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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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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작품등록일 :
2023.11.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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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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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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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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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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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화

DUMMY

‘반상회라고?’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빨랐다.


장비 정비와 강소영의 상담에 들인 시간을 감안하면, 나태수가 반상회 회장을 찾아가자마자 이쪽으로 온 걸까?


‘하지만 몇 호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나가볼게요.”


강인한은 다른 사람이 나서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현관문을 열어 방문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한 명은 경비원 나태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시원시원한 인상이 청년이었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젊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반상회의 젊은 회장인 듯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강인한은 떠보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질문했다.


그러자 반상회 회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반상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철호라고 합니다. 오늘은 튜토리얼 관련으로 상담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인한은 깨달았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구나.’


반상회 회장 김철호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정한다고 해도 손쉽게 반박할 수 있다는 것처럼.


고로 강인한은 떠보는 것을 그만두고 솔직하게 물었다.


“······여기가 제가 사는 곳인 건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여기 있는 친구가 알려줬습니다.”


김철호는 뒤에 있던 나태수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시선을 마주친 나태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 위치는 어떻게 아셨어요?”

“이틀 전이었나? 방패를 옮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라. 무심코 차량 번호를 기억해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차량 번호를 보고 호수를 떠올렸다고요?”

“네, 등록된 차량은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요.”


아파트 거주자들의 차량 번호와 차주의 호수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니.


나태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터무니없는 기억력이었다.


‘저런 기억력으로 왜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거지?’


강인한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내 손님들을 바깥에 계속 세워둘 수 없다는 생각에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죠.”

“실례하겠습니다.”

“시, 실례합니다.”


집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도 불구하고 집안이 따뜻했기 때문이다.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면서 보일러 역시 작동을 멈추었다.


현대의 난방 기구는 대체로 전자기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하다는 건 전자기기가 아닌 난방기구가 따로 있다는 뜻이 된다.


두 사람은 집안의 온기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를 발견했다.


가스난로.


바닥난방이 당연해진 현대 가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물건이었다.


‘어째서 가스난로가 여기에 있는 거지?’


김철호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가스난로도 그렇고, 경비원에게서 들었던 잘 갖춰진 장비들도 그렇고.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예측하고 준비한 것 같지 않은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김철호의 시선이 강인한의 뒤를 쫓았다.


겉보기에는 별달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겉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는 법.


지금 같은 비상식적인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서 따뜻한 차를 건네받았다.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기는 했지만, 전기포트에 보관된 온수는 보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찻잔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으로 차가워진 손을 녹이며 강인한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강인한은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1층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찾아온 모양이에요. 튜토리얼 관련으로 상담하고 싶다나?”

“그걸 왜 오빠한테 상담하는 거야?”

“이 아파트에서 제대로 된 무장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런 거겠지.”


이 아파트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에서 강인한 만큼 장비를 갖춘 사람은 드물 거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특수한 직업 혹은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종말을 믿는 극단적인 생존주의자이리라.


“괜찮겠니?”

“괜찮아요. 어디까지나 상담뿐이니까요.”


김수미 여사의 걱정에 강인한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종말이 일어나기 전이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갑은 강인한 쪽이었다.


개인의 무력은 물론, 정보 면에서도 그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반대로 반상회 측에서는 내놓을 만한 변변한 이득이 없었다.


사람의 도리를 앞세워서 압박할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는 경찰이나 소방대원처럼 사람을 구할 의무나 책임 같은 게 없었다.


만약 정보보다 더한 걸 요구한다면 그대로 자리를 파투 낼 생각이었다.


“아들아.”

“네, 아버지.”

“원하는 대로 해라. 다만 언제나 네 안전이 최우선인 걸 명심하고.”


강씨 집안의 가장, 강힘찬 선생의 최종 승인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어투 속에는 아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강인한은 가족들과의 대화를 끝마친 뒤, 나태수와 김철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태수는 한껏 긴장한 얼굴인 반면, 김철호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을 빙자한 거래가 시작되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튜토리얼 관련으로 상담하고 싶다는 건 뭔가요?”

“듣기로는 고블린들을 무찌르고 경비원을 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처음 보는 괴물을 상대로 선전하셨다는 이야기에 지금 상황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요점은 아는 정보가 있다면 공유해달라는 거였다.


어떤 의미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부탁이기도 했다.


이쪽에서 목숨을 걸고 구한 정보를 맨입으로 달라는 거니까.


하지만 여기서 무작정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 이득을 위해 정보 공유를 거절하면 반상회 인원 전체와 적대하는 위험이 있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집단에 배척당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자칫 잘못하면 모르는 사이에 희생양으로 떠밀릴지도 모른다.


강인한이 본 미래에서는 비슷한 일이 실제로 있었다.


