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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

퐁퐁 후 재벌집 기둥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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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작품등록일 :
2024.07.31 12:55
최근연재일 :
2024.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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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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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퐁집 기둥서방(2)

DUMMY

나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팠다.

결혼하자고? 방금 이혼했는데 결혼을 또 해?

내가 물었다.


“민지 씨 혹시 결혼 중독입니까?”


노민지가 부정했다.


“아니에요. 나는 결혼 싫어요.”

“그런데 왜 이혼하자마자 다시 결혼합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우리 아직 그런 사이 아닙니다.”

“창식 씨가 원했잖아요. 내 목에 족쇄를 걸라고.”


나는 이해했다.

결혼이 족쇄다.


부부는 경제공동체다. 민법에 그렇게 적혀 있다.

민법 제826조에 따르면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먹여살리고 아내도 남편을 먹여살려야 한다.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

아내가 가계를 책임진다.

반대로 아내가 돈을 못 번다?

남편이 의식주를 꾸린다.

둘 다 거지다?

그래도 서로 꼭 끌어안고 힘든 시기를 버텨야 한다. 부부는 믿음으로 산다.


노민지가 설명했다.


“부부는 재산을 공유해요. 아내 돈을 남편이 써도 되고, 남편이 아내 돈을 써도 돼요. 남편이 아내한테 비싼 선물을 사줬다고 해서 뇌물죄로 잡혀가거나 세금을 떼이지 않아요.”


나는 인정했다.


“나도 잘 압니다. 전처가 내 카드 엄청 써댔으니까.”

“남편이 아내의 경제상황을 들여다볼 수도 있죠. 서로 남남이라면 이러한 행위가 불법이 되겠지만 부부사이에서는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아요. 내 남편이 무슨 일로 돈을 버는지 와이프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기꾼일 수도 있는데.”

“물론입니다.”


그녀가 혼인신고 창구를 가리켰다.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어요. 부부는 의무적으로 동거해야 하니까.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니까. 한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을 속이기는 힘들죠.”

“전처는 나와 같이 살면서 나를 속였습니다.”

“결국은 들켰죠.”


노민지의 제안은 파격적이다. 그녀는 재벌이다. 재벌은 가진 것이 많다. 그러니 노민지와 내가 결혼하면 내 쪽이 훨씬 이득이다.

재산.

지위.

백화점 VIP.


나는 그녀의 사생활도 감시할 수 있다. 몇 시에 나가서 몇 시에 들어오는지, 오늘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사고 누구를 만나는지 전부 파악 가능하다. 물론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교묘히 감시해야 한다.

엿보기 구멍.

배신은 힘들다.


내가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노민지가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히 괜찮죠. 한 번 해본 결혼, 두 번을 못하겠어요?”

“당신에게 재혼녀라는 꼬리표가 붙을 겁니다.”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남들 눈치 보면서 살 것도 아니고.”


자신감 넘침.

노민지는 복수에 인생을 걸었다. 재혼을 한다고 그녀의 커리어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감히 누가 재벌집 딸을 흉보겠는가? 다른 재벌가에도 이혼한 여자 많다. 그녀들도 남들 눈치 안 보고 연하의 미남 배우와 잘만 사귄다.


물론 나는 미남 배우가 아니다.

연애의 목적도 없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사랑으로 엮인 사이가 아니라 복수심으로 뭉쳤다. 사업 파트너, 프로젝트 팀, 혁명 동지, 전우다.


내가 수락했다.


“좋습니다. 결혼합시다.”


우리가 동맹 조약을 맺었다.


-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노민지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와이프를 빼앗아간 남자의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노민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다. 나는 아무데서나 지내도 된다.


알프레드 노벨이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물었다.


“상간남의 아내와 결혼했다고요? 놀랍네요. 한국의 문화인가요?”


내가 강하게 부정했다.


“한국 문화 아닙니다. 제가 특이한 겁니다.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굴러갔습니다.”


노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재미있네요. 이런 경우는 스웨덴에서도 못 봤어요.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죠.”


스웨덴 노총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싱글싱글 웃더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창식 동지가 새 아내의 집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내가 부자인 모양이네요.”


나는 끄덕였다.


“엄청난 부자입니다. 황근철보다는 못하지만요.”

“평범한 남자가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 처가에 얹혀 산다. 이런 경우를 데릴사위라고 부르죠?”

