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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님의 서재입니다.

만신전의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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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작품등록일 :
2021.07.26 19:05
최근연재일 :
2021.1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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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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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너무도 너무도 부끄러운 일

DUMMY

그람은 하퍼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의 홀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지, 어울리지 않게 투구와 어깨의 그 유난한 뽕을 벗은 채로 하퍼는 서류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역시 현역에서 뛰다가 밑에 수하들이 생기면 바로 관리에 여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퍼도 서류작업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는 용병 시절에는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장 크리스 사제와 함께 트리스트로의 증원을 수정구를 이용하여 요청하였다. 하지만 그 요청의 답과는 상관없이 인편으로 중앙으로 전달해야할 이 증원에 대한 보고서와 첨부해야할 서류가 상당히 많았다. 트리스트의 군사부분을 책임지는 자로써 오크의 위협과 그에 상응하는 대응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보내야만 했으며 추가로 필요한 전력과 그 이유, 그리고 특히나 머리가 아파오는 것은 군수적 요청에 관한 부분이었다.


병력이 오면 그들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도 안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먹어야 했으며 잠을 잘 곳이 있어야했으며 훈련할 장소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필요한 자원을 계산해서 중앙에 요청을 해야만 했다. 당장 만신전 그리고 왕국에서는 이 곳 트리스트의 실상에 대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얼마만큼의 밀리샤가 있다던가, 어느 정도의 병력이 기거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던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트리스트의 식량 저장량에 대해서도 알려져있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이곳 변방의 트리스트는 언밀하게 말하면 왕국의 방어권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땅도 아닌데 그 땅에서 어느 정도 소득이 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건물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것이 세력을 형성한 적대단체라면 스파이를 파견해서라도 파악하려 했겠지만, 트리스트와 의 북부의 변경지역은 왕국의 입장에서는 그냥 몬스터를 일선에서 막아주는 일차적인 방파제에 불과했다.


만신전에서도 트리스트와 인근 남작 영지에 사제들, 그리고 특히 카릴 남작 영지에는 성기사를 파견해놓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그런 주요한 지역은 아니었다. 분명 몬스터들과 가장 근접한 곳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 질서를 거부하고 도망친 도망자들이거나 도망자들의 후예였다.


만신전은 기본적으로 민초들에 더 가깝지만, 그 거대한 신전을 유지하는 비용은 주로 독실한 왕 그리고 귀족이 낸다. 아니 애초에 그런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자들은 그들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의 이상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 만신전도 그들과 결합되어 그들의 시선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야가 적나라하게 들어난 것이 바로 이 북쪽의 상황이었다. 이곳 트리스트는 인간영역의 최북방이며 만신의 적인 몬스터들과 마주하고 있는 인류의 최전선이다. 그런데 하퍼 자신을 포함해서 이곳으로 파견되어 오는 몇 명 되지 않는 성기사들은 다들 무언가 흠결이 있는, 최정예라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


하퍼는 두 의미에서 정말 부끄러웠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만신전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그리고 흠결이 있다고 이곳에 보내진 자신의 실력에, 두 가지 전부 그를 끝없이 부끄럽게 하는 것들이었다. 아무리 도망자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해도 이곳은 인류의 영역이었다. 당연히 만신을 받드는 만신전은 만신의 적들과 대치하는 이곳 최전선에 다른 곳처럼 최대의 지원을 함이 옳았다.


하지만 만신전은 도망자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는 이유로 이 북방에는 그리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 백년 전 당시 만신전의 최대 교단이었던 아단교단의 교황이 자신의 12사도와 성전에 지원하는 만신전의 성기사를 총동원해서 서쪽 대습지의 마왕과 양패구상했던 것과 같은 비록 아단교단에는 상처가 컸지만 결국 인류로 보아 큰 승리를 거둔 그런 대성전이 한 번도 실행되지도 그리고 계획된 적도 없는 북부였다.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는 인류의 전선 중에서 가장 외면 받고 그냥 현상 유지만 하면 된다는, 만신전의 교리에 어긋나는 방침이 계속 하달되는 곳.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는 바로 그곳. 그곳이 이곳 트리스트를 포함한 북방이었다.


