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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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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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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09,561

작성
20.05.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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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숙원 홍씨 5. 단종의 일기장

DUMMY

숙원 홍씨 5. 단종의 일기장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에 초가집 한 채가 우두커니 있었다. 사람의 흔적은커녕 지도에도 나와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산중의 초가집은 쓸쓸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필호와 여름 준이 태희가 그곳으로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봄은 두통 때문에 약을 가방에서 꺼냈다. 소이가 생수병을 들고 서 있었다. 소이는 봄의 이마를 짚어보고 걱정스레 바라봤다.

“열은 없는데, 또 머리 아파? 오는 내내 자면서 식은땀 많이 흘렸어.”

“나 만성 두통 있잖아! 땀은 더워서 흘린 거고,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냥 잔거야.”

봄은 괜찮다는 말로 소이를 안심시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올 때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삼촌 따라 일곱 살 때 처음 왔었는데...”

봄은 7살에 처음으로 이곳에 왔고 이후로도 삼촌을 따라서 종종 오곤 했었다. 올 때마다 슬프면서도 좋았고 슬프면서도 반가웠다. 무엇이 그리 반가웠는지 봄은 알지 못했다. 봄은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소이는 서둘러 생수 병을 따서 봄에게 내밀었다.

“약 먼저 먹어 봄아!”

봄이 약을 먹는 사이에 소이는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봄아, 두통이 좀 가라앉으면 국화차 마셔, 국화차가 두통에 좋다고 해서 내가 끓여 왔어. 생일 때면 늘 아팠잖아. 시금치도 사 왔어, 두통에 좋대, 스키장 가서 무쳐 줄게 밥 먹어! 내일은 생일 미역국 맛있게 끓여줄게, 완도에서 올라온 미역도 가져왔어!”

봄은 소이가 이럴 때면 코끝이 시큰해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같았다.

“봄아.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해. 음식이 가장 좋은 치료약이야. 알지?”

봄은 약이 목에 걸린 것 같아 물을 마시려는데 슬그머니 다가온 원빈이 봄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봄은 물을 뱉어내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

소이는 놀라 봄이의 등을 쓸어주고 머리를 만져줬다.

“아우 야아~봄이 머리 아프단 말야!”

원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얄밉게 말했다.

“서봄, 왕태희한테 전달이다, 속도 파워 그대로!”

“저걸 그냥!”

봄은 잽싸게 도망가는 원빈을 쫓아가려 했지만 머리가 아파서 관두기로 했다. 그제야 봄은 삼촌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초가집으로 들어가 있는 걸 알았다. 봄은 마음이 급했다.

“넌 안 들어갈 거지?”

소이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이는 고등학생 때 봄이와 함께 이곳에 왔다가 필호가 하는 행동에 충격을 받아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난 단종이 돌아가신 것보다 삼촌이 더 무서워!”


초가집은 방 한 칸에 부엌이 전부였다. 방 안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주는 고고함이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오면 앉은뱅이책상과 오른쪽에 또 다른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창문으로 사용했을 것 같은 작은 문이 마당을 향해 있었다. 앉아서도 문을 열 수 있을 만큼 낮았고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는 컸다. 작은 문 바로 옆에는 밧줄이 걸려 있었고, 작은 문이 마주 보이는 벽에 문종의 어진이 걸려 있었다.

여름과 준, 태희는 넋이 나간 듯 필호를 보고 있었다.

필호는 열린 작은 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힘껏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필호는 목에서 손을 떼고 세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앉아 계시다가,”

필호는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필호는 밧줄을 가리키다가 손끝이 닿으려하자 불에 덴 듯 손을 확 잡아뗐다.

“이 밧줄이 목에 묶인 채...그러니까 뒤에서 마당에서 밧줄을 잡아당긴 거야.”

필호는 다시 자신의 목을 사정없이 조르기 시작했다. 저러다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필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필호는 양손으로 있는 힘껏 목을 조르자 몸이 점점 뒤로 젖혀져 얼굴이 반쯤 마당 쪽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한손은 그대로 목을 조르고 한쪽 팔을 뻗어 문종의 어진을 보며 아...아바아바...컥컥컥 컥 아바아바...팔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필호는 혀를 길게 빼고는 상체가 반쯤 문밖으로 나가게 누워 죽은 연기를 했다.

여름과 준, 태희는 미동도 없이 그저 보고만 있었다.

