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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세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39. (논픽션) : 땅굴 탐지기

 

내일이 10 1 국군의 날이군요.

며칠 전 야권 대선 토론 과정에서 후보자 간에 작계 5015’도 모르냐, 군사 비밀을 밝히면 되느냐, 하면서 설왕설래했습니다.

한반도 전면전 발발에 대비한 군사 작전계획으로 작계 5015’ 작계 5027’ 외에 작계 5055’도 있습니다.

 

북한이 파놓은 남침용 땅굴에 대해 남한 정부가 정권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북한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경계심을 높이고자 일부러 조작해 판 땅굴이라는 부정적인 주장에 동조하는 분이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 삼일 이재영이 2019년에 대구 매일신문 주최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적이 있는데,

그때 제출한 작품에 땅굴 탐지에 관한 부분이 있어, 사실을 제대로 알리려고 전재해 봅니다.

 

저는 그 땅굴 탐지기 개발하느라고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6. 땅굴 탐지기

 

6-1. SU-26

 

나의 직속 상관이던 K기좌님은 과장이 된 후에도 계속 나의 직속 상관이었다.

내가 기좌가 된 1978년 여름에 K과장님의 지시로 서울 용산 국방부 건물 맞은편, 지금의 전쟁기념관 자리에 있던, 육군본부 ‘26위원회의 황 대령이라는 분을 만나러 갔다.

군 기밀 사항이라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갔는데, 가보니 땅굴탐지기 ‘SU-26’에 관한 미팅이었다. SU Seoul University의 약자였다.

 

육본에서 서울대학교 전자과에 땅굴 탐지기 개발을 의뢰했고, 서울대 전자과 학과장 P교수님 제자인 대학원생들이 기본적인 회로시험을 마쳐서, 이제는 군납 제품을 제대로 생산할 방산업체에 이관하려는 자리였다.

대학교 학창시절에 P교수님의 번역본 저서인 교류회로이론을 교재로 공부했던 나는, 그분을 만나 뵙는 것만도 무한한 영광이어서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미팅을 마치고 P교수님을 따라 서울대학교에 가서 대학원생들이 만든 개발 샘플을 받았는데, PCB도 아닌 만능기판에 부품을 꽂고 점퍼선으로 배선해서,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조립된 브레드보드(breadboard) 수준의 조악한 조립품이었다.

회로도도 종이에 손으로 그려진 조잡한 것이었지만, 차마 P교수님께 컴플레인도 못한 채 앞으로 내가 만들어야 할 땅굴탐지기의 성능 규격인 스펙(specification)과 그 물건들을 받아들고 그냥 내려왔다.

 

6-2. 지하 200미터

 

북한이 지하 200m 깊이에서 땅굴을 파고 내려온다고 한다. 휴전선 근처에서는 폭파를 자제하고 굴착기나 곡괭이로 굴삭 작업을 할 것이므로, 지상에서 피에조(Piezo) 압전센서를 설치하고 그 소리를 증폭하여 감청해서 위치를 파악하는 원리이다.

 

오디오 증폭기의 게인(Gain) 120dB로 전압이득이 백만 배나 되고, 주파수 범위는 40Hz부터 400KHz까지로 엄청 넓은 다이내믹 사운드 증폭기다.

 

개발 장비의 목표는 피에조 센서를 30m마다 직선으로 길게 묻어서 막사에 있는 탐지기 본체까지는 유선통신용 삐삐 전화선 같은 실드(shield) ()으로 끌어와 연결하고, 본체에는 10개의 LED를 센서별로 채널이 구분되게 장착해서, 만약 어느 센서에 진동음이 전달되어 오면 그 채널의 LED가 진동의 강도에 비례해서 빠르게 깜박거리게 만들어, 굴착지점이 10개 센서 중에 어느 위치에 더 가까운지 쉽게 파악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녹음기를 내장하여 중요한 소리는 나중에 카세트테이프로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브레드보드를 가져와서 회로도와 샘플을 자세히 살펴보니 적용한 회로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수준이어서 소요 부품의 수급이 어려워 기본 골격만 유지하고 회로도를 대폭 수정했다.

PCB를 외주 제작하고 부품을 수배해서 파일럿(pilot) 제품 제작을 서두르고 있는데, 서울 본사 특판영업부서에서는 서울대가 다 개발해 놓은 것을 가져와서 똑같이 생산만 하는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느냐며 재촉했다.

