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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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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작품등록일 :
2023.11.30 14:23
최근연재일 :
2023.12.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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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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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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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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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화

DUMMY

언데드 오크를 쓸어버렸으니 남은 일은 토템을 철거하는 일뿐이었다.


3층 토템을 철거하면 하나당 8000토큰을 획득할 수 있었다.


“토템 5개를 다 줄 테니까. 4만 토큰으로 보조 마법 전부를 최대치까지 올려. 남은 건 저주 저항을 올리고.”

“저주 저항은 4층에서 필요한 거죠?”

“그래.”

“······.”


최예리는 강인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움이 되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렇게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적당히 콩고물이나 떨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밤눈이나 독 내성 같은 공략에 필요한 스킬 정도만 지원해 주리라 생각했다.


거기서 쓰고 남은 약간의 토큰을 차곡차곡 모아서 자기 강화에 쓸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인한은 예상과 달리 넉넉하다 못해 퍼주듯이 지원해 주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건가?’


딱히 시선에서 살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증오는 조금도 희석되지 않는데 호의를 받는 모순적인 상황.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팍팍 지원해 주는 거지?’


의도된 대로 잘 풀린 건데, 너무 잘 풀려서 도리어 불안해졌다.


하늘에 소원을 빌었더니 진짜로 소원이 이루어진 격이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생각으로 토큰을 이렇게 대량으로 나눠주는지.


그리고 최예리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않는 인간이었다.


“토큰을 왜 그렇게 많은 주는 거예요?”

“······뜬금없이 뭔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요. 내가 받은 토큰으로 매혹에 투자하면 어쩌려고요.”

“······.”


강인한은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최예리를 바라보았다.


“그건 또 왜 묻는 건데?”

“아니, 이상하잖아요! 노골적으로 싫어하면서 왜 팍팍 지원해 주냐고요?!”

“내가 너를 싫어하는 건 맞아.”


하지만.


“동시에 네가 제 목을 조르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것도 믿고 있어.”

“······.”


이번에는 최예리가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동료로서의 신뢰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기에 생기는 적으로서의 신용이었다.


이런 형태의 관계는 처음이었던 최예리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강인한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4만 토큰을 소모해서 매혹을 올리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그의 물음에 최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얼마 안 가서 들킬 가능성을 고려하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네요.”


강인한이 보조 마법을 올리라고 한 건 중간 보스를 상대할 때 쓰기 위해서였다.


보조 마법을 올리지 않고 매혹을 강화한다면 얼마 안 가서 들키게 된다.


그 순간 강인한은 망설임 없이 최예리의 목을 날릴 거다.


“설령 매혹을 최대치까지 올리고, 그걸 들키지 않았다고 치자. 그걸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최예리는 상상해 봤다.


과연 강인한이 매혹 마법에 걸릴까?


평범한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했다.


매혹 마법이 발동되는 것보다 빠르게 목이 날아갈 거다.


3층의 언데드 오크들을 갈아버렸던 걸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았다.


고로 이쪽을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을 노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전투 도중에 매혹 마법을 걸어야 했다.


그 경우 최예리 역시 위험해질 수 있었다.


강인한은 혼자서 싸우는 만큼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최예리는 쓸 수 있는 수단이 매혹과 강화뿐이기에 돕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강인한이 진짜 죽으면 최예리는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서 던전까지 올 수 있었던 전적으로 강인한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설령 이와 관계없이 매혹 마법의 발동에 성공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강인한이 매혹에 저항할 가능성이었다.


‘매혹 강화와 내성이 상쇄되면, 남는 건 마력 능력치와 호감의 문제야.’


최예리는 매혹이 성공 확률이 어느 정도 될지 검토했다.


매혹 관련 강화를 빼고 남은 토큰으로 올릴 수 있는 마력 능력치는 15 남짓.


마력 능력치가 비슷한 상황에서 호감이 지하를 뚫어버린 상황.


여기서 매혹 마법으로 호감을 올려도 잘해봐야 마이너스에서 0이 될 뿐이었다.


“······.”

“표정을 보니까 깨달았나 보네.”

“대가리에 총 맞은 게 아니라면 매혹 강화에 토큰을 쓸 리 없네요.”


그제야 최예리는 강인한이 팍팍 지원해 주는 이유를 깨달았다.


바깥에서 강인한이 없으면 최예리는 파리 목숨이었다.


얌전히 버프 자판기나 하는 것이 명줄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알았으면 토템이나 철거해.”

“네에······.”


최예리는 강인한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다섯 개의 토템이 철거되고, 마지막 토템에서 룬스톤이 나왔다.


강인한은 지금까지 모은 룬스톤들을 확인했다.


재산과 유산을 의미하는 ᛟ(오탈란).

소유와 부귀를 의미하는 ᚠ(페후).

얼음과 방해를 의미하는 ᛁ(이사).


이것으로 지하 1층 진입에 필요한 룬스톤이 모두 모였다.


“30분 뒤에 지하 1층으로 출발한다.”

“네에······.”


최예리는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기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었다는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보다.


일반적인 동료라면 멘탈 케어를 해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죄수와 간수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저대로 내버려뒀다가 사고가 날 수 있었기에 한마디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킬은 제대로 찍어둬라. 안 그러면 죽는다.”

“넵!”


말끝에 살기를 담아 말하니, 최예리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이걸로 토큰을 쓰지 않고 멍하니 있는 일은 없으리라.


제대로 안 하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자기 목숨이 가장 중요한 최예리이니 그런 부분은 신용할 수 있었다.


