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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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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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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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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서방이 업무를 잘함(3)

DUMMY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 철학자다. 그는 1844년에 태어나 1900년에 죽었다.

당시 유럽 대륙은 혼란한 시기였다. 왕정이 흔들리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니체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그는 전통적 가치관을 유려한 글귀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른바 망치를 든 철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나는 니체에 대해서 이 정도를 알고 있다. 사실 거의 모른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노벨의 독일인 친구가 니체였구나.

니체도 퐁퐁남이었나?


콧수염을 커다랗게 기른 독일 남자가 방바닥에 우뚝 서서 웅변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삶이었나? 좋아. 그렇다면 다시!”


뭔 소리지?

혼자 뭐하는 거야?

독백 연기인가? 죽은 지 오래 되어서 맛이 갔나?


노벨이 나에게 이해를 구했다.


“창식 동지가 이해해요. 이 친구가 말년에 정신병을 앓았어요.”


니체는 정신병 환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만성 두통을 달고 살았고, 커서도 몸이 허약했으며, 결국 45살에 뇌졸중을 앓아 언어능력과 판단력을 상실했다.


그가 웅변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커다란 콧수염이 입술을 모조리 가렸다.


“그대가 김창식인가?”


나는 끄덕였다.


“네.”

“인간적이군.”

“네?”

“너무나 인간적이야!”


니체가 하늘을 보며 탄식하더니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한심한 녀석. 여자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입고도 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쏟는 꼴이라니. 참으로 실망스럽다. 너는 영원히 호구로 남고 싶은가? 여자가 그리도 좋으냔 말이다!”


내가 되물었다.


“제가 누구한테 호구짓을 하는데요?”

“거실에 엎어져 잠든 저 여자.”


니체가 방문 바깥을 가리켰다. 노민지가 거실 탁자에 옆드려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니체의 지적을 반박했다.


“저 여자는 애인이 아니라 동지입니다. 복수 동지.”

“남자와 여자는 동지가 될 수 없다.”

“에이, 설마요.”


니체가 시선을 멀리 던지고 살아생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한때 루 살로메라는 여자를 사랑했다. 그녀는 아름답고, 지적이고, 매력이 넘쳤지. 남자라면 그녀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슬픈 결말이 예상되는데요.”

“나는 그녀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루 살로메는 나를 남자가 아니라 학문적 동지로 여긴다면서 독특한 형태의 결합을 제시하더군. 그것은 바로 육체적 관계가 금지된 동거였다.”


육체적 관계가 없는 동거.

플라토닉 러브.

익숙하다. 내 결혼생활도 그와 비슷했다.


니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조건을 수락했다.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남녀가 같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도 그녀에게 남자로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짐작은 틀렸다. 더욱 끔찍한 방향으로.”

“설마···”

“루 살로메는 나와의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면서 다른 남자들과는 육체적 관계를 마음껏 맺었던 것이다!”


역시.

결론이 그렇게 날 줄 알았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한 집에 살면서도 다른 남자들과 사랑을 마음껏 즐겼다. 그녀는 남자를 두 종류로 나누었다. 한쪽은 육체적 관계만 맺는 남자, 다른 쪽은 정신적 교감만 나누는 상대.

슬프게도 니체는 뒤쪽이었다.


그녀는 낮에 니체와 철학을 토론하고 밤에는 밖으로 나가서 장교, 의사 등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와 동침했다. 그러다가 임신도 했다. 두 번이나.

그러면서도 니체와의 잠자리는 극구 거부했다.


결국 니체의 구애에 질린 루 살로메는 몰래 집을 떠나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녀의 새로운 동거남은 니체의 친구였다.


니체가 허탈하게 웃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을 아담과 이브로 만든 그 순간에. 이것이 남녀 동지의 결말이다. 어떤가, 아름다운가? 믿음직한가? 그렇다면 너는 바보 멍청이다. 호구다. 퐁퐁남이다. 바로 나처럼.”


나는 속으로 니체의 전 여친을 욕했다.

씨발.

망할.

진짜 나쁜 년이네.

내가 그런 일을 당했어도 돌아버릴 것 같다.


니체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보아라. 들어라. 내 심장의 울음을. 여자에게 이용당한 남자의 절규를. 네가 그 고통을 아느냐?”

