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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사님 생존 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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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뽀
작품등록일 :
2022.06.29 02:26
최근연재일 :
2022.07.23 08:4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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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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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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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화

DUMMY

쿠웅-!


마치 철문 떨어지는 굉음이 장구 치는 소리를 연상케 했다.

무언가의 등장을 알리는 전통 민요처럼 그렇게 민담은 시작되었다.


무대는 지하철.

등장인물은 이렇다.

지금부터 펼쳐질 지옥도를 이미 겪어본 사내와,

그를 사기꾼이라며 믿지 않는 자들과, 곧 있으면 세간의 인식을 뒤틀게 할 존재가 뿌연 안개에 숨어 침을 질질 흘리며 여기 있었다.


먼저 입을 뗀 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내였다.

그의 차가운 입술이 앞날을 예고한다.


"살고 싶으면 잘 들으세요."


그것은 추풍낙엽처럼 참담하게 무너질 인계의 질서를 알리기에 적절했고, 모래성처럼 바스러질 문명의 붕괴를 뜻했으며, 인간의 밑바닥과 죽음을 표하기에도 충분한 말이었다.


"요괴입니다. 안개에서 떨어지세요. 살고 싶으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겁니다."


이것은 먼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가벼운 민담.

그러나 현실이 되어 정사가 될 이야기.

괴혼 먹는 회귀자의 21세기 퇴마록이다.



***



유진이 말했다.


"요괴입니다. 안개에서 떨어지세요. 살고 싶으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도 그럴 게 안개를 뚫고 나온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드러낸 모습은, 평범한 츄리닝 복장에 머리숱이 얼마 없는 빼빼 마른 아저씨였으니까.


“뭐, 뭐야. 괜히 쫄았네.”

“거 진짜 사람 놀래키고 앉아 있어.”

“멀쩡한 문은 왜 부숩니까? 이게 다 공공시설인데.”


앞서 말했듯 나머지 절반의 반응은 달랐다.


“잠시만요. 사람이 철문을 부수는 게 말이 돼요?”

“맞아. 뭔가 있어. 그보다 뭔가 소름 돋지 않아요? 여기 피부에 닭살 돋은 것 좀 봐.”

“그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사람 보고 요괴라니. 문은 낡은 거겠고. 그냥 술에 취해서 그런 거겠지.”


1호선의 노후화는 예전부터 자주 들렸던 이슈다.


“아니, 그래도. 술 냄새는 안 나는데요? 그것보다 약간 쇠 비린내? 그런 것 같아요. 피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에서 나는 그런 거요.”


이렇듯 양립된 의견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 누구도 저 사내에게 다가가지 않고, 거리를 두었단 것이다.

생리적인 거부감과 본능적으로 무언가 위험하단 신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중 가장 폭발적으로 반응한 건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와, 왔다. 틀림없어. 지하철 빌런. 짐칸에 자는 닌자!’


처음부터 방송용 컨텐츠로 빌런들을 찾아 잠복하던 그였다. 유진도 좋은 화제가 되었지만, 본래 노렸던 것은 인터넷상으로도 이름난 지하철 빌런들.

그가 손에 쥔 스마트폰 렌즈를 비추며 예능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호선의 명물. 지하철 닌자가 드디어! 왔습니다! 행님들-!”


귓가에 쏙 박힐 만큼 우렁찬 소리.

사람들은 또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 뭐야. 어쩐지 본 적 있다 했어.”

“그 짐칸에 닌자처럼 날아서 들어가는 사람 맞죠?”

“맞아요, 그 지하철 닌자···.”

“이번엔 문짝 파괴로 컨셉 바꾸셨나···?”


밈적인 요소로 의해 조금은 누그러드는 분위기.


“혹시 촬영 같은 건 아닐까요?”

“예? 저 사람을 배우로 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 왜. 끼 있는 일반인 중에 방송 취재도 하고, 막 자극적인 거 시키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래도···. 뭔가 꺼림칙한데······.”

“괴인 같은 걸 컨셉으로 잡았나 보죠. 뒤에 나오는 안개는 드라이아이스겠고.”


감이 좋은 사람들은 여전히 경계심을 가득 품었으나,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피식 웃어대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영상 녹화 셔터음이 울려 퍼진다.

유진은 그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고, 진중한 어조로 재차 강조한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안개에 절대로 닿지 마세요.”



***



유진의 경고에 가장 먼저 반응 한 건 장문수였다.