강인한은 최예리에게서 신경을 끄고 스킬창을 열었다.


‘일단 마력 능력치부터 올리자.’


[스킬 ‘마력Ⅱ’이 10레벨로 성장합니다.]

[마력이 4 상승합니다.]

[34000토큰이 소모됩니다.]

[남은 토큰 : 5만 950]


[마력 능력치가 20에 도달하였습니다.]

[확정으로 하나의 키워드를 획득합니다.]

[「육감」 키워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육감」 키워드를 얻자, 강인한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사물의 기운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오감으로 느꼈던 것과는 완전히 감각이었다.


그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여섯 번째 감각이자, 기운을 감지하는 기감(氣感)이었다.


강인한은 새로운 감각을 통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던전으로 인해 왜곡된 공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직접 눈으로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던전의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형만이 아니야. 안개 속에서도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어.’


선명하게 느껴지는 최예리의 기운이 그 증거였다.


강인한은 최예리의 기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며, 사람의 형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묘하게 흐릿해 보이는 존재감이 서서히 선명해지고 있었다.


색감은 짙지 않고, 하얀색에 가까울 정도로 밝게 느껴졌다.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건 크기, 채도, 명암 정도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강인한은 육감을 통해 자신의 기운을 살펴보았다.


기운의 크기는 최예리의 10배 이상 있으며, 몸 밖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존재감은 조금의 흐림 없이, 선명한 상태를 유지했다.


명암은 검정에 가까운 회색이었다.


‘표본이 부족해서 크기와 명암은 알 수 없었지만, 채도는 뭔지 알겠어.’


강인한은 최예리의 기운이 빠르게 선명해지는 걸 떠올렸다.


그 과정은 소모된 기운이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최예리가 소모하고 회복할 만한 자원은 하나뿐이었다.


‘마력.’


육감은 타인의 마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이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강인한은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이야.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어.’


명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력 같은 게 느껴졌다.


강인한은 이를 거부하지 않고, 관조하듯 제 기운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기운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광채를 발견했다.


그것은 별이었다.


크고 작은 별들이 기운의 중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별의 주위에는 수많은 빛의 알갱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강인한은 별들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정체를 알아차렸다.


‘고유 스킬, 키워드, 토큰.’


2개의 큼지막한 별은 고유 스킬.

8개의 작은 별들은 보유 키워드.

수많은 빛의 알갱이는 그가 보유한 토큰이었다.


강인한은 시험 삼아 스킬창에서 저주 내성 스킬을 습득해 보았다.


[스킬 ‘저주 내성’을 습득하였습니다.]

[4000토큰이 소모됩니다.]

[남은 토큰 : 4만 6950]


강인한은 메시지를 무시한 채 알갱이의 변화에 집중했다.


스킬을 습득하자 빛의 알갱이 중 일부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만큼 기운의 크기가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 과정을 지켜본 강인한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기운의 크기가 의미하는 바였다.


‘기운의 크기는 그 사람의 역량을 나타내는 거였어.’


능력치를 올리고 스킬을 찍을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기운의 크기는 이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였다.


두 번째는 토큰이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토큰을 가공해 스킬의 효과를 구현한 게 그 증거야.’


토큰을 가공할 수 있는 수단만 있다면 다양한 방식의 활용이 가능하리라.


가령 능력치 제한을 무시하고 능력치를 올린다던가.


해금 조건을 무시하고 원하는 스킬을 습득한다던가.


‘문제는 게임 시스템 이외에 토큰을 가공할 수단을 어디서 구하느냐는 건데.’


그 발상에 반응하여 고유 스킬의 별이 반짝였다.


강인한은 기감을 통해 그 의도를 읽어냈다.


‘10만, 토큰?’


10만 토큰만 있으면 가능하다.


고유 스킬의 별은 그렇게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가진 토큰은 4만 남짓, 6만 토큰만 더 얻으면 돼.’


아무래도 던전 공략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늘어난 것 같다.


* * *


휴식을 끝마친 강인한은 최예리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몬스터가 없는 1층은 발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조용했다.


두 사람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통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출입구는 두꺼운 돌문으로 막혀 있었다.


강인한은 기감을 통해 돌문이 주술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간이 괴리되어 있어서 물리적인 수단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돌문 위에는 세 개의 홈이 파여 있었다.


강인한은 룬스톤을 꺼내 홈에 끼워 넣었다.


우웅!

룬스톤들에 각인된 룬 문자가 빛을 내며 공명했다.


뒤이어 돌문이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윽고 돌문이 완전히 열리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자.”


강인한은 앞장서서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는 바깥보다 서늘했으며, 축축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계단을 완전히 내려오자, 사람이 들어온 것에 반응하여 벽에 붙은 유리구슬에서 불빛이 들어왔다.


그러자 지하의 전모가 드러났다.


곳곳에 철창으로 가로막힌 감방이 보였다.


철창 안쪽은 모두 비어 있었다.


감옥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감각을 곤두세웠다.


강인한의 기감이 안쪽에서 인기척을 포착했다.


강인한은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곧장 나아갔다.


최예리는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한동안 두 사람의 발소리가 감옥 복도에서 메아리쳤다.


발소리가 멈춘 것은 감옥의 끝자락에 자리한 감방 앞에 도착하면서였다.


철창 너머로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인기척을 느낀 인영이 고개를 들었다.


형형한 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팔다리에 채워진 족쇄가 덜그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누구냐.”


죄수, 오크 히어로가 말했다.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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