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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님의 서재입니다.

만신전의 성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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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
작품등록일 :
2021.07.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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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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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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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달라도 조직은 다 비슷하다

DUMMY

그람은 자신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서류작업에 여념이 없는 하퍼를 바라보았다. 혼자서 정말 무슨 만화에서 나오는 장면도 아니고 실제로 육성을 끙끙...이런 소리를 내가면서 뭔가 열심히 쓰고 계산하고 있는 것이 저 양반도 어지간히 서류작업을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영원히 이대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람은 헛기침을 하며 ‘나 왔어요~’라고 알렸다. 하퍼가 바로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그람을 맞이했다.


“하퍼님, 어떻게 아침에 크리스님이 하신 일은 경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람의 마음이 급해서일까 막 말이 꼬였다. 그람이 생각할 때 이 일의 성사에는 원정대의 출발 시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빠르게 출발하여 지형을 선점하고 적들의 동선을 파악하여 우리가 유리한 곳, 유리한 시간에 전투를 수행한다. 이건 레이드의 기본적인 요소였다. 장소만 잘 고르면 몬스터가 끼여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일, 레이드에선 비일비재한 일 아닌가.


뭔가 급한 마음이 묻어나는 말투. 그람의 질문에 하퍼는 새벽에 크리스가 와서 전해준 결과를 말해주었다.


“모든 알아낸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추정한 그람님의 예측까지 모든 것을 전하였지만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골치인 몬스터 두 무리가 결국 충돌한다면 인간으로써는 나쁠 것 없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람은 또 멍해졌다. 사실 그도 외부에서 대규모의 지원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가 아닌가. 일정한 지원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지금이 초보구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초보들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다. 당장 집결된 오크의 숫자만 200여 마리라고 하지 않는가. 이 근방에 소환된 유저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이 초보 유저들만 가지고 이 숫자를 해결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람의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일이 심각하게 보인다하더라도 지금은 초보구간이다. 초보구간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질 리는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것은 아마도 게이머로써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처음 초보구간 퀘스트나 사건을 보면 도저히 사실 만레벨로도 과연 해결이 될까 하는 사이즈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유저들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세계관의 절대자들이 나타나 해결해준다. 그리고 주인공인 유저들과 안면을 트는 그런 식으로 상투적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그람은 수없이 해왔다.


‘적어도 끝판왕급의 아군이 나타나서 짠하고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어느 정도급이 와서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무시해?’


그람은 뭔가 생각대로 풀려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지금 상황은 몬스터간의 투쟁이라고 보기에는 좀 양상이 달랐다. 이건 뇌없는 것들의 생각 없는 충돌이 아닌 명확하게 계산되고 의도가 있는, 말하자면 전략 하에 움직이는 전투였다.


“이해할 수 없군요. 이대로 방치하면 저 계획을 주도한 오크부족이 급속도로 강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강해진 전력으로 오크들 간의 전쟁에서도 압도적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있고요. 이 일은 오크 부족들의 통일을 유발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데, 어찌 그렇게 태평하답니까?”


하퍼는 말이 없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때었다가 다시 다물고 망설이는 기색. 그람은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딱 무슨 표정인지 알아차렸다. 회사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본 그 표정.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로 시작되서 ‘나라면’ 으로 시작되는 다짐으로 끝나는 그 패턴. 하지만 그의 경험 상 저렇게 이야기해도 승급하면 그 욕하던 상사들과 전부 같은 패턴을 했다. 조직의 비애. 밑에 깔린 사람들의 울분이랄까. 딱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퍼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만신전. 회사와 같은 일반적인 그룹이 아니라 신앙으로 뭉쳐진 비영리 공산단체(?)였다. 하퍼는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었음에도 끝내 그람이 예상했던 그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크리스님과 상의한 결과 조금 과장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뭐 전적으로 크리스님의 생각입니다만,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다시 중앙에 ‘오크로드’의 탄생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를 하기로 그렇게 의견을 모았습니다. 좀 과장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사건의 보고와 지원요청이라도 ‘오크로드’라는 말에 다들 경악하겠지요. 적어도 ‘오크로드’라는 말이 나온 이상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크리스님은 다시 그렇게 보고를 하러 가셨습니다.”


