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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름 님의 서재입니다.

숙원 홍씨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서여름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9
최근연재일 :
2021.04.12 11:0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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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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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
글자수 :
809,561

작성
20.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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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6쪽

숙원 홍씨 7. 눈 사랑

DUMMY

숙원 홍씨 7. 눈 사랑


눈 덮인 스키장에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그 밤하늘에 별을 수놓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스키장의 조명에 하얀 눈이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웃느라 지친 봄이와 소이 태희 준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새로 쌓인 눈 위에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자국이 새겨졌다.

여름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하느라 조금 뒤처져 있었고 원빈은 보이지 않았다. 콘도 앞에 다다르자 준이 멈춰 섰다.

준은 자신들의 숙소 반대쪽의 별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바 괜찮던데,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고 가자!”

태희의 몸이 성급히 그곳을 향했다.

“박스로 마시자, 갈증 나 죽겠다.”

봄은 피곤한 듯 말했다.

“난 맥주보다 잠이 고파.”

소이는 봄이의 팔짱을 끼고 함께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여름이 휴대폰을 보며 피식 웃자 준이 보며 말했다.

“뭐야? 같이 좀 좋자!”

여름은 미소를 지었다.

“여자친구, 생일 축하한다고, 생일 케잌 영상 보냈어.”

태희는 김이 팍 새서 방향을 틀어 봄이를 따라갔다.

준은 그런 태희를 보며 소리쳤다.

“왕태희, 그쪽 아니고 이쪽이야!”

태희는 들은 척도 안하고 가던 길을 갔다.

여름은 지금에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원빈이 안보이네.”

“걔가 있을 데가 뻔하지.”


“스키 타다가 찢어졌어요, 제 초코렛 복근이 미녀들 앞에서 좀 부끄러워하네요!”

원빈은 콘도 로비에 있었다. 찢어진 반팔 쫄티를 입고 점퍼는 허리에 묶고 가슴팍에는 힘을 주고 있었다. 일부러 찢은 쫄티 사이로 원빈의 복근이 선명하게 보였다. 원빈의 주변엔 늘씬한 여자 둘이 서서 원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원빈이 휴대폰을 보여주자 여자들은 고개를 디밀고 보고 있었다. 그녀들이 원빈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봄은 기운 없이 걸어왔고 소이는 말이 없었고 태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원빈은 여자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배우들이랑 찍은 거에요! 한 잔 사고 싶은데 우리 아빠 서진호 감독님과 삼촌인 서필호 작가님이, 미인을 보면 꼭 한 잔 사라고 했어요...화끈하게!”

원빈이 윙크를 날렸다. 여자들은 서로 마주보며 눈빛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봄은 원빈을 보며 힘없이 고개를 설레설레했다.

“우리 아빠도 모르는 아들이, 저기 계시네...가자마자 자야겠어.”

봄이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 민혁과 이재열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봄은 진짜 지겹다는 듯 민혁을 바라봤고 민혁은 오늘 날 잡자는 듯 눈을 번뜩였다.

민혁은 이제껏 콘도 안에서 봄이 일행의 눈싸움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웃을 때마다 민혁의 가슴 속 불길은 맹렬히 타올랐다. 봄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재열은 그런 민혁 때문에 조금 귀찮았지만 여름과 준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태희가 민혁과 이재열을 지나쳐 가려는데 민혁의 목소리가 그녀를 세웠다.

“왕태희, 로스쿨 준비는 잘 돼? 학비 어렵지? 너 집안 형편 내가 다 알잖아, 가난한 거, 그래서 장학금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그게 뭐냐! 지원해줘?”

태희는 별 감정 없이 말했다.

“가던 길 가라.”

민혁은 태희를 보며 봄을 힐끗 봤다.

“넌 멀쩡한 애가 왜 저런 미친 애랑 다니냐? 너까지 값 떨어지게!”

민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봄의 말이 이어졌다.

“이재열, 우리 여름이보단 못했지만”

이재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부도 어느 정도 하고, 키도 쟤보다 크고.”

민혁이 움찔했다.

“멀쩡한 의사 될 애가”

봄이 민혁을 가리켰다.

“왜 저런 개망나니랑 다니니? 떨어질 값도 없는 놈이랑!”

