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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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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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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
글자수 :
809,561

작성
20.05.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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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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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숙원 홍씨 8. 생일

DUMMY

숙원 홍씨 8. 생일


거실 유리창이 하얀 도화지 같았다. 스키 타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온통 하얀 세상뿐이었다.

원빈은 식탁에 앉아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었다. 태희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고 소이는 방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늬들 이거 안 먹어? 나 다 먹는다! 서봄 간호하려면 잘 먹어야해!”

원빈은 닭다리를 맛있게 먹었다. 소이는 너무하다 싶어 원빈에게 눈을 흘겼다.

여름이 방에서 나오자 소이가 쪼르륵 다가갔다.

“열 안 내렸어? 어떡해...”

벌컥 현관문이 열리며 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들어왔다.

“119 못 들어온대! 차도 못 나간대! 택시도 안 들어온대! 말이 돼? 한 시간 폭설에 차량 마비가!”

준은 너무도 초조해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소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내 뚝뚝 떨어졌다.

“봄이 병원 싫어해도 아까 데려갈걸...어떡해...어떡해...”

여름은 이마에 손을 대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태희가 여름을 보았다.

원빈은 입안에 든 음식물을 씹으며 피자 한쪽을 손에 들었다.

“걱정할 거 없어! 서봄, 내일이면 벌떡 일어나! 서봄, 바위를 씹어 먹어도 소화 시킬 애야, 쟬 몰라? 어렸을 때 병원에서 죽는다고 했는데도, 멀쩡히 살아난 애야.”

준의 눈이 사나워졌다.

원빈은 계속 나불거렸다.

“병원도 못 고치는 걸 스스로 치유하니 얼마나 강해! 죽음보다 강한 애야!”

준이 폭발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이 자식아! 아파 다 죽어가는 애한테 농담이 나와?”

원빈이 입을 씰룩이며 말을 하려는데 태희가 빨랐다.

“좀 오버다!”

태희가 일어나 차분하게 말했다.

“서봄, 격하게 놀아서 몸살 난 거야!”

태희가 여름과 준 소이를 번갈아 보다가 여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몸살을 왜 임종직전까지 몰고 가? 가도 너무 갔잖아. 서봄 어렸을 때 크게 아팠던 거 아는데, 그때와 지금은 달라, 몸살이야, 신생아도 밤새 끙끙 앓고 다음 날 병원 가도 멀쩡해!”

태희가 가만히 보고만 있는 여름에게 덧붙였다.

“서봄 열난다며?”

여름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준아, 냉동실에서 얼음 꺼내서 열 좀 내리게 해, 난 내려가서 상비약 있나 알아보고 올게!”


여름은 프런트로 내려가 사정했지만 폭설로 인해 차가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고 했다. 일기예보에도 눈 소식은 없었다며 프런트 직원도 난감해했다.

펑펑 쏟아지던 눈을 보고 좋아하던 사람들의 눈에도 걱정스러움이 찾아왔다. 스키를 타는 사람도 없었고 모두가 로비에 모여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은 프런트 직원에게 받은 해열제와 몸살 약을 들고 서둘러 가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유리창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로비 중앙의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 앉았다. 여름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드라마로 옮겨갔다. 지난 회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며 서로 떠들어댔다. <대왕 문종 6회>가 방송을 시작했다. ‘연출 서진호’ ‘극본 서필호’ 가 자막으로 나왔다.

여름은 화면을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 하려고 했지만 망설여졌다. 통화 버튼이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웠지만 여름에겐 우주만큼 멀게 느껴졌다. 여름은 결국 휴대폰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봄에게로 갔다.


같은 시각 서울에서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원도의 폭설만큼은 아니지만 갑작스런 눈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묶이고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광화문 일대에 멈춰 있는 차들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사람들, 길이 미끄러워 오토바이를 끌고 가는 사람,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경복궁을 등지고 사진을 찍는 연인들도 있었다.

눈이 쉴 새 없이 쏟아지자 사람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세종대왕만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경복궁의 불빛이 더욱 영롱해졌다. 경복궁으로 떨어지는 눈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진호는 주방에 서서 물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강원도에 폭설이 내리는 장면이 보였다.


앵커: 강원도 산간지역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고 있습니다. 한 시간 만에 차량 이 전면 통제됐습니다. 강풍까지 더해져 곳곳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 다.