하퍼의 말에 그람은 여기나 저기나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나 당장 눈앞에서 급하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미루려하고,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행동하게끔 하는 방법을 아니 비법을 그람은 알고 있었다.


‘여기 통신구도 통화녹음이 되나...’


서류로, 녹음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문제와 문제가 유발하는 결과에 대해 나는 분명히 말했지만 니가 무시했다고 노골적으로 기록을 남기려하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것을 염려해 바로 움직이는 시늉이라도 하게 만드는 바로 그 마법의 기술.


그람은 하퍼에게 이 마법의 기술을 어떻게 전수해야할지 고민했다. 아니 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말해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과연 사람 사는 곳은 정말 비슷하다는 감탄을 다시금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통신구로 보고만 하면 묵살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서류로 남기고 그 분석을 첨부하겠다고 하면 마냥 깔아뭉갤 수는 없을 겁니다. 크리스님이 이런 서류작업을 다 떠넘기시고, 본인은 쉽게 말로 보고하러 가셔서 지금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습니다. 허허허”


하긴 사건이 커져서 무언가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책임져야하는 것이 조직의 생리. 당장 천재지변인 지진이나 홍수가 나도 뜬금없이 인간 중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지 않던가. 그 책임지는 자가 신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으로 나만 아니면 되었다.


“그럼 지금 결정된 사항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네요? 당장 시간이 시급한데 답답하군요. 이런 일은 빠를수록 좋은데 말입니다.”


그람이 답답함을 호소하자 하퍼는 그래도 결정된 것은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하퍼의 말로는 중앙에서의 대규모 지원과는 상관없이 어제 밤 논의한 그대로 카릴 남작 영지의 만신전에 파견을 나와있는 성기사가 트리스트로 오기로 했고 오늘 출발한다고 했다.


분명 성기사의 증원은 큰 도움이 된다. 당장 트리스트에는 적어도 한명의 성기사가 상주해야, 마력을 가진 몬스터의 습격으로부터 마을을 지켜낼 수 있다. 물론 그런 마력을 유형화하는 몬스터가 두 마리, 세 마리 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하퍼는 지금까지는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매우 적은 빈도였고, 그런 경우에 목책을 이용해서 버티면서 사제의 조력을 받으면 적어도 막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나 크리스님의 장기인 속박은 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쉽지 않은 기술이지만, 안전한 목책 뒤에서 사용한다면 정말 그렇게 효율적인 기술이 없습니다. 신성력으로 속박된 몬스터는 그 속박 자체로도 타격을 입고, 쉽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유형화하는 몬스터라면 당연히 마력을 폭발시켜 속박을 벗어날 수 있겠지만, 잘 연마된 기술이 아닌 그런 식의 사용은 마력을 많이 소모합니다. 일단 마력을 유형화하는 몬스터의 발을 묶고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크지요.”


‘마력을 폭발시켜?’


그람은 하퍼의 말의 요지 즉 성기사 하나에 사제 하나면 대강 마력을 유형화 할 수 있는 몬스터 두엇이 몰려와도 버틸 수 있다는 것보다는 그 뒤에 들은 그 말이 더 신경 쓰였다. 분명 마력을 폭발시켜서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당연하다는 수식어가 덧붙여져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마력과 신성 능력치가 동일한 가치로 취급된다. 아니 아마도 신성의 가치가 조금 더 높을지도 몰랐다. 신성력을 다루는 그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조금 더 좋았다. 하지만 절대적인 양적 가치로 보아서는 동등한 가치라고 봐도 크게 무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관련 스킬이 없이도 마력을 폭발해서 신성마법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면 당연히 선성력으로 폭발시켜 신성마법 속박을 벗어나거나, 혹은 마법사의 마력을 이용한 속박마법도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성기사라면...’


