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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찌모찌 왕모찌

세상이 무너져도 영지는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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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모찌
작품등록일 :
2020.04.11 15:22
최근연재일 :
2020.05.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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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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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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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6화 - 광기(3)

DUMMY

“헉··· 허억···.”

“연서 씨, 같이 가!”

“빨리 오세요!”

“3일이나 걸리는 거리라며, 사람은 3일 동안 달릴 수 없어. 쉬었다 가자.”

“쉬면··· 헉··· 위험해요···.”

“무슨 일인데, 대체? 우리도 상황이 어떤지 알고나 있자.”

“맞아! 송연서 씨가 상황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일행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속 편하게 떠들고 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도··· 말해야 해.’


일행에게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전하긴 해야 했다. 그녀는 앞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얘기했다. 단 하나도 남김없이. 오직 진실만이 모두를 구원하리라 여기며.


“···그게 사실이야?”

“검은 꽃? 지금 그 사람들 그것 때문에 싸운 거였어?”

“세상에··· 그럼 감염된 사람들 이제 다 죽는 거야? 연서 씨도 힘들었겠네···.”

“···네.”


상황을 안 일행 중 누군가가 송연서를 위로했다. 끔찍한 상황을 알고도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던 그녀의 처지에 공감해 준 것이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울컥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쏴아아아.


도주는 쉽지 않았다.

나뭇잎들이 빗줄기를 막아주었지만, 그런데도 꽤 많은 양의 비가 그들을 적셨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안개까지 낀 숲. 발은 푹푹 빠지고 어디서 괴물들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주둔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로서는 알 수 없으니 불안감은 고조되었다.


“아니, 좋은 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인데 정작 상황이···.”

“연서 씨, 운이 안 좋았어.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 중에 감염된 사람이 없었으니.”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 식겁했네. 어후···.”


다행.


이젠 타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 죽음이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시대였다.


그때, 박인재가 물었다.


“그런데··· 연서 씨, 정말 장동규 따라갈 생각 없었던 거지?”

“···네?”

“아니, 그냥 궁금해서.”

“하하··· 박PD 님도··· 연서 씨가 우리 버리고···.”

“이미 전적이 있으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 그렇긴 하지. 하하···.”


분위기가 삽시간에 이상해졌다.

도전 2에서 따로 행동했던 것에 불만을 품은 박인재가 한 말 때문이었다.


“그건··· 진짜 길을 잃어서···.”

“하긴, 숲이 진짜 어지럽긴 해. 그렇지?”

“그, 그렇죠. 연서 씨도 우리랑 떨어질 생각은 없었을 거예요.”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고. 이제 운명 공동체니까.”


광기는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그 광기는 마치 살아있는 듯, 송연서를 괴롭혔다.


****


광기 4일 차.


“쫓아오는 것 같아요!”

“우리를 왜? 미치겠네, 진짜!”


그들을 막아서는 몬스터들도 몬스터들이었지만, 악천후와 더불어 그들을 정말 곤란하게 한 건 주둔지의 추격조였다.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보였다.


잠시 멈춰 추격조를 기다려 얘기를 나눌까 싶었지만, 상대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 멈춰 서는 건 자살 행위였다. 주둔지를 떠나오며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김상구가 칼을 들고 고함을 지르던 모습이었으니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현명한 판단이었다.


“여기··· 누가 불을···.”

“···뭐지?”


모닥불이 피워진 흔적이 있었다.

울창한 나무가 비를 막아주는 장소에, 타다 만 숯이 있었다.


“누가 있던 걸까요?”

“추격조가 설마 여기까지··· 우리보다 먼저?”


소리를 먹는 숲.

이곳에서는 상대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추격조가 자신들을 앞질러 먼저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한참 뒤처져 거리가 벌어져 안심해도 되는 상황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건 추격하는 상대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냥꾼의 입장과 사냥감의 입장은 그 압박감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저··· 박PD 님.”

