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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맨 님의 서재입니다.

미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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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맨
그림/삽화
홍삼맨
작품등록일 :
2024.02.06 18:12
최근연재일 :
2024.04.10 00:28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38
추천수 :
34
글자수 :
169,394

작성
24.03.02 15:40
조회
7
추천
1
글자
11쪽

희우의 사정-2

DUMMY

[현재]


“야... 말을 하지... 그럼 그래서 할매가 시키는 대로 했던 거네? 불가항력 이잖아 그건..."



희우의 말을 들은 미진은 비닐하우스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에 얼이 빠졌고 경태 역시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배신자라고 했던 게 미안했는지 말 없이 희우의 등을 토닥거렸다.



“할매가 너 지켜보라고 한 건 얼마 안됐어. 갑자기 왜 그랬는 진 모르겠는데 누구랑 통화하면서 니가 잔대가리를 굴릴 줄 아는 년 인거 같다느니 도망갈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느니 그러더라고, 그때부터 나보고 너한테 붙어 지내라고 한 거야. 미안.”

“음.. 그래 미안한 건 미안 한 거고, 일단 상황을 알았으니까 됐어.”



미진은 희우의 얘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그녀 나름대로의 생존을 위한 설계를 하고 있었으니까.

다만, 찝찝했던게 하나 풀린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 그럼, 정리해보자. 일단 할매는 도박장인지 뭔지 랑도 관련이 있고, 마약이랑도 관련이 있는 거네. 그럼 이제 어떡 할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냥 지낼거야?”



노인이 어떤 사람인 지는 중요치 않았다.

미진에겐 앞으로 이 둘의 행동 방향이 중요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둘 중 누구를 자신의 편에 세울지, 그것부터 가늠해야했다.

경태는 역시나 말을 아끼는 것 같았고, 희우는 모든 걸 털어 놨다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었다.

이틀 넘게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미진은 어느 때 보다 정신이 또렷했다.



“하아... 모르겠다. 희우 니는 우얄낀데? 어차피 닌 느그 아빠 때문에 할매 말은 들어야 될 거 아니가? 미진이 니는... 니는 고마 화령이 누나 따라가지 그랬노.. ”



경태의 말은 미진을 경태에게서 한 발짝 더 물러나게 만들었다.



‘개새끼.. 서울 가서 내가 몸 팔게 될 거 다 들었으면서 뭐? 따라가지? 개같은 놈 나도 이제 니가 배 타러 팔려가던 뒤지던 장기가 다 뜯기던 신경 안 써.’



미진은 순간 표독스러운 눈빛이 나올 뻔 했지만, 눈을 내리깔고 숨을 고르게 쉬었다.



“근데 경태야 너는 화령이 누나가 무슨 말 안해줬어?”



희우는 뭔가를 아는 건지 아니면 떠보는 건지 경태에게 화령에 대해 끈질기게 물었다.



“응?.. 아...아니? 별 말 안하든데?”

“아 그래? 그 누나는 할매랑 친해보여서 뭐 좀 아는 것 같았는데..”



희우는 아쉬워하며 미진을 슥 바라보았다.



“미진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일단 나는 할매가 너 지켜보라고 했으니까 그런 척이라도 할게.”



미진은 확신이 섰다.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경태보단 차라리 희우를 자기 편으로 끌어드리기로 결심했다.

미진의 마음속엔 경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조금씩 생겨났다.



“그래.. 대신 졸졸 따라 다니지는 마 징그러워.”



미진의 말에 희우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경태는 자리가 불편한 듯 계속 자세만 고쳐 앉았다 반복하며 밍기적거렸다.



“일단은 당분간은 모르는 척 지내자. 까놓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뭐 도망이라도 치려고 해도 운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기를 해 차가 있기를 해. 그리고 나는 스무 살 되면 할매가 보증금 해준다 했으니까, 그때 서울 가서 알바하면서 독립할래.”



말을 마친 미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태만큼이나 미진도 이 자리가 불편했고, 희우는 모르는 경태와 화령의 대화를 속속들이 다 아는 미진으로서는 경태의 눈을 마주하기도 불편했다.

어쩌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대 했었는지도 모른다.

경태가 모든 걸 다 털어 놓기를, 다 같이 도망치자고 해주기를.

그렇게 미진은 방으로 돌아가 어젯밤 못 잤던 잠을 청했다.




[띠띠띠띠]




늦은 오후 거실에서 들리는 도어락 여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에 미진은 잠에서 깼다.



‘할매 왔나보네.. 하아.. 어떡하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모든 걸 알게 된 미진에게는 노인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경태 역시 그럴 테지만 경태가 어떻게 되든 이젠 자신과는 상관없었다.