민혁은 눈을 부라리며 봄에게 다가갔다.

“잊었냐? 너희 아빠 서진호, 또 내 앞에서 고개 숙이게 해줘?”

봄의 표정이 굳어지고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 모습을 본 민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태희가 봄에게 차분히 말했다.

“서봄, 이제 미성년자 아니고, 보는 눈 많고, CCTV도 있어 증거 확실하다. 폭행으로 들어갈 수 있어, 합의해 줄 놈도 아니고, 조용히 가자.”

소이가 봄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민혁은 얼굴을 들이대며 깐족댔다.

“왜? 해봐! 그때처럼! 머리채 잡고 흔들어봐!”

태희가 민혁을 봤다.

“너도 그만해! 십 년이 다 된 일이다!”

민혁은 계속 나불댔다.

“그때 니네 아빠가 우리 엄마한테 어찌나 싹싹 빌던지...”

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혁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빌었잖아, 어찌나 간절히 빌던지, 모자란 딸 봐달라고, 지문 다 닳았을 걸! 그래서 봐줬더니...”

봄의 주먹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원빈은 멋진 척하며 자신에게 반한 여자 둘과 나가려다 봄이와 민혁을 보았다. 원빈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여자들에게 “쏘리!” 한마디만을 남기고 후다닥 봄에게로 달려갔다. 여자들이 재수 없다는 듯이 원빈을 쏘아보고 갔다.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서봄은 하나다! 여자는 내일도 만날 수 있지만 이 미친 드라마는 오늘 뿐이지! 이걸 놓칠 수 없지!”

원빈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라도 하듯 휴대폰을 꺼냈다.


준과 여름은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준은 봄이 보고 싶었다. 군대에서 2년을 참았는데 지금은 단 2분도 봄이를 안보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준이 서둘러 군대에 다녀온 것도 봄이 때문이었다. 여름과 함께 졸업 후에 군대에 가기로 했지만, 둘 다 떠나면 홀로 남을 봄이 생각에 먼저 자원입대했다. 여름은 갑자기 군대에 간다는 준을 배신자 보듯 했었다. 이제부터 준이 봄이 곁에서 여름의 빈자리까지 채워줄 것이다.

준은 휴대폰을 보고 있는 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준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 어렸을 때,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에게 버려진 거나 다름없었다. 엄마가 임신을 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지만 준이 태어나고서 바로 이혼을 했다. 차라리 세상에 나오기 전에 버림받는 게 덜 비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엄마는 잘난 아버지와 결혼하기 위해 계획한 임신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결혼이 목표였지 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면서. 준의 엄마는 늘 바빴고 준은 혼자였다. 준은 사는 게 지루했다. 오늘이 즐겁지도 않았고 내일이 오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다 여름을 만났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준과 엄마 없이 자란 여름. 준과 여름은 한쪽 날개만 있는 외톨이 새였다. 한쪽 날개마저 위태로운. 서로를 알아봤고 의지했고 함께 날아왔다. 여름을 만나고 외롭지 않았고 봄을 만나고 처음으로...행복했다.

준은 봄을 만나고부터 내일을 꿈꿨다.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축복 속에서 결혼하고 함께 가정을 꾸리고. 흰머리 하나 하나 생길 때마다 이만큼 사랑했구나...주름이 늘어갈 때마다 서로를 사랑한 시간을 헤아리며 그렇게 함께 늙어갈 우리를 생각했다. 준은 드라마 감독이 돼서 첫 데뷔는 여름과 함께 공동으로 연출하고. 봄이는 가족 곁에 있게 하고 싶어 진호의 옆집에 신혼집을 마련할 생각까지. 봄이 동의해준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까지. 준은 봄이만 있으면 되니까. 이런 따뜻한 미래를 꿈꾸며 2년을 견뎌냈다.

준은 오늘 밤, 봄에게 고백하기 전에 여름에게 이야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제일 친한 친구에서 갑자기 좋아하는 여자의 어려운 오빠가 됐다.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다. 준의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준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여름에게 용기 내어 말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


민혁이 비웃음을 날리며 봄이 덤비길 기다리고 있었다.

