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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5.3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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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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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화

DUMMY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어이가 없었다.


“뭐 하자는 거긴요. 제가 졌어요, 이쯤에서 끝내죠.”

“뭘 졌고 뭘 끝내자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진짜 왜 그러세요. 저나 당신이나 체면 생각합시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야 아름다운 게 있잖아요.”

“아니, 전 지금 이 상황이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계속 그렇게 둘러 말하면 대화가 진행이 되겠습니까?”

“하아~.”


김지호 부장은 허리에 손을 짚고 바닥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한 번 진짜로 까놓고 이야기해봅시다. 당신 어차피 맛있는 냄새 맡고 떡고물이라도 받아먹겠다고 윤아린 헌터 옆에서 그러고 있는 거잖아요? 여기 그 떡고물 있으니까 순진한 사람한테 괜한 소리 해서 일 돌아가는 거 이상하게 만들지 마시라고요.”

“뭐가 그렇게 거슬려서 그러시는지 몰라도 떡고물 같은 거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만.”

“하~ 준호 씨야 말로 계속 모른 체 하지 좀 마세요, 대화가 진행이 안 되잖아요. 윤아린 헌터의 정산금은 외부인인 당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저희 길드에서 잘 관리하고 있으니까 관심 끄시고 이 박스 들고 나가셔서 사과나 맛있게 드시면 됩니다.”


아, 그거 때문인가.

그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에서 모든 게 확 이어졌다.

아무래도 김지호는 아린이의 정산금 문제와 관련이 있고 돈 냄새를 맡은 내가 은근슬쩍 옆구리를 찔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이런 큰돈이 현금으로 턱 하니 나오다니, 여명길드 핵심 헌터의 돈을 고작 부장 하나가 그렇게 오랫동안 착복하도록 둘 리도 없을 테고 아마 김지호도 기껏해야 끄나풀 정도고 실세는 더 위에, 어쩌면 길드 전체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짓이겠지.


“제안은 고마운데 관심 없습니다. 전 한국이 좋아요.”

“뭐, 꼭 해외로 나가라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한국에 계셔도 됩니다. 다만 윤아린 헌터 앞에서만 사라져달라는 의미였죠.”

“저도 꼭 한국이면 다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윤아린 헌터 곁이 좋다는 의미였죠.”

“오케이, 오케이! 하하하! 아~ 준호 씨 승부사 기질이 있으시네. 어디서 패 좀 만지셨나?”


김지호는 갑자기 호탕하게 웃더니 어디선가 사과박스를 하나 더 꺼내왔다.


“10억 받고 10억 더, 원 플러스 원. 여기에 서비스도 좀 얹어드리자면 아직 어디에도 발표 나지 않은 개발 예정 신도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산이랑 논밭밖에 없는 벌판인데 땅 좀 사두면 몇 년 안에 몇 배로 뛸 겁니다. 거기에 상가건물 한 채 딱~ 세우시면 월 2, 3000씩은 따박따박 떨어질 거고요. 내가 준호 씨 조물주 위에 건물주로 만들어드린다고.”


솔직히 좀 혹했다.

10억은 안 받기로 결심을 내렸지만 금액이 갑자기 두 배가 되니 내 뇌는 이 상황을 아예 별개의 상황으로 받아들여 이미 내린 결심이 무용지물이 됐다.

김지호가 두 번에 나눠 돈을 보여준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거겠지.


“⋯⋯⋯⋯.”


나는 잠시 김지호가 말한 대로 이 돈을 들고 나가 매년 억대의 불로소득을 얻는 건물주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평생 돈 걱정, 출근 걱정 없이 완전한 자유를 얻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다 누리며 사는 삶이라⋯.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진시황제도 21세기에 태어났다면 불로불사보단 불로소득을 택했겠지.


아, 즐거웠다.

상상을 마친 나는 입을 열었다.


“저한테만 솔직하게 말씀해보십쇼, 대체 얼마 해 먹었습니까?”

“딱 이만큼 나눠드릴 정도로요.”

“아닌데, 내 생각엔 이거보다 더 줘도 될 정도로 해 먹었을 것 같은데.”

“하아⋯ 도대체 얼마를 달라는 거예요, 얼마를, 얼마를, 얼마를! 이 씨발 진짜!!!”


어우, 깜짝이야.

김지호의 그라데이션 분노에 움찔했다.


