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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 님의 서재입니다.

어쨌거나 나는 마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암사
작품등록일 :
2018.08.20 12:44
최근연재일 :
2019.03.10 06: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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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6
추천수 :
14
글자수 :
47,914

작성
18.08.2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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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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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어린 시절

DUMMY

대부분 인간의 유아기에는 자의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부모의 집중적인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다.

성장하면서 차차 자의식과 사회성 등을 배우게 되고 공동체 생활에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태어나면서 자의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 주위 사람은 생각지 못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갓 태어난 마왕은 알지 못 했다.

생후 30일이 지난 지금 마왕은 신체가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식만 비범한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마왕의 하루는 매우 단순했다.


잠에서 깬다.

싼다. 오전에는 주로 오줌을 싼다.


밥을 먹으면 싼다. 이 때는 보통 똥을 싸거나 앞뒤로 같이 싼다.


정오가 지나면 잔다.

가끔 마왕은 이 정확한 강제수면의 힘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의 작고 허약한 몸은 마왕의 강력한 정신력으로도 전혀 제어가 되질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또 싼다.

마왕의 보호자가 그가 싼 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더러운 것을 꽤나 오랜 시간 몸에 밀착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 울어야 한다.

우는 것은 마왕이 두번째로 싫어하는 일이었다.


해가 지면 논다.

마왕은 '논다'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보통 해가 지면 그의 보호자 중 나머지 한 명이 집으로 와서 그를 데리고 이러저리 다니거나 더러운 발로 들어올리곤 하는데 그리고 나선 뭐가 만족스러운 지 혼자 꺽꺽거리며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잔다.

사실 어떤 정해진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고 먹는다-싼다-논다-잔다 의 패턴이 불규칙한 순서로 이어지는 형태를 가진다고 마왕은 결론지었다.


마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세상에서의 시간을 좀 더 가치있는 방향으로 쓰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인간들의 약점 파악이라던가, 인간들의 전투능력과 무기들에 대한 연구 등에 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세상에 온 지 30일 만에 겨우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고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싫은 것은 하루에 한 번씩 보호자와 인간 성인들 앞에서 나체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분명 그가 있었어야 할 곳에서는 '목욕'이라는 것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무의미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마왕은 여러 인간들 앞에서 자신의 방어구가 모두 해체된 채 물 속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영 내키지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목욕이 끝나고 나면 자신의 중요부위를 활짝 내놓은 채 보호자를 비롯한 여러 인간들의 공격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공격은 약하디 약한 현재 마왕의 몸에도 전혀 충격을 주지 않을 만큼 빈약한 공격이지만 원래는 마계의 지배자였을 마왕에게 가해지는 정신적인 데미지는 상당했다.


"아이구, 두 달도 안 된 게 꼬추 실한 것 좀 보게?"


"와, 대박, 형 꺼보다 큰 거 아냐?"


"무슨 소리냐,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아빠보다 클까..."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저기...여보..."


마왕은 자신의 주위를 에워싸고서 자신의 중요부위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인간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행사는 하루 1회 이상 반드시 이루어지는 어떤 의식같아서 거르는 날이 없었다.


-으으...그냥 이것들을 없애버려야겠다.


-어머머, 안되용. 마왕님.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벌써 폭주하려고 하시나요?


-관리자, 내가 그 말투 싫다고 했을 텐데.


-넵, 마왕님. 제 머리가 나쁜 탓이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주시옵소서.


-조물주의 소식은 없는가?


-네. 그것이...

사실 그 분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와는 개념 자체가 달라서 그 분이 언제쯤 오신다고 단정하기가 어렵네요.

이러다 갑자기 나타나셔서 마왕님을 바로 원래 계셔야 할 곳에 태어나게 해주실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시길...


-그래. 기다려야겠지. 이런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런데 꼭 한 가지 했으면 싶은 게 있는데.


-안 되요, 마왕님.

이 곳 인간을 죽이면 마왕님이 곤란해지십니다.

이 곳 세상에서 섣불리 행동하시다가 생명을 잃으시기라도 하면 언제 환생이 될 지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러면 마왕님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에 아주 오랜 동안 계셔야 할 수도 있다구요.


-알았다. 그러면 이런 건 가능한가?


-뭔데요?


관리자가 사라진 후 마왕은 거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다른 자세를 할 힘도 없었기 때문에 그 자세로 천천히 입을 움직여 보았다.

관리자가 인간들의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힘을 써 보겠다고 했는데 과연 관리자가 오기 전보다 혀의 움직임이 훨씬 수월했다.


-아까보다 좋아졌군. 이제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겠어.


마게의 지배자이자 궁극의 능력자인 마왕은 이미 인간계와 그 밖의 우주에 떠도는 언어, 물론 마계에서 사용되는 언어까지 모두 습득한 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알면 무엇한단 말인가.

입에서 내뱉질 못 하니 말 그대로 옹알이일 뿐이었다.

다행히 관리자가 마왕의 언어능력을 조금 올려준 덕에 마왕은 잠깐 사이에 상당 수준의 언어구사력을 습득했다.

마왕이 인간들의눈에 뜨지 않게 언어능력을 훈련하는 동안에 그의 집에 또 다른 보호자가 침입했다.

'할머니'라 부르는 여성은 마왕이 꺼려하는 인간 목록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 인간은 집에 오자마자 마왕을 찾더니 덥썩 안아올려 괴상한 단어들을 쏟아냈다.