사기꾼이니 뭐니 실컷 조작한 마당에, 단번에 화재가 저쪽에 쏠리니 죽을 맛이다.


‘빌어먹을 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


소시오패스 성향이 짙은 장문수.

사람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알아야 먹잇감을 고립시키고, 괴롭힘을 만끽하며 위치를 과시할 수 있었다.

그가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입술을 뗐다.


“여러분. 웃기지 않아요? 방금 김유진. 이놈이 요괴가 온다는 둥 떠들어댔는데, 참 어이가 없어서.”


돌을 던진 연못에 바위를 쑤셔 박는 말.

장문수의 학창 시절부터 타고난 감각을 토대로 내뱉은 말이 의도대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아, 맞아. 저게 무슨 요괴야?”

“난 또 십년감수했네···.”

“촬영이겠지? 하긴, 갑자기 세계가 멸망한다느니 요괴니, 뭐니 떠들어댄 거에 혹한 내가 다 부끄럽네.”


여기서 눈을 번뜩 떤 장문수는 과감히 나서기로 했다.

유진 놈의 사기를 단번에 까발리기도 좋고, 때마침 인터넷 방송까지 있으니까 정의로운 변호사로 홍보하기 딱 좋은 기회잖은가.

그가 유진을 지나치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작게 비아냥을 내뱉는다.


“이 씨x놈아. 넌 오늘 평생 갈 흑역사 하나 만드는 거다.”

“장문수.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응. 니 x미.”

“······.”


유진은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이번엔 경고까지 했는데 그때도 죽고, 지금도 죽는다면 그건 장문수의 팔자인 것이다.

거기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단 한 번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란 것을 유진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바엔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좋은 거겠지.


장문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근사근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정의로운 척 연기까지 곁들면서 친근한 어조로 목소리를 내뱉는다.


“아니. 사람들이 왜 그래요? 촬영이든 뭐든 간에 공공기물을 파손했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이게 다 세금이고 그런 건데. 따끔하게 뭐라 말씀하셔야지.”


“아, 그건 그렇네요···.”

“에이, 난 또 재미난 구경 좀 하는 것 같아 들떴지 뭘.”

“하긴 요즘 코로나다 뭐다 해서 삶이 팍팍했죠. 이거 변호사 양반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드네요.”


별일 아니라고 치부한 자들이 동조했다.

장문수는 이에 힘입어 영웅 심리를 발휘한다. 그의 발이 지하철 빌런을 향해 걸었다.

왠지 모르게 안개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당신. 그러면 안 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교육도 다 받고 했을 분이. 촬영이든 무슨 사정이 있든 간에, 공공기물을 파손하면 되겠어요? 여기 놀라신 사람들 좀 보세요. 심장 약하신 노인분들도 계시는데, 그러다 잘 못 되면 책임 지실 겁니까?”

“x까. 씹새야.”


갑작스러운 욕설에 장문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이래 봬도 변호사인데.

인생 밑바닥에 사는 놈으로부터 저런 소리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지금 뭘 잘했다고 저한테 욕을 하십니까?”

“x밥 주제에 낄낄대며 사람 내리깔고 좋았지? 그동안 내가 참아와 준 것도 모르고.”


푸슈슈-


그 순간 요괴의 몸이 흐물흐물 대며 기화하기 시작한다. 장문수는 화들짝 놀라 사방에 흩어진 요괴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색깔마저 희미해진지 오래다.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하다. 전철에 가득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여 실루엣만이 보일 뿐이다.


‘안개 때문에 안 보여···.’


생각하던 찰나 입가에 스며드는 한기. 그가 콧등을 내려다보자, 살색의 연기가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눈이 화들짝 떠진다.


“아악-! 아아악-!”


기이한 현상에 장문수는 달렸다. 안개를 뚫고서 허둥지둥 뛰다 다른 사람의 발에 걸려 쿵 넘어지고야 만다.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무릎처럼 바닥에 맞닿은 부위가 아닌, 배였다.

마치 뱃속에 피라냐 같은 날카로운 생선이 오장육부를 물어뜯는 듯한 복통!


“아, 아퍼. 배, 배가! 내 배에 뭔가 있어──! 크어억.”


역류한 피가 입가를 타고 흐른다.

장문수는 다급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바라본 것은 감정 없이 싸늘히 내려보는 유진의 눈동자.


어쩌면 진짜 요괴란 것이 있었던가.

