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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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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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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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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집 기둥서방(3)

DUMMY

기둥서방.

기둥으로 승부하는 사내.


노민지는 나의 장점을 결국 찾지 못했다.

나는 학벌이 좋지도 않고,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았고, 집안이 빵빵하지도 못하고, 내세울만한 직업을 갖지도 못했다. 재벌집에 사위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중견기업 사장 아들이거나 강남 건물주 아들이거나 미국 유학파 금융인이거나 의사, 판사, 검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

사회적 지위.

권력.

능력.

나와 상관없는 요소들이다.


그러니 노민지는 비공식적인 장점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재벌집 딸이 평범한 남자를 선택한 이유. 내가 잘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것을.


물론 나는 당혹스럽다. 노민지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이다. 나는 잘하지 못한다. 해본 적도 없다. 노민지와는 비즈니스 관계다. 그녀는 내 몸뚱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처녀와 총각.

서류상으로만 부부.

동거가 아니라 동맹.


노학구 회장이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그는 의외로 차분함을 유지했다.


“장 실장.”

“예, 회장님.”

“가서 정원용 가위 가져와. 이 놈 기둥을 잘라버려. 기둥이 없으면 기둥서방 노릇을 못하겠지.”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돌아섰다.

노민지가 비서실장을 황급히 막아섰다.


“아빠, 제정신이에요?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생각이에요?”


회장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병원으로 데려갈까? 수술실에서 자르면 되겠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나는 그런 뜻이다.”


노민지가 발을 구르며 성을 냈다.


“아빠는 왜 항상 자기 마음대로예요? 내 뜻은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내가 이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는데 아빠가 무슨 권리로 반대를 하냐고요. 나는 창식 씨를 사··· 랑한다고요!”


사와 랑 사이에 간극이 꽤 있었다. 노민지는 거짓말에 서툴렀다.

다행히 회장은 어색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침통했다.


“민지야. 너는 내 딸이다. 너는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복이다. 나는 그런 복덩이를 어중이떠중이에게 시집보내기 싫다. 너는 최고의 남편감과 결혼해야 한다. 너는 오로지 행복과 기쁨만 누리고 살아야 한다. 내가 왜 이러냐고?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다. 본능적 욕망은 오래 가지 못해. 그런 남녀관계는 언젠가 식기 마련이다.”


노민지가 쏘아붙였다.


“그래서 나를 황근철이랑 결혼시켰어요? 황근철이 최고의 남편감이라서?”

“그래.”

“그럼 뭐해요? 돈 많고 능력 좋고 잘생기고 집안 훌륭하면 뭐 하냐고요. 남편이 아내한테 관심은 없고 온종일 밖으로만 나도는데. 남의 집 유부녀랑 바람이나 피우는데. 그게 행복한 결혼생활이에요?”

“크흠···”


노학구 회장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노민지가 날카로운 공격을 이어갔다.


“황근철 그 자식은 결혼식 이후로 나랑 뽀뽀 한 번 안 했다고요. 우리는 침실도 따로 썼어요. 집안 행사 있을 때나 사이 좋은 척했지 사실은 남남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결혼생활 내내 얼마나 비참했는 줄 알아요?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나한테 매력이 없나? 아무리 애정 없는 결혼이라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회장이 움찔했다. 그는 막내딸의 부부관계를 알지 못했다.


“황근철 그 놈이 너랑 뽀뽀 한 번을 안 해? 너처럼 예쁜 여자를 두고 왜?”


노민지가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잡은 물고기에는 관심 없는 모양이죠.”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황근철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노민지는 객관적으로 미인이다. 슬렌더 체형에 고양이 같은 얼굴, 길다란 다리, 도발적인 눈빛, 쇳가루를 삼킨 듯한 목소리. 199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섹시스타 느낌이다.


이런 여자와 한 집에 살면서 눈길 한 번을 안 주다니.

고자인가?