‘일단 나가자..’



숨을 한번 크게 들이 쉰 뒤 얼굴근육을 풀고 미진이 방 문을 열었다.



“미진아, 일로 와바라.”



노인은 미진에게 다정하게 웃으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미진의 눈엔 그런 노인이 뱀같이 교활하고 무서워보였지만 얌전히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노인이 사온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걸 다 들고 3층까지 올라 온 거면 할매도 힘은 꽤 세나보네..’



이미 미진에겐 노인은 분석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바닥엔 미진이 부탁했던 반바지와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새 옷 들이 있었고, 꽤 비싸보이는 브랜드의 화장품 상자가 있었다.



“미진이 니도 인자 피부 관리도 하고 해야지. 이게 그렇게 좋단다. 가져가서 저녁마다 발라라 .“

“와.. 이거 비싼거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미진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목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으며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는 노인의 속내가 뻔히 보였다.

노인에게 자신은 팔아먹을 예쁜 고깃덩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라고 오늘 저녁에는 한우 묵자 한우. 할매가 꽃등심이랑 이거저거 좋은걸로다가 사왔으니까. 경태랑 희우 느그는 퍼뜩 가서 불판 내온나.”



노인의 말에 희우는 신나서 불판을 가지러 나갔지만 경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인이 사온 ‘고기’는 경태에겐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순하다 못해 순박한 시골 소년의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고, 눈치 빠른 노인은 경태의 표정을 보곤 웃는 얼굴을 거두었다.



“경태 니 와그라노? 고기 묵기 싫나?”



노인이 특유의 찡그린 무표정으로 물었다.



“어? 아... 아니.. 그게아니고.”

“그라믄 니 지금 표정이 와 그렇노? 경태 니 할매 눈 똑바로 봐라.”



경태는 노인의 채근에 오줌을 지릴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병신새끼 지금 저러면 어쩌자는 거야.. 다 들키겠네. 어떡하지... 미진아 생각하자 미진아..’



미진은 경태의 날 것 그대로의 반응에 이상함을 감지한 노인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라면 경태는 물론이거니와 눈치빠른 노인은 달라진 집안의 공기를 알아챌 것 이다.



“야 됐어! 남자새끼가 그거 가지고 쫄아 가지고는... 할매. 저 새끼 저거 때문에 저 하루종일 방에서 울었어요.”



노인은 미진의 말에 고개를 돌려 미진을 바라보았다.

경태 역시 정신이 퍼뜩 든 듯 미진을 바라보았다.



“응? 미진아 뭐라꼬? 와 울었노? 경태 저놈새끼 저거 와저라노?”

“아니.. 아까 샤워하는데 저 새끼가 오줌 싼 다고 노크도 안하고 문 열고 들어와서 제 알몸 봤어요. 그래서 그때 화도 나고 부끄러워서 할매 오면 내 알몸 볼 려고 일부러 문 열고 들어왔다고 말해서 이 집에서 내쫓게 만든다고 했는데... 사실 문 안 잠그고 샤워 한 제 잘못도 있는데 그냥 화나서 한 소리가지고 쫄아서 저러네요.”



미진의 말에 할매는 잠시 말이 없더니 소파에 앉아 무언가 생각하는 거 같았다.



“경태 니는 이놈 새끼가 그래도 여자랑 같이 사는 집에서 화장실 문을 벌컥벌컥 열어 제끼면 우짜노! 그라고 미진이 니도 기지배가 되가지고 칠칠지 못 하구로 문 단속도 단디 안 했드나!”



노인은 짐짓 화를 내며 말하는 듯 했지만 다행인건 경태의 그 ‘이상행동’에 대해선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어? .. 아..아니.. 저 가시나가 문을 안 잠가서.. 오줌이 너무 마려버서...”



미진이 자신을 곤경에서 빼준 걸 눈 치 챈 경태가 말을 맞추며 고개를 푹숙이고 중얼거렸다.

미진은 그렇게 자신의 재치로 한 숨 넘긴 줄 알았으나,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골똘히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할매? 저 괜찮아요. 어차피 수증기 껴있어서 뭐 보지도 못했을거에요.”



말이 없어진 거실에서 서먹함을 깨려 미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노인은 경태와 미진을 번갈아 한 번씩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 느그도 나이가 옛날이면 결혼해서 자식도 낳았을 나인데, 할매가 생각을 몬했네. 미진이 니는 앞으로 할매 방 화장실에서 씻어라. 할매 방 화장실이 고장나서 며칠 안에 고쳐 줄 테니께. 알겠제?”