 

6-3. 자장(磁場) 차폐

 

거기에다 한 가지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득이 무척 높은 예민한 탐지기라서 땅속 지자기(地磁氣)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니까, 탐지기가 자장으로부터 안전하게 차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탐지기 주변에서 자석을 들고 움직였을 때 아무런 영향을 받지 말고 정상적으로 동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학교에서 전기자기학 이외에는 자장 차폐를 별도로 배운 적은 없어서, 연구소 도서실을 뒤져 며칠간 관련 서적을 읽어보고야 겨우 감을 잡았다.

 

오디오 증폭기 회로에 사용되는 트랜스포머가 코일로 잔뜩 감겨있는데, 여기로 자장이 통과하면 코일에 유도전류가 발생하여 잡음을 만들 소지가 있었다.

따라서 외부에서 도래한 자장의 영향을 막는 방법은 이 트랜스를 투자율(透磁率)이 높은 금속 재질의 커버로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투자율 가 높은 재료는 철()인데, 순철은 2~10만쯤 된다고 나와 있어서, 1.0t(두께 1.0mm)의 순철을 매입하여 주먹 크기의 밑바닥 없는 육면체 금속 커버를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트랜스 위에 씌우고 PCB 기판의 그라운드(ground) 면에 납땜을 철저히 했는데도 자석을 가까이 대고 흔들면 10개의 LED 중 몇 개가 깜박거리며 회로가 오동작했다.

나중에 원인을 규명해보니, 순철을 가공하여 용접하는 과정에서 열이 가해져 가 낮아져 잡철이 돼버린 것이었다.

 

납기는 다가오고 특판영업에서 독촉은 빗발치는 가운데, 며칠씩 밤새며 문제해결에 매달리던 나는 혼미한 상태에서 자석을 들고 장비 주변을 돌리다가 뭔가를 건드렸고, 그것이 테이블 아래로 툭 떨어졌다.

나는 무심코 다른 손으로 떨어진 물건을 집어 올려보니, 납땜하는 인두여서 그걸 인두 받침대에 꽂아 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손가락 끝이 따끔하여 들여다보니, 피부가 노랗게 변했고 살이 타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아닌가? 내가 무심결에 뜨거운 인두를 손으로 집었던 거다.

나는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가 수돗물을 틀고 담갔는데, 금세 서너 개의 물집이 생기더니 점점 커지며 부풀어 올랐다.

 

그 일이 있자, 사수이신 K과장님이 일본 기술잡지를 건네주며 퍼멀로이(Permalloy)의 수입을 검토해보라고 했다. 퍼멀로이는 니켈과 철의 합금 소재로 일본의 상표명이었는데, 얇은 두께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실드 케이스(Shield Case)를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서둘러 수입한 퍼멀로이 케이스로 문제를 해결하여 근근이 자장 차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6-4. 부평시 은광(銀鑛)

 

이듬해인 1979년에 우리 연구소는 전체 인원이 70여 명에 이르렀고, 전자 부문 K과장과 기구 부문 J과장이 승진하여 부장이 되고, 그 밑에 과() 단위인 기구 부문 1, 전자 부문 5, 6개의 실()로 조직이 구성되어, 과장을 실장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과장인 6실 실장이 되었다.

 

땅굴탐지기의 양산 납품 전에 육군본부 26위원회에서 국방연구소(ADD)에 확인시험을 의뢰했다.

시험장소는 부평 시내에 있는 폐쇄된 은광이었다. 직원 2명을 데리고 약속된 장소에 갔더니 육본에서 황 대령이 직원 2명을 데려왔고, ADD에서는 O실장이 10여 명을 데리고 왔는데, O실장은 나중에 체신부 장관과 과학기술 부총리를 지내고 아주대와 건국대학교 총장도 역임하신 유명한 분이다.

 

부평의 폐광은 갱도가 산꼭대기에서 땅속 200m 정도 아래에 있고 전기시설도 제대로 남아있었다. 산 위에 탐지기를 설치하고 갱도 안에서 굴착기를 가동하면서 탐지기에서 그 음파를 탐지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마침 그 당시는 야간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12시까지 기다렸다가 차량통행이 없는 조용한 시간대에 실시하면 되었다.