아니다. 황근철은 바람둥이다. 그는 지금껏 수많은 미녀 연예인과 염문을 뿌렸다. 심지어 스무 살을 갓 넘은 걸그룹 아이돌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그 아이돌은 작고 귀여운데 몸매는 글래머러스하기로 유명했다.

베이비 글래머.

귀여운 거유.

내 전처도 비슷한 스타일이다. 키는 짧은데 몸이 올록볼록하다. 그녀는 속옷을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주문했다. 국내 브랜드는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이제 알았다.

황근철은 베이비 글래머를 선호한다. 반면 노민지처럼 길쭉하고 날씬한 여자에게는 흥미를 못 느낀다. 여자를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남자. 과연 재벌 3세다.


노학구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진작 꺼내지 않았냐?”


노민지가 대답했다.


“민망하잖아요. 어떻게 아빠랑 그런 이야기를 해요.”


노민지의 친모는 병으로 일찍 죽었다. 때문에 회장이 늦둥이 딸을 더욱 애지중지 키웠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 있다. 아들이 엄마에게 티슈를 사달라고 부탁하지 못하듯이 딸 또한 아빠에게 민감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힘들다.


회장이 위엄을 다시 차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결혼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한 번 실패했으니 두 번째는 더욱 신중해야지.”


노민지도 물러서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성격이 회장과 꼭 닮았다.


“싫어요. 결정은 이미 끝났어요. 저는 창식 씨랑 같이 살 거예요.”


회장이 인상을 다시 구겼다.


“네 남편은 단순한 남편이 아니야. 우리 NK그룹의 사위다. 집안 사람이 되는 거야. 우리 집안에 저런 무능하고 쓸모없는 놈을 들일 수는 없다.”


노민지가 반박했다.


“창식 씨는 유능하고 쓸모가 많아요.”

“침대에서는 쓸만하겠지.”

“회사에서도 쓸만해요.”


그녀가 품에서 탈모 치료제 연고를 꺼냈다.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냐?”

“탈모 치료제요.”

“타··· 탈모!”


노학구 회장이 경악했다.

탈모 치료제. 꿈의 약물. 황금알을 낳는 거위. 전 세계 모든 제약회사가 손에 넣기를 간절히 바라는 황금의 엘도라도.

돈 복사기.

달러 수집기.

백인 남성의 35퍼센트가 탈모.

비아그라 이후로 최고의 히트상품 예정.


“이걸 어디서 구했냐?”


노민지가 밝혔다.


“창식 씨가 개발했어요.”


회장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노인의 눈빛이 방금 전과 180도 달라졌다. 분노에서 의혹으로, 실망에서 기대감으로, 무관심에서 흥미로.

그가 물었다.


“이봐, 확실해? 정말 이 약으로 탈모를 치료할 수 있어?”


내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만약 거짓말이면 네놈은 끝이야. 내 앞에서는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할 거야.”

“진실입니다.”

“네놈 인생을 걸고?”

“인생 받고 기둥까지 걸겠습니다.”

“흐음···”


회장이 감탄했다. 기둥서방이 기둥을 걸다니. 모든 것을 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노민지가 나섰다.


“효과는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회장이 딸을 보았다.


“네가 직접? 어떻게? 너도 탈모냐?”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윗도리 소매를 걷어 겨드랑이를 노출했다. 겨드랑이에 거뭇거뭇 털이 올라오고 있었다.

회장이 숨을 들이켰다.


“헉!”


노민지가 고백했다.


“저 원래 제모 시술 받아서 겨털 안 나요. 모근을 레이저로 싹 죽였어요. 그런데 저 연고를 바르니까 하루만에 털이 다시 나기 시작했어요. 죽은 모근이 살아난 거예요.”

“이럴 수가...”


회장이 떨리는 손으로 탈모 치료제를 받아들었다. 흥분과 감동이 드러났다. 욕망과 야심이 엿보였다. 탈모 치료제만 있다면 NK 그룹은 황제 그룹을 넘어 한국 최고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 명성을 떨칠 수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에어컨에 캐리어.

자동차에 포드.

반도체에 인텔.

탈모에 NK.


