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938
추천수 :
26
글자수 :
48,995

작성
24.08.06 09:00
조회
175
추천
3
글자
12쪽

기둥서방이 업무를 잘함(1)

DUMMY

나는 요리에 익숙하다.

결혼생활 내내 밥을 내가 준비했다. 전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다가 밥이 다 되면 일어나서 먹기만 했다. 심지어 설거지도 내가 다 했다.

설거지.

결혼 자체가 설거지였다.


나는 식탁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았다.


“볶음밥입니다.”


노민지가 입을 쩌억 벌렸다.


“헐.”

“냉장고에 찬밥이 있길래.”

“대박.”


그녀가 볶음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눈썹이 올라가고 입술이 동그랗게 모였다.


“맛있어요.”


노민지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나는 어색함을 느꼈다.


“내 요리가 맛있다는 말 처음 듣습니다.”

“진짜? 음식 만들어서 창식 씨 혼자만 먹었어요? 다른 사람한테 밥 해준 적 없어요?”

“밥 해준 적 있습니다. 자주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맛있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민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으, 너무하다. 누구예요, 그게?”

“전처입니다.”

“아···”


전처는 불만투성이였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녀는 항상 짜증을 냈다. 요리를 해주면 맛이 별로라고 툴툴거리고 선물을 사주면 싸구려라고 던져버리고 월급을 바치면 겨우 이것밖에 안 되냐며 무시했다.

노리개.

감정 쓰레기통.

그러면서 재벌 3세 내연남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애교를 부린다. 눈만 마주쳐도 생글생글 웃는다. 간사하기가 짝이 없다.


식사를 끝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릇을 챙겨 싱크대로 향했다. 습관이다.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노민지가 따라왔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요.”


나는 관대함을 자랑했다.


“괜찮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벌써 손에 물 묻혔습니다.”


나는 싱크대에 놓인 퐁퐁을 수세미에 짰다. 거품이 발생했다. 기름기 가득한 프라이팬을 닦았다.

노민지가 미안해했다.


“설거지는 정말 내가 하려고 그랬는데.”

“집세 대신 몸으로 때운다고 생각해요.”

“몸으로 어디까지 때울 건데요?”


멈칫.

문득 야릇한 상상이 떠올랐다.

이 집은 넓고 비싸다. 월세도 엄청날 것이다.

이렇게 비싼 집의 월세를 겨우 설거지 하나로 때울 수 있겠는가?

다른 방면으로도 때워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노민지를 돌아보았다.

노민지는 실실 웃고 있었다.


“장난이에요. 집세 안 받아요. 우리는 부부잖아요.”

“부부도 집세 낼 수 있는데···”

“됐어요. 나 그렇게 쪼잔한 사람 아니야. 오늘은 창식 씨가 밥하고 설거지했으니까 다음에는 내가 할게요. 얼른 들어가 쉬어요. 피곤하겠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


연구개발이 진행되었다.

탈모 치료제와 미스터 퐁퐁.


미스터 퐁퐁은 세제다. 공산품이다. NK 화학은 이미 주방세제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 왔다. 신제품도 매년 출시했다.

그러니 미스터 퐁퐁은 금방 복제할 수 있다.

대량생산도 가능하다.

적절한 향기도 첨가한다.

NK 화학의 연구원들은 프로 퐁퐁남이다.


반면 탈모 치료제는 의약품이다. 의약품은 첨단 기술이다. 이 물질을 어떻게 합성하는지, 대량생산은 가능한지, 부작용은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연구 난이도 최상.

개발 기간 무한대.

창의성과 노가다의 결합.


예상대로 탈모 치료제 연구가 지지부진하다. 연구소에서 갈피를 못 잡는다. 박사급 연구원들이 머리를 쥐어짜는데도 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한다. 분명히 샘플을 똑같이 복제했는데 결과물은 엉망이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한계.


노민지가 답답해했다.


“소장님, 탈모 치료제 시제품 언제 나와요? 연구소에 샘플 보낸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제조법을 얼른 알아내야 물건을 만들고 돈을 벌죠. 이러다가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먼저 만들겠어요.”


연구소장이 수화기 너머에서 쩔쩔맸다.


“미안해요, 노민지 팀장. 우리 진짜 밤낮으로 일하고 있어.”

“뭐가 문제예요?”

