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보 항
사세보 항
‘어? 저것들이 왜 저래?’
코끼리 축사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던 정훈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코끼리 축사 옆에 있는 원숭이 축사 우리 안의 일본원숭이 여남은 마리가 땅바닥에 나뒹굴어있다.
‘원숭이가 땅바닥에서 잠자나?’
발자국소리에 놀라 괴성을 지를까 봐 조심해서 접근했었다. 그래도 불과 4~5미터 거리인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니.
-탁탁
잠들었나 싶어 손바닥으로 조그만 소리를 내봤다. 모두 다 죽은 듯이 꿈쩍도 않는다.
뭔가 섬찟하고 불길한 예감이 든다.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우리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봤다.
“허걱!”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원숭이들 머리통이 으깨지고,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갈라진 배 밖으로 내장이 삐져나와 피범벅이 된 채 널브러져 있다.
끔찍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누가 이랬어?’
원숭이 우리의 철망 울타리가 뜯겨 나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전혀 예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잽싸게 몸을 숙이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고, 수상한 그림자도 찾을 수 없이 조용하다.
‘혹시 나처럼 동물을 상대로 스킬을 높이려는 어떤 능력자가 왔던 건 아닐까?’
축사 위 공중에 원숭이 놀이용 줄사다리도 걸쳐있다. 침입자를 피해서 도망칠 수 있는 장소다.
체중이 수십 킬로그램은 돼 보이는, 열 마리가 넘는 원숭이를 저렇게 전부 도망도 못 치게 일시에 처치했다면 분명 보통내기는 아닐 것이다.
‘설마! 그런 능력자는 아직 나 밖에 없을 텐데?’
여기는 일본 규슈 나가사키 현에 있는 사세보 동물원이다.
정훈은 조금 전에 여기서 동쪽으로 3Km 거리에 있는 사세보 항을 정탐하고 오는 길이다.
사세보 항에는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 중에 세 번째로 큰 사세보 지방대 기지가 있다.
기지에는 배수량 9천톤인 공고급 이지스함 3척이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 10대의 대잠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헬기모함과 호위함, 군수지원함 등도 정박해있다.
사세보 항은 미7함대의 제2주둔지 이기도 하다.
미 해군 와스프급 강습상륙 헬기모함 ‘에섹스’를 중심으로 제7원정타격군이 편성되어있다.
만재 배수량 4만톤급인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은 병력을 적진의 해안에 상륙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군함으로 준 항공모함이다.
승무원 1천명과 해병 2천명이 탑승하는 ‘에섹스’ 내부에는 상륙정 4척, 수륙양용 장갑차 25대 등이 탑재 가능하다.
갑판에는 병력 32명과 화물 9톤을 동시에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오스프리 수송기와 해리어 수직이착륙기, 바이퍼 공격헬기, 대잠수함 헬기 등 42대의 헬기를 탑재할 수 있다.
사세보 항 페리 터미널에는 투어 유람선이 있다. 미군과 자위대 함정, 미해군 주둔지를 거쳐 민간인 선착장을 둘러보는 관광 유람선이다. 요금만 내면 아무나 탈 수 있고, 정박해있는 군함 근처까지 가서 육안으로 자세히 구경할 수 있다.
항구 주민들이 거의 관광수입으로 먹고 살다 보니, 정작 기지의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일본열도의 남서부 끝에 위치한 이 사세보 항은 부산에서 불과 200여 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만약 한국과 일본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 거제도에 있는 정훈의 구국대열이 맨 먼저 공격할 타깃인 일본 해상기지이다.
그래서 정훈은 실전에 대비해 치밀한 작전계획을 짜기 위해, 오늘 낮에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사세보 항을 둘러보았다.
한밤중인 지금은 거제도 장목항 본부로 돌아가는 중이다.
거제도에서 사세보까지 220Km를 정훈은 드론 잠수정을 타고 왔다.
드론 잠수정은 수중에서도 시속 40노트의 속력으로 달리고, 수면에서는 공기부양정처럼 반쯤 떠서 시속 80노트로 달릴 수 있다.
80노트면 1노트가 1.852Km이니까 시속 148km나 돼서, 웬만한 고등학교 야구부 특급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 속도에 버금가는 속력이다.
잠수와 부양을 적당히 혼합해서 장목항에서 사세보 근처 해안까지 두 시간 만에 도착했었다.
이 사세보 동물원 서쪽 1km지점, 주상절리 절벽의 해안가 바위틈에 잠수정을 은닉시켰다.
그곳 가까이에 신사(神社)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낮에도 잘 접근하지 않는 조용한 장소이다.
귀대하는 길에 이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상대로 스킬을 올릴 참이었다.
정훈은 지금 울프 행성 도래인 조상님이 준 스마트팔찌를 차고 있다.
스마트워치처럼 생긴 팔찌를 차면 다리 근력이 보통의 다섯 배 정도로 증가한다.
그래서, 제자리에 선 채로 서전트 점프를 해도 3m쯤은 거뜬히 뛰어오를 수 있고, 100m도 10초 이내로 주파할 수 있다.
더불어, 도래인 조상님이 며칠 전에 선물로 하사한 ‘배틀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다.
이 배틀 드레스는 일종의 전투복인데, 지구보다 200년쯤 앞선 울프 행성의 최첨단 기술과 재료로 만들어진 아주 멋진 컴뱃 슈츠이다.
후드처럼 달려서 자동으로 씌워지는 헬멧의 ‘상태창’에서 필요한 무기도 불러내어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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