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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님의 서재입니다.

만신전의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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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작품등록일 :
2021.07.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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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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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개미 꾹꾹

DUMMY

그람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게임의 설정과 지금 그람이 겪은 사실들이 묘하게 오버매치가 되었다. 왠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하지만 큰 골격은 같은 이야기.


그람이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롤플레잉 게임에서의 롤과 실제 그람이 현실이 그람이 영웅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같았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이것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에 닿아있는 문제였다. 사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 물음은 하나였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


인터넷 상에서 맨붕이 왔다는 것을 표현할 때 주로 쓰던 밈이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 확실히 이 밈은 지금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본적 물음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생각하는 자신은 이영민 자신이라고 치자.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디고 왜 내가 여기에 와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 물었을 때, 그것은 허용된 정보가 아니라고 미션을 통해서 나아가다보면 그것을 알 수 있으리라 말했던 것은 눈앞에 있는 저 아름다운 얼굴의 파리엘이었다. 그람은 사실상의 맨탈붕괴 상태에서 그 말을 따르는 것이 가장 그나마 나은 길이라는 생각에 그 말을 따랐고 그 말에 따라서 쭉 노력해왔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 것은 의미심장했다. 그것이 말하는 결론은 그람이 생각할 때는 하나였다. 만약에 이 판테오니아에서 그람이라는 존재가 존재하는 설정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람에게 신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하더라도 의미가 별로 없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그람은 현대인이고 현대의 고등교육을 수료했다. 수많은 작품들 그리고 에세이에서 다루는 것처럼 신이란 것은 결국은 우리보다 발전된 그런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람은 전적으로 동의했었다.


구석기인에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가진 현대인은 신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확정적으로 신으로 모셔질지도 모른다. 과학의 수준이, 궁극적으로 지식의 수준이 그들의 지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설사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신은 다만 지구의 문명수준보다 높을 뿐일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과장해서 생각한다면 암흑의 시기를 극복한 인간은 언젠가는 시간만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외계인과 처음 만남을 다룬 퍼스트 컨택트에 대한 영화나 작품은 많다. 그람은 그 주연배우는 매우 싫어했지만 그 대사는 그럴 만 했다고 생각했던 영화를 떠올렸다. 그 영화에서 처음으로 만난 외계인에게 주인공은 그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죠?>


얼마나 거만한가. 겉으로 보이는 것은 절실하게 생존의 길을 찾는 후배 같은 느낌이지만, 들여다보면 얼마나 거만한 말인가. 생존할 수만 있다면 나도 너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런 질문이 아닌가? 이미 인간은 스스로 멸망하지만 않는다면, 스스로 과거 자신들이 믿었던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체로써 인류를 믿는다는 그런 식의 인간찬가는, 이성의 빛으로 중세의 어둠을 몰아냈다는 그때부터 지속되는 단골 매뉴 중 하나가 아닌가. 인간이 자신들의 가능성을 심지어 신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버린 순간, 이미 인간은 신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당장 아까 생각했던 윤발이형도 영웅본색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가 신이라면 내가 신이 되겠다고.


그람에게 신이란 것은 결국 자신보다 초월적 문명을 가진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초월의 수준이 너무 아득하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차원을 이동해서 정신만을 불러낼 수 있는 존재라면 대체 현생 인류보다 얼마나 앞서있는 것일까? 아니 이렇게 앞선 신이 왜 하찮은 수준의 인간을 불러내는 것일까?


사람이 개미를 대려다가 노는 것은 어릴 때나 한다. 어릴 때는 개미를 손으로 꾹꾹 눌러 죽인 적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적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런 짓은 재미없어서라도 안한다. 대체 차원을 넘어 정신을 소환해서 다른 생명체에 넣을 수 있는 존재들이 무엇을 위하여그들 수준에서 볼 때 마치 개미와도 같은 인간을 부른다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개미를 꾹꾹 눌러 죽이는 어린아이의 치기를 가진, 극도로 발전되었지만 또한 정신 수준이 극도로 유치한 존재들의 음모일까?


아니 그렇게 발전되었는데 유치하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


어쩌면 그람은 만신이 실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실존이 이 세상에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물질사회 즉 그람이 살던 지구와 같은 세상에 실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단이 실재하여 자신에게 힌트를 준 것이라면? 자신이 정말로 예언서나 종교서적에서 나오는 계시를 받은 자라면? 닭살이었다. 정말 닭살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별로 생산적인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이 실존한다 한들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이 분명했다. 당장 신이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은 그람이 살던 세상의 게임 시스템이지 않은가. 심지어 상자 2번 까기 버그까지 존재했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다만 자신들 즉 현생인류보다 좀 뛰어난 물론 많이 뛰어난 존재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고고하게 빛나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했다.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뒤에서 누군가...자신이 아단이라고 알고 있는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오싹했지만 알게 뭔가. 일단 여기까지 오는 것에 도움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도움을 엮어서 현실로 끌어낸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차피 파리엘의 말이 전적으로 맞았다.


확실한 것은 없으니 전력을 기울여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람은 파리엘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와서 바로 열광의 영기의 추가효과로 당연히 5번을 선택했다. 범위를 조절할 수 있는데다가 추가효과 그리고 나중에 원정대장(1) 이상의 스킬을 습득한다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스킬이라 반드시 선택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곤 그람은 바로 스킬 숙련도가 3이 넘은 또 다른 최중요스킬인 명상의 추가효과를 보았다.