"어이구 내새끼, 얼룰루 우쭈주 까꿍 우왕 곤지곤지 잼잼 어부부부부 아이구 잘한다. 귀여운 내새끼!"


-아무것도 안했는데 대체 무엇을 잘 했다는 말인가?


마왕은 여성의 언어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해보려 노력하다가 포기했다.

마왕에게 언어란 자신의 끝없는 파괴와 정복을 위해 필요한 의사소통의 도구로 저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단어의 나열은 그의 방대한 지식목록에도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어쨌든 저 여성을 빨리 보내기 위해선 자신이 잠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낸 마왕은 자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여성은 오늘 쉽게 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애미야, 오늘은 너희 시아버지도 모임에 가서 늦게 온다고 했으니 나도 여기서 저녁까지 먹고 갈란다."


"그래요? 그러세요. 애기아빠한테 일찍 들어오라고 할게요."


-저것은 인간들만이 가지는 독특한 전투방식인가?


마왕은 인간 여성 둘이 보이는 행동패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마왕의 보호자인 인간여성은 할머니라 불리는 여성에게 짧은 순간 강한 적대감을 보였으나 실제 대화에서는 그것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할머니는 그 적대감을 눈치 챈 것이 분명하였으나 그에 대한 방어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대감 대신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젊은 여성의 적대감을 애써 무시했다.


-재미있군.

저런 식으로 서로의 방심을 유도하여 빈틈을 노리려는 건가?

역시 내 최강의 적의 될 종족답게 고도의 전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마왕은 새로운 인간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하느라 할머니가 자신을 들어올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왕이 정신을 차렸을 때, 할머니는 자신에게 1차 공격을 마치고 2차공격을 위해 입술을 자신의 입술에 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왕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이것만은 좀 하지마라.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는 행동을 대체 왜 하는 것이냐!


자신의 입술이 여성의 입술에 거의 근접한 순간, 마왕의 입에서는 좀 전에 한 언어구사 훈련의 성과가 불시에 튀어나왔다.


"더 이상 다가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첫 손주에게서 나온 첫마디의 단호함에 마왕을 놓칠 뻔한 할머니가 조용히 그를 내려놓았다.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왕의 옆에 앉아있던 그녀는 급한 일이 생각났다는 핑계를 대면서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문 밖을 나서는 할머니를 배웅하는 보호자의 표정을 보면서 마왕은 보호자가 자신과 비슷한 만족감을 보인다는 사실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조금 더 연습하면 이 세계의 왠만한 언어는 구사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왕은 얼마 안되어 나타난 관리자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마왕님....

지금은 이 세계에 적응 하실 때라니까요.

튀는 행동을 하셔서 온 세상에 '나는 마왕이요.'하고 광고라도 하실 참이세요?

마왕님은 이 세계에서 현재 가장 약한 생물체 중 하나라구욧!


-그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럼 마왕님 본인의 권능을 찾으실 때까지는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고 계시겠죠?


-내 정체를 감추고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딩동댕~.

마왕님은 지금 인간의 몸을 하고 계셔서 육체적인 능력은 미천하지만 영혼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능력들은 시간이 지나면 발현이 될 거에요.

기본적인 능력만 발현되도 이 세상에서 사시는 데는 문제가 없으실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부탁드려요, 넹?


-알았다...


-믿어도 되는 거죵??


-알았다고 했다. 그 말투 좀 진짜..


-오늘 섣부른 행동 하신 벌이라고 생각하세용~.

그럼 앞으로는 잘 처신하실 거라 믿겠습니다?


-사라져라..


관리자가 사라진 후 마왕은 하늘을 보며 누웠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자세였다.

힘들게 언어구사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사용도 할 수 없다.

불쾌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은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인간의 유아기가 개체에 따라 4년까지도 진행된다고 하니 앞으로 1430일 정도를 더 이런 식으로 지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신체능력을 올리는 게 힘들다면 인간세상의 정보를 얻는데 이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야겠군.


마왕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누워있는 거실엔 책장이 하나 있었으나 그 곳까지 이동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저기까지만 어떻게 가면..

아니지. 가도 저 책을 뽑을 수가 없겠구나.

으....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잠시 생각하던 마왕이 별 수 없다는 듯 관리자를 불렀다.


-자꾸 왜 부르세용?

저도 바쁜 악.. 아니 관리자인데...


-인간세상의 정보를 얻고 싶다.

보호자들에게 안 들키고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나?


관리자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더니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이건 사실 편법이지만 마왕님이시니까..

먼 미래에 나올 물건을 드릴게요.

이걸 이용하시면 세상의 정보를 대부분 얻으실 수 있답니다.


관리자는 마왕의 눈에 콘텍트렌즈 크기의 물체를 집어넣었다.


-이게 무엇인가? 눈에 새로운 영상이 보이는데.


-미래에 나올 인공지능 컴퓨터에요.

지금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이 세계의 정보를 바로 얻기는 힘들지만, 요걸 이용해서 과거의 사건이나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거에요.


-어떻게 사용하면 되지?


-속으로 생각만 하시면 되요.


마왕은 속으로 '들키지 않고 인간을 제거하는 법'을 생각했다.

다양한 완전범죄의 기술들이 마왕의 망막에 떠올랐다.


-마왕님...제발요..


-이건 그냥 호기심이다.


마왕은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애써 돌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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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린이집 방문 18.09.03 114 1 14쪽
» 어린 시절 +1 18.08.28 196 3 11쪽
2 탄생 +1 18.08.20 181 3 12쪽
1 프롤로그 18.08.20 275 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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