“왜··· 음?”


아직도 PD라 불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박인재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일행에게 다가갔다.


“이것 좀···.”

“···하.”


모닥불이 있던 자리.

그곳에 누군가 재로 글을 썼다.


- 송연서 씨발년 죽인다.

- 잡히면 죽여버릴 거야

- 나 안 죽는다


송연서는 다른 흔적을 확인하는 중이라, 미처 재로 남긴 글씨는 확인하지 못했다.


슥, 슥.


박인재가 발로 그 글씨를 뭉개며 말했다.


“쉿, 말하지 마.”

“네? 왜요?”

“조용히 있어.”


박인재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금, 돌아가지.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랑 마주치는 건 위험하니까.”


송연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답했다.


“네, 그래요.”


****


광기 5일 차.


“망할 새끼들··· 살벌하게도 쫓아 오네.”


추격조는 집요했다.

박인재가 송연서에게 물었다.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요? 연서 씨 뭐 좀 알아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네?”

“아닙니다.”


쏴아아아···.


주둔지를 떠나온 지 꼬박 이틀이 되었다. 그간 추격조를 맞닥뜨린 적은 없지만, 계속 마주칠 뻔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박인재가 송연서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만하면 꽤 온 것 같은데···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모르겠어요···. 아직도 처음 보는 장소라···. 북쪽으로 조금 더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장난하는 겁니까?”

“···박PD 님?”

“지금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이틀이나 걸어왔는데··· 하··· 아닙니다. 됐어요.”

“······.”


송연서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추워진 날씨와 더불어, 급박한 상황, 변해가는 동료들.


문득, 그녀는 서글퍼졌다.


“······.”

“지금 우는 겁니까?”

“흑··· 흐윽···.”

“하··· 미치겠네.”


그녀는 일행을 챙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현재 구성원 중 가장 강한 건 그녀였다. 위험한 적이 나타났을 때, 늘 그녀가 앞장섰다. 그런데도 자꾸만 뭔가 어긋나고 있었다. 그녀의 노력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다.


박인재가 미안했는지,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흑··· 흐윽···.”

“다들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원··· 기다리고 있어 봐요. 먹을 게 좀 있나 찾아볼게요.”

“흑··· 박, 박PD 님···.”

“네?”

“···고마워요.”

“동료끼리 뭘···. 여기 있어요. 잠시 주변 좀 둘러보고 올 테니까.”


박인재는 그녀의 곁에 시바를 남기고 일행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어느 정도 벗어났다 싶었을 때, 그의 일행에게 말했다.


“버립시다.”

“···네?”

“누, 누구를요?”

“송연서 씨를?”

“네,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박인재의 말에 모두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지금 박인재의 말은 송연서를 두고 도망치자는 말이었다.


“박PD 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연서 씨를 버리자는 말씀을···.”


박인재는 함께 재로 적힌 글씨를 확인한 동료와 눈빛을 교환한 후 얘기를 꺼냈다. 전날에 꺼진 모닥불가에서 보았던 글귀를 얘기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우리를 쫓는 게 아니라 연서 씨를 쫓는 거군요.”

“이런 망할··· 괜히 지레 겁먹어서···.”

“왜 쫓는 걸까요? 이유가 뭐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이대로 연서 씨만 두고 떠나면 우리는 문제 될 게 없다는 거죠.”

“하지만···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우리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남으실래요?”


송연서와 같이 남겠느냐는 박인재의 싸늘한 말에 말을 꺼낸 동료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계속 북쪽에 뭔가 있다고 하니까 북쪽으로 갑시다.”

“송연서 씨랑 마주치면요?”

“그럼, 똑같이 말하면 되지.”

“뭐라고···.”

“숲에서 길을 잃었다고, 여기는 길을 잃기 쉬운 곳이니까. 아니면 추격조랑 마주쳐서 도망쳤다고 해도 되고.”