진호가 뉴스를 보고 있는데 화면이 바뀌었다. 필호가 와서 채널을 돌렸다. <대왕 문종 6회>가 시작됐다. 필호는 소파에 기대앉아 손에 든 과자를 먹었다.

진호는 봄과 여름이 걱정스러웠다. 진호는 거실로 나와 창밖의 눈을 보는 척하면서 필호의 눈치를 살폈다. 진호는 무심하게 던지듯이 물었다.

“스키장에도 눈 많이 온 것 같은데, 애들한테 연락은 왔어?”

필호가 힐끗 보고 약 올리듯 말했다.

“당연히 왔지, 귀찮아 죽겠어, 봄이가 십분 간격으로 문자에 전화에, 스키장 사진에, 동영상에, 따르릉 따르릉 딩동!딩동! 카톡!카톡!카톡!”

필호는 봄이 흉내를 냈다.

“삼촌! 눈싸움 할 건데 눈을 동그랗게 말아? 세모로 말아? 삼촌! 리프트에서 내릴 때 오른발부터 내려? 왼발부터 내려? 삼촌 코코아 마시고 싶은데, 주문할 때 핫초코 달라고 해? 코코아 달라고 해? 이런 거까지 물어봐! 어려서부터 키웠더니...”

필호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과하게 눈을 크게 뜨고 진호를 봤다.

“왜? 형한텐 전화 안 왔어? 문자도? 톡도?...통화 시켜줘?”

진호는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헛기침을 했다.

“됐어. 내일 일찍 오라고 해.”

진호는 가려다가 필호를 봤다.

“9회 대본.”

필호가 진호를 봤다.

“나쁘지 않다.”

진호는 무뚝뚝하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필호는 눈을 흘기고는 혼잣말했다.

“나쁘지 않아? 아주 좋겠지! 누가 썼는데, 바로 나, 내가 썼거든...그럼 그렇지, 봄이가 나한테만 연락 안한 줄 알고 삐질 뻔했네....그런데...얘가 전화 안할 애가 아닌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앤데...”

필호는 봄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번엔 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름아, 봄이 왜 연락이 안돼? 아, 잔다고? 그래 내일 보자!”

필호는 대수롭지 않게 창밖을 바라봤다.

“무슨 눈이 이렇게 와...”

필호는 왠지 모를 불안함에 텔레비전으로 시선이 갔다. 문종이 보였다.

“봄이가 천지가 개벽해도 ‘대왕 문종’ 안보고 잘 애가 아닌데...”


봄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앓고 있었다. 어찌나 힘겨워하는지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얕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름은 침대 맡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봄의 땀을 닦아주었다. 대야에 담긴 얼음물에 수건을 담갔다 다시 짜서 이마에 얹었다. 여름이 걱정스레 봄을 보다가 서책에 시선이 갔다. 여름은 서책을 들고 보다가 무심하게 봄의 머리맡에 다시 놓아두었다.

봄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괴로워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초가집이 있었다. 단종의 유배지였다.

하늘은 청명했고 초록으로 물든 푸르른 정경은 아름다웠다. 봄과 여름 준 원빈 태희 소이가 함께 걸어왔다. 작은 들꽃이 피어있었다. 봄은 쪼르륵 달려가 앉아 들꽃을 보고는 웃으며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같이 걸어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봄은 혹시나 싶어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발밑에 뭔가가 걸렸다. 봄이 내려다보니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구의 남자 시신이 있었다.

봄이 기겁해서 물러섰다. 봄은 초가집을 등지고 겁에 질려 두리번거렸다.

여름아...준아...다들 어디 간 거야?

무성한 초록 잎들은 자취를 감추고 앙상한 겨울나무만이 있었다. 맑은 하늘 역시 사라지고 잿빛 하늘로 뒤덮였다.

태희가 봄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봄이 안도하며 보고 있는데 자객이 태희의 몸을 칼로 베었다. 태희는 피를 토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봄은 너무 놀라 그저 멍하니 있었다. 다른 쪽에서 소이가 “봄아!” 소리치며 달려왔다. 봄이 소이를 보는 순간 또 다른 자객이 소이를 칼로 벴다. 소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봄이를 눈에 담은 채 죽었다.