그가 목소리까지 떨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다. 신이 주신 기회야.”


노민지가 거들었다.


“창식 씨는 우리 회사의 구세주고요.”


회장이 불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사실이야? 정말로 네 녀석이 탈모 치료제를 개발했어?”


내가 사실을 말했다.


“제가 아니고 동지···”


노민지가 내 말을 끊었다.


“당연히 창식 씨가 개발했죠. 세상 어느 누가 탈모 치료제를 남한테 넘겨요. 떼돈 벌 수 있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노민지의 작전을 따라야 할 때다. 나를 우수한 인재로 포장해야 회장이 우리의 결혼을 인정할 것이다.


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딸의 설명에 동의하는 듯했다.


“하긴 그렇군.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억만금을 포기할 리 없지.”


그가 다시금 나에게 예리한 눈빛을 쏘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해. 자네는 제정신이 아닌가? 이토록 엄청난 물건을 왜 우리 딸에게 넘겼지?”


회장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탈모 치료제를 남에게 넘길 리 없다. 나는 탈모 치료제를 노민지에게 넘겼다. 그러니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을 딸과 결혼시킬 수 없다.

완벽한 논법.

뭐라고 반박하지?


“저는···”


나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저는 민지 씨에게 미쳤습니다. 민지 씨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탈모 치료제보다 더한 것도 바치겠습니다.”


회장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


노학구 회장이 우리의 결혼을 승낙했다.

다만 조건부 승인이다. 그는 나를 아직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김창식.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네놈이 민지를 데려갈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내 앞에서 증명해 봐.”

“탈모 치료제로는 부족합니까?”

“내가 원하는 건 연구원이 아니라 사위야.”


사위와 연구원은 다르다. 연구원은 연구실에서 신제품을 만들고 사위는 침실에서 아이를 만든다. 사위의 유전자가 회장의 직계 가문에 섞인다는 뜻이다.

나는 가장의 본능을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저의 가치를 회장님께 증명하겠습니다.”

“만약 우리 민지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만들 경우···”


회장이 비서실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비서실장이 정원용 가위를 오므렸다.


- 서걱


회장이 경고했다.


“네놈을 고자로 만들 것이다.”


-


나는 노민지의 차를 타고 신혼집으로 향했다. 말이 신혼집이지 사실상 노민지가 살던 집에 나는 몸만 들어간다.

여자 집에 얹혀 살기.

색다른 기분.

한국에서 드문 일이다.


노민지가 운전대를 잡은 채 사과했다.


“미안해요, 창식 씨. 우리 아빠가 너무 까다로워요.”


나는 관대함을 연출했다.


“이해합니다. 민지 씨는 늦둥이 막내딸이니까요. 저도 나중에 딸이 생기면 회장님처럼 반응할 것 같습니다.”

“협박은 신경쓰지 말아요. 우리 아빠 괜히 말로만 저래요. 진짜로 자르지도 못할 거면서.”


과연 그럴까?

진짜로 자를 것 같은데.


신혼집에 도착했다. 강남구 삼성동의 고급 아파트다. 노민지가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안면인식 시스템이 신원을 확인했다.

조용한 엘리베이터.

꼭대기 층.

문이 열렸다.


“다 왔어요. 여기에요.”


실내가 드러났다. 집안에 복도가 있었다. 생활공간이 각 구역으로 분리되었다. 방이 네 개, 화장실도 네 개, 거실도 네 개다. 식구가 서로 얼굴을 안 마주치고 지내는 게 가능하다.

이게 대체 몇 평이지?

비싼 아파트는 이렇게 되어 있구나.

부부싸움 할 일이 없겠네.


노민지가 방을 안내했다.


“창식 씨가 바깥 방 써요. 나는 안쪽 쓸게요.”


내가 물었다.


“밥은 어디서 먹습니까?”

“커뮤니티 구역에 구내식당 있어요. 입주민은 무료예요.”

“삭막하군요.”

“뭐··· 그렇죠. 나 요리 못해요.”

“나는 요리 합니다.”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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