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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사님 생존 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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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뽀
작품등록일 :
2022.06.29 02:26
최근연재일 :
2022.07.23 08:4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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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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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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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DUMMY

부스럭대는 소리와 암막뿐이다.

망태기 속은 빛 한 줄기가 없어 무척이나 깜깜했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김선하는 주머니에 간직한 스마트폰을 꺼내, 조명을 켰다. 빛을 발해 내부가 환해지자 먼저 잡혀온 반친구들이 보인다.


“비, 빛?”

“뭐야.”

“플래시 같은데···?”


서서히 빛에 적응하자 오세린 교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학생이 일탈을 할 때마다 줄곧 보여주었던 근엄함 표정을 지었다. 잔소리하다 이내 표정을 풀고, 말을 바꾸지만.


“서, 선하야. 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니? 그거 교칙 위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히려 잘 된 일이구나···.”

“그렇죠. 지금 상황에선 잘된 일이죠.”

“이 선생님은 선하가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뭐라 말을 못 하겠어···.”

“네. 기특하다고요? 알아요. 나 기특한 거.”


얼굴 두껍게 답하던 그 순간 하도린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무슨 희망이라도 간직했는지 평소 띠꺼운 눈매와는 다르게 빛이 일렁인다.


“기, 김선하. 우릴 구하러 온 거야?”


그럴 리가.

김선하는 무표정으로 따박따박 답한다.


“아니. 나도 잡혀 왔어.”

“쳇. ···기대 좀 하게 하지 마.”


다시 평소의 띠꺼운 얼굴로 돌아온 하도린을 제치고, 김선하는 스마트폰의 조명 빛을 이리저리 흩뿌렸다.

여기는 망태기 자루 안이다.

들어간 순간 30여 명이 좁은 방안에 갇힌듯 몸이 찌그러질 줄 알았지만, 여긴 무척이나 넓은 공간이었다.

볏단을 엮어 만든 탓에 튀어나온 가시가 갈대처럼 기다란 풀떼기로 보인다. 그만큼 몸이 작아진 탓일 것이다.


친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며 궁리한다. 천장은 호주머니를 묶은 듯 굳게 닫혀있다. 벽을 베고 탈출할만한 도구도 없다. 꼼짝없이 감옥에 갇힌 꼴.

답도 없는 상황임이 명백하다.

밀폐된 공간에 감금되었다는 공포가 혈관을 타고 심장에 전해진다.


“자발적으로 탈출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

“이, 이대로 우리 죽는 건가?”

“잡아 먹는다고 했던 것 같아.”


“···괜찮을 거야. 놀랄 것 없어. 어떻게든 될 거니까.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선생님이 어떻게든 해볼게.”


오세린은 몸을 바들바들 떠는 학생들에게 손길을 건넨다. 그녀의 손 또한 떨렸지만, 어른답게 강한 척 연기하는 것이 티가 났다. 김선하는 오세린을 돕고자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표했다.


“아까 전에 우리 오빠가 한 말 못 들었어? 일이 벌어질 거라고. 그래도 믿고 잠자코 있으라 했잖아.”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이겠지만, 김선하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유진을 잘 알고 있어 비교적 평온했다.


믿으라 하면 믿으면 된다. 그럼 좋은 일이 벌어진다. 그 인간이 독기를 품으면 피부가 떨릴 만큼 무섭다.

마지막으로 본 유진의 눈에 서린 광채는 김선하가 가끔 보았던, 호랑이의 안광과도 같았다.

그게 바로 독기의 표출이다.


“오빠는 이상하게도 눈 돌아가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다 해내더라고···.”


전자 제품이 고장 나면 전문가 부르자 할 때마다,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고친다.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때마침 라디오 이벤트로 사연을 적어 당첨된 추첨자에게 주는 선물이 일치했을 때도 유진은 온종일 편지를 써가며 당첨을 이루어냈다.

그것이 지금 손에 쥔 초코폰 프로맥스 13이다.


워낙에 일화가 많아 전부 나열할 수는 없다. 다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이렇다. 오빠 김유진은 할 수 있는 확신만 든다면 무조건 믿으라고 말한 뒤,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김선하에게 있어 그런 유진은 만능인과도 다름없었다.


“믿으라고 말한 거면 그냥 믿어도 돼. 방식이야 항상 상식 밖이기는 하지만···.”




***



전기톱을 든 퇴마사.

그딴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보통은 유서 깊은 보구를 사용하거나, 술법과 소모품으로 처리한다.

그것이 상식이며 통용되는 퇴마 과정.

그러나 여기 단 한 사람만큼은 예외라 할 수 있겠다.


지이이이잉-!


유진은 톱날의 회전을 만끽하며 망태기 할아범을 주시했다. 놈은 기가 차기라도 했는지, 한심스러운 눈으로 유진을 바라본다.