그리고 이곳 트리스트로 파견되는 성기사들 그리고 사제들은 크리스와 같은 지원자가 아니라면 다들 무언가 흠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끄럽게도 하퍼 그 자신도 그랬다.


하퍼는 자신을 여기 트리스트까지 오게 했던 아버지의 그 말을 떠올렸다. 그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지긋지긋하게 듣던, 사실 가장 듣기 싫어서 떠났던 바로 그 말. 바로 그 말을 자기도 모르게 뇌까렸다.


“땅은 언제나 공평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베푸시지.”


하퍼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현실. 그리고 힘든 농사일. 하퍼는 그런 나날이 너무도 싫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만족하며 만신에 감사하며 살아갔다. 그것이,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것이, 만신의 뜻이라며 하지만, 마아트게 내려주신 공정은 공평은 땅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늘 하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나 지으면서 살기는 싫다는 이유 하나로 가출해서 세상에 뛰어들었다. 농부의 아들로 가진 것 없이 몸뚱이 하나로 뛰어든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애초에 몸을 쓰는 일 뿐이었고, 이 판테오니아에선 몸 쓰는 일은 크게 두 가지 종류였다.


농사, 수렵과 같은 1차적 생산직과 용병.


애초에 농사가 싫다고 뛰어든 세상, 당연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용병이 되는 길 뿐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바닥도 늘 인력이 부족한 것은 마치 농사와 같았다. 몬스터 그리고 인간과 싸울 전장은 넘치고 넘쳤고 늘 그곳에서는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가고 그가 자신에 대해 돌아본 것은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였다.


애초에 머리가 부족한 자신은 힘쓰는 일 아니면 못했다. 그리고 힘을 쓰는 일은 크게 두 가지.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 것인지는 간단했다. 당장 자신만 해도 농사가 싫다고 집에서 뛰어나왔으니까. 그런데 용병으로 잔뼈가 굵어 이제는 오늘만 사는 풋내기 용병이 아니라 내일도 바라볼 수 있는 베테랑이 되자,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매우 고되고 늘 사선에 걸쳐있는 이 용병일이 왜 대체 농사일보다 쉬운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라는 의문이 하퍼의 뇌리에 스쳐간 것이다. 그때부터 하퍼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베테랑 용병이란 그저 그렇게 오래 살아온 용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숙련된 용병은 거의 전장에서 기사급의 전력이었다. 그리고 하퍼는 그런 베테랑 용병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그는 맨몸으로 뛰어든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수십 년의 노력으로 마력을 유형화해낸 손꼽히는 베테랑 용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의 마음에 가득 찬 하나의 화두. 왜 대체 자신은 이런 죽음을 불사하는 용병일이 농사일보다 더 쉬웠을까?라는 물음은 하퍼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퍼의 아버지는 늘 말했다. 정직하게 땅은 정직하게 한 것만큼 돌려준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 나와 구르고 굴러서 된 것은 베테랑 용병이었다. 그것도 주로 전쟁에 참여한 전쟁용병. 하퍼는 천천히 그리고 오래 그 화두를 가지고 고민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자신은 왜 집을 뛰어나왔는가?‘부터 시작하는 그의 생각들은 오랜 시간을 지나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누군가에서 뺏는 것을 더 쉬워했던 것이라고...그는 스스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의 결론이 객관적으로 과연 맞는지 그것은 하퍼에게 상관이 없었다. 그가 다다른 결론은 그만의 결론이었으니까. 다만 자신이 정직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대신 이미 남들이 정직하게 만들어낸 것들을 빼앗는 일에 열중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하퍼는 그의 경력 전성기에, 용병을 그만두었다. 전쟁용병으로써 나름 명성도 버리고, 그때까지 모은 돈을 전부 사용해서 위약금을 지불, 중부의 대귀족과 맺은 장기 계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그는 용병계를 떠나 방랑을 떠났다. 그는 도저히 더 이상 정직한 자들이 정직하게 수확한 곡식을 가지고 누가 그것을 더 많이 뺏을 것인가를 두고 싸우는 그런 판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길고 긴 방랑길. 그는 목적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바람이 이끄는 곳으로 걸었다. 그리고 바람은 그를 북부로 이끌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길을 떠난 그 계절은 여름이었으니까. 남풍을 따라 하퍼는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북부에서 그는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돈이 덜되기 때문에 외면했던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이 판테오니아의 지배자가 아니었다는 진실. 중부를 떠나 북부로 오니 그 사실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판테오니아 중부는 그간 여러 차례의 대성전으로 서부와 동부의 마왕을 타도하거나 세력을 위축시키는 것에 성공하여 몬스터에 대한 걱정이 일상적이지는 않았다. 중부에서 용병들이 하는 일은 주로 인간들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북부로 오니, 이 사람들은 언제나 몬스터와 혈전을 치루고 있었다. 등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서 그는 더 북쪽으로 향해 결국 이곳 북부 변경지대에 이르렀다. 수탈에 못 견디고 인류의 문명권 밖으로 도망친 사람들. 이 북부의 위험한 끝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사실 하퍼는 거기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가 살던 세상은, 늘 조금의 이득을 위해서 서로 싸우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가 용병으로 고용되는 임무 중에는 도망친 영지민들의 부락을 습격해서 그들을 대려오는 임무가 상당히 많았다.


