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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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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545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7.12.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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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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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8쪽

베나레스의 총사(56)

DUMMY

히스파니아의 황녀는 총사대 예복을 입은 총사대 장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벨린의 갈색 눈동자와 이사벨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서로의 모습을 투영했다.

벨린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마마, 저는 소시적부터 마마를 구했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마마를 위해 봉사해왔습니다. 마마께서 앞으로 어디에 계시든 간에, 저는 마마를 위해 죽을 때까지 봉사할 것이고 마마의 적을 해치우는 사냥꾼이 되겠나이다."

"짐이 네게 원하는 것은 충성 그 이상이다."

이사벨이 말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데 란테. 너는 앞으로 짐 이외의 다른 여인과는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창녀촌의 계집들에게 정욕을 푸는 것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기질로 알고 용납할 수 있다. 허나 짐에게 향하던 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른 쪽으로 향하다가는 짐은 너를 해칠 뿐만이 아니라, 네게 마음이 향한 여인까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벨린 데 란테는 그 말을 조용히 경쳥했다. 그러나 말을 다 들은 뒤로는 전혀 당황하거나 궁지에 몰린 듯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마, 제게 그렇게 과한 성은을 배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마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일한 히스파니아 사내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허나 마마께서 잘못 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비록 마마께 충성과 봉사를 맹세한 몸입니다만은..."

놀랍게도 이사벨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네가 짐의 제대로된 성은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저는 선택할 여지가 없게 되겠지요."

벨린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사벨이 찻잔에 입을 댔다. 그녀는 중요한 결단을 내린 듯 주변을 살짝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시종들이 앞만 보고 있는 사이, 재빨리 테이블에 놓인 종이와 깃펜을 들었다.

그녀가 펜을 쥐고 작은 종이에 짤막하게 글을 썼다. 그리고는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잘 접어서 벨린에게 슬그머니 건냈다.

벨린은 그 종이쪽지를 소매 속에 숨겼다.

"그대의 충정을 이제 알겠다. 이만 돌아가보도록 해라."

이사벨이 큰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예의 사무적인 인사를 응접하고 돌아가듯 도도하게 벨린에게 한번 눈길을 훔치더니 시종의 안내를 받고 살롱을 떠났다.

벨린은 재빨리 황녀에게 절을 하고, 그녀가 살롱을 나설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황녀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롱을 나섰다.


벨린 데 란테는 아스틴 황궁의 긴 복도를 천천히 거닐었다. 어느 부분까지 이르자,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소매속에 감춰두었던 쪽지를 읽었다.

일반 평민들은 읽을 수 없도록 라투니스어로 된 내용이었다.

"살롱으로 향하는 복도의 두번째 문에서 오른쪽 세 번째 기둥을 건드리면 너를 위한 보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벨린은 종이를 집어넣고, 주변을 돌러보았다. 그는 마침 기둥들이 쭉 늘어선 복도 한 복판에 있었다. 벨린은 살롱으로 향하는 두번째 문으로 되돌아갔다. 근처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중인 황실근위대 병사들의 눈을 피해, 그는 세심한 눈초리로 기둥들을 하나 하나 살폈다.

오른쪽 세번째 기둥에서,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황실을 수호하는 독수리 문양의 발톱 부분에 네모낳게 틈이 나 있었다. 벨린은 그곳을 손으로 건드렸다. 그러다 그 네모난 틈이 스위치처럼 손놀림에 쉽게 꺼지는 것을 깨닫고는 손바닥으로 세게 눌렀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 스위치의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이 천천히 돌아갔다. 돌아간 그림의 틈새로 사람 한명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어두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통로였다.


벨린 데 란테는 그 어두운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회전문처럼 핑그르르 돌던 그림이 도로 원상태로 돌아갔다.


사방이 어두울 것을 우려했지만 별로 어둡지는 않았다. 통로의 양 옆으로 희미한 빛을 발산하는 구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변을 밝게하는 기계의 일종으로 보였다. 마법을 응용한 저런 식의 장치는 고가인데다 설치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좀체 쓰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 장치는 오래되기까지 했다. 대략 기사와 마법사가 전쟁터에서 활약하고는 했던 2~300년 전 쯤에 만들어진 그런 마법장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벨린 데 란테는 주저없이 통로의 반대쪽으로 나아갔다. 그는 황녀의 의도를 진작에 파악한 뒤였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몇 분만에 반대편 문에 도달했다. 근처에 레버가 있었다. 벨린은 잠시 무언가 짐작했다는 듯 멈춰 섰다가 레버를 힘껏 당겼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번에도 큰 벽그림이 핑그르 돌아가서 입구를 여는 식이었다. 입구에서 빛이 쏟아졌다. 갑작스레 쏟아진 빛때문에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다."

문 밖으로 걸어나온 벨린이 고개를 돌렸다. 보랏빛 드레스 차림의 이사벨 황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시종도 시녀도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들이 있는 방 자체가 바깥과는 완전히 격리된 듯한 그런 곳이었다.

벨린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 안은 지저분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은 정리되지 않은 듯 물건들이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여성취향을 반영한 듯한 정교한 목제 가구들도 있었고 레이스로 장식된 침대도 있었지만 무척 소박했다. 언뜻 봐서는 여성이 기거하는 침실처럼 보였지만, 다른 곳을 살펴보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마치 다락방처럼 한쪽에 쌓여있는 여러 기구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천의 씌어진 큰 거울과 그 밑에 쌓인 먼지덮인 인형들과, 보석상자와,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탁자들... 이곳이 오랫 동안 사람의 손에 건드려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었다.

이사벨은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황녀의 그런 반응에 벨린 데 란테는 한 가지를 알아챘다. 까살라에서의 밀회 이후로, 그녀와 이렇게 여유있는 시간대에, 철저히 밀폐된 공간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사벨이 애써 차분한 어조로 갈색머리 총사를 맞이했다.

"짐의 '다락방'에 온 것을 환영한다, 데 란테."

이윽고 벨린은 이곳이 완전한 그녀만의 비밀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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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고민되요...수위에 관한 건데요. 사실 까살라에서의 만남 이후로, 이사벨이 벨린과 단독으로 만난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세번째인데, 이번 만남은 기존의 만남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큰 계기가 될 에피소드를 쓰고 있는 거죠. 한 마디로 두 사람 다 무척이나 한가하고 좀 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거나 그럴 수 있을 테고 그간의 밀회로 마음의 준비 또한 단단히 되어 있달까요..


문체를 간결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역시 군대라 그런지 글을 다듬기가 쉽지 않군요. 한번씩 다듬어줘야하는데..


아무튼 요즘 많이들 다시 보시기 시작한 것 같은데 감사하구요. 조만간 휴가 나오니 그때 좀 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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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베나레스의 총사(65) +20 08.01.24 5,394 13 13쪽
66 베나레스의 총사(64) +32 08.01.21 5,480 1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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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베나레스의 총사(60) +24 08.01.12 5,719 13 10쪽
61 베나레스의 총사(59) +22 08.01.09 5,876 14 7쪽
60 베나레스의 총사(58) +24 08.01.07 5,980 13 9쪽
59 베나레스의 총사(57) +27 08.01.05 6,521 13 11쪽
» 베나레스의 총사(56) +33 07.12.30 6,206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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