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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퇴마사님 생존 잘 하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젤리뽀
작품등록일 :
2022.06.29 02:26
최근연재일 :
2022.07.23 08:4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2,896
추천수 :
75
글자수 :
141,168

작성
22.07.04 08:05
조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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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6화

DUMMY

구두가 진득한 붉은 기를 머금었다.

밑창을 감쌀 정도로 바닥엔 핏물이 넘친다.

1호선 첫 칸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유진의 구두를 바라보며 조소를 흘린다.


“미끄럽지? 이럴 땐 군화가 제격인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다 알고 있었다는 말투에 창귀가 히죽 웃었다.

저 사람들이 넘치는 칸으로 밀어붙인 다음, 툭하면 찔러서 유진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할 예정이었거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유진의 선택이 전장 악귀의 피를 들끓게 했다.


“퇴마사 양반. 싸움 좀 했었나?”

“당신만큼은 적겠지.”

“뭐, 그거야···”


창귀가 말꼬리를 흐리고 창을 휘두른다.


“당연한 거고! 이 새파랗게 젊은 놈아!”


이곳은 더 이상 문턱이 아니다.

널찍한 전철 칸 내부.

그 속에서 가동범위가 대폭 늘어난 창이 속검처럼 가로로 공기를 가른다.


피잉-!


재빠른 급습에 유진은 전철 손잡이를 굳게 쥐고, 천장에 등이 맞닿을 만큼 번쩍 뛰었다.


스컹-!


바닥과 천장을 잇던 철봉에 창 기둥이 훑고 지났다.

보통 같았으면 철봉이 찌그러지겠구나 싶었겠지만, 마치 검으로 베듯 베였다.

날이 아니었음에도 튼튼한 철봉이 베어질 만큼의 위력.

금속의 마찰로 일어난 열에 쇠 타는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 유진의 코를 자극했다.

평범한 육신이 맞이했다면 두 동강이 났겠지.


‘내가 맞으면 뼈가 부러지는 정도.’


이미 겪어봐서 아는 유진이었다.

영력으로 전신을 감싼 채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

다리뼈든 갈비뼈든 뽀각- 하고.


유진의 몸이 중력에 의해 내려앉는다. 창귀의 창끝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화살 다발처럼 맹렬히 위를 향한다.


“호잇! 호잇! 호잇!”


푸수수수수수수─!


유진은 잡았던 손잡이를 끌어 몸을 이동했다. 중간중간 타격점에 유효한 공격들은 단검으로 흘려내기 바빴다.


스릉-! 스릉-! 스릉-!


연달아 퍼부어진 창격.

방어하느라 팔이 저린다. 단검 옆면에 자잘한 상흔이 남을 정도로!

유진의 발이 지상에 닿기까지 이루어진 공방만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톡-!


내려오자마자 유진은 뒤로 데구루루- 굴렀다.

등짝에 흥건한 피를 적시며 바로 옆에 있던 좌석을 두 발로 뻥 차고, 미끄러지듯이 전신을 이동시켰다.


끼기기긱-!


바로 위에 창귀의 창이 전철의 천장을 가르며 세로로 내려찍으려 했기에.


서걱-!


바닥마저 종잇장 가르듯 직선이 생겨났다.

그 사이 유진은 자세를 바로잡았고, 단검 쥔 손을 허리춤에 바짝 붙였다.

남은 손은 목표를 겨냥하듯 창귀를 향해 펼쳐 들었다.


손등에 흐르는 피가 보인다.


유진은 미간을 좁히고 진중한 눈으로 창귀를 바라보았다.


‘그때처럼 지친 상태도 아니다. 거기에 지금의 난 4품과 5품의 괴혼까지 먹었는데, 어째서······.’


분명 기시감이 느껴질 일이다.

당시보다 월등한 조건임에도 현저한 격차가 없다.

더더욱 빠른 속도임에도 그때처럼 미묘하게 살짝 앞서는 느낌이 고작이라니.

의문을 품고 더더욱이 경계하자, 창귀가 푸석한 입꼬리를 귀에 걸었다.


“껄껄껄. 이거 오랜만일세. 이런 싸움 못 해본 지 너무 오래됐어.”


썩을.

그땐 봐주기라도 했단 건가!


유진은 거리를 둔 채 몸을 풀었다.

목과 손목 관절을 빠드득- 돌리고, 냉정히 한숨을 내쉬어 진정을 되찾는다.


“앝보고 있군.”


무수한 전투를 치러왔던 지금의 유진은 알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랬던 것을.

이 늙은 창귀의 진가는 3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2품은 언제 달성한 거지?”

“들켰네. 그거 되게 오래된 이야긴데. 아마, 1930년이었남? 일본 놈들이 코쟁이들 총 들고 올 때 요괴들도 같이 건너 왔거던. 영역 싸움하면서 피 터지게 싸우고, 죽이다 보니 일취월장했었지. 껄껄껄!”


