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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사님 생존 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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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뽀
작품등록일 :
2022.06.29 02:26
최근연재일 :
2022.07.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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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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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화

DUMMY

벽에 처박힌 캐비닛을 열었다. 먼지만 쌓인 붉은 강철 통이 모습을 드러낸다. 유진은 소화기의 손잡이를 쥐고, 뒷사람에게 건넸다. 김선하는 끙끙대며 소화기 세 개를 한가득 껴안았다. 제법 나가는 무게에 팔이라도 저렸는지 눈이 찌릿했다.


“아, 오빠는 왜 하나만 들어? 이거 무겁다고!“

“한 손은 여유로 두어야 한다. 지능 나쁜 요괴들은 죄다 처리했어도 방심은 금물이야. 머리 좋은 것들은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지금도 살인을 저지르고 있겠지.”


물약이 만능은 아니다. 요괴에겐 꽤나 식욕을 자극하는 향이기는 해도 통하지 않는 요괴들이 있다. 이를 수상하게 여겨 경계할 놈도 있을 테고, 자아가 강해 취향에 안 맞는 놈들도 있을 것이다.


이해했는지 침을 꼴깍 삼키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김선하.

유진은 이곳 지리를 빠삭하게 잘 아는 동생에게 물었다.


“이제 몇 개 남았냐?”

“···어디 보자, 이게 4개째고. 복도마다 2개씩 있으니까, 앞으로 12개?”

“복도는 총 9개 아니었나? 학년 건물이 3개니까.”

“아직 더 있지. 체육관도 있고, 급식실에도 소화기가 배치되어있거든.”


유진은 경계심을 풀지 않고 2층 계단을 향해 내리 걸었다. 3층에 있던 소화기는 다 챙겼다. 이제 2층 교실에 있는 오세린과 학생들을 이끌고, 빠져나가는 길에 1층 소화기를 챙기면 총 6개.

그 정도만 있으면 30여 명의 인원 스스로가 4품의 요괴까지는 방어하기에 충분하다.


‘독단적으로 저들을 내버려 두고 싸워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소화기 사용법부터 집결 이동 시 행동 요령만 가르쳐주면 되겠군.’


생각을 정리하자 2층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유진은 특정 박자로 딱- 딱- 노크한다. 서서히 열리는 문. 그 앞엔 유진이 건네준, 붉은 소금 병을 든 오세린이 있었다.


“선생님. 학생들 가방은 다 비워졌습니까?”

“예. 교과서만 뺐을 뿐인데 텅 비더라구요. 바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오세린 뒤에는 척 봐도 가벼운 가방을 든 여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유진은 소화기의 사용 방법과 간단한 대처를 가르쳤다.


“손잡이는 짧게. 시야는 넓게. 항상 전방을 주시하고, 뒤를 바라봐라. 안개가 부자연스럽게 꿈틀거린다던가, 수상한 무언가가 보인다면 몇 시 방향인지를 외쳐라.”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소화기를 툭- 하는 감각으로 짧게 누른다. 맨 마지막 줄까지 다다라서야 학생들을 3줄로 나누고, 기차놀이 하듯 빙글빙글 돌게 지시했다.

이것은 일종의 모의 훈련이었다.


“유,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래도 뭐 어쩌겠어? 살려면 해야지.”

“불평 그만 해. 난 이 무거운 소화기 들고, 교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나름 이해력이 좋은 학생들이었는지, 불평불만 가득해 보여도 잘만 한다.

여하튼 감도 잡은 듯하고.

준비가 얼추 끝나 보여 유진은 앞장서서 이동했다.


“선생님께서는 후방에 자리하셔서 이탈자가 없는지, 또는 부상자가 있는지에 대해 전체적인 보고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 열심히 할게요. 유진씨.”




***




유진은 김선하와 같이 짠 동선대로 움직였다.

학생들이 수업받는 건물과 체육관에 비치된 소화기는 전부 챙겼다. 남은 건 급식실과 입구 쪽 근처에 있어 마지막으로 들리기로 한 교무실이다.


수많은 테이블과 선반에 쌓인 은빛 식기들이 안개 너머 뿌옇게 보인다. 공기 중엔 요리의 잔향이 맴돌아 코끝을 자극했다.

이곳은 급식실이다.

유진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뒤따라오는 학생들에게 지시한다.


“15분 지났다. 교대.”


제대로 된 고생조차 못 해 곱디고운 손에 쥐어진 소화기가 옆 사람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제법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학생이라 그런지 배우는 게 빠르군.’


실로 여기까지 오면서 봐왔던 것들만 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교사의 지시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아마 졸업한 것도 아니고, 현재 진행형으로 교육받던 학생들이라서 그럴 것이다.

