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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붉은머리 에아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4.05.08 15:28
최근연재일 :
2024.06.2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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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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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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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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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목적지에 도착한 비요른과 클루바는 고삐를 툭툭 당겨 속도를 늦췄다.

말에서 내린 비요른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이 끝날 것처럼 무한정 이어질 줄 알았던 질주가 갑자기 끝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 쉬었다 올라가도 돼. 급히 할 필요 없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바짝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몸에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비요른은 목덜미를 주무르며 간식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돼지 살과 내장을 함께 으깨어 만든 요리와 작게 잘린 빵, 그리고 자그마한 열매가 들어 있었다.

비요른은 열매를 톡 터뜨려 빵에 바른 뒤 고기와 함께 먹었다.


"마냥 먹지 말고 절벽을 보면서 먹어라. 머릿속으로 어떻게 올라갈지 미리 생각하고 있어야 해."

"예. 그러고 있어요."


절벽을 바라본 비요른은 잠깐 헛웃음을 지었다. 절벽의 높이는 어림잡아도 15미터는 되었다.

가파르게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흰 깃털을 한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뇌조들이었다.


'저것들 중 하나를 잡아서 발톱을 뽑아야 한다 이거지.'


뇌조들은 절벽에 둥지를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네 발 달린 짐승에게는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사람에게는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뇌조들은 벌써부터 불길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로군. 약삭빠른 것들이야."


클루바는 피식 웃고는 넓적 바위 위에 앉았다.

비요른은 절벽을 보며 처음에 어디를 짚고 올라가야 하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단순히 위아래로 훑어봤을 뿐인데 대강 가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알았다.

지난 시간 동안 비요른은 클루바에게 절벽을 올라가는 법을 지겹도록 배웠다.

잡아도 되는 곳이 어딘지, 잡았을 때 손 모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력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며 체중을 언제 실어야 하는지 등등.

어차피 뇌조를 잡는 건 큰 기술이 필요치 않았다. 절벽만 무사히 오를 수 있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결되었다.


'할 수 있어.'


음식을 다 먹은 비요른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클루바는 비요른에게 조언을 더 해줄까 하다가 관뒀다. 이 이상 간섭하는 건 관습에서 어긋나는 짓이었다.

무엇보다 클루바는 비요른을 믿었다.


"준비되면 시작해."


비요른은 올라가기 전, 목에 걸려 있는 향낭을 뺐다.

좋은 향기가 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절벽을 올라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얌전히 향낭을 바닥에 내려놓은 비요른은 두 손을 풀었다.

높다란 절벽이 그를 굽어보고 있었다. '감히 날 오르겠느냐.'라는 듯한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할 수 있어."


비요른은 깊이 숨을 내쉰 뒤 울퉁불퉁한 절벽 표면에 손을 올렸다.



*



'쫄지 마. 이게 가장 중요하다.'


오두막에서 연습을 할 때마다 스뇰이 건넸던 조언.


'승패를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그냥 달려들어. 자신감 있게.'


그래서 심판이 시작 신호를 말하는 순간, 에아론은 주저 없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스바르는 곧 정신을 차리고 같이 앞으로 팔을 뻗었다.

턱! 형제는 서로의 손을 붙잡았다. 서로 상대의 손목을 꺾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지만 의외로 팽팽했다.


"침착하게 해. 침착하게."


스바르는 이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질 바에야 덜 다치고 지는 게 낫지 않겠냐?"


에아론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모으고는 팔과 다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순간 힘이 가해지자 스바르는 저도 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났다.


"이 자식이.."


스바르의 눈빛이 돌변했다. 스바르는 갑자기 팔에 힘을 풀고는 몸을 옆으로 확 틀었다.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에아론은 당연히 앞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바르가 덮치기 직전, 탄력 있게 곧바로 일어났다.

구경꾼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형제의 대결을 감상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치열하게 흘러갔다.

스바르는 손목을 푸는 시늉을 했다.