일제 강점기 전후 시절, 한반도의 요괴들과 외래의 요괴들이 대접전을 펼친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둘째치고, 어째서 그들이 평가를 잘 못 매겼던 걸까.

인계의 요괴 관리는 철저하게 했던 걸로 아는데.


“근데 퇴마사 양반. 거, 계급 잘 못 매겼다고 너무 뭐라 말어. 평화가 찾아온 뒤에 설렁설렁 일들 할 수도 있지.”


어쨌든 하등 도움 안되는 이야기 따윈 집어치우고,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만 한다.

유진은 창귀를 퇴마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그린 전략을 실행에 옮긴다.


‘우선 거리를 좁혀야 한다.’


창의 범위는 단검 따위보다 넓다.

무려 3미터나 되는 범위를 뚫어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법.

유진은 결말을 위해 자세를 낮추고, 두 다리에 영력을 가득 담아 내달린다.


팟-!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창의 연격.


슈슈슈슈슈슝-!


탕-! 막고.

스릉-! 흘리고.

휙-! 피하고.


점차 간격이 좁혀져 가자, 창귀의 동작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더는 날카로운 창끝이 아닌 반대편 뭉툭한 부분도 쓰겠다는 듯, 창 아래를 잡던 창귀의 왼손이 휘릭- 들어 올려졌다.

위압감이 든다.

반대편 끝이 짧게 치켜올려진 것만으로도 공격 수단이 늘어난 것이다.


탕-!


창귀의 오른쪽 발이 바닥을 내려찍었다.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보폭.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짧고도 뭉툭한 반대편 창끝의 공격.

유진은 고개를 숙여 피해야만 했다. 전진하고 싶었으나 회피에 급급하여 그럴 수가 없었다.


카앙-!


오히려 창귀의 전진에 물러나 뒷걸음질 칠 뿐.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만한 요괴는 별로 없었지.’


창귀의 육체 스펙은 회귀 전 육신이라면 순식간에 끝낼 정도다.

그럼에도 무시 못 할 무언가가 있었다.

무수히 해치웠던 다른 강대한 요괴들이 초월적인 육신을 자랑한다면, 창귀는 움직임과 전법만으로 밀어붙인다.

즉, 방향은 다르다 해도 그 부분만큼은 극에 달한 존재다.


스릉-


“호잇! 좀 더 잘 피해 봐.”

“······.”


진입조차 물러나게 만드는 공격과, 방어하느라 급급한 유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오! 빈틈 발견!”


핑-!


결국 창귀의 창을 하다못해 흘리지 못하고, 단검에 직통으로 카앙-! 내리치게 만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한다면 손에서 단검이 떨어지겠으나 유진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빈틈을 내보인 것이다.


빙글-


유진의 손이 타격에 의해 가중된 탄력으로 우아한 호를 그리며, 창귀의 목을 향했다.

분명 단검 끝이 닿을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내지른다.

이는 어쩌면 회귀 전에 쌓여버린 일종의 버릇일지도 모른다.


자주 써먹던 기술이지만, 새것과 다름없는 이 육신이 과연 가능케하겠는가.

아무렴, 헛된 공격이라도 마무리 지을 수는 없었다.

창귀의 왼손이 창을 내버려 두고, 주머니에 처박혀 있었기에.


“방금 건 한 손으로 내려찍은 거야. 방심하면 안 되지, 퇴마사 양반!”


놈의 손에서 새까맣고도 기다란 무언가가 들려있다.

유진은 쌓아온 경험이 뇌리에 뻗쳐 직감했다.


‘제기랄.’


허점을 일부러 만들어낸 건 내가 아닌 놈이란 것을.

그때도 보여주지 못한 걸 지금 펼치려 한다는 것을.


창귀의 손에 쥐어진 물건이 딸깍- 소리와 함께 더더욱 길어진다. 유진은 찰나의 순간에 저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채고야 만다.

그것은 늘어난 삼단봉이었다.


“너희 인간들은 참 편리한 물건을 다 만들더구먼?”


요력을 담은 삼단봉이 유진의 배를 향한다. 그러나 직격당할 일은 없었다.

이미 유진은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올려세웠고, 구두 밑창으로 삼단봉의 궤적을 예상해 고정했으니까.



까앙─────!



발꿈치에 전달되는 괴력.

유진의 몸은 프로 야구의 타자 선수가 홈런 치듯, 공이 되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창귀는 그 모습이 재밌기라도 한지, 신이 나서 양팔을 번쩍 들고 외친다.


“골! 아니, 홈런인가?”


유진의 몸이 지나왔던 통로를 넘어 들어 사람들이 가득한 칸으로 날아가 쏙 들어갔다.

골이라 표현해도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옆 칸을 잇던 통로가 마치 골대처럼 보이기도 했었으니까.




