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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돌청년 클래식 님의 서재입니다.

군주의 정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데프프픗
작품등록일 :
2017.01.14 10:35
최근연재일 :
2020.05.02 00: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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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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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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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0회

DUMMY


불행인지 다행인지. 로웬의 연구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무리 마법의 극에 달한 그녀라도 마력과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화신체에 생식 기능을 집어넣을 수는 없겠지.


마침내 연구를 포기한 그녀는 조용히 짜증을 삭이며 내 근처에서 노닥거렸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몇 마디 했지만, 그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괜찮아. 화신체에 그게 안 달려있으니까 잡생각도 잘 안 들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던 로웬은 우리가 다음 행동에 나선 뒤에야 기분을 회복했다. 레니아와 카엘은 이제껏 몇 번씩 검토한 작전을 모두의 앞에서 발표했다.


"지금부터 우리 교단은 주변 영지를 정복하기 위해서 움직이겠습니다. 성왕국의 힘에 편승하여 알룬님의 영토를 넘본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어요."


이번 사건 덕분에 주변 영지들의 수준을 알게됐다. 그들은 우리가 등을 돌리면 언제라도 사각지대를 찔러버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는 작전의 검토 단계에서 몇 번씩이나 불안을 표했으나, 레니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나왔다.


"놈들을 가만히 놔두는건 자비가 아니라 만용입니다. 지금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놈들은 다음에도 기꺼이 뒤통수를 치겠죠."


내 반론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드물게 강건한 반응이었다. 레니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도들도 마찬가지. 나는 더 이상 거부할 핑계가 없었는지라 그대로 작전을 승인해버렸다.


아슬론이 모두의 예상대로 전의를 다지는 사이. 레니아가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사실 나도 무작정 싸움을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작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변 영지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성왕국에서 보낸 밀서가 있다. 성왕국은 신성제국과의 전쟁 때에 소극적으로 나선데다, 이 주변 일대를 단번에 삼킬 수 있는 강대국인지라 영주들의 대우가 그닥 좋지 않았다. 이걸 사용하면 싸움의 명분은 확실히 얻을 수 있겠지.


성왕국은 내부의 혼란 때문에 분주하고, 자유 교역 도시는 침묵 중이다. 지금이야말로 영토확장의 적기. 앞으로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마지막 우려를 담아서 모두에게 당부했다.


"민간인 사상자는 최대한 줄이도록. 이번 사건과는 상관이 없는 영지들도 건드리지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쟁에 임하는 주제에 남의 사정을 봐주라니. 어쩌면 이건 멍청한 어리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신도들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 때, 레니아의 설명을 잠자코 듣고있던 아가르타가 거수하며 질문했다.


"그런데 저희한테 시비건 영지들만 건드리는건 좀 무리 아닌가요? 만약 점령에 성공한다 해도 알룬님의 영토가 뿔뿔이 나뉘게 될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놈들이 가만히 앉아서 망해주지는 않을테니까요."


우리가 발톱을 드러내면 놈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연합하려 할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제대로 된 명분을 갖추고 있으니, 놈들을 차례로 분쇄하면 될 뿐.


레니아와 로웬은 주변 영지들에게 마법으로 메시지를 보내서 선전포고를 날린 뒤, 이튿날부터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병력을 일으키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지라 저쪽에서도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쪽의 공격군은 아주 단촐하기 짝이 없었다.


나와 아슬론이 뒤통수 쳤던 놈들을 찾아다니며 족치고, 로웬과 나머지 병력이 영지를 수비한다. 이 명쾌하면서도 간단한 작전을 막을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으리라.


그도 그럴게 내 영지에는 이 주변 일대 최고의 마법사와 전사, 성직자, 그리고 도둑이 있다. 이런 말들을 가지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그냥 이 게임 접어야한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들의 영지를 털어버리는게 아니라 역습을 방지하는 것이다. 한 손으로 열 손 못 막는다고, 아무리 로웬이라고 해도 놈들이 일제히 뭉쳐서 덤벼들면 영지를 온전히 방어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크고 작은 싸움들을 치루며 배웠다. 영주들 사이의 연합이라는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어떻게 하면 쉽게 와해시킬 수 있는지를.


아가르타는 신수들을 보내서 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상대측 영주들을 보여줬다. 대부분이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원주민 영주들의 불참에 당황하고 있었다.


"어, 어째서 원주민 영주들은 모이지 않은거지?"


"설마 자유 교역 도시 길드에서 행동에 나선건가?"


"그럴리 없습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보는 중인데 명목상 탈퇴한 길드원의 뒤를 대놓고 봐줄리가..."


이 순간을 위해서 고생했던 레니아와 카엘은 그들의 추태를 감상하곤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들이 혼란에 빠져있던 찰나. 바깥쪽에서 급보를 가져온 플레이어가 도착했다.


"큰일났습니다. 원주민 영주들이 이번 싸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어요."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우리와 같은 외계신 주제에 어떻게 그놈들을 설득한거지? 설마 블랙우드 놈들의 짓인가!"


마침내 한 플레이어의 입에서 정답이 나왔다. 이번 일의 주역은 다름이 아니라 블랙우드 영주와 그의 장녀인 에이라다.