“압니다.”

“뭐라고?”


내가 고백했다.


“저도 사실··· 전처와 한 번도 못했습니다.”


니체가 흠칫했다.


“전처와 얼마나 같이 살았는데?”

“1년입니다.”

“초인이시여(Übermensch)···”


니체가 탄식했다. 보통은 ‘신이시여’라고 할 텐데 니체는 무신론자라서 신 말고 초인을 부르는 모양이다.

그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토록 끔찍한 일을 겪고도 또다시 여자와 동거를 선택하다니. 너는 진정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로다.”

“복수를 위해서입니다. 전처와 상간남을 몰락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참아낼 수 있습니다.”

“정말이냐? 결혼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또 벌일 정도로 복수심이 강렬하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오오!”


니체가 감동했다.


“불굴의 의지, 긍정의 정신, 가혹한 고통을 이겨내는 기쁨. 내가 드디어 초인을 찾았구나. 이 멀고 낯선 한국 땅에서.”

“그··· 그런가요?”

“네가 바로 초인이다. 위버멘쉬!”


그가 장황한 연설을 끝낸 뒤 거실로 나갔다.

노민지가 여전히 잠들어 있다. 그녀는 아예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니체가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독일어로군.”


내가 요청했다.


“그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습니다.”

“알았다.”


니체가 독일어 자료를 한국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


나는 밤을 새웠다.

니체가 독일어를 한국말로 바꾸어 읽으면 나는 그 내용을 문서 파일로 작성했다. 일종의 동시통역이다. 니체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줄줄 말했다. 과연 두뇌회전이 남달랐다.


아침이 되었다.

마침내 수백 페이지가 넘는 독일어 자료를 한국어로 완벽하게 번역했다. 약 6시간이 걸렸다. 손목이 아프고 눈이 뻑뻑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성취감이 든다.

어려운 과제를 완수했다.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노민지가 잠에서 깼다.


“으음···”


나는 부엌에서 커피를 두 잔 뽑았다. 그리고 한 잔을 노민지에게 건넸다.


“아침입니다.”

“어떡해!”


노민지가 벌떡 일어났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벼락치기에 실패한 수험생이다.


“큰일났네. 이 자료 다 읽고 회의에서 발표해야 되는데.”


내가 슬쩍 말했다.


“한국어로 읽으면 금방 끝나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죠. 한국어는 금방 읽죠. 독일어라 문제지.”


노민지가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문서 파일을 확인했다.


“어라. 한국어네.”


그녀가 고개를 내 쪽으로 홱 돌렸다.


“설마 창식 씨가 이거 번역했어요?”


나는 빙긋 웃었다.


“힘 좀 썼습니다.”


노민지가 커다란 눈을 한참 꿈뻑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창식 씨 독일어 할 줄 알아요?”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이빨을 털었다.


“어젯밤에 공부했습니다. 민지 씨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노민지가 당혹스러워했다.


“말도 안 돼. 독일어를 할 줄 모르던 사람이 어젯밤에 잠깐 공부해서 이 두꺼운 자료를 다 번역했다고요?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해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인공지능한테 도움을 받았습니다. 엄청 똑똑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노민지가 넋을 놓고 내 얼굴을 보았다. 괴물을 발견한 듯했다.

나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아으으··· 밤을 샜더니 피곤하네요. 나는 이제 자야겠습니다. 파이팅해요.”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자신의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 쿨가이의 모습이다.

후후후.

나는 초인이다!


-


노민지가 회사 직원과 임원 앞에서 제약 공장 인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고다크는 350년 역사의 제약 기업입니다. 특히 품질 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하죠. 고다크의 제약 공장을 인수하면 우리는 350년의 생산 노하우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NK 화학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이번 인수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본부장이 물었다.


“매물의 가격은 적정한가?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책정된 건 아닐까?”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고다크 측과의 협상을 통해서 가격을 깎을 계획입니다. 독일의 회계법인에서 발행한 가치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가 스크린에 분석자료를 띄웠다. 참고자료 항목에 독일어가 적혀 있다. 노민지가 독일어 원문을 공부했다는 뜻이다.


발표가 끝났다.

성공적이다.

본부장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직원들도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며 감탄했다.

몇몇 사람이 혀를 내둘렀다.