‘다수의 생존을 위해서라며 소수를 미끼로 써버렸지.’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양심이나 인간성을 얼마든지 내던질 수 있는 생물이라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정보를 공유해 환심을 살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드리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 하심은?”

“앞으로도 저는 단독으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너무 위험한 일인 것 같습니다만······.”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단독행동을 하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현재 시스템에는 파티 편성이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함께 싸워도 몬스터 처치 시에 얻는 토큰은 막타를 친 사람만 획득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토큰이 꼭 필요한 만큼 다툼이 일어나는 건 예정 조화였다.


그런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에 미리 예방선을 친 것이다.


“물론 단독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아닙니다. 움직이기 전에 확실하게 반상회 쪽에 목적을 알릴 거고요. 이 정도면 정보 공유의 대가로서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으음······.”


김철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 상황에서 개인행동을 허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했다.


‘개인행동을 허용하지 않는 게 집단의 규율을 유지하는 데 좋겠지만, 판단 재료가 너무 부족해.’


결국 김철호는 강인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정보 공유는 지속해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우선 고블린이랑 토템에 관해서 설명해야겠네요.”


강인한은 고블린과 토템의 생성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안전지대가 사라지는 12시간마다 토템이 구역 내에 랜덤하게 나타난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생성되는 토템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


토템에서 고블린이 다섯 마리씩 생성되며,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강화할 수 있다는 것.


강화된 토템은 더 많은 수의 고블린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


평범한 방법으로는 토템을 부수기 어려우며 도끼로 네 번 두드리면 된다는 것까지.


하나 같이 생존에 꼭 필요한 지식이었다.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김철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설명을 들을수록 감탄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대체 그만한 정보들을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토템을 도끼로 부쉈더니 최초 파괴 보상으로 얻은 겁니다.”


강인한은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예지몽으로 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댄 것이다.


‘토템의 파괴 방법은 예지몽에서 누군가가 피로 써놓은 글을 통해 알게 된 거지만.’


당사자는 토템의 제물로 바쳐졌기에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건 무기로 도끼를 썼으며 혼자서 2층을 탐색하러 갔을 정도로 행동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전부였다.


기록자는 무슨 심정으로 피로 글을 남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예지몽 속의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강인한에도 기록자는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첫날에 탐색을 감행했던 것도 은인이 희생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운이 좋으면 기록자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지.’


그렇게 내심 아쉬움을 곱씹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도끼로 때리면 발동된다니, 토큰으로 도끼를 사놓길 잘했네요.”

“도끼를 사셨다고요?”


상점에서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토큰이 필요했다.


이마저도 단검처럼 공격 사거리가 짧은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된 무기를 사기 위해서는 못해도 800토큰은 써야 했다.


강인한이 무기로 쓸 만한 장비들을 구하러 다닌 것도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니던가.


강인한의 반응에 김철호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제가 게임에서 야만 전사 같은 걸 좋아하거든요. 마침 직업도 전사겠다. 충동구매를 해버렸지, 뭡니까.”

“······죄송합니다만, 혹시 사셨다는 도끼의 가격을 알 수 있을까요?”

“1000토큰 하는 전투 도끼입니다.”

“······.”


분명 기록자가 썼던 무기도 1000토큰 하는 전투 도끼였다.


거기에 김철호는 나태수와 함께 예지몽에서 만나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예지몽에서는 초반에 고블린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걸 막지 못해 막대한 인명 피해가 있었다.


두 사람은 이때 죽은 사람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김철호의 말을 듣자, 어떤 가능성이 불현 듯 떠올랐다.


‘설마 이 사람이 기록자?’


나태수에게 보고를 받자마자 이쪽으로 온 걸 보면 행동력도 있어 보였다.


나태수가 요청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그런 배짱이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도 한껏 긴장한 채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서 눈을 굴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 내 추측이 옳다면, 진작 원하는 대로 미래를 바꾼 게 되는 건가?’


예지몽을 통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빠르게 행동한 덕분에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긍정적인 나비효과인 셈이다.


“정보 제공 감사합니다, 강인한 씨.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살기 위해서 협력하는 거니까요.”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혼자서 대응하는 데는 한도가 있었다.


사전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아파트 전체의 생존율을 끌어올린다면 고블린도 충분히 억제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반상회 쪽이 제대로 굴러갈지인데.’


예지몽에서 반상회는 김철호의 이른 사망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져서 큰 혼란을 겪었다.


끝에는 파벌이 둘 나뉘어서 서로를 반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김철호가 살아있으니 적어도 분열을 피할 수 있겠지?’


그러나 강인한의 희망 사항은 슬기슬기 사람종의 악의에 의해 개 같이 멸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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