 마안은 통하지 않았다. 정신계 마법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은 것이겠지. 그럼에도 체내로 흘려보낸 마나를 경직시켜 몸의 신경을 굳게 한다는 내 임기응변에는 아무런 수도 쓰지 못했지만 말이다.


인간은 마족과 달리 체내에 마나가 없다. 공기 중의 마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신체다. 따라서 몸안으로 들어온 외부의 마나에 대해서는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자연히 마나 쪽에서 거부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지만, 검격을 날리며 흩어진 소량의 마나를 강제로 흘렸기 때문에 상대의 체내로 침투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걸 검으로 쳐내느라 알아차리지 못한 유리에의 실책이다.


어찌됐든 대단히 위험한 녀석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일개 암살자 치고는 너무나 강대한 그 힘은 장래 내게 분명 위협이 된다.


“운이 좋지 않았군. 네 마지막 살인은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난다. 후회하며, 죽어라.”


내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는 걸 보고 유리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그 1911은 오빠가 만든 거야? 역시 재주가 좋네~”


작은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손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 세계에 아직 권총이란 개념은 없을 터다. 그건 둘째치고 어떻게 아무도 모를터인 이 총의 이름을 알고 있지?


“오빠, 나를 죽일 거야? 방아쇠만 당기면 한 방에 죽을 걸? 하지만 오빠는 나를 못 죽일거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위험인물을 없애는 건 기본중의 기본인 상식이다.”

“그치만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유리에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어왔다.


생뚱맞은 소리였다.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는 어린아이의 헛소리였다. 그렇게 받아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유리에의 입에서 나오자 마자, 이변은 발생했다.


“크...읏.”


나는 왼손으로 오른 귀를 감쌌다.


웅웅, 웅웅.


귀가 울린다. 심하게 울린다.


머리를 찢는 고통이 귀를 중심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유리에가 모종의 마법을 쓴 기색은 없었다. 전혀 원인이 보이지 않는 고통은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나를 압박해왔다.


“오빠?”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건 나를 죽이러 온 암살자밖에 없는데.


유리에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 얼굴과 무언가가 겹쳐졌다.


“...아.”


나는 권총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했다.


귀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깨질 것 같다.


너무 아파서 죽어버리고 싶다.


아주 살짝 간 마음의 틈. 그 사이로 핏빛 기억이 콸콸 넘쳐들어온다. 내 이성을 범람시킨다.


『&$#*$&@』


“... 아니야. 아니야. 네가 아니야.”


『OO, OOO OOOOO.』


나는 자신이 어느샌가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군가 뭐라고 외쳐대는 것 같지만 들리지 않는다.


“내 탓이... 네가 아니야. 분명... 터인데... 어째서.”

횡설수설하면서도 머리로는 제대로 생각하고 있다.


아니, 정말 그럴까?


내가 아닌데. 네가 아닌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넘겨버리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잊을 수 없었단 말이다. 왜 여기에 와서까지 나를 놓지 않고 진흙탕으로 빠뜨리려 하는데!


그 기억은 내게 있어 독이었고, 하나의 안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범해지고 다른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걸 미련으로 움켜쥐고 있었던 게 죄인가? 죄에는 벌이 따른다. 하다못해 속죄를 해야한다. 지나치게 큰 벌에는 상응하는 속죄가, 대가가 따른다.


영원히 그 길은 걸을 수 없다. 정해져 버렸다. 유일하게 남아 길을 비춰주던 반딧불은 이 손으로 해쳐버렸다. 어둠만이 남는다. 어둠만이 남은 곳에서 밝은 길은 보이지 않는다.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없다. 찾을 수 없는 것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찾으라고 하는 거지?


너는 그걸 알고서 그런 말을 했던 걸까? 너는 누구지? 이 기억은 누구의 것이지?


지금의 나는. 누구지?


“밖에 부하들을 대기시켜두고 있었지? 내 완패야, 오늘은 얌전하게 돌아가지만 오빠와는 또 만날 거야.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어.”


유리에의 목소리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내가 죽일 때까지 죽지 말고 있어, 오빠.”


...


먼 곳에서 큰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보스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

“보스, 괜찮으십니까? 보스!”

“류셀 씨...”

“류셀? 무슨 일이야?! 이건...!”


내가 마침내 이성을 되찾았을 땐, 화려한 글씨가 쓰인 금색 종이가 내 주머니에 꽂혀있었다. 유리에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찾을 수 없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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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그들의 이야기 +1 19.08.29 555 12 10쪽
61 신의 사자 +1 19.08.25 560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49 13 9쪽
59 반격 +4 19.08.18 590 13 10쪽
58 승전 +3 19.08.15 612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6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88 13 9쪽
55 초전 +1 19.08.03 623 13 9쪽
54 군복 +2 19.07.25 602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47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0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0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40 17 10쪽
»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1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18 12 1쪽
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65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08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79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08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3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48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8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7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6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3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4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2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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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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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47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6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7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2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7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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