“그게···”


연구소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이런 물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성분은 아는데 합성법이 안 나와.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다 써봤는데도 결과가 달라. 아무래도 이 샘플을 만든 사람은 천재가 분명해.”

“천재요?”

“그래. 천재. 자존심 상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NK 화학의 신제품 연구소에는 박사급 인력이 즐비하다. 한국 박사, 미국 박사, 일본 박사. 이들 모두 학창시절 공부 깨나 했다. 수재를 넘어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전문인력조차 탈모 치료제의 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한다.

천재 위에 진짜 천재가 있었다.


노민지가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원작자를 부를게요.”


연구소장이 흥분했다.


“정말? 그럴 수 있어?”

“대신 연구원 여러분의 자존심은 못 지켜드려요.”

“괜찮아. 제조법만 배울 수 있으면 상관없어. 우리 자존심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야.”


노민지가 연구소장과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김창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액정화면에 수신자 이름이 떴다.


[남편 동지]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김창식입니다.”

“여보!”

“앗, 음, 그래요. 민지 씨.”

“회사로 와요. 아무래도 당신이 우리 연구원한테 한 수 가르쳐 줘야겠어요.”


-


나는 집에 누워있다가 노민지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용건을 말했다.


“우리 회사 연구원들이 자라지오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대요. 당신이 와서 알려줘요.”


헉.

나보고 연구원을 가르치라고?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을? 나는 문과 출신 회사원인데?


“음··· 아무래도 그건···”

“왜요? 문제 있어요?”

“외부인이 회사 업무에 참견하면 조직 내부에서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노민지는 쿨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연구소장님한테 다 말해 놨어요. 상관없대요. 자기들도 한 수 배우고 싶대요.”


정말?

자존심 센 공돌이가?

맨날 문과 출신 무시하던 연구원들이?


노민지가 자기 혼자 결정했다.


“지금 바로 출발해요. 차는 내 거 써요. 거실 탁자에 차키 있어요.”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성격이 노학구 회장과 똑같다.


나는 탄식했다.

큰일났다. 제조법은 나도 모르는데. 나는 노벨이 만든 물건을 노민지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능력자는 내가 아니라 알프레드 노벨이다.


어쩌지?

솔직하게 실토할까?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퐁퐁남 연합이 다 했다고?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 퐁!


알프레드 노벨이 나타났다.


“난관에 봉착했네요.”


내가 그를 반겼다.


“동지!”


타이밍이 예술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히 등장한다. 퐁퐁남의 심정은 퐁퐁남이 가장 잘 안다.

스웨덴 퐁퐁남이 말했다.


“화학 회사의 연구원에게 의약품 제조법을 가르쳐야 한다고요?”

“들으셨어요?”

“당연하죠. 우리 퐁퐁남 연합은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죠.”

“아름답습니다.”


내가 퐁퐁남 연합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노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조금 당황스럽네요. 화학의 전문가들이 약품 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하다니. 별로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천재는 범인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노벨은 남들도 본인처럼 똑똑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화학 회사의 연구원이라면 이 정도 신제품은 뚝딱뚝딱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불쌍한 연구원들을 변호했다.


“우리나라 회사는 직원에게 일을 많이 시킵니다. 아마 연구원들은 자라지오 말고도 다른 제품을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래요? 안됐네요. 일이 많으면 회사에서 직원을 더 뽑아야죠.”

“그건 스웨덴 스타일입니다. 여기는 한국입니다.”


노벨이 크게 끄덕였다.


“코리안 스타일. 알겠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겠죠.”


그가 내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내가 물었다.


“뭐··· 하십니까?”

“빙의요. 내가 창식 동지의 몸에 들어가서 NK 화학의 연구원에게 신약 제조법을 잘 설명할게요.”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끼리만 가능해요. 나는 사랑하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했죠. 창식 동지도 마찬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을 공유할 수 있어요. 서로 하나가 되는 거죠.”


아픔 공유.

퐁퐁 연대.

나는 마음을 열고 노벨의 영혼을 받아들였다.


-


노민지는 NK 생활화학연구소에서 김창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연구소 정문으로 암녹색 SUV가 들어왔다. 볼보 XC90. 스웨덴제 자동차.