***




틈새 요괴가 무너뜨린 통로를 벌떼처럼 모여 막던 사람들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류가 탈바꿈한다. 뒤를 바라보는 자가 나타났다. 그는 이내 사색이 된 채, 소리를 내지른다.


“오, 온다! 뭔진 모르지만 여기 날아온다고-!”


군중의 이목이 단번에 뒤로 쏠린다.

맨 뒤에 있던 몇몇은 보고야 말았다. 포탄처럼 날아드는 유진의 육신을!


퍼억-!


충격으로 인해 단번에 흐트러진 결집.

그들은 볼링핀처럼 튕기며 대열을 잃기 시작했다.

창귀가 봤다면 스트라이크를 외쳤을 것이다.


“꺄악!”

“뭐, 뭐에요?”

“아, 아···. 허리.”


“아니, 허리 타령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선생님! 퇴마사 선생님! 괜찮으세요?”

“저, 유진 씨? 맞죠? 아까 김유진이라 이름 들었는데. 정신 좀 차려봐요. 예?”


중년 가장이 유진의 어깨를 흔들고, 물을 주던 직장인 여성이 양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흔들었다.

인터넷 방송인은 사색이 되었음에도, 직업병 때문인지 카메라를 들이밀며 유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히익! 이, 인류의 희망이 지금······. 해, 행님들. 저 마덕마덕은 끝까지 방송합니다. 죽기 직전이라 해도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전해드리는 게 제 사명이니까요. 아, 울지 마세요. 저 안 죽습니다. 아직은.”


유진은 귓가를 찌르는 소음에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의 손에 관절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린 상태로 이를 빠드득- 갈았다.


“아직 안 죽었습니다. 그대로 계속 문이나 막아주세요. 조금 있으면 끝날 것 같으니까.”


말을 내뱉고, 유진은 정장을 탈탈 털며 단검 쥔 손에 힘을 빠득 주었다.

그러자 회귀전에 두고 왔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살의가 진득한 이 느낌.

대조적이게도 평온을 유지하는 고양감.


후오오-


익숙한 소리에 유진은 눈을 빛냈다.

몸 안에 내재된 영력이 뜨겁게 끓어오르다 이내 식는다.

흐물대던 것이 싸늘히 얼려져 결정을 이루는 듯한 감각.

이 감각을 유진은 알고 있었다.


‘그때도 그랬었지.’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신체 강화를 넘어선 영력의 조작을 깨달았던 그날도 분명 이런 느낌이 들었었다.

이는 다음 단계로 개화하기 직전 몸에서 알려주는 신호가 틀림없다.


유진은 단검을 쥔 손에 영력을 불어넣었다.

애매한 기분.

아지랑이 피듯 방출하는 오오라에 좋기도 하고, 조금 못마땅하기도 하다.


‘아직 희미하지만 개화 속도가 전과는 다르게 빠르군.’


본래라면 그랬다.

현 시간대엔 이룰 생각조차 꿈에도 몰랐었던, 나중에 가서야 체득할 경지.

그것을 아직 길들이지도 못 한 새것 같은 몸이 깨닫고야 만 것이다.

유진은 그렇게 전성기 시절로 가기 위한 첫 문을 넘어섰다.




***




창귀는 창을 바닥에 내려찍은 채 하염없이 기다렸다. 곧 있으면 유진이 올 것이다.

이대로 죽을 사내가 아닐 테니까.


또각또각-


익숙한 구두 소리.

창귀는 유진의 투지에 대한 찬사로 선글라스를 집어 던졌다.

흑안 속에서 진득하게 피어오르는 붉은 동공을 내뿜고, 활짝 미소 지어 주름을 구긴다.


“퇴마사 양반. 그거 기억나나? 자네가 처음 왔을 때.”


창귀의 질문에 유진은 의아하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묻는다.


“뭘 말하는 거지?”

“아니, 그때. 터줏대감이라고 이것저것 고생한다며 선물까지 줬잖나? 그때 마셨던 음료수 세트 한 상자. 나중에 가서 사 먹으려니까 없더라고.”


유진이 싸늘한 어조로 답한다.


“그랬었지. 마트에서 세일해서 대량으로 샀던 건데, 입에 안 맞아서 준 것뿐이야.”

“뭐, 노인의 입맛에만 맞는 건가···. 아무렴. 내 입맛에 맞으면 됐지.”


창귀는 한 손으로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피식 웃었다.

몇 초 만에 달라진 유진의 눈매는 수천 번의 전투 속에서 봐왔던 자들 것 중 가장 빛이 났으며, 솜털이 오소소 돋게 할 만큼 찌릿했으니까.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는구먼. 그래도 퇴마사 양반한텐 고마우이. 내게 이런저런 즐거움을 선사하고 말이야.”


창귀에게 봐줄 생각 따윈 없었다.

죽을 생각도 마찬가지. 오로지 죽일 생각뿐이다.

지금의 유진은 각성의 단계를 넘어섰기에.


“들어와 봐라. 이 새파란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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