오늘 하루 느끼는 좌절감이 상당하다. 아까 명상에서 성기사 전용 효과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도 자신이 스킬을 사용해야만 싸울 수 있는 가짜 성기사이기 때문이었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여유시간 따위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람은 과거 낄낄거리며 보던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떠올렸다. 한 영상에서 흑형이 점프로 고속으로 질주하는 스포츠카 위를 뛰어넘는 장면이 나왔을 때 거기 리플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앞으로 흑형들은 인사사고 나면 대쉬기로 ‘안’피한거니까 과실 잡히나요?‘


그는 그 농담이 깊게 와닿았다. 수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스페이드를 누르면 기본적인 회피동작을 할 수 있다. 점프, 대쉬, 등등. 스페이드 바만 한번 누르면 할 수 있었던 동작들을 자신은 하지 못한다. 그람은 그 오크런을 했던 빨간 마력을 날려대던 그 오크 전사를 생각했다.


그 오크 전사는 분명히 뒷통수에 작렬한 자신의 방패돌격의 피해를 앞으로 뛰면서 상쇄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반격까지 가했다. 그 오크 전사가 솔직히 이 세상에서 얼마마한 강자인지 알 길은 없다. 클래스 10레벨에 달하면 뭔가 다른, 급이 달라진다고 우리 한국인 클로즈베타 테스터는 그렇게 힌트를 남겼다.


그 오크 전사는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급이 다르다고 말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5레벨이상 10레벨 미만을 의미했다. 물론 그 차이는 엄청난 차이였다. 당장 성기사 6레벨인 자신과 전사 9레벨을 비교해본다면 클래스 레벨로는 겨우 3레벨 차지만 실제 게임 레벨의 차이는 무려 7+8+9=24, 24레벨에 달했다.


클래스 레벨을 올릴 때마다 캐릭터 레벨에 비례해서 능력치가 증가하는 것은 이미 확인한 터다. 즉 그람이 7레벨로 클래스 레벨을 올리면 적어도 7 이상의 능력치 증가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누적된 능력치는 적어도 24이상.


총 능력치의 종류는 지금 그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7가지. 그 중에 클래스에 따라 오르지 않는 능력치도 있었다. 그럼 4-5종류가 오른다고 가정하면 주 능력치의 하나의 차이는 약 5차이가 벌어진다. 6레벨 성기사인 그람의 근력이 19라면 9레벨 전사의 근력은 24 이상일 확률이 높았다. 25% 이상의 상당한 차이였다.


하지만 신성력을 사용한 스킬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그러한 강자들과 대등하게 싸울 힘을 주었다. 신성력 뿐만이 아닐거다. 미력도 마찬가지였다. 유저들은 경험치를 쌓음으로써 금방 마력 혹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 애초에 유저의 존재 자체가 사기성이었다.


하지만 그 사기의 원천인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면 유저는 아마도 여기 트리스트의 사냥꾼 알렉산더만도 못할 것이다. 물론 특별한 교육을 현대에서 받은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현대의 양궁 챔피언, 펜싱 챔피언...이런 사람들이라면 스킬 없이도 어느 정도 밥값은 할지도 모른다. 당장 자신이 아닌 그 영상 속 흑형이었다면 멋지고 빠르게 백대쉬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람은 책상물림이다. 군대에서 몇 년 간 받은 훈련도 전부 ’총‘을 전제로 한 훈련들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람은 스킬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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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융통성 21.10.09 51 4 11쪽
68 마스터 +1 21.10.08 56 4 13쪽
67 무적의 치트키 21.10.07 51 4 12쪽
66 성기사의 권리 21.10.06 52 4 12쪽
65 영웅의 증거 21.10.02 51 6 14쪽
64 넷카마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 21.10.01 56 4 13쪽
63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21.09.30 52 5 13쪽
62 나만 쓰래기야? 21.09.29 54 2 14쪽
61 인내력의 끝 21.09.28 56 4 13쪽
60 앉은뱅이가 서서 걷는다면? 21.09.27 61 4 13쪽
59 도둑은 감옥에... 21.09.25 58 3 14쪽
58 군필... 21.09.24 58 2 14쪽
57 장님 문고리 잡기 21.09.23 5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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