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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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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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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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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수 :
48,995

작성
24.07.3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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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 지구 퐁퐁남 연합(1)

DUMMY

내 와이프는 재벌 3세의 비서이자 내연녀다. 나는 이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인천공항.

미국으로 떠나는 출국 게이트.


어제까지 나와 한 침대를 쓰던 여자가 오늘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다. 다정해 보인다. 남녀가 서로 눈을 마주보며 웃는다. 외간 남자가 내 아내의 머리카락을 넘기고 아내는 내연남의 가슴 근육을 쓰다듬는다.

행복한 분위기.

화기애애.

사랑이 넘치는 커플.


나는 고통스럽다. 패배자가 된 기분이다.


와이프는 내 앞에서 저렇게 웃지 않았다. 행복한 티를 낸 적도 없다. 나에게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냉담했고 짜증을 냈고 불만을 표출했다.


“오빠,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눈치가 그렇게 없어?”


나는 그게 와이프의 성격인 줄 알았다. 단지 예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노력하고 품으면 달라질 줄 알았다. 언젠가는 와이프가 나에게 사랑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틀렸다.

이제야 깨달았다.


와이프는 원래 웃을 줄 안다. 남자를 먼저 끌어안기도 한다.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을 보낼 줄도 안다. 선물을 정성들여 준비할 의지가 있다.

단지 나에게 그러지 않을 뿐이다.

다른 남자에게는 그렇게 한다.


와이프는 내가 원하던 것들을 내연남에게 다 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스스로. 열정적으로. 진심을 담아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부끄러운 것들도 다 했다.

나는 남편이고 저 놈은 내연남인데 나는 와이프를 모르고 내연남은 내 아내를 속속들이 경험했다.

호구.

병신.

설거지 담당.

나는 퐁퐁남이다.


노민지가 말했다.


“이혼해야겠죠?”


노민지는 내연남의 법적 배우자다. 그녀는 다른 재벌가 후계자와 마찬가지로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재벌과 재벌의 만남.

정략결혼.

노민지의 남편이 내 와이프와 바람을 피웠다. 우리는 외도 피해자들이다.


내가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저 꼴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면 내가 병신이죠. 이미 병신인 것 같지만.”

“잘 생각했어요. 여기 서명해요. 이혼 소송 위임장이에요.”


노민지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변호사와 탐정을 고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메신저 내역을 입수했다. 그리고 외도의 증거를 나에게 전달했다. 그녀는 이혼 소송을 공동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확실한 증거.

분명한 책임.

소송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나는 문득 노민지의 눈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복수심이 가득하다.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이다. 활화산이다. 사랑을 빼앗긴 자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물었다.


“당신도 남편을 사랑했습니까?”


노민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그런데 왜 소송을 겁니까? 협의 이혼도 가능한데. 어차피 그쪽 부부는 서로에게 애정이 없다면서요.”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화가 나서요. 감히 나를 두고 바람을 피워? 내 자존심을 땅바닥에 처박아? 이런 심정이에요. 나는 상처받았어요. 사랑이 아니라 자존감에. 그러니 저 년놈들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안기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사랑 없는 결혼이라도 분노는 있어요.”

“나는 와이프를 사랑했습니다.”

“알아요.”

“내 고통은 재판 따위로 치료되지 않습니다.”

“이해해요.”


내가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혼 소송이 무슨 소용입니까? 내 와이프는 이혼을 오히려 반길 겁니다. 결혼생활에 질렸으니까. 나보다 더 잘난 남자를 마음 놓고 만날 수 있으니까. 저 여자에게 이혼은 처벌이 아니라 보상입니다. 행복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요.”


노민지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어요. 법을 지켜야 하니까. 소송을 걸어서 위자료를 최대한 받아내는 게 우리에게 허락된 최고의 복수예요.”

“얼마나 받아낼 수 있습니까?”

“5천만 원이요.”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친 대가가 겨우 5천이라. 싸네요. 내 인생이 그 정도로 싸구려였나?”

“미안해요.”

“나는 망했습니다. 결혼생활로 돈, 시간, 마음을 잃고 원형탈모까지 생겼습니다. 그깟 위자료 몇 푼으로 내 분노를 달랠 수는 없단 말입니다.”

“나도 그래요.”

“다른 방법이 있을 겁니다. 위자료보다 더 큰 처벌이.”


노민지가 탄식했다.


“없어요. 내가 다 찾아봤어요. 위자료가 최선이에요. 우리나라 법이 그래요.”


