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573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19.05.22 22:35
조회
948
추천
24
글자
10쪽

선전포고

DUMMY

“침공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레스트 바실루스 황제는 입에 문 시가를 깊게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물었다.


“병의 소집이 끝나고 보급로가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선전포고뿐입니다.”


넓은 알현실에 열을 갖추어 빼곡히 서있는 건 전부 제국의 요직을 맡은 충신들이다. 급한 소집에도 불구하고 각 부서의 장관들은 물론이고 엄선된 재력가들까지 불평 하나 없이 황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전쟁이라 해도 희생자가 나올 거라는 건 변함없다. 이 전쟁을 반대하는 자는 있는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황제는 일단 물어보았다.


“외람되지만 폐하, 저희에겐 대의가 있지 않습니까. 정보국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제국의 80퍼센트 이상이 이 전쟁을 바라고 있습니다.”


왕좌의 계단 밑에 서있던 레이아 바실루스가 발언했다. 분명 나중에 담배 건으로 꾸중을 들을 거라 생각하며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폐인이 된 제7왕녀ㅡ알리시아 폰 지오돌프를 말하는 게로군. 그 어린 나이에 왕족 일가의 목을 짊어지고 제국까지 걸어서 오다니, 그 집념에는 나도 놀랐어.”

“정의를 구현하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바실루스 폐하.”

“그건 제국정보국의 결론인가? 레이아 바실루스 국장.”

“예.”


레이아는 안경을 고쳐 썼다.


“하지만 왕녀가 일반 루트로 제국에 망명했을 때부터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정보 통제도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소식이 퍼져나갔으니까요. 실제 사정은 어찌됐든, 지금은 불한당에 점령당한 왕국을 동정하는 여론이 대세입니다. 지오돌프를 향한 분노는 그의 죽음과 함께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국장, 나도 끼어들어도 괜찮을까.”

“홀 소장. 유의미한 정보라면 환영입니다.”


군복차림의 중년의 남자는 훤히 벗겨진 머리를 만지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자네가 시키는 대로 준비는 해두었다만... 이게 왕국의 노림수일수도 있지 않은가? 일부러 제국군을 유도하려는 게 아니라는 확증은?”

“없습니다.”


레이아 바실루스 정보국장의 말에 알현실에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정보국이 현재까지 입수한 첩보대로라면 왕국은 현재 큰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왕국군이 거의 해체되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즉위한 알레인 국왕이 아무리 긁어모아봐야 만 정도가 한계겠지요. 이 호기를 놓칠 순 없다는 게 저와 정보국의 의견입니다.”

“마족이 관여되어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번엔 외무부 장관이 물었다.


“왕녀의 증언에 따르자면 쿠테타를 일으킨 지그문드 폰 알레인 전 기사단장이자 현 국왕의 조력자 중에는 마족이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네. 우리가 지금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적이 왕국군 만일 거라는 보증은 없네만?”

“그것도 생각해두었습니다. 시실르 장관.”


질문공세를 받으면서도 레이아는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마족은 70년전 그들의 왕을 잃었습니다. 구심점을 잃은 그들은 대륙 전역에 걸쳐 뿔뿔이 흩어지거나 인간에 의해 멸종당했습니다. 지금 와서 인간의 국가에 남아있는 건 인간의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종적인 마족이 대다수입니다. 제국의 마족들을 보면 이해가 쉽겠지요.”

“순종적이라니, 말이 조금 심한걸. 국장.”


안색이 창백한 여자가 쏘아붙였다.


“실례. 마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바르포르도 중장.”

“나는 정보국의 가치관이 아니라 폐하의 이상에 공감했기에 여기 서있는 거야. 주제를 넘으면 안 된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해.”


홀 소장과 마찬가지로 군복을 입고 있는 여자는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풍만한 육체가 대충 걸친 군복 사이로 보였다. 태도와 복장은 물론이고, 외모도 어딜 봐도 중장을 달 나이가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다.


바르포르도 중장이 심기가 불편한 듯 입을 벌리며 살짝 보인 ‘이빨’이 그걸 증명했다.


인간의 송곳니 치고는 너무 크고 날카로운 것이 달려있었다.


“제 목을 물고 싶으십니까, 중장?”


레이아가 조소했다.


“그 충동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싫어하는 자라고 해도 식욕은 별 차이 없나 보군요. 그게 아니면 제 핏줄 때문입니까?”

“뭐...라?”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는 순간, 레스트 바실루스는 손뼉을 쳤다.


“자자, 너무 그러지 말도록. 바르포르도. 오늘 만찬에는 최고급의 피를 준비했으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바실루스 폐하.”


얼굴을 살짝 붉힌 바르포르드가 자신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것에 황제는 피식 웃었다. 역시 준비한 피로는 부족한 것이겠지. 오늘은 간만에 바르포르도와 잠자리를 가져야할 것 같았다.


식욕이든 성욕이든 부하의 욕구를 제대로 신경써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레스트도 자존심이 강하지만 그에게 한해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미녀를 안는 게 싫지 않았다. 기대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레이아 너도 그래. 그 직설적인 말투는 이런 장소에선 조금 고쳐라. 너도 잘 알고 있는 상식일터다.”

“... 실례했습니다.”


상황이 수습된 걸 확인하고 레스트는 주제를 돌렸다.


“다시 본제에 들어가지. 마족이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한가?”