봄은 끓어올라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데 진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봄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봄은 민혁에게 날쌔게 다가갔다. 소이는 발만 동동 굴렀고 태희는 피곤해지겠다는 표정이고. 원빈은 거만하게 서 있는 이재열을 엉덩이로 탁 쳐서 밀어버리고는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봄이 민혁에게 귀엣말을 하고는 확 돌아서 가는데 민혁이 봄을 잡았다.

봄이 잡히자마자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그만 좀 해!”

로비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그만 좀 하라고!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너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민혁은 벙쪄서 보고만 있었다.

“십 년 가까이 따라다니며,”

봄은 고통을 몸으로 표현하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정말, 더는 못 참아!”

원빈은 너무 즐거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민혁은 그제야 주변을 의식했다.

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천년에 한번 태어날까말까한 미인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네가 싫어!”

봄이 점퍼를 벗어 던졌다. 그 안에 입고 있는 곰돌이 수면잠옷이 드러났다.

태희와 원빈은 창피했고. 소이도 부끄러워 잠시 고개를 돌렸다. 이재열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봄은 자신들을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알아, 네가 이곳 한신그룹 3세 민혁인 거, 나도 알아! 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민혁은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는 아무 말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봄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네가 싫어!”

봄이 가려는데 민혁이 열 받아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서봄!”

“결혼? 싫어! 싫다잖아!”

민혁이 기겁하며 불에 덴 듯 손을 뗐다.

봄이 민혁에게 다가가 서늘하게 말했다.

“또 잡아봐! 이번엔 어떤 말이 나오나! 한번만 더 우리 아빠 얘기하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할 거야!”

봄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네 돈질보다 내 미친 짓이 빠르다는 거 잊지 마!”

민혁이 KO패 당했다. 봄이 가려다가 멈춰 섰다. 민혁의 몸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봄은 너무 싫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머...나 이걸 왜 지금 알았지? 너, 설마, 나 진짜 좋아하는 거야? 얘 눈은 또 정확히 달렸네...”

봄은 흥 하고 가려다 이재열과 눈이 마주쳤다.

“뭘 봐? 너도 나 좋아해?”

봄은 돌아서서 뒷머리를 손으로 탁 치고는 여신처럼 돌아섰다. 순간 핑 돌아 휘청했지만 소이가 봄을 잡아주었다. 봄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숙소로 들어온 민혁은 분노로 의자를 걷어차고 비명을 질러댔다. 이재열은 민혁을 한심하게 보며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컵에 따라서 마셨다.

민혁은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아아악! 망신 망신 개망신...이런 개망신이 어딨어...바람도 내 털끝 하나 못 건드렸는데, 저 미친 서봄이 내 머리채를 잡더니, 내 얼굴을 갈기더니, 이번엔 뭐?”

민혁은 숨이 막히는지 잠시 있다가 거칠게 내뱉었다.

“사...누, 누가 누굴 사...사랑? 사랑? 아아아아악!”

이재열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러게 왜 미친 서봄을 건드리냐? 아~쪽팔려...내가 더 쪽팔려...”

이재열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민혁! 너 진짜 걔 좋아하는 거 아니지?”

민혁의 단발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아니면 됐고.”

민혁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미친 서봄, 가만 안 둘 거야, 이번엔 누가 죽든 끝을 볼 거야!”


봄은 방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봄의 몸은 오한으로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봄은 그 와중에도 소이에게 졸려서 자겠다고 했다. 봄이 두고 간 서책이 베개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지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소이는 미역을 물에 담가놓고 식탁에 앉아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태희는 거실 창 너머로 눈이 내리는 설경을 보고 있었다. 태희에게 손을 내밀던 여름이 떠올랐다. 태희는 여름의 손을 잡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헛웃음이 나왔다. 태희는 자신이 입고 있는 스키복을 잠시 보다가 벗어서 던지듯이 소파에 걸쳐놓았다.

태희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와서 소파에 털썩 앉았다. 태희는 스키복에 시선이 갔다. 태희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웃던 여름과 여자 친구 이야길 하며 미소 짓던 여름이 동시에 떠올랐다.

웃지나 말지...

태희는 맥주 한 캔을 입도 떼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준은 속이 타들어가 맥주만 계속 마셔댔다. 테이블에 빈 병이 늘어가고 있었지만 여름은 휴대폰으로 찍은 초가집의 사진만 보고 있을 뿐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여름이 여러 각도로 찍은 초가집 사진을 넘겨봤다.

