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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4136_taerang15 71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투수가 구속을 숨김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판타지

랑맨
작품등록일 :
2023.10.2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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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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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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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꿀 (2)

DUMMY

폴란드에는 비스바와 쉼보르스카라는 위대한 시인이 있다.


그녀의 명징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진 수 많은 작품 중, 대표작인 ‘두 번은 없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이 시구처럼 인생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학교 생활, 친구들과의 관계, 첫사랑, 막막한 미래의 진로, 직장 생활, 새로운 인연 등.


살아가며 무수하게 마주하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낯설고, 힘겹고, 버거운 것들이 한 가득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 깨져 가면서 몸으로 부딪히며, 고통에 몸부림치고는 극복하기 위해 애쓰며, 그럼에도 실패하고···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수를 쌓아가며 ‘자아’라는 것을 만들고,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습관과 행동을 만들어나가며, 인생이라는 험하디험한 길을 걸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연습도 없이 태어나’서 수 많은 실수와 그보다 많은 처음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는 ‘훈련 없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에 맞닥뜨리겠지.


오직 날 제외하고는.



* * *


제대로 된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우선 투구 동작만 해도 어떠한가.


키킹, 테이크 어웨이, 레그 스루, 스트라이드, 던지는 팔 각도, 몸통 회전, 릴리즈, 팔로스루 그리고 그 열거되지 않은 그 밖의 많은 것들.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는 최적의 투구 동작들을 퍼즐처럼 하나씩 짜맞춰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때서야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적의 투구폼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 다음은 구종에 따른 릴리스포인트의 일치.


던지는 구종마다 릴리스포인트가 다르고, 투구폼이 다르다고 생각해보자.

타자가 손의 위치로 구종을 파악하면서 먼저 대응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의 유리함을 타격에서 가져간다.


그것 뿐일까.

스트라이크 존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을 만큼의 제구력도 갖춰야지, 타자의 스타일마다 상대법도 익혀야지, 견제법도 익혀야지.


심지어 심판의 성향까지 반영해서 그날의 피칭 레퍼토리마저 준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상대 타자에게 쳐맞아가면서, 즉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워야하는 것들이다.


야구는 그만큼 섬세하고 복잡한, 어려운 스포츠니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셀 수도 없는 실수들을 반복하며 안타와 홈런들을 수두룩하게 처맞고는 좌절했다.

다음에는 반드시 그 타자를 굴복 시키겠노라며 처절히 노력하고 연구하면서 극복하고, 성장했다.


그 과정 속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많다.


선발투수의 몸을 만드는 최적화된 방법.

내 몸에 꼭 맞는 투구폼과 구종들.

타자를 제압하는 법.

타자가 아닌 타선을 상대하는 법.

경기를 지배하는 법.

한 시즌을 이끌어나가는 법.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세세한 요소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와버렸다.



* * *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두가 지금은 2022년이라 하며, 부모님과 형은 그때의 젊은 모습들이었고, 고등학교 야구부 사람들 모두가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이었으니까.


앞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세상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내 삶은 이제 2022년의 고등학교 3학년, 열여덟부터 다시 시작이다.


과거에 한번 살아봤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단서가 붙을 뿐.


그렇다고 미래지식을 이용해서 내가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이나 코인 같은 것엔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미래의 기술이나 과학에 대해 아는 것도 그다지 없으니까.


죽기 전 대충 1년이었나 2년이었나.

자율주행차가 대세가 되면서 타고다니면서 신기해 했던 게 전부다.


내가 미쳐있었던 것은 여ㅈ··· 흠흠 야구 뿐이었다.


그런 내게 지금 가장 큰 자산은 미래에 야구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리라는 확신 뿐이다.

확신이 아니라 예언이라 해야하나?


그리고 하나 더.

그 지독한 시행착오를 거의 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사이영 3회, MVP 1회 위너.

이제는 그것을 따위로 부를 만큼의 커리어를 쌓을 자신이 있다.


명예의 전당?

지난 삶에서도 충분했다.