일찍이 내 교단에 투신한 그들은 이쪽과 아주 건전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광산의 생산물을 우리에게 보내고, 우리는 그들을 비호한다. 이번 습격 때만 해도 아슬론이 발빠르게 출동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대가로 종교에 투신했다곤 해도... 우리 교단은 타 교단에 비해서 교리가 매우 널널한 편이다. 아가르타가 처음 교리 지도를 나갔을 때, 블랙우드 영주는 그녀가 자신의 충심을 시험하는가 싶어서 내 동상을 세우려고 했을 정도.


덕분에 블랙우드 영주와 에이라는 레니아가 부탁한 임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에이라는 성왕국 밀서의 복제본을 들고 부지런히 원주민 영주들을 방문하며 그들을 설득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의 방관 뿐이었다. 원주민 영주들은 에이라가 제시한 조건이 도통 믿기지 않는지라 몇 번이나 다시금 물어봤다.


"정말로 알룬 교단에 투신하지 않아도 되는겁니까? 그래도 싸움이 끝나고 저희들의 영토와 권리를 보장해준다고요?"


"당연합니다. 알룬님은 신도들의 신앙을 억지로 이끌어내시는 분이 아니니까요. 물론 자원해서 투신하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의 제안이었다면 원주민 영주들도 선뜻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좀 뭣하지만, 우리 교단은 이 주변 일대에서 제법 평판이 좋았다. 나는 가장 위험한 전투에서도 하나뿐인 주교를 앞장세우지 않았던가. 우르닥 사건 또한 원주민 영주들이 보기에는 은근히 플러스 요소가 됐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자신의 권리를 챙길 수 있다는건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다. 믿음직하지 못한 외계신 영주들과 협력하여 피땀흘리며 싸우느니, 차라리 나를 한 번 믿어보는게 훨씬 쉬우리라.


덕분에 에이라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원주민 영주들의 3할 정도가 넘어간 순간. 남은 7할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대세가 기울었으니 약자들은 얌전히 순응해야한다.


나와 아슬론은 외계신 영주들이 당황한 틈을 타서 그들을 차례로 쳤다. 아슬론이야 어딜 가도 괜찮겠지만, 나는 아직도 전투에 들어서면 몸이 떨렸다. 하지만 영지의 방어를 담당하는 로웬을 대신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전투용 화신체를 강림시켜서 남의 영지에 다다르자 숨죽이고 있던 신도들이 무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나는 이젠 거의 습관이 되어버린 주문들을 사용하며 그들을 견제하며 거리를 유지하곤, 차례차례 유효타를 날렸다.


'잠깐. 이거 싸움이 왜 이리 쉽게 풀리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주문연계에 당황하던 나는 어렵사리 해답을 찾아냈다. 그간 이런저런 싸움들을 거치며 나도 나름대로 경험치가 쌓인 것이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나 또한 아슬론과 함께 다닌 덕분에 싸움 비슷한 것 정도는 할 줄 알게 됐다. 언제나 자유 교역 도시 길드의 등 뒤에 숨어서 떡고물만 받아먹던 보통 플레이어들과 그 신도들은 이제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의 성장을 뒤늦게 체험하며 영지 하나를 털어버렸다. 서로간의 실력차가 너무 압도적인지라 굳이 사상자를 만들 필요조차 없었다.


상대측의 주교를 모두 사로잡아온 아슬론은 나보다 훨씬 맥빠진 표정으로 불평했다.


"레니아. 나와 알룬님께서 이런 잔챙이들을 일일이 해치워야 하는건가?"


"앞으로 이틀 정도만 고생해주세요. 여기서 조금 더 하면 다들 땅을 버리고 달아날테니까요."


과연. 동맹의 소식을 접한 플레이어들은 레니아의 예상대로 핵심자원만 챙겨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그들의 영토와 기반시설을 편하게 차지할 수 있었다. 레니아는 자신의 입맛대로 새로이 얻은 영토들을 분배한다.


"저희가 다 들고 있어봤자 관리가 힘들어질 뿐입니다. 가깝고 중요한 시설들만 챙기고, 나머지 영토는 주변의 영주들과 교환하든지 하지요."


"그래. 이제 블랙우드 쪽이랑 직통으로 이어질 수 있는건가?"


"이번에 차지한 영토가 하도 넓어서 충분히 가능할겁니다."


약간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영토를 한곳에 모은다. 나도 그러한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어차피 성역선포 특성을 잘 써먹으려면 모든 영토가 예쁘게 뭉쳐있는게 낫다.


불과 며칠만에 남부의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게된 우리는 한창 싸울 때 보다도 훨씬 바빠졌다. 그럭저럭 달가운 과로 속에서 몸부림치던 나는 오래지 않아 저택 관리인의 방문을 받았다.


"알룬님. 아린님께서 찾으십니다."


'... 올게 왔네.'


사실 이 문제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조용히 각오를 다지고 아린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새 많이 어두워진 표정의 그녀는 책상에 앉은 채 나를 똑바로 봤다.


"이번에 주변 영지들을 집어삼켰다며?"


"네. 미리 이야기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나는 일단 사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애썼다. 어차피 우리가 먼저 공격한 것도 아니니 그녀의 앞에서 주눅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린은 내 예상과 다르게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너를 나무라려고 부른게 아냐. 그냥 이참에 제안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래."


"제안이요?"


아린의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으스스했다. 그녀는 내 불안함을 정통으로 꿰뚫으며 난데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참에 우리가 남부를 다 먹어버리자."


"... 네?"


나는 한참동안 그녀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작가의말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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