“뭐? 이긴 놈이 다 가져?”

“말 그대로다. 만약 내가 망태기에 들어간다면 찢고 나올 테니까, 그딴 술수는 통하지 않아. 그니까 물건 상하지 않게 두고 전력을 내보내란 소리다.”

“···시간이 그리도 많이 흘렀나? 고작 혼자서 감히 이 몸을 잡으려고? 용맹한 건지, 무식한 건지, 쯧쯧.”


망태기 할아범은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를 보듯 혀를 차고, 정원에 핀 꽃들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안개들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인다.

한곳으로 점점 집결하기 시작하더니, 드러나는 요괴의 모습들.


“어르신과 대면하기 전에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다. 이 머리 나쁜 꼬맹아.”


봉인으로부터 풀려난 터줏대감의 수하들이 이곳에 뭉쳤다.


“아이고. 터줏대감 어르신 깨어나셨네.”

“이게 얼마 만이야?”

“한 100년은 됐나? 퇴마사 놈들한테 봉인 당하신지가.”


숫자만 80여 명은 돼 보인다.

총각 요괴나 고양이 얼굴을 한 요괴. 도중엔 인간의 몸에 도마뱀 머리가 달린 것들도 있을 만큼 다양했다. 유진은 이를 보며 평했다.


‘전부 이름 없는 잡요들.’


그중에서 유일하게 종족의 이름을 가진 망태기 할아범이 부하들을 향해 버럭 소리 지른다.


“이 썩을 놈들아-! 그동안 방치했다가 이제 와서 풀어주면 어떻게 해?”

“아이고. 어르신. 그거야 봉인이 강력해서 그랬지. 지금은 요마계가 내려온 덕에 약해져서 겨우 푼 거라고요.”

“크흠. 아휴, 됐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놈이 퇴마사다. 오늘 가마솥 좀 준비해라. 이 빌어먹을 놈 사골을 푹 고아서 밥이나 말아 먹게.”


망태기 할아범은 이내 오만상을 구긴다.

그깟 명령 좀 내렸다고, 쥐새끼같이 생긴 놈이 투덜댄다.


“에휴, 틀니 냄새. 요즘 세상에 가마솥이 어디 있다고.”

“뭐? 틀니는 뭐냐? 그리고 가마솥이 왜 없어?”

“요즘은 전기밥솥이니 압력밥솥으로 밥 짓는단 말이에요. 크기도 쬐깐해서 저놈 삶으려면 토막을 내야 할걸요?”


아, 짜증 난다.

요즘 젊은것들은 왜 이리 말대답이 많은지.

결국 호통이나 치는 망태기 할아범이었다.



“아, 그럼 토막 내면 되지! 뭣들 하고 있어? 어여, 밥 준비 안 해──?”



“어르신 성격 참 여전하셔···.”


또 말대답!

이건 나중에 잔소리나 하기로 하고.

망태기 할아범은 유진에게 달려드는 부하들을 보며 피식 웃는다.


‘저놈도 젊은 것. 영험한 영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안 봐도 뻔해. 내 손을 쓰기도 전에 죽겠지.’


결과를 예상하던 망태기 할아범의 눈이 휘동 그래진다.

분명 주시하고 있었건만, 갑자기 사라진 유진.

위치를 가늠하게 한 건 해괴한 기계장치의 동작 소리였다.



지이잉───!



“아악!”

“어억!”

“자, 잠깐. 뭐, 뭐야?”


부하들의 몸이 잘려 나간다. 그럼에도 퇴마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망태기 할아범은 모든 요력을 눈에 집중해서야 목격할 수 있었다.


서거거거걱-!


역으로 요괴의 영역인 안개에 숨어 부하들을 도륙 내는 유진의 모습을.

표정 없는 얼굴과는 대조적이게도, 전기톱으로 이리저리 피가 튈 만큼 살생을 저지르는 그의 행적이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어, 어르신! 도와주세요!”

“아아악-!”


이대로는 안 된다. 계속해서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망태기 할아범은 하는 수 없이 요술을 부리기로 했다.

그것은 조건 없이 인간의 뒤통수에 접근하는 요술.


펑-!


연기와 함께 사라진 망태기 할아범은 유진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놈은 여간내기 퇴마사가 아니다.

그 옛날과는 다르게 새로운 종류의 퇴마사라도 탄생했던 건가.

아무튼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죽을 테지.


망태기 할아범은 끝이 뾰족한 손가락으로 단번에 유진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이 짜증 나는 애새끼야! 죽어-!”


깔끔한 궤적을 그린 손톱이 유진의 목을 지나친다. 망태기 할아범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날카로운 손톱의 상흔이 새겨져, 목과 머리가 슬라이스 햄처럼 4등분이 나겠지.


허나 결과는 이상했다.

분명 다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어?”