늘 그런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귀족들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민들은 무식해서 그들끼리 가만히 두면 무법천지의 암흑세상이 된다. 만신께서 가장 증오하는 약육강식의 한명만 남는 그런 야만적인 행태를 어찌 보고만 있을터냐?”


하퍼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으려고 했다. 문명사회의 귀족들의 규율이 없다면 인간사회는 저 야만의 몬스터와 다를 바 없다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북부 변경에 와서 본 귀족이 없는 도망자들의 마을은, 그냥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쌓인 평화로운 어촌마을. 물산은 풍부하지 않았으나 사시사철 잡히는 물고기와 사냥으로 그냥 먹고 살만한 마을. 하지만 그 사냥이란 것이 몬스터들과 영역이 겹쳐 너무도 위험한 마을. 여기서도 그들은 살기 위해서 공포에 나아가 사냥을 했다.


하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사냥은 역시 죽음의 사선에 발을 딛고 몸을 쓰는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또 이 사냥꾼 일이 너무 힘들어서 가출을 했을 것 같았다. 결국 자신은 몸을 쓰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 쉽고 편하게 남에게 강탈하는 것을 원했던 것뿐이었다.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귀족들의 말 그대로 만신께서 가장 증오하는, 그 영혼조차 거두어지지 못할 신성모독이었다. 적어도 하퍼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완전히 헛된 삶을 살았다.


그는 위약금을 지불하고도 상당한 금액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삼면이 강으로 되어있는 단검같이 비수같이 튀어나온 푸엥트 마을에서 술로 하루하루를 소비했다. 생각보다 그의 목숨값은 비싸서 상당한 시간을 그곳에서 술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푸엥트 마을로 오크들이 침입했다. 이런 마을이 제대로 갖춘 방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군대도, 심지어 자경단도 없는 마을. 하지만 이들은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다들 어디선가 허름한 하지만 정비된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 것을 본 하퍼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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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스터 +1 21.10.08 56 4 13쪽
67 무적의 치트키 21.10.07 51 4 12쪽
66 성기사의 권리 21.10.06 51 4 12쪽
65 영웅의 증거 21.10.02 51 6 14쪽
64 넷카마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10.01 56 4 13쪽
63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21.09.30 52 5 13쪽
62 나만 쓰래기야? 21.09.29 53 2 14쪽
61 인내력의 끝 21.09.28 5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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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장님 문고리 잡기 21.09.23 5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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