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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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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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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0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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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69)

DUMMY

이스타나 후작은 자신의 박물관 홀 가장자리에 놓은 단상에 올랐다. 악사들이 연주하던 교향곡이 그쳤다. 청중들이 조용히 하얀 가발을 쓰고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차려입은 이스타나 후작에게 눈을 고정했다. 그가 의례적으로 청중들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후작은 가장 먼저 제국의 영화를 위해 애쓰는 사회각층 인사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오늘도 본 모임에 참여해준 여러 신사 숙녀분들께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본 뮤지움 데 이스타나를 진리가 숨쉬는 토론장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으며, 아스티아노는 물론이요 제국에서 가장 큰 명성을 자랑하는 이 살롱모임을 유지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였다. 더불어 이렇게 훌륭한 살롱모임을 유지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여러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모임의 유지를 위해 지원을 부탁하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가 기나긴 후견인 명단을 열거하기 시작할 무렵, 아직 이 인기있는 살롱 모임에 자리를 잡지 못해 두리번거리던 신사들 가운데 하나가 불현듯 멈춰섰다. 그는 큰 덩치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눈에 띄일 법했지만 청중들의 박수가 이어지는 이 자리에서는 왠지 모를 소외감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는 반듯한 모자에 짙은 옥색의 어울리지도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가발은 쓰지 않았지만 머리털은 포마드를 발라 깨끗이 올렸고 그 덩치 큰 몸집을 손님들과 부딧치지 않게 어깨를 잔뜩 움추리고 있었다.

그가 불편한 얼굴로 손님들을 헤치며 벨린 데 란테에게 다가갔다.

벨린은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고,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인 손님이 눈치를 보며 의자를 끌어 벨린이 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일찍 온 다른 손님들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다른 손님들과 합석하여 테이블에 앉았지만, 벨린 데 란테의 테이블은 그의 애정행각 때문에 아무도 앉고 싶어하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벨린이 작게 말했다.

"나는 지금 타락한 피렌체 귀족일세. 조심해서 말하는 게 좋아."

"알고 있어."

알레한드로 바레스가 대답했다. 벨린이 말했다.

"그나저나, 자네 귀족 출신이라면서 이런 자리에는 끔찍이도 안 어울리는군."

"나는 이런 자리가 싫었어."

알레한드로가 투덜거렸다.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는 자리에 혼자 바보가 되기는 싫었거든.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도 될까?"

"물론."

벨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레한드로가 짐짓 이스타나 후작의 연설에 박수를 치는 척 하면서 물었다.

"자네의 계획을 듣고서 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네."

"그 자리에서 진작 물어보지 않고."

벨린이 타이르듯 말했다. 알레한드로가 변명했다.

"내가 말했지. 사람들 사이에서 바보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내가 잘못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자네들 지도를 쭉 펼쳐놓더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만 쫑알거리더라고. 아무튼, 대답해줄 수 있나."

"물론이지, 아미고."

알레한드로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나는 지금도 어째서 이 살롱 모임이 그 불온서적의 유포지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 일주일 전에는 톨레도에서, 나흘 전에는 안달루시아에서, 이틀 전에는 셰비아에서 퍼졌는데, 그래서 오늘은 아스티아노라는 건가? 그리고 하고많은 아스티아노의 살롱 가운데 왜 하필이면 이런 곳이지?"

"규칙이 있다네."

벨린이 설명하듯 말했다.

"톨레도나 안달루시아, 셰비아의 공통점이 뭘까?"

"글쎄. 대도시?"

"아니, 수로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들이야."

순간 알레한드로는 멍하니 있더니 어디서 한데 얻어맞은 사람처럼 얼굴을 감싸쥐었다.

"신의 이름으로 맙소사, 그렇다면 놈들의 루트는 수로란 말이군."

"놈들은 지중해와 수로가 만나는 톨레도에서 고대적에 만들어진 수로를 이용해 수작질을 벌이고 있던 거야. 자네 주안 스피놀라에게서 추기경의 교회 기사단이 놈들을 잡는데 실패했다고 들은 바 있지?"

"그 자들은 육로를 검문 검색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거군!"

"나는 자네가 그 정도로 이해력이 부족할 줄은 몰랐는데. 더구나 이곳이 놈들의 마지막 활동장소로 유력한 이유도 아나?"

"잘 모르겠는데? 그건 또 왜 그렇지?"

"이곳은 아스티아노에서 가장 활동이 왕성한 사교모임일 뿐더러, 놈들이 수작을 벌이고 도망가는데도 최적의 조건을 자랑하기 때문이지. 왜냐면, 이곳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거든."

벨린이 유쾌하게 말했다. 알레한드로는 불안하게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 어쩔 수 없겠다 싶었는지 한 가지 더 물었다.