봄은 충격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었다. 준이 활짝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봄은 오면 안 된다고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봄이 다가가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원빈이 걸어왔다. 봄이 앞으로는 여름이 걸어오고 있었다. 봄은 여름을 향해 외치고 또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원빈이 자객의 칼에 맞고 쓰러졌다.

봄은 준과 여름을 번갈아 보며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쳤다.


봄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안돼...안돼...” 급기야 눈물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벌벌 떨렸다. 준은 두려움에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보고만 있었다. 소이는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태희와 원빈도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여름은 다급히 봄을 품에 안았다.

“봄아...봄아...왜 그래...”

봄은 고통스러워했다.

“...여....여름아...오...오지마...주...준아..,여..여름아...오...오지마...아...안돼....안돼...”

봄은 충격에 숨을 삼킨 채 뱉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이 갑자기 봄의 몸을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서봄! 서봄!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소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준의 호흡이 가빠졌다. 여름은 멈추지 않고 봄이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라고 외쳐댔다.

태희가 봄의 곁으로 왔고 원빈이 봄의 옆으로 와서 손을 톡톡 쳤다.

이때 봄이 벌떡 일어나 앉아 눈을 떴다. 그 바람에 원빈이 놀라 주저앉았다. 봄이 참았던 숨을 거칠게 토해냈다. 봄이 겁에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봄이 여름과 준, 원빈, 태희, 소이를 보았다. 그리고는 통곡하듯 울고 또 울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모두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텅 빈 거실 텔레비전에선 문종이 숨을 거두는 마지막 장면이 나왔다. 슬피 우는 단종의 얼굴이 보이고 봄이의 울음소리는 거실을 가득 채웠다.

창 너머는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눈 덮인 스키장에 아침이 찾아왔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고 쾌청했다. 봄이 눈을 떴다. 봄이 역시 맑은 하늘처럼 언제 아팠냐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두통도 사라지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개운함에 기분이 좋아져 한껏 기지개를 폈다. 머리 위에 얹어진 수건이 톡 떨어졌다. 봄은 수건을 보고 물이 담긴 대야, 침대 맡에 앉아 잠이 든 여름을 보고서야 밤새 아팠다는 걸 짐작했다. 봄은 침대 위의 이불을 끌어내려 여름에게 덮어줬다. 지치고 힘들어 보여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봄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쌍둥이 오빠 여름을 바라보았다.

봄이 나가려는데 머리맡에 놓인 서책이 그녀를 붙잡았다. 봄은 서책을 들어 잠시 보다가 가방에 넣었다. 거실에 나가 식탁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소이 곁으로 갔다. 봄은 소이에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식탁 위에는 물에 불린 미역이 있었다. 봄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준은 소파에 앉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자는 얼굴에서도 근심이 느껴졌다. 봄은 담요를 덮어 주고는 준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토닥여줬다. 원빈은 침대에 편히 누워 복근을 손으로 문지르며 자고 있었다. 봄은 웃으며 방문을 닫았다. 태희가 주방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봄이 미안하고 고맙고 애틋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순간 태희가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오버하지 마! 오늘 갈 수는 있겠냐?”

봄은 창밖의 하얀 세상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뒤 현관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봄이 후다닥 뛰어 들어와 소리쳤다.

“기상! 기상! 기상!”

준이 놀라 벌떡 일어섰다.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봄을 보고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다시 앉았다. 봄은 열린 방문을 쿵쿵 두드리며 여름을 보고 “기상! 기상!” 을 외쳤다. 여름은 그런 봄을 보며 안도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봄이 원빈의 방문을 쿵쿵 두드렸다. 원빈이 얼결에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소이는 봄에게 쪼르륵 달려와 안겼다.

원빈이 방에서 나와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해대며 말했다.

“내가 뭐랬냐? 쟤 벌떡 일어난댔잖아! 죽음보다 강한 애야!”

여름은 밤새 가슴 졸였던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서봄! 아프면 아프다고.”

여름이 말을 잇기도 전에 봄이 소리치듯 말했다.

“큰일 났어, 백년 만에 폭설이 와서 차가 없대! 우리, 엄마 제사에 못 가게 생겼다고!”

여름이 놀라 잰걸음으로 가서 밖을 봤다. 눈이 많이 쌓여 제설작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과 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민혁은 베란다에서 밤새 잠을 설쳐 벌게진 눈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목 뒤를 주무르며 오늘은 제대로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재열이 휴대폰을 들고 민혁에게 왔다. 민혁은 이재열을 힐끗 봤다.