노인의 말에 미진은 가슴이 철렁했다.

마찬가지로 경태 역시 놀라 눈이 동그래졌고 희우는 그 상황에서도 불판에 불을 데우며 손바닥으로 온도를 확인하느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넵.”



짧게 대답한 미진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노인의 방, 이 집에 있는 누구도 노인을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는 방.

CCTV로 누군가 드나드는 것도 확인하는 방.

그리고 경태의 트라우마가 녹아 있는 화장실 안의 비밀의 방.

미진은 누구보다 그 화장실 안의 방에 관심이 많았었지만 어째선지 선뜻 화장실을 들어갈 수 있게 되니 호기심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미진은 자신의 표정과 분위기를 들키지 않으려 얼른 뒤를 돌아 주방으로 가 보리차를 꺼냈다.

노인은 그런 미진의 뒤를 따라 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였다.



“미진이 니, 처녀 맞제?”

“푸우우우웁, 뭐라고요? 미쳤어요?!!!!”



노인의 귓속말에 너무 놀란 미진은 보리차를 뿜으며 냅다 소리 질렀다.



“하이고 가스나, 장난이다 장난. 요새 아들은 워낙 뭐든지 빠르다니까 할매가 걱정이되가 물어보는 기다. 저 머스마 놈들이 혹시 라도 니한테 치근덕거리면은 할매 한테 바로 말해라이. 다리 몽댕이 뿌라뜨려 버릴 테니께.”



노인은 귓속말을 마치고 거실로 돌아갔다.

갑자기 소리를 지른 미진에 깜짝 놀란 경태와 희우가 주방을 쳐다보았지만 노인의 호통에 금새 다시 고기 구울 준비를 했다.

보리차 통을 잡은 미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저 구부정한 허리의 노인네의 머리통에 보리차 통을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앞으로를 위해 참아냈다.



‘결국 화장실 따로 쓰게 하는 거도 그거 때문이네, 저 새끼들이랑 정분날까봐... 역겨운 늙은 마귀 같은 년. 왜 처녀야지 비싸게 팔리나 보지? 쓰레기 같은 년. 도망칠 수 있을 때 여기에 불이라도 질러버릴까..’



미진은 애꿎은 보리차 통을 찌그러뜨리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날 밤 고소한 꽃등심 냄새가 가득한 거실에서 하는 식사는 소리 없는 전쟁과 같았다.

미진은 체할 것 같은 느낌에 대충 먹는 척만 하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이제 그만 먹을게요 배불러서... 우유 사오셨죠?”

“응? 아이다 대따 고마 니 인자 우유 안 마시도 된다.”

“아..네..”



노인의 속내를 다 아는 미진은 한시라도 빨리 거실을 뜨고 싶어 그릇을 주방에 가져다 놓은 후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아.. 이번 주는 진짜 길다.. 시간 너무 안 간다.. 다 싫다 정말..’



침대에 누운 미진의 무표정한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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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개전(開戰) 24.03.12 8 1 10쪽
30 돌아온 할매 24.03.11 6 1 11쪽
29 한 발자국 24.03.10 7 1 10쪽
28 화령과 수경-2 24.03.10 4 1 10쪽
27 화령과 수경 24.03.08 7 1 11쪽
26 작전 +2 24.03.07 9 1 11쪽
25 도망쳐야 해 24.03.06 7 1 10쪽
24 암실 24.03.05 8 1 9쪽
23 정옥자 +1 24.03.04 9 1 11쪽
22 다 들었네 다 들었구만 24.03.03 6 1 10쪽
» 희우의 사정-2 24.03.02 8 1 11쪽
20 희우의 사정-1 24.03.01 7 1 12쪽
19 배신자 새끼 24.03.01 6 1 9쪽
18 눈치게임 24.02.28 8 1 10쪽
17 아무도 믿지 않아 24.02.27 5 1 10쪽
16 너라도 살아야지 경태야 24.02.25 8 1 12쪽
15 서울 갈래?-2 +1 24.02.24 10 1 10쪽
14 서울 갈래?-1 24.02.24 7 1 11쪽
13 유화령 24.02.22 11 1 9쪽
12 분열 그리고 담합 24.02.21 11 1 11쪽
11 접근-3 24.02.21 11 1 11쪽
10 접근-2 +2 24.02.19 11 1 11쪽
9 접근-1 24.02.18 8 1 11쪽
8 의심-4 24.02.17 10 1 13쪽
7 의심-3 24.02.16 11 1 12쪽
6 의심-2 24.02.15 1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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