필호가 몸을 일으켜 앉고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린 단종께서 돌아가셨다...”

필호가 꺼이꺼이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비통해하다 갑자기 멈추고는 벌떡 일어났다. 문종의 어진을 보며 복받치는 슬픔을 참아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냐, 이 얼마나 참담한 비극이냐, 부친의 용안을 보면서 죽어가다니...아, 아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 아비의 심정...”

필호는 감정을 누르고 가져온 골동품함을 들었다. 필호는 문종의 어진을 한 번 보고나서 골동품함의 뚜껑을 열었다.

필호는 여름과 준 태희를 둘러보고 서책을 보았다.

“단종의 일기장이다.”

그제야 여름과 준 태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싹 다가가 서책을 보았다.

“단종의 마지막을 지켜본 내관이 일기장을 간직하고, 집안 대대로 가보로 내려 온거다, 그러다 내 손에까지 들어왔고.”

필호가 서책을 넘기자 여름과 준 태희는 기대감에 서둘러 얼굴을 디밀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 기대감은 사라지고 실망감이 떠올랐다. 서책은 빈 종이였다.

태희는 어이없어하며 책을 넘겨봤다. 역시나 빈 종이였다.

“단종 일기라는 증거가 어딨어? 아무것도 안 써 있잖아. 그냥 낡은 종이인데.”

이때 조금 전에 들어와 보고 있던 봄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오래 돼서 글씨가 지워졌대, 수백 년이 지난 거잖아!”

태희는 헛웃음이 나왔다.

“고려 신라 때부터 내려온 건.”

여름이 태희를 툭 치며 도리질했다. 태희는 필호를 힐끗 보고는 입을 닫았다.

봄이 서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필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말을 멈추고 필호가 여름을 보았다.

“여름이 너는 서운하겠지만 이해해라.”

필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중대발표 하듯 이어갔다.

“이 일기장을 우리 봄이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정말?”

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봄이 저도 모르게 서책에 손을 내밀다 멈칫했다. 삼촌을 믿을 수 없었다. 서책을 7살 때 생일선물로 줬다가 다시 빼앗아 갔다. 이후로도 매번 준다고 하고는 그런 말 한적 없다고 발뺌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필호를 못 믿겠다는 듯이 봤다. 필호는 진지하게 봄이 앞으로 서책을 내밀었다. 필호는 평소와는 달랐다. 봄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일기장인데 막상 받으려니 머뭇거려졌다.

“이 일기장, 삼촌 보물이잖아! 이 귀한 걸 내가 받아도 돼? 내가 잘 지킬 수 있을까?”

여름과 준은 그저 멍하게 보고 있고 태희는 노골적으로 어이없어함을 드러냈다.

“이제 봄이 네꺼다.”

서책이 필호의 손에서 봄의 손으로 넘어왔다. 봄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작지만 한없이 무거운 서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꺼...”


여름과 준 태희는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아직도 멍한 얼굴로 초가집을 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셀카를 찍어대는 원빈의 모습이 보였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집의 열린 문 사이로 서책을 안고 문종의 어진을 보는 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태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작가들이 원래 자기만의 세상이 강하다지만, 이 집 세트잖아, 촬영 장소로 정해놓고 너무 몰입하다 저렇게 되신 거야? EQ만 높은 사람 너무 피곤해!”

태희가 봄을 힐끗 보며 덧붙였다.

“EQ만 있는 애도.”

여름은 초가집의 벽면을 만져보고 손끝에 묻은 흙을 문질러봤다. 황토색 흙의 느낌이 참으로 오래된 집 같았다.

“단종 마지막 촬영지로 너무 좋지? 진짜 오래된 집 같아.”

“그러게, 주변 경관도 좋으면서 왠지 애잔하고...”

준은 말을 하다말고 열린 문으로 봄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종의 어진에 시선이 갔다.

“문종이 잘 생기긴 했다, 남자인 내가 봐도.”

태희가 말을 이었다.

“중국 사신들도 인정한 외모라잖아. 아름다운 세자.”

여름이 문종의 어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면 문종은 살았을 때 다 가졌어. 성군인 부친, 인자한 모친, 왕세자로 인정받고, 학자들도 인정한 학식에, 훌륭한 인품에, 무예도 뛰어났고, 체격도 좋았고,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안타깝다. 오래 사셨다면 성군이 되셨을 텐데.”

