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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님의 서재입니다.

만신전의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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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작품등록일 :
2021.07.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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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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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망신

DUMMY

언제나처럼 약간의 어지러움 후에 시야 가득한 하얀색 공간이 그람을 반겼다. 언제보아도 메트릭스 짭임이 분명한 이 백색의 공간. 파리엘은 보이지 않았지만 당연히 자신이 천사임을 강조하는 등장 컷신이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나플나플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내 오늘 헬조선의 갑질이 무엇인지 한번 보여주리라. 우리는 땅콩회항의 나라 아닙니까.’


십여년도 전이지만 뜨던 비행기도 돌리는, 외국에서 보면 갑질의 신이지만 국내적으로는 그냥 평범한 갑질러가 수없이 존재하는 그 대한민국의 사나이로써, 이런 버그를 방치하는 자칭 운영자와 신들(?)에게 사회의 쓴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람이었다.


어떻게 요것을 쪼아볼까 궁리하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저 높은 하얀 공간에서 깃털이 떨어지는 것처럼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광선의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으면서 내려오는 파리엘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쓸모도 없는 것에는 과한 너무도 과한 충실한 연출이었다.


그람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렸다. 갑질을 하려면 일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다가 폭발해야만 했다. 그래야 뜬금없이 나오는 분노에 더 당황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판단에 스스로 흡족해한 그람은 속으로 대사를 정리하면서 파리엘을 기다렸다.


나플나플 떨어진 파리엘이 이윽고 다가와서 그람에게 바로 아는 척을 했다.


“반갑습니다. 그람님. 굉장히 빨리 다시 만나게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엇을? 무엇을? 지금 그게 할말인가요. 지금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를 않아요.”


그람의 말에 눈을 크게 뜬 파리엘이었다. 일단 컨셉이 천사다보니 기본적으로 외모가 정말 뛰어난 편이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뜬 모습에 절로 마음이 약해지면서 전투력이 반감되는 것을 느낀 그람은 더 강하게 나가야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가 파리엘을 상대로 우위를 잡을 기회는 이번 아님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람의 호통에 눈을 동그랗게 뜬 파리엘은 네크워크 혹은 뭐가 되었던 무언가 정신을 집중해서 알아보는지 몸 전체가 굳었다. 마치 정신이 어디론가 날라가고 몸만이 남아서 굳어있는 것과 같은 느낌. 예전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융합직업인 성기사가 선택지에 있다고 했을 때 보았던 그 모습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에 광체가 돌아온 파리엘은 크게 뜬 눈을 더 크게 치켜뜨면서 그람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이신가요? 지금 시스템은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고 특별한 문제는 보고되어있지 않습니다.”


“내가 수많은 게임을 해봤지만 버그 제보를 했을 때, 네 그것은 버그입니다라고 말한 운영자는 하나도 없었지. 그렇게 순순히 인정한 사람은 없었단 말입니다. 지금 내 직업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원정대장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열광의 영기 숙련도 3레벨 추가효과를 고르는데, 이미 충족된 조건인데도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나온다는 말이지. 이게 버그가 아니면 무엇이지? 아 너무한 것 아닌가? 온가지 잘난 척을 하면서 이렇게 버그나 나오고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람은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롤플레잉게임. 그리고 언제나 그 캐릭터 그람을 연기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바로 파리엘이었다. 그 위협에 굴복해서 아니 무서워서 이영민은 그람으로써 살아왔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 원래 게임세계의 룰에 완전 익숙한 게이머였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강요된 역할에 반발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 불합리한 일이라고 무언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벌어지자 그 마음이 폭발한 것이었다. 사실 그람이 생각해도 이 일이 이렇게까지 항의를 하고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장난 반으로 갑질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이 공간에 돌아왔지만 말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굉장히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람은, 그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폭발시켰다.


어쩌면 이런 핑계가 아님 화를 낼 수조차 없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람은 그 좋아하는 핑크색 극세사 잠옷을 입고 두근두근 게임 오픈 시간만을 기다려서 칼같이 접속을 했다. 그리고 그 기대의 결과는 이상한 세계의 엘리스 그 자체였다. 물론 아직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엘리스들도 존재하는, 자신만 엿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재의 그람에게 유일하고 커다란 위안이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취미로 하는 것과 목숨을 걸고 영문도 모른 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취미는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그만둘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람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로 그만둘 수도 없다. 이것은 완전히 타의로 강제된 상황. 그리고 벗어날 방법도 없으며, 오히려 이들의 눈치를 보아서 그리고 기분을 맞추어주어서 뭐라도 하나라도 건져야하는 비굴한 상황이다.


그람은 이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 두뇌로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름 오랜 사회생활의 경험으로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기회라도 아니면 절대로 파리엘 등 이 현실을 만들어낸 자들에게 조그마한 항의도 할 수 없다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 이 상황에 마음껏 질러보리라 생각한 것이다.


‘윤발이형이 그랬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가 신이라면 내가 신이라고...’


어린 시절 그리고 10대에 허세부리며 열심히 몇 번이고 돌려본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 그람이었다. 분명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는 자들이 신이라면, 자신 뿐 아니라 완전한 타인인 그람의 운명마저 바꿔놓은, 눈앞에 있는 이 세력은 어쩌면 말만 신이 아니라 진짜 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들이 말 그대로 전능한 ‘신’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이들은 자신보다 강한, 그 강한 것에 자금, 과학 등등 모든 것이 포함되리라. 말 그대로 강한 자들일 뿐이었다.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자본은, 돈은 곧 신과 같다. 애초에 자본주의라는 것이 자본으로 과실을 보상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하지않는가.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원리인 것이다. 돈이 신대접을 받는 사회에서 자라온 그람에게 ‘신’이란 것은 결국 그 사회의 헤게모니를 먼저 대부분 장악한 자들에 불과했다.