"진짜 연습 많이 했나 보네? 난 곧바로 끝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에아론은 침묵을 선택했고 스바르는 이 같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진지한 거 아냐? 어쨌든 축제라구. 즐기는 마음도 있어야지."

"형은 그렇게 해. 난 아냐."

"어이구. 네가 그렇게 비요른 형을 생각할 줄은 몰랐다."

"비요른 형 때문에 참여한 거 아닌데."

"뭐?"

"나는 리아 누나를 위해 참여한 거야."


스바르는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왜?"

"뭐가?"

"왜 아스테리아를 위해서 참여한 거냐고. 저 여자는 곧 나갈 사람이잖아. 얼마 안 있으면 출가외인이 될 신분이라고."

"말 함부로 하지 마."


에아론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스바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니까 그렇지. 비요른 형은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족장이 될 사람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큰형을 위해서 참가하는 게 맞지 않냐?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가 그런 마음이라고."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큰형이라면 잘 해낼 거고. 하지만 누나는 아니잖아. 아무도 누나를 신경 안 쓰잖아. 그러니 나라도 누나를 위할 거야."


스바르는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 대회가 열린 것도 비요른의 성인식 때문이다.

근데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스테리아를 위해서라니,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그러니까.. 결국 비요른 형이 어찌 되던 상관하지 않겠다는 거지? 설령 성인식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너와는 상관없다 이거지?"


에아론은 답하지 않았다. 이 시합에 더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뇰이 조언했던 것처럼 잡념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런 에아론의 반응을, 스바르는 아무래도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너 좀 맞아야겠다."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스바르는 에아론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곧바로 체격으로 짓뭉개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에아론은 옆으로 피하더니 스바르의 발을 걸었다. 그건 이전에 스뇰이 스바르에게 했던 기술이었다.

보기 좋게 넘어진 스바르는 확 치솟아 오르는 분노에 휩싸였다. 스바르는 제 몸을 날려 에아론과 함께 바닥에 뒹굴었다.



*



비요른은 잠깐 절벽에 매달린 채 숨을 골랐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왠지 평소보다 몸이 잘 안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조금이라도 잠을 자두는 편이 좋다고 했던 거였구나.'


비요른은 어머니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만약 에키아가 음식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로 인하여 배를 채우지 못했더라면 더더욱 허기졌을 테니까.

비요른은 잠시 절벽에 몸을 밀착한 채 휴식을 취했다. 절벽 표면에는 뇌조의 똥이 묻은 곳이 많았지만 힘들어서 그런지 별로 신경이 쓰지 않았다.

위에서는 계속해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알을 품을 시기이다 보니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잊을 때마다 흰 깃털이 눈송이처럼 하늘거리며 내려왔다.

비요른은 밑을 내려다보고픈 충동을 억지로 눌렀다. 자신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발을 디딜 곳을 찾을 때를 제외하면 되도록 내려다보지 말라는 게 클루바의 조언이었다.

비요른도 그 조언에 동의했다.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도 절벽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으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 테니까.

숨을 고른 비요른은 다음 지점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중간에 위험했던 일이 없던 건 아니나 그래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던 비요른은 마침내 둥지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였다. 둥지 안에는 새끼 두 마리가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비요른은 혹여 주변에 부모 새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미나 아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둥지를 지키고 있노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비요른에게 달려드는 뇌조는 없었다.


'새끼 뇌조의 발톱을 가져가는 건 어림도 없겠지.'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설령 그래도 된다 하더라도 비요른 스스로가 원치 않았다. 오직 제대로 된 뇌조의 발톱을 가져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용기 있는 일이었다.