“이곳 진짜 잘 찾았어...분위기가 참 묘해, 대사 없이도 단종의 마지막을 잘 보여줄 거 같아.”

준은 더는 못 참고 휴대폰을 빼앗아 탁자에 ‘탁’ 소리 나게 올려놨다. 여름은 황당해서 준을 봤다.

준은 조바심이 났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아까 아까 말했는데, 안 궁금해?”

여름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왜 궁금해?”

준은 무지 서운했다.

“이야 진짜 20년 우정 금가는 소리 들리네, 네 친구인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짝사랑이 자랑이냐?”

준은 기막혀했다.

“내가 언제 짝사랑이라 그랬어? 좋아하는 사람 있다 그랬지!”

“너 군대에서 머리 안써 둔해졌어? 그게 그거지! 여자친구도 애인도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 짝사랑이지 뭐야? 그 여자가 너 좋대? 아니잖아!”

준은 짜증스레 말했다.

“고백할 거야! 그 전에,”

준은 여름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네가 먼저 인정해줬으면 좋겠고, 날 지지해주면 좋겠다.”

여름은 어이없어했다.

“삽질하다 뇌 다쳤어? 네 사생활에 내 인정이, 내 지지가 왜 필요해? 나랑 사생활 공유하게? 사양한다.”

여름이 맥주를 마시려는데 휴대폰의 문자 알림이 울렸다. 여름은 휴대폰을 들고 원빈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준은 맥주잔에 시선을 둔 채로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서봄, 서봄이야!”

여름은 준의 말은 못 듣고 동영상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서봄 진짜!”

준이 얼결에 일어서서 휴대폰 속 봄의 모습을 보았다.


여름이 씩씩대며 걸어가고 그 뒤를 준이 잽싸게 뒤따라왔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여름과 준의 머리와 어깨에 금세 눈이 쌓였다.

여름이 콘도로 들어와 바로 봄이의 방으로 밀고 들어갔다. 봄은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있었다. 준이 따라 들어와 여름을 잡았다.

“왜 봄일 잡으려 그래! 그 자식들이 또 건드렸잖아!”

여름은 준의 손을 탁 쳐내고 소리쳤다.

“서봄 일어나! 자는 척 하지마!”

여름이 이불을 확 잡아 젖혔다. 봄은 고개를 박고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이불 속 봄이 머리맡에 서책이 놓여 있었다.

“사고치지 말랬지! 너 창피한 거 몰라? 안 일어나!”

여름이 봄을 확 잡아 일으켰다. 봄의 얼굴과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축 늘어져 여름에게 기대 듯 쓰러졌다.

“서봄!”

놀란 여름은 침대에 걸터앉아 봄을 안고는 얼굴을 만져봤다. 봄의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다. 땀이...왜...여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이 서둘러 다가와 봄을 보았다. 준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봄아 왜 그래...”

소이가 금세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계...계속 머리가 아프대서, 늘 있는 두통인 줄 알았는데...잘 거라면서 깨우지 말래서...그냥...”

여름이 봄의 이마를 짚어봤다. 여름이 두려움에 휩싸였다.

“열이 불덩이야!”

준이 봄의 이마에 손을 대고는 휴대폰을 꺼냈다.

“119 부를게!”

봄이 준의 팔을 잡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애원했다.

“싫어...병원...싫어...부탁이야...조금만 자면...괜찮아...부탁이야...”

봄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밖은 눈발이 더욱 거세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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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숙원 홍씨 6. 1학년 3반 +2 20.05.12 3,160 20 18쪽
5 숙원 홍씨 5. 단종의 일기장 +1 20.05.11 3,231 18 17쪽
4 숙원 홍씨 4. 너무 일찍 떠난 사람들 20.05.11 3,238 21 17쪽
3 숙원 홍씨 3. 서봄의 남자들-2 +1 20.05.11 3,294 20 16쪽
2 숙원 홍씨 2. 서봄의 남자들-1 +1 20.05.11 3,439 25 15쪽
1 숙원 홍씨 1. 미친 서봄 +7 20.05.11 3,667 3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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