그람이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처럼 불만을 쏟아내자, 파리엘은 다시 멈추었다. 파리엘 쟈는 뭘 알아볼려면 언제나 무슨 전원 빠진 것처럼 멈추었다. 눈은 뜨고 있는데, 초점이 사라진 희한한 상황이랄까. 어쨌든 그람은 그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면서 기다렸다. 어쨌든 잘못된 버그니까 이들이 해결을 해줘야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에 알아보는 시간보단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이 그람은 사실 분노 따위는 잊고 정신없이 파리엘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파리엘은 지금 보니 엄청난 미녀였다.


그람은 그간 수많은 게임을 하면서 NPC PC를 구분하지 않고 정말 아름다운 캐릭터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나 인정하기는 싫지만 박우신이 만드는 여캐릭은 정말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정말 뭔가 달랐다. 정말 묘한 아름다움이랄까. 그래 아우라. 아우라가 흘러넘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레드가 내 열광의 영기를 볼 때 광분하더니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람은 열광의 영기를 보고 흥분하던 프레드가 생각났다. 이제 생각해보면 프레드가 신성력변태라기 보다는 신성력을 갈구하는 성기사의 종자라면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엘에게는 뭔가...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로 아름다웠다.


‘뭔 NPC를 이렇게 빡시게 만들어놨다냐...’


그람은 애써 눈앞에 보이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까내리려 했으나, 그의 눈으로는 단점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파리엘은 아름다웠다. 순간 약해지는 마음, 즉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 슬픈 그람이었다.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것인데, 참으로 남자란 슬픈 동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파리엘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도 담담하게 말했다.


“그람님 캐릭터 그람에 대한 전체적 점검에서 발견된 오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의하신 사항은...”


“야 안된다니까. 안되는데 당장 안되는데 뭐가 오류가 존재하지않아! 그런식으로 따지면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오류야 오류.”


파리엘의 말을 끊고 그람은 분노의 일갈을 날렸다. 듣다보니 아무리 아름다워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는 그 자체가 오류고 버그였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사람을 무슨 호구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정말 너무했다. 그람은 자신은 절대 흑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은 흑우도 아니며 흑우가 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절대 적어도 흑우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오랜 게이머 경험에서 나오는 그의 철칙. 하지만 흑우가 되지않겠다는 그의 결심과는 전혀 다르게 파리엘의 이어지는 말에 그람의 분노의 피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람님이 문의하신 그 사항 즉 스킬의 추가효과를 전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오류가 없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만 그람님의 문의대로 그람님은 그 전제조건인 원정대를 조직하실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셨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그 권한을 획득하기 사용하기 위해서는 ‘스킬 : 원정대장(1)’의 습득이 필요합니다. 혹시 퀘스트창을 확인하시고 완료보상을 획득하셨습니까?”


그람은 순간 얼굴이 빨갛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분명히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을 것이다. 파리엘의 말을 듣는 순간 어제 밤에 크리스 그리고 하퍼와 회의 중에 주요 메시지라면서 무려 성소가 아닌데도 뜬 그 시스템 메시지가 기억났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면, 과거 성기사로 크리스와 하퍼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주신상 안 이 공간으로 이동해서 성기사로 전직하기 전까지는 그는 성기사이되 성기사는 아니었다. 즉 판테오니아 세계에서 NPC들에게 혹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과 시스템 안에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란 이야기였다. 물론 바로 시스템은 그것을 적용해주지만, 그것을 사용하려면 어디까지나 개별적으로 시스템에 적용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그람은 퀘스트 보상을 확인하고 그 보상으로 나온 원정대장이라는 스킬을 익히면 자연스럽게 되는 문제를 가지고 버그라고 와서 난리를 친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사실을 알아차린 그람은 말 그대로 정말 민망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엄청나게 쪽팔렸다. 거기에 원래는 별 감정없이 아니 솔직히 저들의 앞잡이란 생각에 증오감이 들었던 파리엘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파리엘이어서 더 쪽팔렸다.


‘당황하지말고....당황하지말고...’


그람은 오래전 티브이에서 본 개그맨의 대사를 떠올리면서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할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이 조금 성급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저 파리엘은 NPC다. NPC에게 유저가 조금 실수했다고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쪽팔리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더구나 저건 NPC다. 그러니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림의 떡 그래,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잘해줄 필요도, 잘보일 필요도 없는...그냥 NPC였다. 그람은 애써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군...미쳐 확인을 못했네.”


그람은 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바로 퀘스트창을 열었다. 파리엘의 말대로 퀘스트 창에는 무려 <중요>라는 딱지가 붙은 퀘스트가 완료된 채 보상 수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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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신 21.10.13 44 5 13쪽
70 버그?? 21.10.12 46 4 13쪽
69 융통성 21.10.09 51 4 11쪽
68 마스터 +1 21.10.08 56 4 13쪽
67 무적의 치트키 21.10.07 51 4 12쪽
66 성기사의 권리 21.10.06 51 4 12쪽
65 영웅의 증거 21.10.02 51 6 14쪽
64 넷카마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10.01 56 4 13쪽
63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21.09.30 52 5 13쪽
62 나만 쓰래기야? 21.09.29 54 2 14쪽
61 인내력의 끝 21.09.28 56 4 13쪽
60 앉은뱅이가 서서 걷는다면? 21.09.27 59 4 13쪽
59 도둑은 감옥에... 21.09.25 58 3 14쪽
58 군필... 21.09.24 58 2 14쪽
57 장님 문고리 잡기 21.09.23 5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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