비요른은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로 하였다. 몸 상태가 마냥 좋은 건 아니었지만 왠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손을 뻗으려던 비요른은, 순간 기이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드니 한 마리의 뇌조가 위로 솟구치는 게 보였다. 정점까지 올라간 뇌조는 낙하하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던 비요른은 급히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 뇌조는 정확히 비요른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



바닥에 뒹군 형제는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굴렀다. 먼저 상대의 몸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에아론은 스바르가 그러하도록 절대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든 몸을 뒹굴거나 팔다리를 휘저어 스바르를 떼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에아론이 내보이는 필사의 저항에, 스바르는 점점 화가 치밀었다. 단순히 쉽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만은 아니다.

스바르에게 있어 에아론은 짜증 나고 한심한 녀석이다. 어차피 배다른 동생이었기에 혈육의 정이란 것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아론이 대회 준비를 열심히 하는 걸 보았을 때, 아주 약간은 생각이 달라졌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큰형을 위해서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게 저기 태연자약하게 구경하고 있는 멍청한 여자 때문이라니.


"으랴아!"


스바르는 기어코 에아론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맞잡더니 에아론을 꽉 안았다. 그 상태에서 몸을 뒤집자 에아론을 깔아뭉갤 수 있었다.

스바르는 엎드려 있는 에아론을 백 초크로 졸랐다.


"항복해. 아니, 항복하지 마라. 항복해도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다면 이 미련한 녀석도 정신을 차릴 테니까 말이다.

에아론은 스바르의 팔을 잡았다. 숨이 막혀 왔고 그 때문에 정신도 혼미해졌다.

그때 울버린과 대치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러설 수 없던, 물러설 수도 없는 그때의 일을.

에아론은 이를 악물었다. 스바르는 놀랐다. 점점 팔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바르는 다시 조이려 했지만 이미 에아론의 숨통이 트인지 오래였다.

에아론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와 동시에 흉곽이 부풀어 오르더니 곧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아!"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깜짝 놀랐다. 도저히 소년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귀를 막고 휘청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스바르가 잠시 정신을 놓았다 해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에아론의 함성을 들은 건 스바르였다.

이때였다. 에아론은 자리에 일어나 스바르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반쯤 주저앉아 있는 스바르 위를 덮쳤다.

전세가 역전되었다. 에아론은 스바르를 일어나지 못하게 막았다.

몸을 일으키려던 스바르는 생각대로 되지 않자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 공격은 에아론의 옆구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에아론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야! 심판! 방금 그거 반칙인데 왜 안 말려!"


스뇰이 손에 들고 있던 훈제육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하지만 심판은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반칙이 아니라 판단한 건지 경기를 속행했다.

스바르는 계속 반항을 하였고 이 때문에 에아론의 몸에 생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열띤 반응과 함성. 그로 인하여 분위기는 가장 순하고 얌전한 사람도 들뜨게 만들 정도로 고조되었다.

에아론의 눈빛이 일순 흉포해졌다.



*



밑으로 떨어지듯 내려온 어미 뇌조는, 그러나 비요른이 휘두른 단검에 급히 물러났다.

비요른은 공중에서 공격하는 뇌조를 낚아채기 위해 이를 악물고 손을 휘저었다. 역시나 부모 새가 어디 멀리 가지는 않은 듯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가는 비요른이 불리했다. 절벽에 매달려 체력이 빠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의문 모를 두통이었다.

깨질 것처럼 아픈 머리. 그와 더불어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세상이 샛노랗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 뇌조가 날아와 정수리를 쪼았다. 살점이 조금 파였는지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비요른은 시근거리더니 새끼 새들이 있는 둥지로 내려갔다. 그러자 어미 뇌조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아까보다 공격이 더 직선적으로 변한 것이다.

어미 뇌조는 비요른을 둥지에서 떨쳐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요른이 의도한 바였다.


"감히!"


비요른은 쏘아져 들어오는 뇌조의 목을 탁 낚아챘다. 그러고는 온 힘을 다해 절벽에 몇 번이고 처박게 했다. 붉은 피가 튀면서 울음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비요른은 축 늘어진 어미 뇌조를 둥지에 올렸다.