 

그런데 하필 산꼭대기가 공동묘지여서 오밤중에 서로 안 가려고 했고, 몇몇은 웃으며 가위바위보로 아래위 임무를 정했다.

나는 만 27세의 새파란 과장이었지만, 제조업체 대표로 갔기 때문에 40~50대인 황 대령, O실장과 함께 갱도 입구에 머물며, KPRC-6 무전기로 산 위 탐지기 팀과 갱도 안의 드릴 팀에게 굴착 시작”, “굴착 종료 등의 지시만 내렸다.

시험결과는 아주 좋았고, 얼마 후에 10여 대를 정식으로 납품했다.

 

6-5. 땅강아지

 

그러고 나서 몇 달 후에 나는 ADD 직원 3명과 함께 현장실사를 갔는데, 임진각에서 육본 관계자를 만나 현장 장교의 안내로 차를 타고 자유의 다리를 건너서 한참을 들어갔다.

휴전선 근처의 현장에 도착하니 야전 막사가 3개 설치되어 있고, 그곳이 군()에서 검토한 결과 의심이 많이 가는 지역 중 한 군데라고 했다.

 

파견 나온 군인들이 교본에 따라 동서 방향으로 30m 간격으로 팽이처럼 생긴 10개의 피에조 압전센서를 실드선에 물려서 땅속 1m 깊이에 파묻어 꽁꽁 다져놓았다. 그리고 압전센서의 실드선을 막사 안으로 끌고 와서 탐지기의 입력단자 10개에 각각 채널별로 구분하여 연결하고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면서 감청한다고 했다.

 

그런데 저만치에 미군 막사와 미군들이 여러 명 보여서 물어보니, 미군들도 땅굴을 탐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군은 땅속에 지름 수십 센티의 쇠파이프를 수직으로 박고 그 속에 카메라가 달린 장치를 손가락 굵기의 케이블에 연결하여 집어넣어 눈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지금의 내시경 같은 장비라는 말인데, 한국군은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고 자기들끼리 비밀리에 작업한다고 했다.

 

막사 안에 들어가 봤더니 탐지기에 연결된 헤드폰을 끼고 앉아있는 병사는 매10분마다 귀에 들리는 소리를 일지에 적고 있었다.

근무 중에 졸지 말고 제대로 감청하도록 조치한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지를 들춰봤는데, 또르륵 똑똑, 빠각 빠각, 틱틱, 찌익 찍찍 등등, 온갖 의성어가 다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안 적을 수는 없고, 앞사람과 똑같이 적을 수도 없으니까, 자기 나름대로 구별해서 적다 보니 희한한 의성어가 적히게 된 것 같다.

증폭기 이득이 무척 크기 때문에 하필 압전센서가 묻혀있는 근처의 지상에 개미 한 마리만 지나가도 아주 큰 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넘겨본 어느 페이지에 뚜루룩 뚝뚝, 우르릉 꽝꽝이라는 큰 글씨가 보여 살펴보니, 장교 확인난에 땅강아지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다.


몇 년 후에 들린 얘기로는 이 땅굴탐지기로 땅굴 2개를 찾았다고 했다.

 






 

(사진)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땅굴 전투 훈련 브리핑- 2018.03.18.jpg


댓글 3

  • 001. Personacon 이웃별

    21.10.01 15:42

    와우!!!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세하루님이 계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론과 실전지식 모두 풍부하셔서 잘 살리시면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무기개발자 심삼일이란 주인공이 먼 과거로 가서 무적영웅이 되는 이야기? ㅎㅎㅎ

    빨리 종전선언이 되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002. Lv.55 맘세하루

    21.10.01 19:20

    네, 이웃별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제 고향 진주 출신 문인들 카페인 '남강문학협회'에 제 글 올리는 재미로 지냅니다.
    이제는 칠순이라 웹소설 집필은 무리한 것 같고, 짧은 수필이나 가끔 쓰려고 합니다. ㅎ

  • 003. Personacon 이웃별

    21.10.01 23:33

    네. 맞아요, 세하루님! 오래 앉아계시는 건 건강에 좋지 않아요.
    건강이 제일이고 글쓰기는 즐거운 취미로 가벼이 옆에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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