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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


[내 일상] 41. (웹소설) : 형제의 나라 2

< 앞편,   40. (웹소설) : 형제의 나라  계속입니다>


그렇다면 터키는 왜 유난스럽게 우리 한국전쟁에 발 벗고 나섰던 것일까?


오랜 역사상 만주 벌판의 돌궐(몽골지역)과 고구려는 인접해 있었으며,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할 당시 동맹하여 당나라를 쳐부순 적이 있다.

그 이후 발해 대조영도 건국할 때 돌궐과 연합하여 거란과 싸웠다.

그래서 대다수의 한국인은 터키의 파병 이유를 고구려라는 고대사에서 찾았고 터키의 참전 의지를 숭고한 형제애로 이해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고구려와 돌궐의 관계를 티브이 드라마에서 보고 조금 알고 있을 정도이다.

, 고교 역사 교과서에는 돌궐이라는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돌궐이 서쪽으로 이동해 가서 터키가 됐다느니,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됐다는 내용은 전무하다.

 

반면에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역사 과목의 비중이 높고,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도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 국민 대다수는 지금도 우리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믿고 있어서 한국전쟁 때 그렇게 목숨 바쳐 지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터키와 우리나라가 3, 4위전을 펼쳤을 때, 대학생들이 인터넷으로 이런 역사적 사실과 한국전쟁 참전 등의 내용을 올렸는데, 그 반응이 대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미 우승과 준우승을 놓쳐 의미가 덜한 3, 4위전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관중들이 대형 터키 국기와 수많은 소형 터키 국기로 터키를 응원했고 경기도 32로 터키가 이겼다.

 

그런데 터키 국민들의 역사관이 철저해서 그런 과거의 인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한국전쟁에 자원해서 참전했다는 말이 과연 사실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한국전쟁에 터키가 의외의 참전을 한 배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950 6 25 200대가 넘는 북한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하늘을 덮었고 240대가 넘는 소련제 탱크는 남쪽을 향해 빠르게 전진했다.

그리고 한국군의 8배가 넘는 700여 문의 포는 모든 전선에서 우리 국군 진지를 초토화시켰다.

 

만약 한반도가 북한에 넘어가면 다음은 일본 차례고 그다음은 미국이 될 판이었다.

유럽에서도 소련의 서진(西進) 정책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도미노로 빠져드는 상황 속에서 북한의 남침은 정말 충격이었다.

 

그래서 UN은 즉각적인 군사지원을 결의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개월만인 1951 1월 아이젠하워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나토(NATO)군이 창설되었는데, 96개 사단이라는 어마어마한 병력이 나토군 휘하로 소집되었다.

 

당시 터키는 NATO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였고 한국전쟁은 그런 터키에는 찬스였다.

그 이유는 소련이 터키를 향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 터키는 뒤에서 자신들을 도와줄 존재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인 NATO와 미국은 터키에 냉담했다.

터키가 위치상 북대서양에서 너무 멀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럽 회원국들은 미국의 막대한 규모의 경제원조를 터키와 함께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공산주의 일진 패거리의 짱인 소련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NATO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터키는 외면당하고 말았다.

이 와중에 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UN이 한반도에 대한 군사지원을 결정하자 총 22개 나라가 지원을 약속했고 그중 16개 나라가 파병을 결의했다.

터키는 빛의 속도로 파병을 결정했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다.

이 기회를 이용해 국제사회에 터키가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려고 한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석 달만인 1950 10 17일 터키의 보병여단 선발대가 부산항에 도착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한국본토 병력 상륙이었다.

 

터키의 보병여단은 미군 25사단에 배속되어 4년간 엄청난 전투를 치렀다.

함께 전투를 치른 미군과 한국군은 터키군의 용맹성에 엄지를 치켜세웠고 국제사회는 터키군을 인정했다.

 

그렇게 한국전쟁 파병 11개월만인 1951 9 20일 터키는 그토록 염원하던 NATO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NATO가 원년 멤버 12개국을 제외하고 최초로 받아들인 가입국이 바로 한국전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한 터키와 그리스였다.

그리스 역시 NATO 가입권을 얻기 위해 UN 참전국 중 다섯 번째 규모인 연인원 4,992(전쟁 말기 최대수준 유지병력 1,263)을 파병했고 그 보답으로 터키와 더불어 NATO에 가입할 수 있었다.

 

물론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다고 해도 터키는 여전히 한국인들을 위해 피를 흘려준 형제의 나라이자 혈맹임에는 변함이 없다.

 

 

 터키 중심 중동과 유럽 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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