“이봐요, 준호 씨, 어이, 어이, 박준호! 너 내 눈 똑바로 봐. 당신 적당히 좀 하지? 웃으면서 말하니까 사람 좋아 보여? 먹을 만큼 먹었으면 자리 뜰 줄도 알아야지 자꾸 더 먹으려고 욕심부리면 입 찢어져서 죽어, 알아?!”


단번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가 다른 수가 없어서 멍청하게 당신한테 돈 가져다 바치면서 설득하는 줄 알아?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거 아니야!!!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당신은 그걸 이용해 먹으려고만 하면 어떡해? 내가 대체 어디까지 물러서고 고개를 조아려야 만족할래, 어?!”


그는 미친 사람처럼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방방 뛰었다.


“이래서 못 배운 쌍것들이랑은 상종하기가 싫어! 지능이 낮으니 말이 안 통하는데 무슨 대화를 해!”


그라고스라도 들렸나, 말투가 걔랑 비슷하네.

그나저나 이 사람 착각해도 뭘 단단히 착각한 것 같은데 이쯤에서 오해를 풀어줘야 할 것 같다.


“부장님,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 돈을 더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이지.”

“뭐?”


돈을 더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말에 김지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전 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그릇이 큰 인간이 아니라 20억이면 평생 만족하면서 살 것 같아요, 거기에 신도시 땅 투기 정보에 건물주라니, 어휴, 그 정도면 저희 집안 재물운 다 끌어다 썼죠.”

“그, 그럼 뭘 망설여요, 당장 가져가서⋯!”

“근데요,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하신 말씀이 있거든요, 잘나진 못해도 쪽팔리게 살진 말라고, 지금 이 돈 받으면 쪽팔려서 못 살겠다, 이 씨발롬아.”


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그와 이마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히끅!”


내 급발진에 너무 놀란 나머지 김지호는 딸꾹질까지 했다.


“그 착하고 천진난만한 애를 속여서 도구처럼 써먹는 꼴을 보고도 돈 몇 푼에 눈 감고 입 닥치라고? 지랄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할 거 아냐.”

“위, 위선 떨지 마, 네가 뭘 원하는 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응, 하나도 모르는 거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건 당신 인생 조지는 거 보는 거야. 돈은 내가 알아서 벌어다 쓸게요?”


더 할 말도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김에 그대로 사무실을 떠나려 했다.


“하⋯! 뭐? 잘나진 못해도 쪽팔리게 살진 말라고? 꼭 돈 없는 것들이 그런 헛소리 지껄이지! 너 진짜 쪽팔린 게 뭔지 알아? 돈 없고 힘없어서 하나뿐인 인생 궁상맞게 사는 게 진짜 쪽팔리는 거야! 알아서 벌어서 쓰겠다고? 네까짓 것 능력으로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는데! 200? 300? 평생 그런 푼돈 벌면서 연명이나 하다 죽어라! 너한테 딱 어울리는 인생이니까!!!”


김지호가 내 뒤통수에 대고 그렇게 외쳐댔다.

그 말을 듣던 나는 걸음을 돌려 다시 김지호에게로 돌아갔다.

내가 돌아오자 김지호는 겁먹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물러섰고 나는.


“그러고 보니 당신 저번에 천만 원 더 주기로 했잖아. 그거 왜 안 줘? 지금 가져간다.”


사과박스 안의 5만 원 100장 뭉치 세 뭉치를 챙겼다.


“500은 이자다.”


한 뭉치에 500만, 총 1500만 원을 챙긴 나는 그대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




내친김에 예전에 뜯긴 5억을 들고 나왔어도 됐으려나 생각했지만 그랬으면 어차피 헌터들이 막았겠지.

나는 김지호의 말대로 먹을 만큼 먹고 자리를 뜬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후우⋯.”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뭔가 흠씬 두드려맞고 무승부가 난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웠다.

그렇게 잔뜩 흥분한 상태로 혼자 씩씩거리며 여명길드 로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어깨동무를 걸었다.


“아직 안 가고 뭐 해?”


여명길드에서 나한테 어깨동무를 걸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어? 아니, 그냥 뭣 좀 하다 보니까.”

“운동했어? 심장이 왜 그렇게 빨리 뛰어?”

“내, 내 심장 소리가 들려?”

“들리는 건 아니고 박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A급 헌터는 도대체 감각이 어떻게 돼먹은 거지.

