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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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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01
글자수 :
786,849

작성
17.09.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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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회

DUMMY


성공적으로 신전에 도착한 나는 모든 기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스스로 시도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혼돈의 사도가 걸었던 길을 성공적으로 따라걸은 뒤에는 곧장 화신체를 강림시켜 영지로 내려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진행중이던 참모진은 내 등장에 살짝 놀라며 인사했다.


"조금 있다 오실 줄 알았는데요..."


"계획이 좀 바뀌었어. 당장 신도 전원을 소집해서 회의를 열어줘. 이제 내 사정을 고려해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네에?"


내 의자에서 졸던 로웬이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곧장 추궁을 하려는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들은 그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로웬은 눈물이라도 흘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붙들곤 묻는다.


"어, 어째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신겁니까!"


"그야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 나한테는 이미 너희들밖에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 지구에서의 몸은 족쇄밖에 안 되잖아."


가장 큰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쪽에 마음 편히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현실 세계를 등지고 접속 종료를 하지 않는다 해서 안심할 수 있는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이쪽 세계로 초대하는 특성 스킬이 있었으니, 그 반대 또한 있을 법 하지 않은가.


꼭 그런게 아니라도, 만약 아린이 나를 깨울 방법을 찾는다면 나는 끝장이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퇴로를 끊기로 했다. 레니아가 무척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그러면 알룬님의 부모님들은요? 그분들은 어떻게 하시고..."


"내가 이미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됐는데, 아린이 내 부모님들을 건드려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건 일종의 허세 겸 다짐이다. 내가 부모님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이쪽이 낫다.


나는 내 참모들이 지나가버린 일에 너무 연연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나저나 빨리 다음 방침을 정해야 돼. 이번 행동으로 길드 내에서도 상당한 소란이 일어날테니까... 아린이 그걸 정리하기 전에 움직이자."


"그렇네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비교적 빨리 냉정을 회복한 카엘이 지도를 펼치며 고마운 소리를 했다. 나는 그들의 회의를 중단시킨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부탁했다.


"일단 현재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줘."


"알겠습니다. 먼저,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카엘이 지도를 펴며 설명을 시작하자 레니아도 평정을 되찾곤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나는 예전에 한 번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기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현재 자유 교역 도시 길드는 성왕국의 정벌을 위하여 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저희 주변 영주들에게도 전쟁 참여 권고가 들어왔고, 온 도시가 총력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그래. 만약 길드의 군대가 일어나면? 아린이 정말로 성왕국만 친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거리가 좀 떨어져있으면 또 몰라. 저희 영지는 원정군의 행군 경로에 위치해있습니다. 행군 도중 저희를 친다고 해도 일정에 문제는 없겠죠."


비록 아슬론과 로웬이라는 인재가 있다지만, 서로간의 체급차가 너무도 압도적이다. 자유 교역 도시가 진심으로 덤벼들면 우리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겠지. 내가 아린이라면 성왕국을 정벌하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이곳을 밟아버릴 것이다.


레니아가 카엘의 심각한 목소리를 받으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저희 영지는 평지에 위치해 있는데다, 성벽 또한 부실한 편입니다. 병력의 차이도 무시무시하니 여기서 방어전을 펼치는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그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은?"


"이 땅을 떠나서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입니다. 아쉽지만 이곳은 포기할 수 밖에 없어요."


"으음..."


성역선포 특성의 효과를 누리게 되지 못하는건 뼈아프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사람들이 싹 갈려나가는 것 보다는 낫다. 우리는 이주를 기정사실로 잡아놓고 새로운 거처를 물색했다. 당연하지만, 새로운 거처의 조건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일단 사람들이 지낼 수 있도록 영지의 규모가 어느 정도 크고, 방어전을 펼치기에 용이한 곳이어야해. 또한 남부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아린의 눈을 피할 수 있어야하지."


거기다 원주인이 나쁜 놈이라서 거리낌 없이 빼앗을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그렇게 형편 좋은 땅덩이가 이 근처에 남아있을리 있나?


우리 모두는 그러한 땅을 물색하기 위하여 지도를 샅샅이 훑었다. 차라리 외곽지대로 나갈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괴수들이 날뛰는 곳은 좀 아닌 듯 했다.


"..."


"역시 이렇게 좋은 땅이 버려져있을리는 없겠지?"


그대로 고민을 계속하던 나는 돌연 카엘의 얼굴을 보곤 손뼉을 쳤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내 반응을 보고 설마 한다.


"잠깐만... 요정의 숲! 대륙 중앙에 위치해있으면서, 숲 속이라 방어전도 용이하고, 아린이 훔쳐보기도 힘들지. 게다가 숲 속이라곤 해도 나름대로 도시였으니까 성벽이랑 부지도 제대로 갖추고 있을거 아냐?"


막막하던 참에 아이디어 비슷한 것이라도 떠오른 덕분일까. 나는 내 생각이 정말로 쓸만하게 느껴졌다.


요정의 숲은 자유 교역 도시에서 가깝지만, 성왕국과 일직선으로 이어져있지는 않다. 게다가 길드에서 그 땅을 되찾지 않은 것은 그 땅이 쓸모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일전에 카엘은 자신의 고향을 되찾기 위해서 아슬론급의 전사 다섯과 애버론급의 마법사 2명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 했었지. 하지만 아슬론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고, 로웬은 애버론의 경지를 명백히 넘어섰다.