이번 생의 목표는 워렌 스판 상처럼, 최고 우완에게 주어지는 ‘조창 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즉, 목표는 단 하나.


메이저리그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투수가 되는 것.


이런 행복회로를 돌리자니,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 때도, 심지어 잠들려 누울 때마저도, 자꾸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개꿀.”


이 자동반사로 튀어나오는 감탄사는 멈출 줄을 몰랐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이 자리까지.


“아들, 그놈의 개꿀개꿀. 이젠 개구리가 되기로 한 거니? 아니면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는 청개구리가 이미 돼버린 거니?”


엄마가 활짝 웃으며 물어온다.


사람이 얼굴의 모든 근육을 동원하여 웃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것은 웃음일까 위협일까.


난 지금 매우 큰 위협에 처했다.


아빠와 형은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듯이 TV의 야구경기를 시청하며 족발과 치킨을 뜯기 바빴다.


역시 인생은 독고다이야···


강아지가 배를 까뒤집고 헥헥거리며 복종을 표하듯이, 나 또한 배를 까뒤집고 복종의 맹세를 했다.


‘어마마마, 이 불초소자가 병원의 무미(無味)한 식단으로 연명한 지 어연 일주일. 퇴원 후 처음 맛보는 족발과 치킨의 극한의 미미(美味)를 영접하다보니 주체하지 못했나이다.’


그러나 아직 과거로 돌아온 정신과 젊어진 육신의 싱크로가 맞지 않아서일까. 심기체(心氣體)의 합일의 경지는 아직 너무나 요원했다.


마음과 생각과 몸이 따로 논다는 소리였다.


지금처럼.


“개꿀.”


엄마의 표정은 굳었고, 아빠와 형의 딴청은 더욱 격렬해졌다.


하, 이 빌어먹을 주둥이···



* * *


나의 어머니, 이영미 여사가 ‘개꿀’을 들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다녀가고 학교 친구들이 핸드폰을 건네주고, 젊어진 엄마 아빠를 볼 때마다 차츰 과거로 돌아왔음을 슬슬 실감할 때부터일까.


투구폼을 고치는 그 지독한 과정이 필요 없다는 생각 한번에 개꿀 한 번.

타자들을 학살하고 다닐 상상에 개꿀 두 번.

내가 앞으로 휩쓸 상들을 차곡차곡 수납장에 진열해 둘 상상에 개꿀 세 번.


그 외에도 수 없이 떠오르는 날로 먹을 것들에 고무망치로 무릎을 두들기면 다리가 튀어오르는 것처럼 ‘개꿀반사’가 내 입에 들러붙었다.


처음엔 뇌진탕이 심하게 왔나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엄마도 담당 의사선생님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에 ‘아프지만 않으면 됐지···’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혼잣말로 ‘개꿀 좀 하고 다니면 어때···’라고 하시는 것도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더 이상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헛소리도 멈추고, 전에 알던, 아니 38살의 정신적 성숙함이 더해진 의젓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셨다.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셨었지.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지나치게 행복회로를 돌리다가 뇌가 절여진 나머지, 습관성 개꿀증후군에 걸려버린 것.


그 모습을 엄마가 자주 목격한 것.


처음엔 그러려니하다 하루에도 수 차례씩 혼자 멍하니 있다가 대뜸 ‘개꿀’을 내뱉으니 아들이 이상한 장애라도 얻은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그 덕분에 추가검사를 지겹게도 해야 했다.

검사가 끝나고, 아무 이상도 없다는 소견을 들을 때마다 엄마의 표정은 차츰 굳어졌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 * *


“아들, 멀쩡한 것 맞지?”


이영미 여사는 한 번 사는 인생, 마음대로 하고 살라는 자유방임주의였다. 그렇기에 우리 두 형제는 하고 싶은대로 잘 살아왔고.


그러나 단 한가지.


건강.


건강에 관한 문제만큼은 강박주의자에 완벽주의자셨다.

덕분에 우리집 남자들은 담배는 커녕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한다.

각종 영양제와 식단은 덤이었다.