“하나의 변수를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레이아가 답했다.


“변수?”

“폐하께서 우려하셨던 모험자 소년입니다. 류셀이라는 이름의.”


뜻밖의 이름을 듣고 바실루스 황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새로 들어온 정보는 있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소년을 조사하도록 시킨 밀정으로부터 정시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됐지?”

“3시간입니다.”


레이아는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럼 죽었겠군.”

“예, 폐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레스트 바실루스는 잠시 고민했다. 그가 품고 있는 우려를 입에 담을지 말지를. 그건 더 큰 불안을 증식시킬지도 모른다.


패배를 모르는 제국군은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가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되면 그건 전부 그의 책임이 된다.


“폐하?”


어느 쪽이든 똑같았다. 아직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니 그런 음모론이 황제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좋지 않다. 어린 소년을 두려워하는 황제를 믿고 따를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힘이 강한 마족이 알레인 국왕의 조력자 노릇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황제는 일부러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다.


“여러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신중히 전투에 임하도록 하라.”

“폐하, 그렇다면 전쟁은...”


바르포르도 중장이 말을 흐렸다.


“선전포고를 서두르지. 이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간 여론이 더욱 악화된다. 제국민이 전쟁을 바라고 있다면 그걸 이루어주는 것이 수뇌부의 역할이다. 마족이 연루되었다고 해도 이쪽에 마족이 없는 게 아니니 역시 우리가 유리하다. 바르포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네의 직할 여단을 투입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폐하.”


바르포르도 중장의 여단을 아는 자들이 웅성거렸다.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는 중장의 직할 부대는 유명했지만 오로지 아름답게 빛나는 승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적병의 처참한 시체를 보고 한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 자도 적지 않다. 70년 전의 인마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들이 그 대전의 참혹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그 401 여단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불렸다. 구성원 전원이 마족인 저주받은 부대. 이른바 악몽의 화신. 이라고.


“잠깐, 바르포르도 중장.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저번 식민지의 반란 진압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자네도 잘 알고 있잖나? 그 뒷수습을 하는데 예산이 얼마나 들었는지 생각하면... 폐하도, 그 부대의 투입이 비인도적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하신 말씀입니까?”


시실르 외무부 장관이 우려를 보였다.


“갈등의 불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시실르. 황제 폐하도 분명 모든 걸 고려하시고 내린 판단이겠지. 그러하다면 내 뜻은 폐하와 함께한다. 정보부의 손에 놀아나는 건 사절이지만 말이야.”

“뜻이 맞아 다행이네요, 바르포르도 중장.”

“흥.”


바르포르도와 레이아가 다투는 걸 보며 황제는 착잡한 기분이었다. 여러모로 예비대책은 세워뒀다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채로 그의 부하를 적진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정말 그 소년ㅡ류셀이 홀로 드래곤을 토벌했다고 한다면 그의 존재는 얕보아선 안 된다. 얼마나 병사를 모아 침공해도 도저히 이길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그건 전부 자신의 감이었다. 이렇다 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감으로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우려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이번 전쟁은 필요한 수순이었다.


“디트하르트 사령관. 지휘는 자네가 맡아주게.”

“예!”


잠자코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백전연마의 군인은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세 좋게 경례를 올렸다.


“모두 듣거라!”


바실루스 황제는 목소리를 높였다.


“폭군 지오돌프에 이어 왕위를 찬탈한 알레인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의 가슴에 잠자고 있는 정의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이대로 알트레아 왕국의 폭거를 용납한다면 제국의 이념이 철저히 짓밟히게 된다. 본국이 해야 할 것은 무력을 써서라도 왕국 내 질서를 재확립시키는 것이다.”


레스트 바실루스는 억지로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제국은 사흘 뒤에 침공한다.”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를 뜨는 가운데, 황제는 레이아 바실루스 정보국장을 불렀다.


“레이아, 그 소년에게 암살자를 보내라.”

“그러실 것 같아 이미 대기시켜두었습니다. 황제도 아실 겁니다.”

“누구지?”

레이아는 미소지었다.

“예의 날붙이를 좋아하는 미친 청부업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2 그들의 이야기 +1 19.08.29 555 12 10쪽
61 신의 사자 +1 19.08.25 560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49 13 9쪽
59 반격 +4 19.08.18 590 13 10쪽
58 승전 +3 19.08.15 612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6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88 13 9쪽
55 초전 +1 19.08.03 623 13 9쪽
54 군복 +2 19.07.25 602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48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0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0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41 17 10쪽
49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1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18 12 1쪽
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65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08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79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08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6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03 20 11쪽
» 선전포고 +3 19.05.22 949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68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36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1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07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6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3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5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1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2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47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11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18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396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48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03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24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6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22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1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29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67 38 8쪽
19 광맥의 던전에 가다 +3 19.03.15 1,547 37 8쪽
18 그는 시비 걸어야 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 +2 19.03.12 1,562 37 9쪽
17 사슬은 묶었다 +3 19.03.12 1,604 43 7쪽
16 그건 인간이 아니었다 +2 19.03.11 1,606 40 8쪽
15 대련을 하다 +2 19.03.11 1,727 37 8쪽
14 몰살은 성공적이었다 +6 19.03.10 1,722 36 8쪽
13 도적 소탕전을 시작하다 +3 19.03.09 1,778 39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