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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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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작품등록일 :
2018.08.20 12:44
최근연재일 :
2019.03.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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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14

작성
18.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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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방문

DUMMY

관리자가 준 꽤나 쓸모 있는 미래의 이기(利器) 덕분에 마왕은 인간 세상에 대한 정보를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주의 왠만한 기본 정보를 머리에 넣고 태어난 마왕이지만, 이런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서 살 계획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했던 마왕이었다.

과거 인류의 탄생으로부터 집단 생활과 사회가 형성되기까지의 역사들, 과학과 지성이 생겨나면서부터의 발전과 쇠퇴의 과정을 둘러보면서 마왕은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한심한 것들을 왜 굳이 힘들여 멸망시켜야 하지?

내버려두면 알아서 지들끼리 싸우다 소멸될 것 같은 모양새인데?


-하는 짓들을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이래 봬도 이 종족들이 생명력 하나는 상당하거든요.

조물주께서 특히 그런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만드셨죠.

지금은 저렇게 온갖 병신짓들을 하고 있지만, 멸종 수준의 위기가 닥치면 바퀴벌레를 능가하는 단결력과 끈기를 보여준답니다.


-그럼 차라리 이것들은 알아서 멸망 근처까지 가라 하고 나는 먼저 바퀴벌레를 멸종시키는 게 낫겠다.


-그럼 인간들이 상당히 좋아하겠지요.

마왕님, 웨어러블 컴퓨터를 장착하신 후로 실없는 소리가 많이 느신 것 같은데요?


-너는 은근히 기어오르는 게 많이 늘었고?


-호홍, 오랜 기간 마왕님을 보필해야 하니 서로 좀 친해져보자는 노력이에용.


-마왕과 친해질 수 있는 자는 절대 복종할 심복과 곧 죽을 놈들 뿐이다.

넌 아무래도 후자같군.


-훗, 그럼 저는 다른 우주의 관리인들과 미팅이 있어서 이만..


-아, 그러고 보니 애미랑 애비가 나를 어린이집이라는 곳에 보낸다고 하던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그 곳은 마왕님 수준의 연차가 된 인간 아이들이 집단 수용되어 있는 곳이에요.

그 곳의 동료들은 지금 가족들보다 훨씬 지능이 떨어지니 그 점 감안하시고 잘 적응해주세용~.


-그렇다면 그 곳에 있는 인간 새끼들도...


-물론 죽이면 절 ! 대 ! 안되용~~.


-아 이런 젠장...


마왕은 어제 저녁 모두 모여 음식을 섭취하는 시간에 그의 부모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어린이집을 보낸다고?"


"응, 벌써 상담은 다 잡아놨어.

내일 연습 삼아 한 번 보내서 잘 지내는 지 보고 괜찮으면 다음 주부터 보낼 생각이야."


"마왕이가 이제 두 돐인데 뭘 벌써 보내..."


"요즘은 두 돐부터 보내.

어차피 나도 일 할거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고.

당신 월급 가지고 애 대학 보내고 결혼 시키려고 허리띠 졸라매다가 허리 끊어지겠어.

힘 있을 때 같이 벌어둬야지."


"언제는 망할 걱정 없는 공기업이라 좋다고 하더니..."


"주변의 당신 동료들처럼 척척 진급을 할 때 얘기지.

이래 가지고는 퇴직 할 때까지 당신 과장 되는 걸 못 보겠는데 어떡하냐?

공기업이라 기본급도 짠데 체력 약하다고 야근도 특근도 안 하고 돈을 대체 언제 모을 거야?"


"부모님 땅 있잖아.

그 때쯤이면 우리가 물려받을 텐데 그걸로 해주면 되지."


"말이 되는 소릴 해라, 이 양반아.

당신 할아버지가 백 세까지 정정하셨는데 무슨 아버님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아 몰라, 됐고 난 내가 일해서 마왕이 대학 보내고 결혼 준비 시킬 거니까 그리 알어."


마왕은 시시껄렁한 이유로 혈압과 흥분 호르몬을 높이는 두 인간의 대화를 들으며 역시 인간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적응해야 할 새로운 환경의 등장은 마왕에게도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어린이집.


유아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6세 미만의 취학 전 아동을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보육하는 시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한국학 중앙연구원)


자신의 새끼를 보육하기 싫거나 보육할 수 없는 상테에 놓인 보호자들이 새끼들을 맡기는 기관이고 과거엔 '탁아소'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보통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 시기에 보내게 되기 때문에 어린이집의 보육 담당자들은 노동량이 많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해 남의 새끼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새로운 환경과 인간들에게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이 곳 인간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할머니는 한 마디 해주었더니 자주 오지 않았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마왕은 그 곳에 가기 전 필요한 대화를 미리 연습해두기로 했다.


다음 날 마왕은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그의 엄마와 함께 집 근처의어린이집을 방문했다.