물론 술은 몰래 마시고 다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멀쩡하지 않아도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대로 간다면 내 앞에 기다리는 것은 오직 입원 뿐이다..

여기서 잘 무마하지 못한다면,우리 엄마는 앞으로 개꿀을 내뱉지 않음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병원에 날 박아둘 분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 몸을 쓰고싶어서 얼마나 좀쑤셨는가.

병원밥은 도저히 맛대가리가 없기에, 두 번밖에 못 먹었고.


아, 물론 한 끼에 두 번이다.


어쨌든 일단은 살고 봐야한다.


“엄마, 앞으로 두 번 다시 절대! 네버! 입 밖으로 그 단어를 꺼내지 않겠어요. 소자의 건강과 명예를 걸고!”


엄마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한 번만 더 그 단어가 들려오면··· 야구고 뭐고 일단 다시 입원해서 처음부터 검사하고 이상 없을 때까지 치료 받는거야. 다 나을 때까지 야구는 꿈에도 꾸지 말고. 알았지?”


이젠 인생이 걸렸다.


“넵! 어마마마의 말씀,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슬그머니 나를 바라보는 아빠와 형이 얄밉기 그지 없었다.


‘아빠, 왜 날 외면했나요’


눈빛으로 아빠에게 묻자, 아빠는 딴청으로 대답했다.

‘엄규창 쟨 왜 맨날 잘 던지다가 저꼬라지냐'라면서.


형마저 아빠의 딴청을 도왔다.


“또 볼질이네. 아빠, 느낌이 쎄한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볼넷.


7회 2사 만루 상황.


점수는 5:2였고, 큰 거 한방이면 역전인 상황이다.


저기 마운드에 서 있는 게 나라면···


삼진을 노려야 했다.

땅볼이나 뜬공으로 잡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초구는 커브로 타자의 반응을 살펴야겠지.

물론 존에 걸치는 녀석으로.

그 다음은···


그때였다.

상념에서 현실로 일깨운 홈런이 터진 것은.



* * *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MG더블즈의 전신, LBC백호의 팬이었다.


그 덕분에 아빠와 엄마도 자연스레 팬이 됐고, 예과 동기시절부터 야구장에서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웠다.


그 결실인 형과 나도 MG더블즈의 팬이 된 것은 자연의 이치에 가까웠다.


흔한 응원 팀의 대물림 스토리.


그렇기에 가족끼리 저녁을 먹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MG의 경기를 보며 족발도 뜯고, 치킨도 뜯고, MG더블즈의 선수도 뜯으며 돈독한 시간을 보낸다.


물론 그 돈독한 시간은 28년째 우승이 없는 막장팀인 MG더블즈의 선수들을 사이좋게 씹으면서 함께 분노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사이좋게 30년 가량 우승이 없는 부산의 골든 오우거스에게 진 날은 그 분노가 곱절이 됐다.


공이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아빠는 급하게 리모컨을 들어 볼륨을 극한까지 키웠고, 형은 화장실로 향했으며, 나도 슬쩍 엉덩이를 떼고 방으로 향했다.


점차 커지는 해설 소리가 뒷통수에 들려왔다.


-홈런! 홈런입니다! 골든 오우거스의 캡틴, 전우진이! 해냅니다! 1루 주자, 2루 주자, 3루 주자, 모두 홈 인! 전우진이 모든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역전합니다!


-아, 엄규창 선수! 오늘 무실점으로 잘 던졌는데, 이번 이닝에 살짝 흔들렸거든요. 아마 실책 때문이겠죠. 잠깐 투수가 멘탈이 흔들리며 실투를 던졌는데, 그걸 놓치지 않네요. 이야! 전우진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 중계들 사이로 무언가가 들려왔다.


“X창! 개XX들아! 다 나가 뒤져!”


“X같은 X끼들! 내가 너네들 때문에 제 명에 못 죽지 못 죽어! X발!”


우리 엄마는 평소 차분하고 이지적인 엄마지만, 야구를 볼 때 만큼은 그 누구보다 화끈한 편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법은 모두 다르다고 하지만, 조금 유별나지 않으신가 싶다···


그래도 야구가 끝나고 개운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평소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일부러 저렇게 하시는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자주 들었다.