새끼 뇌조들의 울음소리가 어미 뇌조의 사체 너머로 구슬피 울려 퍼졌다.

비요른은 단검을 이용하여 뇌조의 다리를 콱 찍은 뒤 사정없이 옆으로 꺾었다. 그러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다리가 잘리고 말았다.

비요른은 뇌조의 달린 자리를 입에 물었다. 비린 맛이 입안에 계속해서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쨌거나 발톱을 얻는 데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비요른은 기존에 올라왔던 대로 절벽을 내려갔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이때쯤 왔을 때, 이미 비요른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비요른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밑을 내려다봤다. 순간 어찌할 수 없는 어지럼증이 비요른을 덮쳤다. 뒤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났지만 비요른은 듣지 못했다.

곧 손에 힘이 풀렸다.


"비요른!"


클루바가 절벽을 향해 달려가며 팔을 뻗었다.



*



"이런 시부럴."


스뇰이 급하게 민가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만! 경기 멈춰! 경기 멈추라고 등신 새끼야!"


아스테리아도 군중을 뚫고 나아갔다. 그녀의 입에서도 스뇰처럼 당장 중지하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그런 행동을 보인 건, 스바르가 주먹으로 에아론을 때려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에아론이 스바르의 목을 있는 힘껏 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심판은 그 즉시 에아론과 스바르를 떼어내려 했다.

하지만 에아론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여태껏 당해왔던 것들이 그대로 대갚음해 주려는 것처럼 더욱 악착같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마, 말려!"


구경꾼들이 나선 끝에야 비로소 에아론과 스바르가 떨어질 수 있었다. 스바르는 요란하게 기침을 하며 침을 질질 흘렸다.

사람들을 헤집고 나온 에키아는 바닥에 누운 스바르를 감쌌다. 스바르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던 에키아는 에아론을 힘껏 노려보았다.


"너 미쳤어? 감히 형을 죽이려고 해?"


에아론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어느새 다가온 스뇰이 에아론의 어깨를 꾹 눌렀다.


"정신 차려라, 꼬맹아. 숨을 천천히 들이쉬어."


새하얗게 질린 얼굴. 푸르게 변한 입술. 이대로 놔뒀다가는 발작을 하며 기절할 것 같았다.

아스테리아가 어서 다가와 에아론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아스테리아는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하며 동생을 달래주었다.

그 덕분일까. 조금씩이지만 에아론은 정신이 돌아옴을 느꼈다.

에아론은 스바르가 누워 있는 걸 발견하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스바르 형-."


그때였다.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포효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귀를 막았다. 대체 어디서 난 소리란 말인가?

곧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몰렸다.

고함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브레고아였다. 브레고아는 한곳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린 사람들은 한 필의 말이 마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색하고 고요하던 분위기가 조금 환기가 되었다. 당연히 비요른일 테고 그렇다면 성인식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음을 의미했다.

양의 피가 아직 떨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몇몇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려 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말이 한 필밖에 없다는 사실이 불길하게 느껴진 것이다.

말을 탄 기수로부터 외침이 들려왔다. 외침은 가면 갈수록 점점 커져갔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치료사! 당장 치료사를 불러라!"


소름 끼치는 적막이 감돌고 있는 이곳에, 오직 브레고아의 절망 어린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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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변화의 꼬리 (1) +1 24.05.23 17 2 14쪽
14 아담한 승리 +1 24.05.22 14 4 15쪽
13 정찰꾼 스뇰 (5) +1 24.05.21 17 4 16쪽
12 정찰꾼 스뇰 (4) +1 24.05.20 22 3 20쪽
11 정찰꾼 스뇰 (3) +1 24.05.19 18 3 13쪽
10 아픔 +1 24.05.17 19 5 19쪽
9 정찰꾼 스뇰 (2) +1 24.05.16 19 5 16쪽
8 정찰꾼 스뇰 (1) +1 24.05.15 25 4 14쪽
7 다짐 24.05.14 21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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