마왕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여자가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나와 오랜 기간 축적된 경험에서 나오는 계산된 친절함으로 두 사람을 맞았다.


"잘 오셨어요, 마왕 어머니.

어머, 이름이.. 누가 이런 장난을 했지?"


"애기 이름 마왕 맞아요..."


"아 네, 어머니. 일단 어린이집은 집에서 가까운 데로 보내셔야 부모님이 덜 피곤하세요.

좀 더 큰 데 보내겠다고 다른 동네로 하셨다가 결국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우리 어린이집은 복지부 인증도 받았고, 아이 당 선생님 수도 주변 어린이집보다 많구요.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전부 삼십대 이상이라 안심이 되실 거에요.

이십대 어린 애들은 성질이 있거든요. 어린이집 아동 학대 뉴스에 나오는 거 보면 다 어린 애들이 그러는 거라니까요?

그렇다고 사십대 아줌마들로 하면 힘들어서 애들 케어를 잘 못 해요.

어머니 정말 선택 잘 하신 거에요."


인간적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여성의 무미건조한 말투를 장시간 듣고 있다보니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눈치는 굉장히 빠른 원장이 두 사람을 놀이방으로 데려갔다.

마왕이 있던 거실보다 약간 넓은 정도의 방에는 마왕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아이들이 곤충의 애벌레처럼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있었다.

마왕은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위협요소를 분석했다.


-이 정도면 나에게 위해를 가할 생명체나 환경적 요인은 보이지 않는군.

혼자 있게만 해준다면 오히려 집보다 나을 수도 있겠는데?


그 때 한 아이가 자신의 입에서 주욱 흘러내린 침을 손으로 받더니 마왕의 얼굴에 다짜고짜 철썩 대고 문질러댔다.


-이런 염병할 놈이!!

당장 두 세번 씹어먹다가 똥물에 튀겨버릴까보다!!


마왕은 자신이 현재 구사 가능한 최고의 욕설을 내뱉었으나, 그것은 미리 연습하지 않은 대화라 사람들이 듣기엔 '이어 아아 오이'정도의 옹알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머나, 둘이 벌써 친해졌나봐요.

역시 아이들 맣은 곳에 둬야 말도 빨리 트이고 사회성도 높아진다니까요? 호호호."


-그러냐. 내가 말이 트이면 일단 너부터 인간세상에선 상상도 못 할 저주의 말로 죽여주마.


기분이 더러워진 마왕이 자신의 짧은 팔로 얼굴을 닦아보려고 낑낑대고 있는 동안 그의 엄마는 원장실에서 등록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리 하여 인간 세상에 투입된 지 2년차 되는 시기에 마왕은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내던져졌다.

마왕의 엄마는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계속 보였다.


-저 애미는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이 곳에 두고 가는 이유가 뭐지?


-인간들은 저마다의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저 인간의 경우엔 아무래도 돈이겠지요.


-인간세상에서는 화폐가 교환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권력과 개인적 능력, 삶의 만족도 등을 결정하는 것 같더군.


-앞으로 마왕님의 인간으로서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되요.


-그건 앞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뭐야 인간새끼가 왜 이렇게 많지?

전날과는 많이 다른데?


마왕은 자신과 자신의 애미가 저 늙은 암컷에게 제대로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보았을 때 깨끗하고 횅하던 놀이방에는 인간의 덜 자란 새끼들이 가득 들어차서 숨쉬기도 힘들어보였고, 젊고 체력이 좋다던 선생들은 정오도 되기 전에 체력이 방전되어 어린이집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마왕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열심히 기어서 그나마 인간이 적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사방에서 자신도 가끔씩 내뱉는 인간 새끼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는 통에 조용히 자료분석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인간이 없다는 점은 편했다.

인간들의 전쟁무기를 한참 분석하고 있던 마왕의 방에 다 자란 암컷 하나가 들어왔다.

암컷이 봉지 몇 개를 집어던지자 인간 새끼들이 봉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지? 저기에 무기가 들었나?


자세히 보니 봉지 안에는 과자라 부르는 인간의 먹을 것이 들어 있었는데, 인간의 새끼들은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과 폭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어려서부터 투쟁심과 전투능력을 기르나보군.

이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마왕니임~~.

우웩 냄새!! 마계의 지하괴수 시체에서나 날 법한 이 더럽고 치사한 냄새는 뭔가요?


마왕은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고는 낭패라는 표정이 되었다.

인간의 새끼들은 너무 자주 싼다.

조용히 뭔가를 좀 하려 하면 어김없이 하반신이 젖어있고 그럼 또 지체 없이 배설물을 닦아줘야 한다.

사실 배설물이 자신의 몸에 묻어 있는 건 마왕의 입장에서도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망할. 이제 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까 했더니만.


-당장 닦으세욧! 욕 나오게 더러운 냄새가 나는 마왕님!


