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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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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6,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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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9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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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회

DUMMY

다음날 아침에 화신체로 강림한 나는 어제의 결정에 크게 후회했다. 역시 신전의 방에서 지내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차라리 화신체의 감각을 몰랐다면 또 몰라. 별다른 느낌이 없는 그곳에서 지내는 것은 그닥 편하지 않았다. 애써 찝찝함을 털어내고 주변을 살펴보자 그새 출정에 나서는 신도들이 보였다.


아슬론은 원정군을 이끌다가 돌연 손뼉을 치며 물었다.


"잠깐. 카엘, 그런데 저 숲을 점령한 놈들은 누구지?"


아무리 원정 때문에 흥분했었다지만, 정말이지 빨리도 물어본다. 카엘은 요정의 숲을 점령당했을 때가 떠오른 듯. 어두운 목소리로 힘 없이 말했다.


"저희들의 고향을 점령한 놈들은 마계의 영향을 받은 짐승들입니다. 흔히들 마수라고 부르는 놈들인데, 보통 짐승보다 훨씬 강하고 똑똑하지요."


"마계의 짐승? 그놈들이 왜 숲을 침공했는데요?"


신성통신으로 엿듣고 있던 레니아가 침음을 삼키며 묻자 카엘이 즉답한다. 원래는 카엘도 그녀와 함께 영지에 남아야겠지만, 이번에는 길안내 역할로 동행하게 됐다.


"요정족의 숲은 이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있습니다. 그곳은 지맥의 사랑을 받는 땅인지라 여러가지 희귀자원들이 많이 나오는데, 마수들은 그 중에서 정령석이라는 돌을 노리고 쳐들어온겁니다."


"정령석? 마수들이 정령이라도 다루는건가?"


"그건 아닙니다. 마수들에게 있어 정령석은 맛있는 간식 취급인 모양이라... 물론 놈들의 힘을 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카엘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작게 말했다. 하기사 간식을 노리고 쳐들어온 놈들에게 고향을 뺏긴건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다른 이들이 그곳을 가만히 놔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번에 봤던 마왕이나 놈의 수하들이라면 또 몰라. 한낱 짐승들이라면 그곳에 머무르는 것 이상의 짓을 하지 않겠지. 물론 그곳에 잠든 희귀자원들이 좀 아깝긴 한데, 마수들이 그리 약한 것도 아니니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희귀자원들을 제대로 채굴하려면 한 번 싸워서 이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만만찮은 물적, 인적 자원이 들어갈테고...'


진짜 문제는 그곳을 탈환하는게 아니라 탈환한 뒤에 지켜내는 것이다. 대륙의 중앙에 위치해있다는 것은 그곳이 교통의 요지라는 뜻이지만, 동서남북으로 신나게 두드려 맞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걱정을 잔뜩 안고 숲의 초입에 도착한 우리는 재빨리 전투 준비를 갖췄다. 상대는 한낱 짐승들이라곤 해도 마의 일족인데다 요정들을 쫓아낸 놈들이다. 그리 쉬운 싸움이 되지는 않겠지.


훈련받은 대로 진형을 갖춘 리자드맨과 용인들, 그리고 인간 경비대가 차근차근 숲 속으로 전진한다. 아슬론은 그들보다 훌쩍 앞서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뒤쪽을 곁눈질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동족에 부하들인 만큼 자꾸 신경 쓰이는 모양.


대륙 중부를 차지한 숲은 그 규모에 걸맞은 위용을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나무들은 물론이고, 숲 속인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정돈된 느낌이다. 여기서라면 기병도 어느정도 운용할 수 있겠다.


그대로 숲의 깊은 부분에 닿자 이리저리 휘어지고 상처입은 나무들이 보였다. 카엘은 그 광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 그대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표정이다.


"마수들의 흔적이 분명합니다. 조금 더 가면 도시에 도착하겠네요."


도시에는 튼튼한 성벽이 있다고 들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우리는 그녀의 말대로 머지않아 요정족의 성벽에 도달했다. 오랫동안 버려진 성벽에는 덩굴과 이끼가 무성하다.


"모두 전투준비... 응? 안쪽에 놈들의 기척이 없다고요?"


긴장된 표정을 하던 아슬론이 앞장서던 라르고의 보고를 듣곤 어깨에 힘을 뺐다. 그새 성벽 위에 올라갔던 라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설명한다.


"도시의 안쪽은 텅 비었어. 여기저기 부서진 흔적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성벽과 마찬가지로 방치된지 꽤 오래 지난 것 같은데?"


"그, 그럴리가... 마수들이 왜 멀쩡한 도시를 버려둔단 말입니까?"


"그놈들은 애초에 정령석을 노리고 왔다며? 제 아무리 요정족의 아름다운 도시라도 놈들에게 별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라르고가 핀잔을 주자 그제서야 아슬론과 일행들이 감을 잡았다.


"그럼 놈들은 정령석 채굴장에 있겠네요."


"그래. 하지만 그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는데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다. 이틈에 도시로 들어가서 방어전을 준비하자고. 그게 이 어중이 떠중이들을 데리고 평지에서 싸우는 것 보다 백배는 나을거야."