여름은 집 뒤쪽을 보고 싶어 걸었다.

준이 여름을 따라 걸었다.

“성군이 될 자질이 있으니까 일찍 돌아가신 거지, 원칙주의자에 철저하니까, 에너지를 올인한 거지.”

여름이 준이를 봤다. 준의 말은 계속 됐다.

“문종은 잘난 부모에 훌륭한 인품에 최고의 학식에 잘생긴 외모, 플러스, 충신인 동생들까지 가졌었잖아. 문종이 죽는 그 순간까지는 수양도 역심을 품지 않았어.”

준은 잠시 멈췄다 다시 말을 이었다.

“혼자 사랑을 독차지하고, 너무 많은 걸 가져서 비극이 왔는지도 몰라.”

태희가 말했다.

“조선 금수저한테 질투하는 걸로 들린다. 문종도 못 가진 거 있어!”

준이 태희를 보고 있는데 여름이 대답했다.

“여복이 없지.”

태희가 이어갔다.

“두 명의 세자빈이 폐서인되고, 세 번째 세자빈이 단종을 낳은 후 죽고, 그 이후로 없어. 어떤 여자도.”

준이 골똘히 생각했다.

“나 이거 진짜 궁금했는데, 왜 문종은 다시 세자빈을 들이지 않았을까? 다시 맞은 후궁도 없었고, 한창 땐데, 드라마에서는 수양대군을 주인공으로 하느라 문종이 늘 유약하게 나왔지만, 실제로 문종은 강했어, 세자 때는 아프지도 않았고. 왜 없지?”

준은 진짜 궁금해졌다.

“문종 뿐 아니라 수양대군도 여자관계가 깨끗해. 태종 이방원과 세종대왕의 핏줄인데.”

태희의 눈이 사나워졌다.

“조부인 태종 이방원은 부인이 10명에 자식이 29명이고 부친인 세종대왕은 부인이 6명에 자식이 22명이었어. 이게 정상이냐? 여자 밝히고 자식을 많이 나아서 그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생긴 거야...이 자식은 머리에 뭐가 든 거야. 문종이 정상이지!”

준은 태희의 말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왜 문종은 다시 세자빈을 들이지 않았을까? 왜? 여자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어. 왜지?”

여름은 흥분해 있는 태희를 힐끗 보고 진지한 준에게 던지듯이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봐!”

여름은 준을 지나쳤다. 준이 웃으며 이야길 마무리했다.

“오케이, 가서 물어볼게.”

준이 여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덧붙였다.

“같이 가자!”

태희가 못마땅하게 여름과 준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두 사람이 초가집 뒤쪽으로 사라졌다. 태희는 그들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봄은 서책을 들고 문종의 어진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봄은 서책에 시선을 두고 조심스레 첫 장을 넘겼다. 가슴이 아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금세 눈물이 차올라 뚝뚝 떨어졌다. 봄은 그런 자신이 당황스러웠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사무치는 슬픔이 한없이 밀려왔다.

준이 들어와 울고 있는 봄을 보고 놀랐다.

“봄아, 왜 그래?”

봄은 시선을 떨군 채 고개를 저었다. 봄의 눈물이 서책의 빈 종이에 “뚝” 떨어졌다. 준은 봄의 손에 들린 서책을 닫았다. 준은 봄을 바로보고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리 봄이가 천재라 그래, 여백을 보고 그 슬픔과 고통 애환을 읽어내니까...”

봄이의 눈이 눈물로 반짝였다. 봄은 여전히 서책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준은 봄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준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봄아, 눈 감아봐.”

그제야 봄은 준을 봤다.

준은 서책을 힐끔 보며 말했다.

“그거보다 더 좋은 값진 선물 줄게!”

“이거보다 더 값진 게 세상에 있긴 해?”

준은 봄의 뒤로 가서 목걸이 케이스를 꺼냈다. 고백을 하려고 하니 긴장이 돼서 입이 바싹바싹 타들어갔고 가슴이 뛰었다. 목걸이 케이스를 열려는데 문종의 어진이 눈에 들어왔다. 준은 주변을 살펴보고는 이곳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케이스를 주머니에 넣었다.

봄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준을 봤다.

“선물은?”

준이 빈 손을 내밀었다. 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밉지 않게 흘겼다.