-알았으니 좀 꺼져...


마왕은 움직이기가 쉽지않은 상태의 몸을 이끌고 어기적 어기적 문을 향했다.

다행히 문에 자물쇠에 걸려 있지 않아서 용을 쓰며 밀었더니 조금씩 문이 열렸다.

마왕은 먼저 지능이 개중에 높고 기만술이 뛰어난 원장이라는 암컷의 방을 올려다보았다.

원장은 새로운 애미를 데려다 놓고 특기인 기만 대화술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포기하고 뒤를 돌아본 마왕의 눈 앞에 처음보는 암컷이 하나 서 있었다.

이름표엔 윤 미경이라고 씌어 있었다.


-좋은 시점에 나타났군. 기분이 더러우니 어서 닦을 것을 가져와라.


윤 미경이라는 여성은 마왕의 생각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코를 막고 마왕을 근처의 화장실로 데려가 몸을 씻겼다.

마왕은 자신의 요구를 잘 알아듣는 이 암컷이 싫지 않았다.


-이 곳에서 심복으로 쓰기 좋을 것 같군.

말귀도 잘 알아듣고 씻기는 속도도 빠르다.


하반신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한 결 나아진 마왕이 윤 미경의 팔에 안겨 방 바닥에 누웠다.

그 녀가 기저귀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본 마왕은 왠지 오늘은 혼자 기저귀를 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윤 미경이 기저귀를 갈려고 마왕의 다리를 들어올렸을 때 마왕은 어제부터 연습했던 문장을 자신있게 말했다.


"내가 하겠다."


"우리 아가 말 도 잘 하네...응, 뭐라고?"


"내가 해볼 테니 거기 두고 가라."



윤 미경.

1986년 생으로 수도권 대학의 생명과학과에 입학했으나 비전이 없다고 판단하여 유아교육과로 전과를 감행했다.

외동딸에 친척 동생도 없어서 아이들에 대한 경험도 악감정도 없던 그녀는 졸업 학기에 실습을 나갔다가 대한민국 보육 시스템의 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사이렌처럼 동시 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울음 소리에 첫날부터 넋이 나간 그녀는 기겁을 하며 집에 돌아가 수능을 다시보고 싶다고 말하려 했으나 아빠의 은퇴 선언이 한발 더 빨랐다.

이제 그녀는 다시 수능 바라지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오히려 집안 살림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 된 터라 어쩔 수 없이 다시 가기 싫은 어린이집을 다니며 면접을 보아야 했고,

이 곳 원장의 기만술에 넘어가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 하다 보면 적응이 될 수도 있지.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게 나라 잃어 서러운 사람들처럼 울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굳은 마음을 가지고 첫 출근을 한 그녀가 만난 두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자기가 기저귀를 갈겠으니 여기 두고 가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윤 미경은 분명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아기를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아기의 눈은 '내 말 못 들었어?' 하는 투의 근엄함이 가득했다.

마왕 또한 밤새 연습한 문장을 암컷이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발음이 잘 못 됐나?

정확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왕이 다시 한번 자신의 명령을 전달하고자 혀를 굴리고 있는데, 자신을 빤히 보고 있던 암컷이 주위를 살피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혹시 지금..네가 기저귀를 갈겟다고 한 거니?"


마왕은 암컷이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내심 만족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최대한 부드러운 태도로 암컷을 보며 말했다.


"그러따. 아라드러서 다해이궁."


-쳇 연습하지 않은 문장이라 발음이 좋지가 않다.


마왕은 자신의 연습 부족을 탓하며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암컷에겐 마왕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는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던 암컷은 기저귀를 마왕의 옆에 가지런히 두고 방을 나갔다.


-좋아. 말을 알아듣는 인간이 하나라도 있으니 이 곳 생활은 나름 수월하겠군.


그 후 마왕에겐 슬픈 일이 두 개나 생겼는데 하나는 그가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혼자 기저귀를 차지 못 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왕이 어린이집 심복으로 점 찍은 암컷 윤 미경이 이직을 하곘다면서 다음 날부터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원계 하나를 덮을 만큼 강력한 영혼이 들어간 인간 새끼의 몸을 가진 마왕에게 인간의 영유아기는 마계의 정복전쟁 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시련을 안겨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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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거 운동 기간 19.03.10 34 0 12쪽
8 우두머리가 되련다 18.11.30 67 0 10쪽
7 학교라는 복마전 18.11.01 65 1 14쪽
6 용사 키우기 18.10.03 104 2 18쪽
5 인간 세상은 돈과 권력 18.09.06 114 2 10쪽
» 어린이집 방문 18.09.03 115 1 14쪽
3 어린 시절 +1 18.08.28 196 3 11쪽
2 탄생 +1 18.08.20 181 3 12쪽
1 프롤로그 18.08.20 275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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