“미친 서봄 때문에 열 받아 잠 한숨 못 잤어.”

“날씨도 미쳤어, 밤새 백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대. 제설작업 안돼서 오늘은 서울 못가. 넌 차라리 안 가는 게 좋을 거야!”

이재열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민혁은 힐끔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터넷 검색 순위 1위 <재벌 3세의 취향> 곰돌이 수면잠옷을 입은 봄이의 모습이 보였다. 기사에는 재벌 3세가 곰돌이 수면잠옷에게 사랑한다고 애걸복걸하다 망신을 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민혁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검색 순위 2위 <곰돌이 수면잠옷> 과연 그 수면잠옷은 어디에서 파는가! 수면잠옷을 사랑하는 재벌 3세 어쩌고 하는 조롱 섞인 기사들이 도배를 했다. 검색 순위 3위 <한신 그룹>....

민혁은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재열이 황당해했다.

“야! 그거 내꺼야!”

민혁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망신 망신 개망신...이판사판이다. 그래, 그래, 오늘 날 잡자, 미친 서봄 잡자.”

이재열은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줍다가 버스에 짐을 넣고 있는 준과 여름을 보았다.

“쟤들은 가는 거야? 지금 도로 상황 안 좋은데?”

민혁은 힐끗 봤지만 봄에 대한 분노로 다른 건 관심이 없었다.

“놔둬라 살기 싫은가 부지, 저것들 제멋대로인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난 미친 서봄만 잡으면 돼!”

민혁은 잠시 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저것들 가면 서봄도 가는 거잖아, 누구 맘대로!”

민혁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딱 멈춰! 가기만 해! 야아!!!”


여름과 준은 제설차의 작업 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다. 여름과 준이 차를 알아보러 뛰어다니다 운이 좋게도 서울로 가는 스키장 버스를 찾아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운전기사가 앉아 있고 봄이 올라와서는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저씨 너무 감사합니다. 이 차 딱 한 대만 나간다면서요, 오늘 저희 엄마 기일이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우리 아버지 기일이라 가는 거야, 서둘러, 오래 걸릴 거야!”

봄이 빵끗 웃으며 맨 앞 오른쪽 자리 창가에 앉았다. 원빈이 버스에 타서는 봄을 확 잡아 밀어내고는 그 자리를 차지했다. 봄이 벌떡 일어났다.

“야, 나원빈! 그 자리 내 자리야!”

“너 간호하느라 나 다크서클 내려온 거 안 보이냐? 양심이 좀 있어봐라!”

소이가 버스에 올라타 맨 앞 왼쪽 통로 자리에 앉았다. 봄과 원빈은 서로 붙어 앉아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위해 밀어대고 있었다.

태희가 올라타 봄의 뒤쪽 세 번째 창가에 앉았다.

여름이 버스에 올라와 봄을 서늘히 보며 말했다.

“서울 가서 병원 가!”

여름이 가려는데 봄이 불렀다.

“여름아!”

여름은 듣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조용히 해!”

“생일 축하해!”

여름은 대꾸도 않고 맨 뒤에서 두 번째 왼쪽 창가에 앉았다.

준이 미소를 지으며 봄이 앞에 서 있었다. 봄이 빙그레 웃었다.

“생일 축하해 봄아!”

“축하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봄은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을 내밀었다. 준이 양손을 봄의 손에 올렸다.

“마마, 선물은 이 마음이옵니다.”

“흥! 아니다! 선물은 가격이다! 이 서운함을 잊지 않으마!”

봄이 삐진 척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원빈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원빈이 봄의 얼굴을 밀어버렸다. 준이 원빈의 머리를 툭 쳤다. 봄은 몸으로 있는 힘껏 원빈을 밀었고 다시 자리싸움이 시작됐다.

준은 사랑 가득한 눈으로 봄을 바라봤고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태희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들어가 맨 뒤 가운데에 앉았다.

여름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준은 가방에서 목걸이 케이스를 꺼냈다. 목걸이를 꺼내 가운데 손가락에 걸고 봄이의 뒷모습을 봤다. 노오란 해와 별이 햇살에 반짝였다. 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서울 가자마자 줄게, 내 마음!”

버스가 출발했다.

노오란 별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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