"그래 내가 졌어. 졌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질문은 대답하기 쉽지 않을걸?"

"뭐지?"

"어째서..."

알레한드로가 한심하단 투로 자신의 어울리지도 않는 복장을 내려보며 한탄했다.

"자네는 살롱에 잠입하는데, 예쁘게 꾸민 창녀 아가씨까지 필요하고, 나는 왜 이렇게 형편없는 정장차림으로 내몰려야하는 거지?"

"그것도 아주 간단해."

벨린이 대답했다.

"나와 자네는 적들의 눈을 피하는데 서로 다른 컨셉을 썼으니까. 녀석들이 제대로 정신 먹힌 놈들이라면, 아무도 나처럼 술에 취한 듯이 창녀를 사서 부리고 다니는 몹쓸 청년귀족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 왜냐하면 이 모습은 놈들에게 모멸감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반면 자네는 정 반대로 놈들의 관심을 피하는 셈이지. 살롱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형편없는 복장 때문에 말이야."

벨린의 설명을 다 들은 알레한드로가 후회한 듯이 내뱉었다.

"자네한테 질문한 내가 바보군."

이윽고 이스타나 후작이 길고 긴 후견인 목록을 다 읽었다. 알레한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알레한드로는 못마땅 표정이었지만, 신속히 몸을 움직였다. 미리 지정된 위치에서 감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리를 다 잡지 못해 뒤에 서 있는 신사 숙녀들의 틈으로 사라졌다.

후작이 살롱의 자리를 빛내줄 첫번째 손님을 소개했다.

"여러분, 얼마 전 새로운 항해기술을 발견하여 프란쉐 왕국의 대학과 황실에서 큰 호평을 받은 마법박사 무슈 딕비를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박수 갈채가 시작되었다. 구불구불한 가발을 쓴 프란쉐 사내가 단상에 올랐다. 그는 제국과 인접한 프란쉐 왕국의 마법사답게 우아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부드러운 레이스들이 달린 옷차림에, 한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제국 사람들이 프란쉐 사람들에게 가진 전형적인 인식을 다 가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말투에, 마른 몸매와 갸름한 뺨, 우아하고 세련된 옷차림, 더불어 꾸민듯한 매너까지. 딕비가 청중들에게 정중히 절을 했다. 그의 조수들이 단상 위로 테이블과 보자기로 감싼 작은 상자를 꺼내어 보였다.

딕비가 우아한 말투로 혀를 굴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히스파니아어로 여러 신사숙녀 여러분들께 제 업적을 소개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법기술의 발달로 개발된 새로운 항해기술에 대한 것이올시다."

딕비가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항해기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업적이 공명마법을 이용한 항해상의 새로운 경도측정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의 최신 마법기술을 소개하기 전에 이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게 된 계기가 된 사례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가령 항해자들이 배를 타고 나갈 경우 경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여 큰 낭패를 본 사례들이었다. 경도측정이 잘못 되어 히스파니아 신대륙 탐험가들이 벌인 여러 낭패스런 상황들을 시작으로 20년 전 빌랜드 함대가 경도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여 어느 대단히 위험한 해역에서 모조리 난파당한 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프란쉐 왕국에서 온 그 마법사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반면 벨린 데 란테는 사방을 은밀히 주시했다. 이 계획을 수립하게 된 그의 추리대로라면 불온서적을 유포한 자들은 조만간 저 단상에 올라 자신들의 논리를 설명할 터였다. 그때 잡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이 자리에 이 살롱으로 나타나 줄 것일까. 벨린 스스로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그의 육감대로라면 무언가 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렇고 황녀를 심려케한 불온서적을 뿌린 자들은 어떤 놈들일까.

벨린 데 란테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단상 근처에서 후작이 발표자들을 위해 준비해둔 테이블 사이에서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징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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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uvia.egloos.com블로그를 운영합니다. 많이 와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네요. 퀼리티도 좀 아쉽고요(제 글의 약점은 제가 잘 알죠...). 스토리도 나중에 시간나면 좀 세밀히 보강해야겠어요..;; 헌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행정병이다보니 별 수 없네요.


암튼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면, 소설 상 등장하는 무슈 딕비라 하는 프란쉐사람(그저 프랑스일 뿐이죠. 쩝)은 역사상에 실제 존재했던 양반이랍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전날의 섬에도 등장하는 일화인데, 공명약인가 뭔가로 사람을 사기쳤어요(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검색을 해보시길)


또... 다음 탄에 옛날에 제가 까투리(-_-)라는 별명을 지어준 캐릭터가 등장할 텐데. 이 캐릭터, 벨린 데 란테에게 어떻게 호되게 당하는지 앞으로 아주 재미있을 듯.


아무튼 글에 목말라하는 독자분들.. 설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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