망태기 할아범은 네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길이가 짧아진 것이다. 잘린 손가락에서 피가 분수처럼 콸콸 뿜어져 나온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망태기 할아범은 유진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보이는 건 뒤통수가 아닌, 언제 돌렸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계속해 봐. 망태기 할아범.”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냐?”

“단순하다. 전기톱으로 네놈 손가락을 베었지.”


망태기 할아범은 또 다른 이질감을 눈치챘다.

귀가 심심할 만큼 고요하다.

들리는 건 저 퇴마사가 든 물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이잉- 소리뿐.

사색이 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이 퇴마사와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몰려온 부하들은 이미 다 죽기라도 했다는 뜻인가.

있을 수 없는 현상에 망태기 할아범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네, 네놈은 대체······.”


살기 위한 지혜를 떠올리기에 급급한 망태기 할아범. 순식간에 부하들을 전멸시킬 만큼 놈은 재빠르다. 과연 도망이 소용이나 있을까.

결론은 눈앞의 퇴마사를 죽여야만 살 수 있다고 확신이 든다.

이번엔 사는 것만을 목적으로 요술을 부렸다.


퍼엉-!


또다시 보이는 유진의 뒤통수.

그러나, 소름 돋게도 언제 뒤통수였냐는 듯이 얼굴로 뒤바뀌어 보일 뿐이다.

망태기 할아범은 정신을 사납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요술을 부렸다.

그때마다 다시금 유진의 얼굴을 보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했다.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


다시금 펑- 소리를 내며 유진의 뒤통수였던 얼굴을 본 망태기 할아범.


“상대의 뒤를 잡는 요술은 분명 사기적이긴 하지. 근데, 네 놈의 신체 속도가 너무 느려.”


이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퍼엉-!


“네놈은 1호선의 터줏대감에 비해 너무나도 약하다. 시간을 거스르기 전의 힘을 감춘 그때보다.”


퍼엉-!


도리어 정신이 흔들리는 것은 유진이 아닌, 망태기 할아범이었다.


“그거 아나? 창귀 할아범은 그딴 재주 없어도 잘만 싸우더군.”

“뭐, 뭣이?”


창귀란 말에 망태기 할아범은 경악에 물들었다.

봉인되기 전에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창귀는 그자 단 하나뿐.


그가 누구인가.

호랑이 대요괴의 노예였던 창귀 주제에 감히 주인을 꺾고, 오니와의 전쟁에서 커다란 공훈을 세운 자.

그가 바로 한반도 요괴들의 영웅이 아니던가.


그의 이름을 눈앞의 퇴마사가 꺼냈다.

감히 그의 이름을 꺼낸 걸로도 모자라, 마치 싸워봤다는 듯 지껄인 것이다.

그럼에도 죽지 않고, 여기 있다는 뜻은 단 하나뿐이다.

망태기 할아범은 경악에 물든 목소리를 내비치고야 만다.


“서, 설마. 네 놈이 창귀 할아범을······?”

“어. 죽이고 오는 길이야.”


요력은 벌써 바닥났다.

더는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에 망태기 할아범은 유진이 휘두르는 전기톱의 세로 베기를 올려다보았다.


쉬잉-!

카가가가각─!


일직선으로 두 동강 나는 몸.

그렇게 망태기 할아범은 명을 달리한다.




***




유진은 주변에 깔린 괴혼들을 바라보았다.

소화기를 주섬주섬 담을 때 단전에 있던 요력들이 영력으로 뒤바뀐 지는 오래다.

허기가 느껴지면 먹어야지. 주섬주섬 괴혼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럼에도 묘하게 단전은 꽉 차지 않는다. 이번에 먹은 개수는 훨씬 많은데.


“아무렴. 이딴 괴혼들은 이것에 비하면 별 가치 없지.”


식사를 마친 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망태기를 집어 들었다. 이대로 자루의 입구를 동여맨 밧줄만 푼다면 안에 갇힌 사람들이 풀려나겠지만, 유진은 그러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전엔 망태기까지 전기톱으로 난도질해서 땅을 치고 후회했는데, 지금은 손에 쥐고 있다.


사람들까지 가득 담을 수 있는 보구를.


본래라면 소화기를 든 학생들을 이끌고, 대학 동기 김덕춘이 머문 교단에 갈 예정이었다.


걸어서 가면 반나절이나 걸릴 만큼 먼 거리.

근데 굳이 걸어서 갈 필요가 있을까?

이것이 있는데.

전부 망태기에 담아 널브러진 스쿠터 하나 들고, 혼잡한 도로를 뚫고 이동하면 훨씬 빠른 게 당연하다.


‘일단 교무실에 가서 한번 풀어주고, 다시 들어가라 하면 되겠어.’


감옥에 또다시 들어가라 하면 반발은 있겠지만.

스마트폰 잡아 줄 테니까, 그걸로 시간 때우라고 하면 대충 수긍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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