어쨌든 엄마는 오늘도 매우 건강하셨다.


엄마가 X창이라 할 때 움찔한 것은 사소하니 넘어가자.



* * *


우여곡절 끝에 11대 10의 스코어로 MG는 승리를 거두었고,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흔한 엠골라시코의 광기와 혼란에 찬 경기였다.

이런 광기 어린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오면 팀과 팬들의 기쁨은 두 배가 되는 법.


두 배의 기쁨을 거둔 엄마와 아빠가 두런두런 MG를 씹으면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역시 진 병신보다는 이긴 병신이 낫지.”


“그렇지. 멋진 패배자보다는 이긴 병신이지.”


나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암암, 승리가 최고지.

경쟁이 정당했다면,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승리가 최고다.

멋지게 패배해도 기억되고 회자되는 것은 잠깐 뿐.

영광은 오로지 승자의 몫이라는 사실은 진리였다.


어쨌든 야구도 끝났고, 방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앞날을 위해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엄마,아빠. 안녕히 주무세요. 형도 잘 자고.”

“잘 자렴, 아들.”

“병원 침대에서 고생 많았다. 푹 쉬어.”

“응, 너도.”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를 펼쳤다.


앞날에 대해, 앞으로 내려야 할 선택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우선 가장 큰 고민은 '미국으로 갈 것인가, 한국에 남을 것인가'였다.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랬다.


최고구속 161km에 평균구속 150대 중반의 패스트볼.

제법 괜찮은 커브와 슬라이더.

193cm에 88kg의 체격조건.

향후 5년 안에 구속이 4~5km 상승.

메이저리그로 직행해도 충분히 가능함.

KBO 드래프트 참가 시 전체 1번.


객관적으로 어느 구단이나 탐을 낼 만한 인재였다.


이전의 커리어도 노트에 한 줄씩 정리해나갔다.

그래야 명확한 답을 찾을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직행 (19세)

-마이너리그에서 4시즌 및 막바지 콜업(23세)

-그 후 3년간 메이저리그 적응 및 스텝 업 (26세)


그 고난의 7년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공책에 토를 쏟을 뻔했다.

헝그리정신을 일깨운다고 개같은 샌드위치만 물릴 때까지 먹어 댄 것과 덩치들 사이에 끼어서 12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닌 것.

메이저리그의 피똥싸는 일정에 적응하려고 체력만 죽어라 키운 것.

타자들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눈알이 빠져라 비디오 분석을 한 것.

성공하고 말리라는 일념으로 야구에 미쳐 살았던 것.


솔직히 메이저리그 생활이 재밌었던 것은 그 이후였지, 그 이전까진 생존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일단 하던 작업을 마저 해야지···


-1선발로 개막전 선발 및 풀시즌 소화(27세)

-첫 번째 사이영(28세)

-두 번째 사이영(30세)

-세 번째 사이영 및 MVP (32세)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 (33세)

-복귀 후 피네스 피처로 전환 (34세)

-도미넌트와 솔리드 사이의 선발 (38세까지)


전성기의 영광이 아른거렸고, 재활을 견뎌내고는 생존을 너머 변신에 성공했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사실 부상은 MVP시즌 중반부터 전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즌은 특별한 시즌이었다.

투수로서 MVP라는 위업은 그만큼 쉽게 달성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모든 것을 쟁취하고 싶었다.

시즌 막바지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고통과 싸우며 던지고 또 던졌다.


MVP라는 영광을 그렇게 쟁취했다.


물론 그 덕분에 리그 최고의 파워피처는 피네스피처로 변신 하는 수 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똑같이 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뭐, 사실 부상은 MVP시즌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몸이 완전히 여물기 전부터 160km의 공을 10년 넘게 던졌다는 사실은 내 몸뚱이가 제법 튼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수상할 정도로 비버를 닮은 아저씨라든가.

눈동자가 파랗고 빨간 오드아이 아저씨가 몹시 이상한거지.


