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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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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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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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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퐁퐁남 연합(2)

DUMMY

탈모 환자가 전세계에 수억 명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탈모 치료 시장은 약 천억 원 규모다. 시장을 세계로 넓히면 20억 달러에 달한다. 탈모인은 모발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탈모 치료제는 황금 광맥이다.


그런데도 인류 문명은 탈모 치료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의학이 사람 유전자를 잘라 붙이는 수준까지 발전했는데도 탈모는 여전히 불치병이다.


나는 연고를 살폈다. 옆통수의 땜빵도 들여다보았다.

착시가 아니다. 동전 크기의 빈 공간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었다.

자라나는 머리.

하룻밤 사이에 이럴 수 있나? 사람 머리카락이 무슨 죽순인가?


탈모 치료제의 효과는 그야말로 강력했다.

이거 만들어서 팔면 돈 엄청 벌 수 있다.


나는 상자에 동봉된 설명서를 읽었다. 설명서에는 ‘지구 퐁퐁남 연합’을 소개하는 문구와 탈모 치료제 제조법이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퐁퐁남 여러분! 지금껏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아내에게 배신당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심하세요. 저희가 여러분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자에게 상처받은 남자의 마지막 희망! 지구 퐁퐁남 연합과 함께하세요. 문의사항은 이메일 rageagainstthebitch@...]


지구 퐁퐁남 연합.

알고 보니 좋은 놈들이었다.


다만 내 문제가 탈모 치료제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나는 복수를 원한다. 나를 배신한 와이프와 나에게 모욕감을 준 재벌3세 놈팽이를 처벌하고 싶다. 내가 겪은 아픔만큼 그들도 아파야 한다.

원형탈모는 나중에 치료해도 된다.


돈은 관심 없다. 강남에 집을 사고 독일제 스포츠카를 몰게 되어도 머릿속 고통스러운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수치심은 죽는 날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배부른 퐁퐁남으로 사느니 배고픈 상남자로 죽겠다.

복수.

리벤지.

그들은 나를 엿먹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나는 노민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노민지는 NK그룹의 계열사인 NK화학에서 신사업발굴팀을 이끌고 있다. 능력이 뛰어나서 젊은 나이에 팀장을 단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그룹 회장이라서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NK빌딩에 도착했다.


건물 로비에 그룹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NK그룹은 석유화학 기업에서 시작해 첨단소재, 제약, 생활화학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자회사 수십 개를 가진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NK그룹의 최대 히트상품이 로비 한가운데에 거대한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퐁퐁]


주방세제.

설거지의 친구.

NK그룹은 퐁퐁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민지가 나타났다.


“창식 씨.”


그녀는 키가 크고 날씬하다. 부잣집에서 좋은 것만 먹고 자란 티가 난다. 어머니에게 미모를 물려받아 얼굴도 예쁘다. 노민지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인생을 풍요롭게 살았을 것이다. 미남 미녀는 하루하루가 즐거운 법이다.

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불러내서.”

“무슨 일인데 그래요? 설마 이혼 소송 포기하려는 건 아니죠?”


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절대 아닙니다. 나는 그 인간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만 위자료 5천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너무 미지근합니다.”


노민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커다란 눈에 씁쓸함이 깃들었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법이 그렇다고. 여기가 미국이라면 황근철한테 재산 절반은 뜯어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인은 한국 법을 따라야 해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내가 반박했다.


“꼭 법으로 복수해야 합니까?”

“그럼요?”

“돈으로 복수합시다.”

“돈?”


노민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다.

내가 속내를 드러냈다.


“황근철이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돈입니다. 재산입니다. 황제 그룹의 지분입니다. 놈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으면 놈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놈이 저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은 것처럼 말입니다.”


황근철은 재벌3세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다. 그가 가진 힘, 권력, 인기는 모조리 돈에서 나온다. 놈이 이 여자 저 여자, 모델 배우 아이돌, 백인 흑인 히스패닉 다 사귀다가 마침내 유부녀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재벌 가문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놈에게서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빼앗으면 놈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게 더 아프다.


노민지는 나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황근철 그 새끼는 황제 그룹의 후계자예요. 황제 그룹은 한국에서 가장 거대해요. 그 회사 1년 영업이익이 40조 원, 시가총액은 600조에 달해요. 황제 그룹의 연매출이 우리 NK그룹보다 다섯 배는 많다고요.”


내가 대답했다.


“나도 압니다. 뉴스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황근철하고 돈으로 싸우겠다고요? 황제 그룹을 빼앗는다고요? 불가능해요. 창식 씨가 황제 그룹의 지분을 황근철보다 많이 가지려면 현금으로 100조 원은 쏟아부어야 할 걸요.”


100조 원.

엄청난 금액이다.

내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2백만 년 가까이 모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의 수명은 100세 미만이다. 2백만 년 뒤에 인류 문명이 남아있을지도 의문이다.


“비현실적인 금액이네요.”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 물건을 이용하면 비현실을 현실에 실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머니에서 탈모 치료제 연고를 꺼냈다.


[탈모 치료제 자라지오]


노민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손에 들린 연고를 살폈다.


“이게 뭔데요?”

“탈모 치료제입니다.”

“뭐··· 뭐라고요?”


그녀가 화학 기업에서 신사업 발굴 업무를 맡은 팀장답게 탈모 치료제의 사업성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


우리는 노민지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보안이 필요했다. 그녀가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다. 대화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음악까지 틀었다. 스피커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노민지가 심호흡을 했다.


“다시 꺼내 봐요. 그게 탈모 치료제라고요?”

“그렇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연고 샘플을 건넸다. 물론 우리집 책상 서랍에 여분의 약품이 더 있다.