노민지는 이 차를 예전에 구입해놓고 막상 마음에 안 들어서 차고에 처박아 두었다. 볼보는 한국에서 흔한 차가 아니다. 한국인은 독일산 자동차를 좋아한다. 그런데 김창식은 특이하게도 볼보를 끌고 왔다.


그가 차를 주차장에 세웠다.

운전이 거칠다. 상남자 스타일이다. 바이킹이 롱쉽을 몰고 거친 북해를 헤쳐가는 느낌이다.


노민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창식 씨 운전이 서툰가?’


자동차 문이 열리고 김창식이 내린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다. 표정이 평화롭다. 노벨평화상을 받으러 온 것 같다.

김창식이 노민지에게 다가온다.


“레이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노민지가 당황한다.


“레이··· 디?”

“갈까요?”


김창식이 팔뚝을 내민다. 잡으라는 의미 같다. 유럽 신사가 레이디를 에스코트하는 모양새다.


“아··· 네.”


그룹 회장의 딸이 낯선 남자와 팔짱을 끼고 연구소 복도를 걸어간다. 직원들이 김창식을 흘끗흘끗 훔쳐본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

재벌가 막내딸과 피부를 맞대는 남자.

애인이 분명하다.


누군가 속삭인다.


“노민지 팀장 남자친구 생겼나 봐. 얼마 전에 이혼했다더니 금새 다른 남자랑 같이 다니네.”


동료 연구원이 맞장구를 친다.


“민지 팀장 예쁘니까. 집안도 잘 살고. 남자 구하기 쉽겠지.”

“그런데··· 저 남자는 엄청 평범한데 재벌집 딸이랑 사귀는 거야? 신기하네.”

“왜, 너도 도전하게?”

“저 정도면 나도 가능하지.”


동료가 비웃었다.


“크크크. 너는 안될 걸.”

“내가 뭐 어때서? 부족해?”

“예쁜 여자가 평범한 남자랑 만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무슨 이유?”

“돈.”

“돈은 노민지가 더 많겠지.”

“기둥.”

“엉?”


연구원이 김창식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리고는 탄식을 길게 내뱉는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김창식이 세미나실에 도착했다.

방 안에 연구원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탈모 치료제의 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창식은 화학 박사들 앞에서 지식을 뽐내야 한다.


그가 단상에 올랐다.


“반가워요. 자라지오 개발자 김창식이에요. 여러분의 얼굴에서 동지의식이 느껴지네요. 다들 저처럼 설거지 잘하게 생겼어요. 하하하!”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의 유머는 북유럽 날씨보다 쌀쌀했다.


“크흠, 탈모 치료제의 제조법은···”


김창식이 강의를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처음에 김창식의 학력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김창식은 문과 출신이다. 문과가 신약을 개발했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문계가?

그러나 설명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들 허리를 세우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나타났다.


풍부한 지식.

전문적인 노하우.

평범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끈기와 도전정신.

김창식은 천재였다.


-


제조법 설명이 끝났다.

노벨의 영혼이 내 육신에서 빠져나갔다.


“후우···”


나는 정신을 되찾았다.

꿈을 꾼 것 같다. 뭔가를 하긴 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머릿속에 뿌연 잔상만 남았다. 약간의 오한이 소름을 일으킨다.


나는 청중을 보았다.

연구원들이 모두 일어나 있었다.

머리가 벗겨진 선임 연구원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브라보.”


곧이어 다른 연구원들도 환호에 동참했다.


“브라보!”


성공이다.

노벨 동지 나이스.

나는 갈채에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글이 막혔습니다. 24.08.08 51 0 -
공지 이 글도 연습용입니다. 24.07.31 134 0 -
9 기둥서방이 업무를 잘함(3) 24.08.08 116 0 13쪽
8 기둥서방이 업무를 잘함(2) +1 24.08.07 157 5 14쪽
» 기둥서방이 업무를 잘함(1) 24.08.06 176 3 12쪽
6 퐁퐁집 기둥서방(3) 24.08.05 188 4 12쪽
5 퐁퐁집 기둥서방(2) +1 24.08.04 213 3 13쪽
4 퐁퐁집 기둥서방(1) 24.08.03 220 2 12쪽
3 지구 퐁퐁남 연합(3) 24.08.02 246 3 12쪽
2 지구 퐁퐁남 연합(2) 24.08.01 273 1 12쪽
1 1. 지구 퐁퐁남 연합(1) +1 24.07.31 339 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