성벽 위에서는 누구나 용감해진다. 라르고의 주장은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흔쾌히 그의 의견에 동의하곤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성문은 마수들에게 파괴당한지 오래지만, 여기저기에 널려진 파편들을 재활용하여 바리케이트를 쌓을 수 있었다. 로웬이 급조된 바리케이트에 마법을 걸며 장담했다.


"이러면 마수들이 몰려와도 두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을거에요."


"썩어들어가던 나무더미로 두 시간이나 버티면 감지덕지지. 그럼 모두 긴장을 풀지 말고 경계임무를..."


"그런데, 도시 안쪽에 사람이 한 명 있는데요? 라르고님. 제대로 훑어보신거 맞으신가요?"


습관처럼 탐색 주문을 사용한 로웬이 말하자 라르고가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물론 내가 좀 급하게 훑어보긴 했지만... 내 기감을 피할 수 있는 놈은 거의 없어."


라르고의 반응도 이해가 되는게, 이 도시에 도대체 누가 아직까지 남아있겠는가? 하지만 보고를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쩌면 아린이 미리 사람을 보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라르고와 아슬론은 긴장한 표정으로 파괴된 도시를 훑었다. 평소보다 감각을 한껏 끌어올린 라르고는 오래지 않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


"그래... 저 안쪽에 누가 있긴 있구만. 조심해라. 대충대충 훑었다곤 해도 내 기감을 피할만한 녀석이야."


"다음부턴 좀 더 열심히 감지하십쇼."


아슬론은 핀잔주듯 말하면서도 대검을 들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소박하게 지어진 나무집이다.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하려는 것일까. 요정족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나무나 땅에 반쯤 파묻혀 있는 모양새다.


정체불명의 거주자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아슬론은 그것을 대뜸 박차고 들어갔다. 그는 대검을 세워서 날카롭게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며 일갈했다.


"누구냐!"


"자, 잠깐... 엘로이스? 네가 왜 여기있어?"


아슬론의 행동을 만류한 것은 다름이 아닌 라르고였다. 요정족 치곤 꽤 사나운 인상의 여궁수는 라르고를 보고 마찬가지로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 라르고? 넌 왜 아직 안 죽었어? 고블린들의 수명이 이렇게 길었나?"


"이 요정이 말하는 꼬라지 보소. 나 아직 죽을 때 안 됐거든."


라르고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면서도 그녀와 악수를 했다. 아슬론은 상당히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보니 애버론 영감님의 옛 동료들 중에서 요정족 궁수가 있다고 했지요."


적동룡 나레이드의 침공 당시 애버론이 열었던 차원문은 총 4개. 그 중 마지막 차원문의 주인공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넌 이제야 네 부모님들의 동료들을 다 만나봤구나."


라르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로이스가 앞선 두 명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럼 얘가 그..."


"네. 카스트로와 아실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아슬론은 반가움을 보이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척 봐도 까칠하게 생긴 궁수는 은근슬쩍 손을 숨겼다. 라르고가 단번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애를 썼다.


"얘가 사람을 좀 많이 가려. 우리가 여행할 때 하도 뒤통수를 많이 맞아서... 근데 너 여기서 혼자 뭐하냐?"


"그냥 좋았던 날들을 되새기며 조용히 쉬고있지. 이 숲에는 마수들이 출몰해서 다른 사람들이 없거든."


"어... 여기 네 고향 아니야?"


"아니. 이 숲에 살던 요정족들만 요정족인 줄 알아? 난 애초에 고향이 싫어서 도망나왔구만. 그나저나 너는 웬일로 아실란의 아들이랑 다니고있대? 이제 모험이라면 질색하는거 아니었나?"


"그새 생각이 좀 바뀌었어."


라르고가 빠르게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자 엘로이스가 대놓고 이죽거렸다. 내가 이제껏 만났던 요정족들은 거의 모두 단아하고 얌전했는데, 이 여자는 성깔이 좀 세다. 보아하니 동족들 사이에서 고생 좀 했을 듯한 타입이다.


"그래. 이제 땅 잃은 난민 신세가 되셨다 이거지?"


"오냐. 그래서 이 도시를 좀 재활용하려고. 말 나온 김에 너도 좀 도와주라. 저기 가면 엘리자베스도 있어."


"카스트로랑 애버론은?"


"카스트로는 다른데 가있고, 애버론은..."


라르고가 말을 잇지 못하자 엘로이스가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의 목숨이란 왜 이리도 빨리 져버리는지."


"아니... 수명 때문에 죽은거 아냐. 너 진짜 시간감각이 엉망이구나. 안 그래도 괴팍했는데 여기서 혼자 지내다보니 더 이상해졌어."


"어림도 없는 소리. 우리 요정족은 너희처럼 쉽게 바뀌지 않거든... 그런데 그럼 애버론은 그 나이에 싸우다가 죽은거야?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가셨구만."


보통 종족들보다 수명이 길어서 그런지 크게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라르고는 그녀를 재차 설득해보려다 성벽 밖에서 괴성이 들리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서 끌고 나왔다.


"마수들이 왔다! 너도 여기서 영영 잠들거 아니면 빨리 따라와!"


"아, 진짜..."


엘로이스는 짜증을 내면서도 재빨리 성벽 위로 올라간다. 나는 날뛰는 가슴을 다잡으며 그새 잔뜩 몰려든 마수들을 내려다봤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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