이 정도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당사자인 카엘은 조금 신중을 기하려는 듯 했다.


"확실히 위치는 좋지만... 지금 저희들의 세력으로는 조금 성급한 감이 있습니다."


"달리 갈만한 곳도 없잖아."


비록 필승을 장담할 수는 없으나, 해내지 못하면 죽음 밖에 없다. 로웬은 나름대로 자신감을 보이며 그들에게 장담했다.


"그곳을 되찾는건 저와 대주교님께 맡겨주시고, 여러분들은 검토만 해주십시오. 그 땅은 저희들의 새로운 거점으로 쓸만한가요?


"위치야 뭐 더할나위없죠. 요정의 숲이면 나름대로 성장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겠고..."


"만약 숲을 수복한다면 길드 내부에 자리잡은 동포들도 우리들의 편이 되어줄겁니다."


확실히 우리들의 새로운 거처로는 이만한 곳이 없다. 아슬론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결론을 내린 참모진은 서둘러 이주를 준비했다.


다행히 요정의 숲은 자유 교역 도시 보다 우리쪽에서 훨씬 가깝다. 그쪽은 아예 대규모 군대를 무장시키고 보급을 준비하고 있으니, 아무리 서둘러도 우리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 이건 병력이 더 적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이점이다.


레니아는 모두의 앞에서 다시금 이번 계획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저희는 자유 교역 도시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요정의 숲을 수복하고, 주민들의 이주까지 마쳐야합니다. 실패하면 모두 죽을테니, 맨날 굴리던 전투원들은 물론이고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모조리 끌어다 쓰겠습니다."


"용인족과 리자드맨들 말인가? 알겠다. 빨리 준비시켜놓지."


아슬론은 경비대의 모든 병력을 무장시키곤 출정준비를 마쳤다. 이렇게 중요한 건은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지만, 시간이 너무나 촉박한지라 모든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진행된다.


원정이 개시되는 날은 무려 다음날. 이 정도면 아무리 아린이 천리안을 써도 우리보다 한 발 늦을 수 밖에 없으리라. 아슬론은 첫 실전을 앞두고 잔뜩 주눅든 동족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귀하디 귀한 용 고기도 먹였건만, 여전히 믿음직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들의 옆에 있는 리자드맨들이 훨씬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슬론은 그들의 모습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가슴을 치며 외쳤다.


"내일도 그렇게 쫄아붙어 있을거면 지금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라! 가서 조용하고 지루한 삶을 만끽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 알룬님도 나도 너희들에게 여기 와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아, 아슬론님!"


힐데는 그의 폭언을 받아내는 동족들을 걱정했으나, 용인족들은 어찌어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나는 모두가 차근차근 준비를 마쳐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니아는 영지민들 중 희망자에 한해서만 이주에 참여하도록 조치했는데, 그들은 의외로 예외없이 찬성을 표했다.


요정의 숲이 수복되기만 하면 블랙우드쪽의 사람들과 이번에 복속한 영주들도 죄다 우리를 따라올 것이다. 그들은 광산 등의 알짜배기 기반시설들을 기꺼이 포기했다. 원주민 영주들이 보기에도 요즘들어 아린의 행보가 많이 불안한 것이리라.


그대로 해가 저물자 습관적으로 로그아웃을 하려던 나는 황급히 행동을 멈추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젠 돌아갈 곳도 없는데 왜 이러는 것일까. 뒤늦게 몸을 돌린 나는 낮보다 훨씬 황량해진 집무실을 봤다.


이곳은 분명 내 방이긴 했지만, 제대로 된 침대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수면과 식사 등을 주로 밖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이 화신체에 수면 따위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내가 말만 한 마디 하면 하인들이 곧장 가져다주겠지만... 이주 준비로 바쁜 그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가져다줘봤자 하루밖에 못 쓴다.


'그냥 화신체를 해제하고 자볼까?'


보통 플레이어들이 머무는 신전의 방에서는 제대로 된 감각을 느낄 수 없는지라 오래 머물고싶지 않았다. 나는 화신체를 능숙히 다루게 된 뒤로 계속해서 강림상태를 유지하고있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서성이던 찰나. 아까전에 모습을 감췄던 로웬이 조용히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묻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자려고 하는데 침대가 없어서. 그냥 소파에 눕지 뭐."


내가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수면을 취하기 위하여 소파에 드러눕자 로웬이 내 머리를 받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알룬님 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어찌 이렇게 잠드십니까. 오늘 밤에는 제 침대를 빌려드리겠습니다. 부디 제 방으로 오시죠."


나는 내 팔을 잡아끄는 그녀에게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럼 넌 어디서 자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전 다른 곳에서 잔다고 안 했는데요?"


"?"


내가 그녀의 말 뜻을 이해못해서 굳어있자 자신의 방에서 내려온 레니아가 우리의 모습을 목격했다. 곧이어 두 여인은 나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한다. 그 소란에 이끌려서 다가온 아슬론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알룬님께서 괜찮으시면 제 침대를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괜찮아."


나는 그냥 얌전히 신전의 방으로 돌아가고자 마음먹었다. 어차피 크게 피곤한 것도 아니니, 잠을 못 자도 큰 상관은 없겠지. 상당히 격하게 말다툼을 벌이던 두 여인은 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곤 뒤늦게 당황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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