“그런 단어도 아십니까?”


노벨이 미소 지었다.


“이승을 떠돌 때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내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시네요.”

“별것 아니에요.”

“다만 저는 데릴사위가 아닙니다. 부잣집 대감이 마음에 드는 청년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집안으로 데려오는 것을 데릴사위라고 부르는데, 저는 새 와이프의 부친을 만나보지도 못했거든요. 아마 그 분은 제가 누군지도 모를 겁니다.”


노벨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처가에서 허락한 결혼이 아니니 데릴사위라 부를 수 없네요. 그렇다면··· 기둥서방?”

“노벨 동지.”

“하하하! 농담이에요. 창식 동지는 기둥을 새것처럼 보존하고 있죠.”


새것처럼이 아니라 새것이다.

나이를 200살 가까이 먹은 노인네가 저런 장난을 치다니 당황스럽다. 북유럽식 농담인가? 아니면 저 끔찍한 유머감각 때문에 여자한테 맨날 차였나?


저녁이 되었다.


나는 짐정리를 금방 끝냈다.

가져갈 물건이 별로 없었다. 세면도구, 면도기, 수건, 옷가지, 신발, 휴대전화 충전기와 우울증 치료제. 나머지 것들은 여기에 두고 갈 생각이다.


노벨도 시골집에 남는다.

서울 중심가의 아파트에서 화학 실험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그에게 사과했다.


“저 혼자 떠나서 죄송합니다. 동지가 외로울까 봐 걱정입니다.”


노벨이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는 영혼이에요. 어디든 갈 수 있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다행입니다.”

“당분간은 발명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내가 신제품을 얼른 개발해야 창식 동지가 복수를 더 빨리 완수하죠.”

“크흑···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격했다. 위대한 발명가가 열과 성을 다해 나를 돕는다. 영광이다. 하늘이 내린 기회다. 퐁퐁남의 연대는 물보다 진하다.


하루가 지났다.

날이 밝았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다.


대문 앞에 검은색 중형 세단이 멈추어 있었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세단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키가 크고 체형이 단단하며 눈빛이 또렷하고 턱선은 날렵했다. 중년의 나이에도 육체를 철저하게 관리한 듯했다.


내가 물었다.


“택시?”


검은 정장의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NK그룹 비서실의 장용식 실장입니다. 회장님께서 그쪽을 찾으십니다.”

“회장님이요?”

“창식 씨의 장인어른이 되겠죠. 물론 회장님께서는 결혼을 허락하신 적이 없지만.”


이럴 수가.

노민지의 아버지가 사람을 보냈다. NK그룹의 회장 노학구. 그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리더라니.

재벌가 회장이 늦둥이 막내딸을 얼굴도 모르는 놈에게 순순히 넘겨줄 리가 없지.


내가 무의미한 저항을 시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택시를 불렀거든요. 이삿짐부터 옮기고 나서 비서실에 연락 드릴게요.”


비서실장이 차가운 태도로 말했다.


“택시는 오지 않습니다.”

“예?”

“돈을 주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거 불법 아니에요?”

“우리가 합법적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합니까?”


덩치 큰 남자들이 나를 둘러쌌다. 다들 험악했다. 격투기 선수, 전직 특수부대원,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 분명했다.

퇴로 차단.

독 안에 든 쥐.


나는 세단에 탑승했다.


-


노학구 회장은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살고 있다.

성북동은 예전부터 부유층 거주지로 유명했다. 길상사로 올라가는 언덕길에 대사관저와 고급 저택이 즐비하다. 대기업 회장, 유명 연예인, 대형 로펌 대표가 한데 모여 산다. 길은 좁고 대중교통은 없으며 담벼락과 자동차가 거대하다.


나는 노학구 회장의 자택에 도착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끌려왔다.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들이 자동차 뒷좌석 좌우에서 나를 압박한다. 숨쉬기가 불편하다.


차 문이 열린다.

비서실장이 말한다.


“내리세요.”


나는 내렸다. 주차장이다. 계단을 올라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광대한 거실 한가운데에 사나운 노인이 앉아있다.

노학구 회장.

NK 그룹의 지배자.

분노한 아버지.


그가 말했다.


“네놈이냐? 내 딸을 농락한 게?”