<스킬 : 가벼운 명상><lv.3 45%>

<성기사 신성마법 1단계>

<순간적 긴장완화로 신성력을 빠르게 회복한다>

<(18)초간의 행동불가의 정신집중을 통해 (54%)의 신성력을 급속회복한다.>

<긴장만이 정답은 아니다. 정신의 감옥에서의 자유로운 해방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벼운 명상의 추가효과 선택>

<1.정신집중의 시간을 30% 증가시키고 회복되는 신성력을 30% 증가시킴>

<2.정신집중의 시간을 30% 증가시키는 대신 재사용시간을 30% 감소시킴>

<3.정신집중의 시간을 30% 감소시키고 회복되는 신성력을 30% 감소시킴>

<4.정신집중의 시간을 30% 감소시키고 대신 재사용시간을 30% 증가시킴>

<5.정신집중의 시간 중 후반 30%의 시간동안 행동할 수 있지만 신성력 회복효과는 10%감소한다.><성기사>


기존의 스킬 추가효과와는 조금 내용이 달랐는데, 아마도 다른 스킬들은 말 그대로 스킬이고 이 가벼운 명상은 신성마법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마법은 시간을 더 들여서 강력한 효과를 가져오거나 단축하여 작지만 더 횟수가 많은 사용을 보장하는 식의 효과를 고르는 형태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신성마법은 아마도 성기사와 사제 둘 다 가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인가 성기사 전용 효과로는 30%의 시간 즉 18초의 30%면 약 후반 5.4초정도 버리면 5초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럼 실질적으로는 13초 이동불가의 페널티만 남게된다. 다만 그 결과로 10%의 신성력 회복량 감소 페널티가 있었는데 이 의미가 매우 애매했다.


정신 집중의 시간이 감소한다고 혹은 증가한다고 명시되어있는 다른 선택지와 다르게 후반 30%에 시간에 행동할 수 있다는 단서가 마음에 걸렸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30%감소라고 써놨을 것인데 다만 행동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는 것은 다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란 의미였다. 즉 움직일 수 있을 뿐이지 여전히 채널링 스킬 시전중이란 말로, 다른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람은 진짜 성기사가 아니다. 그는 스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레이피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반푼이에 불과했다. 설사 5초의 시간이 주어진다한들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그 5초가 그에게 과연 이점을 가져다줄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성기사 전용의 선택지를 골라왔던 그람이지만 이 선택지는 도저히 고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사 5초의 추가 시간이 주어져도 스킬 사용이 불가능하다면 그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분명 5초는 긴 시간이다. 그동안 전투를 돌이켜보면 정말 수많은 일이 단 몇 초 사이에 벌어졌다. 그 붉은 도끼를 휘둘러오던 반달모양의 마력이 날아오는 그 장면은 정말 돌이켜 생각할수록 손이 떨리게 무서운 장면이었다. 그 전에 의기양양하고 방패돌격을 날리고 불과 몇 초 뒤에 날라온 그 반격.


남들은 모르지만 우연으로 방패에 신성력이 덮이지 않았다면 거기서 바로 게임오버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불과 몇 초. 몇 초의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스킬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저 효과는 진짜...진짜배기 성기사들에게나 유용한 효과였지, 사실 가짜인 그람에게는 아니었다.


그람은 아쉬웠지만 이번에는 저 선택지를 고르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의 그람에게는 전혀 의미도 없는 스킬이었다. 그람은 정신집중의 시간을 늘려야할 것인가 줄여야할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 아무래도 스킬 숙련도 레벨이 상승할수록 시간은 줄어든다. 1레벨에 비해서 3레벨인 지금은 2초가 줄어서 18초였다. 그렇다는 것은 6레벨에 도달하면 총 시간은 15초였다. 그리고 30% 증가하면 19초정도. 30프로 감소하면 10초 정도였다.


가벼운 명상의 쿨타임은 대강 10분 정도였으니 30프로 감소하면 7분마다 그리고 30프로 증가하면 13분마다 사용이 가능했다. 전투 시에 당장 1초라도 아쉽기 때문에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전에도 생각한 결론처럼, 판테오니아에서 혼자서는 전투를 할 수 없다. 나중에 극도로 레벨이 오른다면 가능할런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독불장군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언제나 동료의 엄호가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그람이 회복할 20초의 시간 정도는 동료들이 벌어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전체 전투시간 통틀어 더 많은 신성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식이 더 효율적으로 보였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확실하게 총 회복되는 신성력의 양이 많았다. 그람은 이 선택은 정신집중의 시간을 30% 늘리고 재사용시간을 30%감소시키는 2번의 선택을 고르면서 마무리했다.


그 선택에는 아무래도 후반에는 더욱 강한 신성력을 뭉탱이로 사용하는 스킬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난사하는 길이 살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이 회복하는 사이에 시간은 누구든 벌어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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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버그?? 21.10.12 46 4 13쪽
69 융통성 21.10.09 51 4 11쪽
68 마스터 +1 21.10.08 57 4 13쪽
67 무적의 치트키 21.10.07 51 4 12쪽
66 성기사의 권리 21.10.06 5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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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넷카마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10.01 56 4 13쪽
63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21.09.30 52 5 13쪽
62 나만 쓰래기야? 21.09.29 54 2 14쪽
61 인내력의 끝 21.09.28 56 4 13쪽
60 앉은뱅이가 서서 걷는다면? 21.09.27 61 4 13쪽
59 도둑은 감옥에... 21.09.25 58 3 14쪽
58 군필... 21.09.24 58 2 14쪽
57 장님 문고리 잡기 21.09.23 5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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