이때 원빈이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왔다. 봄은 원빈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어 아까 한 대 맞은 분풀이를 하려고 했지만 문종의 어진을 보고는 참기로 했다. 봄은 서책을 꼭 끌어안았다.

원빈은 준에게 휴대폰을 던졌다.

“SNS 올릴 거니까 잘 찍어봐! 자연스런 컨셉이야!”

원빈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가 일어서고. 벽에 걸린 밧줄을 목에 두르고 작은 문턱에 걸터앉아 문종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는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밧줄 끈이 문 밖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다 찍었어? 연기 연습 중인 것처럼...”

원빈이 몸을 일으키고 보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빈은 궁시렁거리며 밧줄을 너무도 당연하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가방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텅 빈 방에 문종의 어진이 홀로 있었다.


봄이 일행이 탄 차가 스키장 콘도 입구에 도착했다. 봄과 여름 준 원빈 태희 소이는 밖으로 나와 신나게 스키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연말이어서인지 스키장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봄이와 여름, 준, 원빈, 소이 태희까지도 그 분위기에 휩싸였다. 여름과 준이 차에서 가방과 스키 장비를 내리는 동안에도 원빈은 밧줄을 꺼내들고 셀카를 찍고 있었다.

필호는 차에 앉아 노트북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작업 중이었다. 단종의 유배지를 나오자마자 필호는 빛의 속도로 대본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태희는 필호를 보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짐을 다 내린 후 모두가 필호를 향해 인사를 했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았다.

여름이 열린 차 문을 잡고 말했다.

“삼촌, 내일 엄마 제사에 늦지 않게 갈게요!”

“역시 우리 삼촌은 프로야! 9회는 언제 다 써놓은 거야? 삼촌 마무리 파이팅! 제사 걱정은 하지마, 내가 가서 준비할게!”

소이가 모기 같은 소리로 보탰다.

“저두요!”

원빈이 밧줄을 손에 들고 봄을 밀치고 말을 하려는데 여름이 문을 쾅 닫았다. 차가 출발하고 원빈은 밧줄을 들고 열심히 딸랑딸랑을 외쳐댔다.

원빈은 스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봄은 진호와 필호가 화해를 한 것 같아 더없이 좋았다. 더는 걱정할 게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봄이 멀어져가는 필호의 차를 보고 고개를 돌리는데 뭔가가 흔들거렸다. 원빈이 밧줄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봄은 지나치려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그거 뭐야? 아니지? 단종 유배지에서 갖고 온 거?”

원빈은 몸을 흔들며 말했다.

“당연히 아니지. 갖고 온 게 아니고 넣고 온 거지!”

봄이 원빈의 등짝을 때렸다.

“미쳤어 미쳤어, 이걸 가져오면 어떡해, 이건...”

원빈이 도망가는데 수십 명의 스키장 직원들이 달리듯이 나왔다. 직원들은 일렬로 서서 마치 대통령이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봄이와 일행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이때 엄청난 속도로 고급 스포츠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서 봄이 일행 앞에 멈췄다.

스포츠카의 양쪽 문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나이가 지긋한 양복을 입은 간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가갔다. 캐시미어 롱코트를 입은 이재열이 차에서 내렸다. 표정은 거만했고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간부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행동했다. 이재열은 보통 키에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반질반질한 얼굴은 별 특징이 없었지만 모나지 않았고. 모나지 않았지만 정이 가진 않는 그런 전형적인 뺀질이 스타일이었다.

달갑지 않은 등장에 여름과 준 태희 원빈 소이 봄의 표정이 굳었다. 이들을 본 이재열의 금테 안경 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가 다음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다. 봄은 깊이 심호흡했다.

운전석에서 스키장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수제화가 먼저 나왔다. 그리고는 스키장과 더 어울리지 않는 윤기 나는 정장 차림의 민혁이 내렸다.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민혁은 작은 키에 조금 살집 있는 몸에 헤어스타일은 2:8 가리마를 탔고, 통통하고 뽀얀 피부, 눈에는 심술과 장난기와 욕심, 자신은 특권층이라는 오만함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재열의 놀란 표정과는 다르게 민혁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혁은 차 열쇠를 간부에게 던지고 봄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미친 서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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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숙원 홍씨 2. 서봄의 남자들-1 +1 20.05.11 3,438 25 15쪽
1 숙원 홍씨 1. 미친 서봄 +7 20.05.11 3,666 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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