유진은 나름 좋게 평가하며 급식실을 가로질렀다.

도중에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야 만다. 귓가에 여학생의 날카로운 고음이 울려 퍼졌으니까.


“7시!”

“9시!”


안개가 꿈틀대며 접근한다. 이어지는 소화기의 분사.


푸슈슉-!


허연 분말이 안개를 뒤로 밀어낸다.

유진은 삼단봉을 쥐고, 부자연스러운 안개로 달려들었다.


고양이 얼굴과 사람 얼굴이 섞인 듯한 기괴한 요괴.

보나 마나 이름조차 없는 잡요다. 지어봤자 짬 타이거.

놈들이 치켜세운 갈고리 손톱을 휘두른다.


핑-!


가뿐히 스텝을 밟으며 피하는 유진.

그저 무미건조한 얼굴로 삼단봉을 휘둘러 수박 깨듯 머리통이나 팡- 터뜨릴 뿐이다.

워낙에 순식간이라 비명조차 못 지르고, 가루가 되어가는 잡귀들.

유진은 삼단봉에 묻은 비위생적인 피와 뇌수를 털래털래 털었다.

다시금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김선하가 따라붙었다.


“너. 대열에서 이탈하지 마라. 마빡 깐돌이 처맞기 싫으면.”

“잠깐 정도는 괜찮잖아? 다들 잘만 하는데.”


하긴, 지금 상황에선 별 탈 없긴 하다.

급식소에 더는 요괴가 없기도 하고.

제법 유도리있게 상황 봐가며 깐죽대는 김선하가 기특하기도 하다.


“여기 다니는 애들은 배우는 게 빠르군.”

“오빠. 여기 명문고야. 명문고. 저기 저 멍청해 보이는 하도린도 일반 학교 애들보다 머리 좋다?”


김선하의 손가락질을 따라가다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은근슬쩍 눈을 피한 뒤, 뭐라도 깨달았는지 김선하를 째려보았다.


“기, 김선하! 너, 내 욕했지!”


고양이 눈매에 웨이브 진 검은 장발.

그리고 익숙한 이름.


“저 애가 하도린이었나. 네가 툭 하면 때렸다던 애.”

“쟤, 쟤가 시비 걸어서 그래. 나 이래 봬도 모범생이거든?”

“에휴. 아무렴 됐다. 지금부터라도 사람과 마찰을 두지나 마라. 그럴수록 너만 피곤해질 테니까.”


한숨이나 내쉰 유진은 급식소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와 냉동고엔 식량들이 즐비할 것이다. 내일 치 300여 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을 테니까.


앞서 들은 대로 오세린은 유진의 뜻에 맞춰, 학생들을 주목시킨다.


“자. 다들 빈 가방에 음식을 채워 넣으렴.”


“아, 이래서 가방 비우라고 한 거예요?”

“왠지 교과서 보다 더 무거울 것 같은데.”

“가방에 양파 냄새 배는 거 아냐?”

“먹을게 중요하지. 어? 저기 비닐랩 있네. 포장하고 집어넣자.”


학생들이 냉장고와 냉동고를 활짝 열고, 육류와 채소와 과일들을 주섬주섬 챙긴다.

투덜대도 일은 잘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가방에 수두룩 쌓일 리는 없었다.


“이게 다야?”

“뭔가 좀 모자란 것 같은데?”

“뭐야. 전교생 먹일 건데, 이게 말이 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세린이 아차 싶었는지, 설명에 나선다.


“그건 비축분이라서 그럴 거야. 본래 우리 학교는 싱싱한 재료만 엄선해서 요리하다 보니까, 당일 식자재를 납품받거든. 여기 있는 것들은 양 조절에 실패할 때 써먹을 재료들이란다.”


학생들은 납득한 모양이었다. 이것만 해도 30여 명이 며칠은 먹을 정도로 가득했으니까.


유진은 감탄을 내뱉었다.

이 아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길을 터줄 퇴마사가 있고, 뒤를 봐줄 믿을 수 있는 지도자가 존재한다. 거기에 기대치에는 못 미쳐도 다량의 식량까지 챙겼다.

시작부터 이런 조건을 갖추고, 생활에 나선다는 것은 민간인들에게 있어 커다란 행운이었다.


‘첫 번째 삶에선 운이 없었지만, 두 번째만큼은 다르다···.’


아이러니하다.

본래라면 죽었어야 했을 사람들이 이번 시간에선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것이 알고 있던 미래를 크게 뒤바꿀 요소가 되진 않을까도 싶다.

유진은 혹시라도 그런다면,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희망했다.


어쩌면, 훗날 미래를 개편했을 때.

저들의 역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이제 교무실로 이동한 다음, 스마트폰만 챙기고 학교를 빠져나갈 거다. 경계심을 놓지 마라.”