“민지 팀장 독일어도 잘하네. 저 두꺼운 자료를 깔끔하게 요약했어. 대단한데. 미국 유학파가 독일어는 언제 공부했대?”

“재벌집 딸이라서 놀고먹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뒤에서 엄청 노력하나 봐. 다시 봤어.”


낙하산이 일을 잘함.

노민지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본부장이 노민지를 치하했다.


“민지 팀장, 발표 잘 들었어요. 이번 인수 건, 민지 팀장이 직접 추진해 봐요.”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노민지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과를 낼 절호의 기회다. 노민지가 고다크 제약의 생산공장을 적절한 가격에 인수하고 그곳에서 탈모 치료제를 성공적으로 생산하면 노학구 회장이 그녀를 더 이상 귀여운 막내딸로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후계자 경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NK 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해 황제 그룹과 목숨을 건 전쟁을 벌일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해 황근철과 상간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신의를 져버린 자들에게 지옥의 고통을 선물할 것이다.

복수혈전.


노민지가 다짐했다.


‘이번 임무, 반드시 성공해야 돼.’


다만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버겁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가장 가까운 곳에 훌륭한 동지가 있다.


‘창식 씨.’


노민지는 김창식에게 또 놀랐다. 그는 탈모 치료제를 가져오더니 주방세제 신제품을 뚝딱 만들고 어젯밤에는 독일어 회계자료까지 번역했다.

신비로운 능력.

다재다능의 표본.

화학 지식에 언어 능력까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지금껏 호구처럼 당하고 살았지?’


그녀가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30분. 오늘은 왠지 일찍 퇴근해서 집밥을 먹고 싶다.

노민지가 팀원들에게 말했다.


“저 먼저 들어가요. 다들 시간 되면 퇴근하세요.”


팀원이 놀랐다.


“앗, 팀장님 오늘 발표도 잘 끝났는데 축하파티 안 하세요?”


노민지가 이마를 짚었다.


“아··· 미안해요. 나 조금 피곤하네. 법인카드 줄 테니까 여러분끼리 식사해요.”

“아쉽다. 같이 밥만 드시고 가시지.”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요?”


노민지가 살며시 웃었다.


“남편.”


-


나는 낮잠을 때린 뒤 오후 늦게 일어나 헬스장에 가서 허벅지를 조지고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여유로운 일상.

한가로운 생활.

커피숍에 유부녀 득시글.

남편이 밖에서 돈 버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여유를 즐긴다. 동네 미시들과 모여 수다를 떨고 브런치를 먹는다.


전에는 이런 광경에 짜증이 났다. 나의 마음은 남편의 입장에 공감했다. 나도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르다.

부잣집 사모님들을 욕할 수가 없다.

입장이 바뀌었다. 나는 기둥서방이다. 생활을 와이프의 재력에 의존한다. 오늘 커피값도 노민지의 카드로 결제했다.


동탄맘이 아니라 강남 기둥서방.

이것이 바로 리버스 퐁퐁이구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노민지다.


“창식 씨, 지금 어디예요?”

“집 근처 커피숍입니다.”

“알겠어요. 거기로 갈게요.”


잠시 후, 노민지가 유리문을 열고 나타났다.

손님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슬렌더 미녀, 뚜렷한 이목구비, 고급스러운 복장, 길쭉한 팔다리.

부잣집 사모님들 사이에서도 노민지의 아우라는 독보적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 앉았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관계를 추측했다. 평범한 남자와 세련된 미녀. 무슨 사이일까? 영화감독과 신인배우? 건물주와 대학생? 조건만남?


노민지가 말했다.


“덕분에 오늘 발표 잘 끝냈어요. 본부장님이 나 엄청 칭찬했어요.”


내가 미소를 지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은요. 창식 씨가 다 했지. 아직 일이 더 남았어요. 고다크 측과 인수 가격을 협상해야 돼요.”

“그 일도 잘 될 겁니다. 민지 씨는 능력자니까.”

“창식 씨가 더 능력자죠.”


그녀가 제안했다.


“창식 씨. 우리 회사에 정식으로 들어와요.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해요. 창식 씨의 능력을 집에서 썩이기 너무 아까워요.”


아···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한량 생활이 끝났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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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퐁퐁집 기둥서방(2) +1 24.08.04 21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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