“······.”


****


쏴아아아···.


빗소리가 밤늦도록 멎지 않았다.


“···늦네.”


끼이잉···.


시바가 송연서의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그녀는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도록, 그녀에게 되돌아오는 이는 없었다.


“나··· 버림받았구나···.”


헥헥···.


100명이나 되는 사람에 둘러싸였던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오직, 혀를 내밀고 입김을 내뿜고 있는 시바만 그녀의 곁에 남았다.


“흑··· 흐윽···.”


끼잉···.


“나쁜 새끼들··· 흑···.”


끼잉··· 끼이잉···.


“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다들 왜 그러는 거야···.”


그녀의 잘못은 무엇일까.

검은 꽃을 가지고 주둔지에 합류한 것?

혹은, 그것을 모두에게 말하지 않은 것?


이것들은 잘못이 아니다.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옷은, 그 끝까지 어긋나버린다.


그녀가 이렇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녀가 그곳에 있던 것.


모든 상황은 그녀가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검은 꽃은 싸움을 부추겼을 것이고 그것을 건네지 않았더라도 주둔지는 알아서 무너졌을 것이다. 이것이 관음자들이 도전 3을 가혹하다고 하는 이유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게 도전 3이었다.


“···시바야, 가도 돼.”


끼잉···.


“누나 버리고 가···. 누나 혼자서 알아서 해볼게.”


말 못 하는 짐승이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는 걸까. 계속 낑낑거리며 그녀의 발을 긁었다.


“···가자고?”


끼잉···.


“고마워··· 가자, 누나 힘 내볼게. 씩씩하게 철 가면 아저씨도 찾고··· 또···.”


철 가면이 자신을 받아 줄까.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그의 영지를 떠나올 때와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지금 수많은 적을 두고 있었다.


산 자의 온기를 느끼고 쫓아오는 몬스터, 그보다 더 두려운 사람들. 철 가면이 특별한 사람이지만, 그가 그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그가 그녀를 위해 나설까.


그녀는 그저 북쪽으로 걸었다.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너무 굶었고, 너무 마시지 못했다.


갈증과 허귀가 아귀처럼 내장을 헤집었다.


“윽···.”


쏴아아아.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비는 계속 내렸다. 이대로 죽는 것일까.


그때, 그 어떤 죽음의 선고보다 무서운 외침이 들렸다.


“찾았다! 저깄다!”

“송연서다! 저년 맞아!”


송연서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무기를 들고 이곳을 보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모두 붉게 충혈된 눈으로 웃고 있었다.

그녀가 마주한 광기의 실체였다.


월! 월!


경직된 그녀의 몸을 그래도 달릴 수 있게 해준 건 시바의 경고였다.


쒜에에엑!


팍!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그녀를 지나쳐 나무에 박혔다.


“쏘지 마! 붙잡아라!”

“몰아! 산 채로 붙잡아야 해!”


그녀는 숨을 헐떡이면서 내달렸다.


“허억··· 헉···.”


월!


흐릿해가는 그녀의 시야.

시야를 뿌옇게 만든 것은 눈물인지, 땀인지, 그도 아니면 허기인지.


하지만, 아직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금 지나친 나무에 새겨진 칼자국.


그건 분명 철 가면의 표식이었다.

낯 익은 길이 펼쳐졌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철 가면! 제발 도와줘요!”


숲은 침묵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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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 정말 중요한 것(3) +5 20.05.03 3,583 15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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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 검은 꽃(4) +16 20.04.30 3,919 187 13쪽
23 23화 - 검은 꽃(3) +9 20.04.30 3,740 160 17쪽
22 22화 - 검은 꽃(2) +12 20.04.29 4,078 156 15쪽
21 21화 - 검은 꽃(1) +25 20.04.28 4,255 173 15쪽
20 20화 - 돈키호테와 산초 +21 20.04.28 4,233 17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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