어쨌든 내가 겪었던 미래라고 해야 하는지, 지난 과거라고 해야 하는지...

뭐라 정의하기 힘든 나의 커리어를 정리하니 대략 감이 잡혔다.


‘투수의 팔꿈치와 어깨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히는 구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확실하다.


가장 빠른 공.

온 몸을 극한까지 이용해서 던지는 공.

패스트볼이다.


그렇기에 몸을 만들 때까지 빠른 공은 최대한 적게 던지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우선 23살에서 24살까지는 몸을 최대한 아껴야만 한다는 결론이.


전성기 때의 신체를 완벽히 빚어낼 때까지 앞으로 4년에서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 전에 무리하는 것 자체가 전성기의 기량부터 기간까지 모두 갉아먹기에.


그러다 머리를 번뜩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구속을 숨긴다면?


평소의 70%의 힘으로만 던진다면?


몸이 완벽히 만들어질 때까지, 어깨와 팔꿈치를 하나도 쓰지 않고 아낄 수 있다면?


더 크고 우람하고 강력하고 아름다운 전성기를 최소 10년, 운이 좋다면 15년은 해먹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 최전성기 5년의 업적은 커쇼의 5년이 부럽지 않고, 페드로 아저씨의 5년에 조금 꿀리는 정도인데···


만약 그보다 강력하다면,

만약 그보다 길어진다면.


야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10년을 보낸 투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년 연속 사이영 1위.

10년 동안 사이영 1위 8번.


이런 미친 상상을 하고 있자니...

지금 당장 메이저인가, 한국에 남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시시해서 죽고 싶을 정도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앞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분명한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을 꾹꾹 눌러담아 노트에 한 글자씩 적어내렸다.


-몸이 완성되기 전까지 팔꿈치와 어깨를 최대한 아낀다.


-지금부터 피네스 피처가 된다.


-평균 구속 140km으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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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스코어 컨트롤러 (2) +4 24.03.03 1,195 19 14쪽
32 스코어 컨트롤러 (1) +2 24.03.02 1,306 24 15쪽
31 운수 좋은 날 (7) +2 24.03.01 1,296 19 14쪽
30 운수 좋은 날 (6) +3 24.02.29 1,264 24 15쪽
29 운수 좋은 날 (5) +4 24.02.28 1,288 23 15쪽
28 운수 좋은 날 (4) +4 24.02.27 1,303 21 15쪽
27 운수 좋은 날 (3) +2 24.02.26 1,403 24 14쪽
26 운수 좋은 날 (2) +1 24.02.25 1,486 20 14쪽
25 운수 좋은 날 (1) 24.02.24 1,588 26 15쪽
24 퍼펙트의 5단계 (2) +1 24.02.23 1,614 23 14쪽
23 퍼펙트의 5단계 (1) +1 24.02.22 1,685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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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비상 (1) +1 24.02.15 2,105 33 14쪽
14 처음인데 처음 아닌 처음 같은 것 (4) +2 24.02.14 2,077 32 14쪽
13 처음인데 처음 아닌 처음 같은 것 (3) +1 24.02.13 2,094 31 14쪽
12 처음인데 처음 아닌 처음 같은 것 (2) +1 24.02.12 2,144 34 15쪽
11 처음인데 처음 아닌 처음 같은 것 (1) +1 24.02.11 2,221 30 17쪽
10 슬기란 무엇인가 (6) +1 24.02.10 2,263 33 14쪽
9 슬기란 무엇인가 (5) +1 24.02.09 2,330 35 16쪽
8 슬기란 무엇인가 (4) +3 24.02.08 2,430 35 16쪽
7 슬기란 무엇인가 (3) +1 24.02.07 2,467 35 16쪽
6 슬기란 무엇인가 (2) +2 24.02.06 2,549 37 16쪽
5 슬기란 무엇인가 (1) +1 24.02.05 2,737 36 16쪽
4 개꿀 (3) +4 24.02.04 3,030 45 16쪽
» 개꿀 (2) +3 24.02.03 3,290 50 18쪽
2 개꿀 (1) +4 24.02.03 3,556 4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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