아니 있는거겠지.

바로 지금 내 뱃속에!


“기, 김유진···. 사, 살려주라. 너 퇴마사라며. 지금 나 커헉······. 네, 네가 말한 요괴인지 뭔지가 입속에 들어갔거든? 그러니까, 나 좀 살려주라···.”

“늦었어.”


아무리 자존심이 높다고 해도 죽음 앞에선 구차해지는 게 사람이었다. 장문수는 곡소리까지 내며 흐느껴 울었다.


“자, 잠깐만. 내가 너한테 툭하면 시비 걸고, 그래서 그래? 그거라면 엎드려 절하면서 빌게. 돈을 원하면 돈을 주고, 신발까지 핥아 줄 테니까···. 제발 나 좀 살려주라. 김유진이!”


유진은 장문수 턱밑에 물든 피 웅덩이에 떨어지는 맑은 눈물을 보았다.

아까도 말했듯 이미 다 늦은 일이다.

퇴마사도 아닌, 일반인의 뱃속에 들어간 이상 사망은 확정이다.


“원망은 마라. 난 재차 경고했으니까.”

“흐흑···. 유진아.”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질질 짰음에도 유진은 냉소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평소 짜증 났던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미운 정도 정이라 처음 장문수가 죽었을 땐 내심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절대 아니다.

강제로 말릴 수 있었음에도 말리지 않았고, 그저 이용했을 뿐이니까.

그렇기에 그의 최후를 극찬하기로 했다.


“그래도, 네 죽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 보다 많이 살아남겠지.”


유진은 조용해진 장문수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눈을 뜨고 죽어 식어버린 눈동자를 감겨주기 위해서.

수도 없이 해왔기에 손동작은 떨림 하나 없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그는 이번에도 지긋지긋하게 겪어온 일반인의 최후를 기려주었다.




***




전철 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청백색으로 물들었다.

방금 전 사람 하나가 피를 토하며 죽은 것이다.

이내 말로 할 수 없는 공포가 전신을 지배했고, 결국엔 비명까지 터져 나온다.


“꺄아아악──!”

“아악─!”

“주, 죽었어! 사람이 죽었다고!”


개중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현실 부정에 나선 이도 있었다.


“이, 이거 다 연기에요. 연기. 설마, 사람이 죽었을까 봐?”

“마, 맞아. 그러겠죠? 누구 이 사람 어떻게 죽는지 못 봤잖아요. 갑자기 안개에서 튀어나오더니 피를 토하고 죽는 게 말이 돼? 저 빨간 건 그냥 물감이야. 맞아, 물감이라고!”

“배우들이 참 열연하시네. 저기 퇴마사라 말한 사람도 연기자야. 아 왜, 어쩐지 이상하더라. 동창인 변호사가 나타나고 막 그랬잖아. 그니까, 제발 연기라 말해줘요······. 예?”


유진은 생각했다.

사실 이 사람들도 알고 있으리라.

방송용 카메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일하게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인터넷 방송인도 손을 덜덜 떨며 엉뚱하게 바닥이나 찍고 있었으니까.


믿기 힘들겠지.

처음엔 누구나 다 그랬다.


‘나도 이런 삶이 싫었어.’


공포 깃든 현장 속에서 유진의 손이 장문수의 시체를 벌떡 들었다. 지금도 요괴 놈이 뱃속에서 식사하는지, 미세한 울림이 전해졌다.

유진은 주검을 안갯속으로 냅다 내던져 버린다.


쿵- 털썩-!


전신의 충돌 소리와 팔다리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맞닿는 소리.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자들이 기겁하며 묻는다.


“자, 잠깐. 당신 지금 뭐 해요?”

“사람을 왜 멋대로 그렇게 집어 던져?”

“보기엔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고인에 대한 모독 아니에요?”


도덕을 논하던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유진이었다.

그저 가방 속에 있던 정강이만 한 기다란 무언가를 꺼낼 뿐.

붕대에 휘감긴 길쭉한 고체가 드러났다.

손이 붕대를 서서히 풀자,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빛이 번뜩인다.


"히익."

"카, 칼?"


갑작스러운 흉기에 말을 걸던 사람들이 뒷걸음쳤다.

단검을 쥔 유진이 냉랭한 입술을 열었다.


“식사를 마치면 다음 대상을 노릴 겁니다. 죽기 싫으면 안개에서 멀어지세요. 지금부터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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