비서실장이 나를 밀쳤다. 나는 회장 앞에 홀로 섰다. 거실이 너무 넓다. 광장공포증이 생길 정도다. 침이 마르고 목이 타고 위장이 꽉 조인다.

재벌가 수장.

자본과 권력.

노학구 회장은 나 같은 놈 따위 드럼통에 담아 서해바다에 빠뜨릴 수 있다.


내가 격렬하게 부정했다.


“저는 회장님의 딸을 농락하지 않았습니다.”


노학구 회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면?”

“저희는··· 사람 대 사람으로 순수하게 만났습니다.”


회장이 비웃었다.


“하! 웃기는 소리. 네놈이 뭐가 잘났다고 내 딸을 만나? 너처럼 생긴 놈은 이 세상에 조약돌만큼 널렸어.”


팩트가 가슴에 꽂혔다.

나는 평범하게 생겼다. 길거리 흔남이다. 잘생겼다는 칭찬을 엄마한테만 들어보았다. 그 마저도 요즘은 못 듣는다. 엄마가 나이를 먹고 진실에 눈을 뜬 탓이다.


노학구 회장의 지적은 정확하다.

재벌집 딸이 나처럼 평범한 놈을 만날 이유가 없다.

노민지는 미인이다. 배우, 모델, 꽃미남 트레이너가 그녀 뒤에 줄을 설 것이다. 미국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 금융맨이 그녀에게 구애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회장이 추궁했다.


“솔직하게 불어. 우리 민지한테 어떻게 접근했어? 약점을 잡았나? 협박했어? 요즘 유튜브에 그런 놈들 많더만.”


나는 무죄를 주장했다.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런 쓰레기들과 다릅니다. 오히려 민지 씨가 저에게 먼저 찾아왔습니다.”

“헛소리.”

“정말입니다.”

“내 딸이 너 같은 놈팡이를 왜 찾아?”

“사실 저는···”


내가 침을 삼켰다.


“민지 씨 전 남편의 상간녀의 남편이었습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전 사위의 내연녀의 전 남편.

노학구 회장이 눈알을 굴리더니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섰다.


“뭐야 임마? 이혼남이라고!”


망했다.

최악이다.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오점이다. 요즘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이혼을 범죄 취급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억지로 이어갔다.


회장은 옛날 사람이다.

칠순이다.

당연히 이혼에 부정적이다. 한 번 갔다 온 남자를 사위로 들일 생각이 없다.


회장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기를 찾는 듯했다. 이 정도 부잣집이면 샷건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내 당장 저 놈을···”


큰일났다.

살아야 한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저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여자 속이는 능력?”

“그게 아니고···”


회장이 골프채를 들었다. 아이언이다. 타격감이 우수하다.


“엎드려.”

“예?”

“한 대에 천만 원이다.”


그가 지갑에서 백지수표를 꺼내 금액 칸에 숫자를 적었다.

10억.

100대 값.

수표가 내 발 앞에 떨어진다.


나는 호소했다.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부족해? 알았다. 두 장이다.”

“제발···”

“거부하면 너는 죽는다.”

“아아···”


저택 현관문이 열렸다.


- 벌컥


노민지가 뛰어 들어왔다.


“아빠! 그만해요.”


회장이 골프채를 우뚝 세웠다.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차가웠다.


“말리지 마라. 네가 자초한 결과다.”

“창식 씨는 아무 잘못 없어요.”

“감히 내 딸을 건드린 것이 이 놈의 잘못이다.”

“아니요. 잘못은 아빠가 저질렀어요. 아빠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뭐야?”


노민지가 항변했다.


“지난번에는 아빠 마음대로 나를 결혼시켰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결혼할 거예요. 내가 원하는 남자랑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 거라고요.”


회장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정말 이 놈을 원한다고?”

“그래요.”

“어째서? 이 놈이 뭐가 잘났길래?”

“창식 씨는···”


노민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의 장점을 떠올리는 듯했다. 하지만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평범해서 장점으로 내세울 만한 점을 찾기 힘들다.

그녀가 마침내 말을 이었다.


“남자로써 훌륭해요.”


남자로써 훌륭.

훌륭한 남자.

대체 무슨 뜻일까?


노학구 회장이 골프채를 놓쳤다. 금속 몽둥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 떨그렁


회장이 큰 충격을 받은 듯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너 설마···”


노민지가 기회를 포착했다.


“맞아요. 창식 씨는 기둥서방이에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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