노민지가 포장 용기를 이리저리 살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고 내용물을 핀셋으로 건드렸다. 하얗고 끈적한 연고가 뾰족한 금속에 딸려 올라왔다.

질척.

그녀가 말했다.


“연고형이네.”

“바르면 자랍니다.”

“확실해요?””


나는 고개를 돌려 옆통수를 드러냈다. 원형탈모 환부가 노출되었다. 500원 동전 크기의 땜빵에서 머리카락이 거뭇거뭇 자라나고 있었다.

노민지가 동정했다.


“원형탈모네.”

“스트레스 때문에 생겼습니다.”

“뭐가 그리 창식 씨를 힘들게 했어요?”

“와이프.”

“아···”


그녀가 탄식했다. 공감의 표현이다. 우리 둘 다 실패한 결혼생활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노민지가 연고제 뚜껑을 닫았다.


“효능을 더 검증해야 돼요. 샘플이 너무 적어요. 통제된 환경에서 약효를 실험할 필요가 있어요.”

“이해합니다.”


그녀가 길쭉한 약품 용기를 어루만졌다. 용기는 립글로즈 크기다.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듯하다.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자라다니. 만약 이 약이 진짜라면 그건 정말···”


나는 노민지의 감정에 동조했다.


“대박입니다.”

“미친 거죠. 바르는 탈모 치료제. 출시하자마자 세계 시장을 정복할 거예요. 전 세계의 탈모 환자가 우리 제품을 원할 거예요. 미국 대통령부터 아프리카의 독재자까지 한국을 찾아오겠죠. 제발 그들 나라에 수출해달라고.”


비즈니스 우먼이 달콤한 꿈을 꾸었다. 의약품으로 세계정복. 전세계에 NK그룹의 깃발이 휘날리는 광경.

내가 물었다.


“수익은 얼마 정도 예상합니까?”


노민지가 확언했다.


“기본이 조 단위죠.”

“그 돈으로 황제 그룹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복수심을 표출했다.

노민지가 나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창식 씨는 진심으로 복수를 원하는군요. 그래서 이런 귀중한 물건을 우리 회사로 가져왔고요.”


나는 그녀의 추측을 인정했다.


“당연합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약품을 제조하지 못하니까요. NK화학은 복수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아주 적합하죠.”

“당신이 돈을 원했다면,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겠죠.”

“글로벌 제약 회사를 찾아갔을 겁니다. 일라이릴리, 노바티스, 화이자.”


글로벌 제약 회사는 나의 복수를 돕지 못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윤 창출이다. 탈모 치료제로 벌어들인 돈을 황제 그룹의 지분을 구매하는 데에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반면 노민지는 동기가 충분하다.

그녀 또한 황근철의 만행에 치를 떨고 있다.

방법만 있다면 복수에 가담할 것이다.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노민지가 계획에 동참했다.


“좋아요. 복수할게요. 탈모 치료제로 돈을 벌어서 황제 그룹의 지분을 살게요. 그리고 황근철을 CEO 자리에서 쫓아내는 거예요. 재벌 3세의 몰락. 상상만해도 짜릿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노민지가 어림잡아 계산했다.


“10년 정도요.”


내가 집무실 벽을 때렸다. 벽에 걸린 미술작품이 덜컹 흔들렸다.


“너무 늦습니다.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10년이라니. 그 사이에 우리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복수는 물거품이 됩니다. 나는 최서아와 황근철이 세상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꼴을 두 눈으로 똑똑이 감상하고 싶단 말입니다.”


나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재벌3세의 집무실에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노민지가 동의했다.


“나도 그래요. 10년은 너무 늦네요.”

“더 빨리 합시다.”

“방법을 찾아볼게요.”

“나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녀가 묻는다.


“그런데 창식 씨.”

“네?”

“대체 이런 엄청난 물건을 어디에서 구했어요? 직접 개발했어요? 창식 씨는 사무직이잖아요.”


나는 문과 출신 회사원이다. 황제 온라인커머스에서 고객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의약품 개발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하지만 동지가 있다.

나에게 복수의 길을 열어준 사람들.


“동지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동지?”


내가 밝혔다.


“퐁퐁남 동지.”


-


나는 노민지와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만간 NK화학의 연구소가 탈모 치료제의 효능을 철저하게 분석할 것이다. 약품의 성분, 분자 구조, 부작용까지 알아낼 것이다.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진행할 것이다. 미국 FDA와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가를 요청할 것이다.


신약은 시장에 내놓기까지 한참 걸린다.

노민지가 복수에 10년이 걸린다고 이야기한 것이 절대 과장은 아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하지만 나는 씨발 군자가 아니다. 소인배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퐁퐁남이다. 복수는 빠르고 강할수록 짜릿하다.

10년이나 기다릴 수 없다.

군자금을 더 빨리 모아야 한다.

황근철을 어서 쓰러뜨려야 한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퐁퐁남이다.


내가 지구 퐁퐁남 연합의 이메일 주소로 SOS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퐁퐁남 김창식입니다. 탈모 치료제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도움이 더 필요합니다···]


이메일을 전송했다.

문구가 절절하다.

답장이 금방 왔다.


[발신 : 지구 퐁퐁남 연합]

[내용 : 김창식님의 요청이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저희 요원을 현장으로 파견하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펑


하얀 증기와 함께 방 안에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얗고 얼굴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서양인.

북유럽.

영혼인가?


북유럽 남자의 영혼이 말했다.


“반가워요, 김창식 동지. 나는 알프레드 노벨이라고 해요. 나는 살아생전에 유명한 발명가였고, 간사한 여자에게 이용당한 퐁퐁남이기도 했죠.”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이 나를 돕기 위해 한국으로 찾아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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