***



교무실로 가는 길.

가지런히 놓인 벽돌 바닥을 밟으며, 꽃이 활짝 핀 정원을 지나친다. 유진은 오른쪽을 둘러보았다. 파괴된 동상의 흔적. 바로 뒤에 있던 김선하에게 물었다.


“여기 원래 동상 있던 자리 아니냐?”

“맞아. 저기 학교 세워질 때부터 있었던 동상 하나 있었는데···.”

“그럼, 여기인가.”


유진은 도중에 발을 멈추고 뒷사람들에게 간결히 전했다.


“지금부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날 믿고, 잠자코 있어. 놀라서 소화기나 낭비하진 마라.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오빠. 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

“오래된 동상을 조심해라. 보통의 경우, 하나의 요괴를 봉인했단 뜻이니까.”


경험이 그랬다.

본래라면 잠들어있을 터줏대감이 부하들에 의해 풀려났다는 증거.

이미 하람 여고의 터줏대감을 잡아 본 유진이다.

당시엔 다른 곳에서 전투를 펼쳤으나, 지금은 다를 것이다.

30여 명을 이끄는 현 상황에선 이곳만큼 습격하기 좋은 장소가 없을 테니까.


예상대로 뒤편에 있던 여학생의 소리가 이변을 알린다.


“다, 담임쌤. 미진이가 안 보여요···.”

“미진이? 미진아! 지금 어디에-”


오세린 교사의 목소리도 끊겨 사라진다.


“꺄악-!”

“담임쌤이!”

“유진 오빠. 여기 6시!”


학생들이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듯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으나, 유진은 그저 앞만을 바라볼 뿐이다.

지금 눈앞엔 수위 복장을 입은 요괴가 전기톱을 지잉- 켜고 있었다.


“역시, 퇴마사가 있을 줄 알았어. 성수민이 연락이 없더라고.”

“그래서 잠자코 지켜보았나?”

“그랬지. 뭔가 심상찮아서 바로 우리 터줏대감 어르신 봉인 된 것도 풀었고 말이야.”


서서히 비명이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개수가 줄어든 것이다.

이윽고 김선하가 다급한 소리로 외친다.


“오빠! 뒤에! 뒤에!”


유진은 동생이 떠들거나 말거나 삼단봉으로 눈앞의 전기톱을 든 식인귀의 머리에 영력 담은 삼단봉을 날릴 뿐이다.


“너넨 다-”



파앙───!



놈의 머리는 차마 말도 못 끝내고 놈의 터져버렸다. 유진은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이빨로 으깼다. 곧이어 전기톱을 들고 등 돌린다.


기이한 노인이 보인다.

백발이 수명 다한 빗자루처럼 산발이 만개했다.

수염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특이하게도 손과 발만 큼은 새까맣다.


그런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거대한 3미터 크기의 노인이 볏짚으로 딴 망태기를 들고서, 학생들을 하나하나 집어넣고 있었다.


“오, 오빠? 나 잡혀가잖아! 도와달라고 이 못돼 처먹은 놈아!”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건 바로 뒤에 있던 김선하.

잽싸게 망태기에 쑤셔 박히자, 날아오는 뾰족한 검은 손가락.


핑-!

탓-!


유진은 단번에 뒷걸음질해 놈의 공격을 피했다.

단번에 거리를 벌리자 대화하기 좋은 위치에 섰다.


“난 잘 못 한 거 없는데?”

“넌 소갈머리가 없어 보여. 거기다 내 아랫것을 죽였으니, 탕으로 푹 고아서 먹어야겠다.”


놈의 정체는 망태기 할아범.

아이들을 망태기에 집어넣고, 요리해 먹는 질 나쁜 3품 악귀.


설화에선 못된 아이들만 잡아먹는다곤 하지만, 그건 우스운 소리다.

놈이 내리는 선악의 기준은 절대로 공평치 않으며, 죄가 없으면 억지 부려서라도 만들어 사람들을 납치한다.

유진은 엄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전기톱 체인에 바르고, 스위치인 줄을 당겼다. 손에 느껴지는 진동이 꽤나 좋은 무기인 것을 알린다.



지이이이잉───!



통 안에 담긴 연료는 충분하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날카로운 톱날. 유진은 맹렬히 돌아가는 전기톱을 쥐고서, 망태기 할아범이 든 자루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루는 내려놔라, 망태기 할아범. 이긴 놈이 다 갖는 거다.”


저 샌드백 크기의 자루에 30여 명이나 담겨있다.

과연 저것이 평범한 물건이라면 그것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저것은 보구다.

등급이 커다랗게 높진 않지만, 실사용 측면에선 앞날이 편한 그런 보물.

즉, 게임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인벤토리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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