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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45. (수필) : 내 젊음 강물처럼 흘러

 

내 젊음 강물처럼 흘러

 

삼일 이재영

 

강물에 벚꽃 꽃잎이 희끗희끗 떠내려온다.

고인 듯 느리게 흐르던 남강 물줄기가 큰 바위를 만나자 밀어낼 듯이 휘몰아 감고 돈다.

서른 개의 아름드리 기둥 위에 우뚝 선 촉석루, 그 아래 비스듬히 깎아져 내린 암벽 끝, 폴짝 뛰면 건널 거리에 붙어있는 의암(義巖)이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열아홉 살 기생 논개(論介)가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승전 연회 술에 취한 적장을 유인하여 꽉 껴안고 물에 빠져 순절했다는 바로 그 바위다.

 

4백여 년 전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을 지키던 조선 군사와 민간인 6만여 명이 몰살당하였다.

밤낮없이 버티며 7일째 되던 날, 오후에 비가 내려 동문의 성벽이 무너지자, 왜군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단다.

성을 함락한 왜병은 그 많은 시체를 다 어떻게 처리했을까?

땅속에 파묻지는 못하고 화장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젖은 시체를 태울 만큼 충분한 마른 장작을 어디서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방도는 단 하나, 저 흐르는 강물 속에 던져넣어 수장시키는 방법 외에 별도리가 있었겠는가?

그때 왜병까지 포함해 8만 구에 가까운 송장에서 흘러나온 선혈로 이 남강은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양력 7월 말이라 수심이 깊어서 쉽게 떠내려가기는 했겠지만, 남지를 거쳐 낙동강 하구에 이르기까지 몇 날 며칠을 붉은 강물 위에 시신이 둥둥 떠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을 것이다.

 

대학교 새내기 때 낙동강 하구 하단에서 거룻배를 타고 을숙도에 건너간 적이 있다.

키를 넘는 크기의 넓은 갈대밭에 놀랐고, 미로 같은 갈대 숲속을 바스락거리며 거닐 때, 갈잎을 스치는 바람결에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쩌면 진주성 남강에서 떠내려간 시신들이 갈대가 되어 세세연년 피어나고, 원한에 사무쳐 승천(昇天)하지 못한 영혼들이 구천(九泉)을 떠돌며 울부짖는 비명을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진주에서 초, , 고교를 다녔다.

한여름엔 자주 남강에서 목욕했는데, 알몸으로 가만히 물속에 앉아있으면 송사리 떼가 잔뜩 몰려왔다. 비누칠한 수건으로 몸을 훔치고 있어도 송사리들이 그곳을 물어뜯어 꽤나 아팠다.

강둑으로 둘러싸인 시 외곽의 신안동에 살았고 집에서 바라보면 남강까지 천 미터도 넘는 거리의 드넓은 벌판이 모두 밭이었다.

어쩌다 큰 태풍이 오면 그 넓은 들판이 홍수에 잠겨 며칠씩 누런 바다로 변했다.

물이 빠지면 상류인 경호강에서 실려 온 비옥한 황토에 덮인 들판은 옥토(沃土)로 변했고, 온갖 채소와 과일을 풍성하게 생산해내었다.

남강까지 멱감으러 가는 길가의 밭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토마토와 노랗게 잘 익어 단내를 풍기는 참외는 당연히 서리 대상이었다.

돌아올 때는 강변의 큰 포도원에서 싱싱한 포도 몇 송이를 싼값에 사 와서 가족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들판 길을 걸어오면서 포도 한 송이를 야금야금 다 먹고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 적도 있다.

내 몸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저 남강물이 키운 셈이다. 어쩌면 내 몸의 세포 어딘가에 남강물의 흔적이 어떤 기질로든 남아있음이 분명하다.

 

아내는 초등학교 5·6학년 한 반이었고, 대학교도 부산에서 같은 학교에 다녔다.

간호학과인 아내는 의과대학에 딸린 기숙사에 있었고, 공과대학 전자과가 있는 본교 캠퍼스에서 시내버스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라 편지를 주고받았다.

대학 첫 여름방학에 이 남강 상류 강변길을 나란히 걸으며 오붓한 데이트를 즐겼다.

파라솔 하나로 햇볕을 가리며 걷다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들어가 솔솔 부는 싱그러운 강바람에 땀을 식히고, 정다운 담소와 미소를 나누며 젊은 날의 추억을 만들었다.

겨울방학 때는 준공된 남강댐 진양호에서 노 젓는 보트를 타고 놀았다.

수몰되어 작은 섬으로 변한 호젓한 산마루에 보트를 대고 올라가, 으슥한 양달쪽에서 달콤한 미래를 약속했다.

부모님이 마흔 중반에 딸 셋 밑으로 낳은 외아들이라, 졸업하여 취직되자마자 결혼했고, 직장이 있는 천 리 밖 수원에서 살았다.

 

젊었던 시절을 객지에서 덧없이 다 보내고, 올해 고희(古稀)인 칠순을 맞아 아내와 함께 기념 여행으로 내려왔다.

결혼 5년 차인 둘째 아들 부부가 효도한다고 모시고 왔는데, 두 아들은 마흔 살이 넘었고 장남의 딸인 손녀는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여기 촉석루에 오기 전에 우리 모교 진주(중안)초등학교에 먼저 가서 둘러보았다.

11살에 만나 12살까지 같은 반에서 반장과 부반장으로 보냈던 시절을 회상하며 놀랍도록 작아진 교실을 창문 너머로 들여다봤다.

 

당신 괜찮으면 이제는 여기 내려와 살고 싶네요.”

강물을 바라보던 아내가 눈길을 돌려 생긋이 웃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내의 고운 눈동자 속에, 함께했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추억이 빛바랜 사진으로 간직되어 있나 보다.

멀리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잔잔한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서리 내린 내 하얀 머릿결처럼 은빛으로 반짝인다.




[ 남강문학협회 제14호 (2021년 겨울) 등재 ]






문피아에 올릴 사진.jpg



 


댓글 2

  • 001. Personacon 이웃별

    21.12.22 12:41

    진주성 함락의 아픈 역사와 풋풋한 청춘 로맨스가 만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저도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어요.
    사진의 네 명의 소년들 중 세하루님은 누굴까요?
    (왼쪽에서 2번째?)

  • 002. Lv.55 맘세하루

    21.12.23 19:20

    네, 이웃별님 댓글 감사합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강물 속 바위가 의암이고, 멀리 보이는 다리가 진주교입니다.
    촉석루가 있는 진주성에 꼭 한번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사진은 고교 1학년(1967년) 때고, 사진 찍느라 안 보이는 절친 포함 모두 초, 중, 고교 동창 죽마고우입니다.
    저는, 왼쪽에서 세 번째 키 크고 비단 짜는 견직 공장 사장 아들이 가져온, 공기총을 들고 있습니다.
    (대장 티를 내느라고요. 저 때는 계집애처럼 곱상하게 생겼더랍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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