이러니까 뒤에서 공격해도 피하는구나.


“회의는 끝났어?”

“응, 이번 S급 던전 레이드에 우리 길드 헌터는 전원 참가하기로 했어. 이제 헌터관리국으로 갈 거야.”

“그렇구나⋯.”


지금 고작 김지호 같은 사람한테 휘둘려서 감정 조절을 못 하고 있는데 얘는 어떻게 S급 던전 레이드에 참가하게 됐으면서도 이렇게 침착하고 여유로운 걸까.


“⋯야, 아린아.”

“응?”

“너 만약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날렸다.

아린이는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1초에도 몇 번이나 표정이 바뀌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너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

“지, 진짜 아무 일도 없다니까? 그냥 물어본 거야.”


아린이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지만 일단은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꼭 찾아낼 거야. 살려도 내 손으로 살리고 죽여도 내 손으로 죽여.”

“⋯응?”

“곤경에 처한 거라면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구해줄게. 하지만 배신한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복할 거야.”

“⋯⋯⋯⋯.”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거라면 날 믿어. 하지만 나쁜 의도로 물어본 거면 뭐⋯ 잘 숨어봐.”

“그, 그런 거 없어. 진짜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대답을 들은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20억 받고 A급 헌터의 살생부에 적히기 vs 그냥 살기, 라니 밸런스 너무 쓰레긴데?

2000억도 아니고 20억 가지고 보복하려고 작정한 A급 헌터를 무슨 수로 막아, 사실상 20억 받고 자살하기잖아.


“아무튼 난 회의 때문에 가볼게. 나중에 봐!”

“으응⋯ 수고해⋯.”


솔직히 내 판단이 정말 맞는 건가, 싶은 꺼림칙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물론 옳은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복잡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잡념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린이의 대답은 그런 꺼림칙함을 깔끔하게 털어주었고 나는 완전히 개운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그날 밤, 대통령이 공식성명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제 전 국민과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 S급 던전이 생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 우당탕탕! 쨍그랑! 쿵쿵쿵쿵!


“우와, 진짜 난리 났네.”


윗집, 옆집, 아랫집.

시끄럽지 않은 집이 없었다.

친가, 외가, 친척, 친구, 그냥 아는 사람.

사람들은 어디로든 서울을 떠나 지낼 곳이 있다면 무작정 떠나기 시작했고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단 서울은 벗어나려 했다.


물론 이번 S급 던전은 높은 확률로 잘 해결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터는 결코 약하지 않고 만약 이들이 실패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S급 던전에서 쏟아질 마석과 아이템을 노리는 세계 각지의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올 테니까.


하지만 S급 던전 브레이크는 터졌다 하면 수만 명의 사상자는 우습게 발생시키는 대재앙이고 언제나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애초에 정부가 앞장서 피난을 유도하고 권고하고 있었다.


- 우우웅!


보따리를 싸 들고 줄지어 늘어지는 사람의 행렬과 복잡하게 얽힌 도로.

아포칼립스 영화의 도입부 같은 창밖 풍경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다.


[네 부모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3시간 안에 인천항으로 오지 않으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 경찰에 신고하는 등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기 바람.]


뭐야, 시발?

문자에 첨부된 사진엔 어딘지 모를 지하실에서 찍힌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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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0화 +3 24.01.30 3,006 52 13쪽
70 69화 +1 24.01.29 2,953 56 13쪽
69 68화 +3 24.01.28 3,067 5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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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3화 +2 24.01.23 3,382 54 14쪽
63 62화 +1 24.01.22 3,515 58 12쪽
62 61화 +3 24.01.21 3,628 64 14쪽
61 60화 +4 24.01.20 3,706 6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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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8화 +6 24.01.18 3,719 65 15쪽
58 57화 +4 24.01.17 3,798 66 14쪽
57 56화 +2 24.01.16 3,860 68 12쪽
56 55화 +1 24.01.15 3,949 68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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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1화 +3 24.01.09 4,089 67 12쪽
51 50화 24.01.08 4,145 69 13쪽
50 49화 +2 24.01.07 4,117 66 13쪽
49 48화 +1 24.01.06 4,174 67 14쪽
48 47화 +2 24.01.05 4,163 65 14쪽
47 46화 +1 24.01.04 4,188 66 15쪽
46 45화 +2 24.01.03 4,210 65 13쪽
45 44화 +2 24.01.02 4,218 6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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