내가 욕설을 씹었다.


“개떡 같은 법.”

“법정에서 당신 와이프를 최대한 괴롭힐게요. 내 남편도. 물론 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요. 나를 믿어봐요.”


노민지는 재벌가의 외동딸이다. 그녀의 집안에 재산이 수조 원이고, 부동산과 주식이 한가득이며, 친적 중에 검사, 판사, 장관이 수두룩하다. 그녀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로 충분한가?

바람을 피운 대가가 겨우 그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이혼 소송 위임장에 서명했다.


-


괴롭다.

무력하다.

비참하다.


나는 분노와 위임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탄신도시의 방 3개짜리 아파트. 보증금 1억에 월세 90만 원. 내 소득 수준으로는 상당히 무리였지만 와이프가 넓은 집을 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차.

이제는 와이프 아니지. 이혼할 거니까.

전처, ex-와이프, 혹은 최서아 씨라고 불러야 한다. 가장 적합한 호칭은 썅년이다.


“썅년. 썅놈. 개새끼들.”


나는 컴퓨터를 켜고 대화형 인공지능 사이트에서 아내의 내연남을 검색했다. 개새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다.

정보가 나왔다.


[이름 : 황근철]

[경력 : 황근철 부회장은 한국 최대의 재벌 대기업 ‘황제 그룹’의 후계자입니다. 그는 1983년에 황제왕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소유의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황제 전자 경영본부장, 황제 백화점 상무이사를 거쳐 현재는 황제 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재산 : 황근철 부회장은 약 2조 원 규모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동산과 현금을 포함하면 자산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체 : 황근철 부회장은 키 184센티미터, 몸무게 90킬로그램의 당당한 체구이며, 넓은 어깨와 근육질의 몸매,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형 얼굴···]


에라이 씨발.

다 가졌네.

욕이 저절로 나온다.


황근철은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 세련된 패션감각, 미국 시민권까지 여자들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한국 여자 중에서 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화난다.

다 가진 놈이 뭐가 아쉬워서 남의 아내를 건드리나?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기쁨을 못 느끼나? 재벌집 자녀들이 마약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가?


빡친다.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안 되겠다. 저 자식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뭐지?


“택배요.”


택배기사 목소리다.

당황스럽다. 웬 택배? 나는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현관문을 열고 바깥을 살폈다. 문 앞에 자그마한 상자가 놓여 있다. 종이 상자 윗면에 스티커가 보인다.


[받는이 : 김창식님]

[보낸이 : 지구 퐁퐁남 연합]


지구 퐁퐁남 연합.

이름 참 재수없다. 퐁퐁남이라니. 여자에게 이용당한 남자라니. 내가 퐁퐁남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벌써 세상에 소문이 다 퍼졌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내 개인정보를 해킹했나?

퍽킹 차이나!


나는 분노에 사로잡혀 상자를 거칠게 뜯었다.


- 찌이익


내용물을 꺼냈다. 손가락 크기의 약통이다. 불투명한 용기 안에 연고가 들어 있다. 용기 겉면에 제품명이 써 있다.


[탈모 치료제 자라지오]


시부럴.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이토록 무섭다. 내가 원형탈모에 시달리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쇼핑몰에서 탈모 치료제를 샘플로 보냈다. 테크노 디스토피아가 현실로 다가왔다. 심지어 쇼핑몰 이름까지 내가 처한 상황에 맞추었다.


나는 문득 광기에 휩싸였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사고력을 마비시켰다.


“크크크. 좋다. 발라준다. 외간 남자한테 와이프를 빼앗기고도 찍소리도 못하는 병신 찐따 퐁퐁남 새끼는 생체실험에나 어울리지. 킬킬킬!”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연고를 짜서 원형탈모 환부에 덕지덕지 발랐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술을 사와 진탕 마신 뒤 침대에 뻗었다.


-


아침이다.

눈을 떴다.


“으으···”


머리가 아프다. 숙취가 올라온다. 오줌이 마렵다. 오늘 연차를 내서 다행이다. 어차피 이런 정신상태로는 출근해봤자 일 못한다.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 쉬이이


찬물로 세수했다.


“어푸어푸.”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삶에 찌든 중년 남성이 눈앞에 있었다. 남성은 최근 극심한 스트레스로 옆통수에 원형탈모가 발생···


어라?


탈모가 사라졌다. 어젯밤 연고를 바른 부위에서 머리털이 까끌까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경악했다.


“설마··· 탈모 치료제가 진짜였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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