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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글쟁이 세피아톤

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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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7,910
추천수 :
763
글자수 :
270,102

작성
22.06.25 18:07
조회
221
추천
11
글자
11쪽

수상한 소년

DUMMY

####




「실험체 1호의 바이탈 사인을 감지합니다.」


관리 컴퓨터가 담담한 톤으로 보고를 개시했다. 진회색 표면 위를 장식한 렌즈가 불빛으로 깜빡인다.

그 너머에서는 흡사 수족관 내부를 연상시키는 초대형 인큐베이터가 웅장함을 자아냈다.


「심장박동 이상무. 운동신경 이상무. 호흡기능 이상무.」

“오오!”


황홀감에 도취한 채 감탄을 내뱉는 교수. 글썽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보호 유리를 만지작대자, 서늘하고 딱딱한 감촉이 말해주었다.

이건 꿈이 아니라고.


“탄생이 임박했구나, 성스러운 아이여. 세상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구제하고,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우리에게 선물해다오.”


연녹색 양수를 들이마시며 눈꺼풀을 꿈틀대는 생명체.

당장이라도 깨어나 거칠게 포효하며 난동을 부릴 것만 같다.

상관과 동료조차 가리지 않고, 시야에 비치는 생물을 모조리 찢어놓을 듯한 모습.

그러나 말릴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었으니.


「각성제를 투여하고 안전장치를 해제합니다. 대피하십시오.」

“크흐흐, 대피? 그게 무슨 말인가? 내 과업이 완수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지!”


입 꼬리가 귀 밑까지 찢어진다.

디아볼로스 군을 승리로 이끌 병기. 자연 생물의 열등함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고역을 치렀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실을 맺으려한다.


「안전장치 해제 완료. 각성제 투여. EI-01 기동 개시.」

“그래, 그래!”

「5, 4, 3······.」


꿀꺽.

카운트가 내려갈수록 어두운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개발 자금을 따내려고 노인네한테 굽실거렸지. 야만적인 종족들 틈에 섞여 헛구역질을 했어.

괴로운 나날이었지만 이쯤이면 버틸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던가.


「2, 1······.」

“완성, 드디어 완성!”


그때였다.

눈꺼풀 뒤에 숨은 동공이 막 드러나려는 찰나, 난데없이 인공조명이 꺼지고 파지직 하는 소음이 튀었다. 그나마 남은 거라곤 긴급사태를 대비해서 여기저기 걸어놓은 구식 랜턴들뿐.


“어?”


바이탈 사인을 표시하고 있던 모니터가 기능을 잃는다.

본체 전원이 꺼진다.

결승선을 통과하려던 꿈의 질주가 빛을 잃는다.

망연자실한 아달베르트 교수는 쇳소리를 내며 오열했다.


“뭐야? 도대체 뭐야?!”


어둠에 잡아먹힌 실내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비상계단 조명 너머로 어떤 그림자가 비쳤다.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동물과 함께.


“이야~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젊은이의 청아한 목소리다. 정신없이 달려오기라도 했는지 가쁜 숨을 헉헉대고 있다.


“1초라도 늦었으면 끝장날 뻔했네.”

“자네는?”


실루엣을 보자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은발에 푸른 눈, 그리고 이국적인 이목구비. 그 험난한 판도라 해를 목숨 걸고 횡단했다는 호프 대륙 출신 소년.


“노아 라이즈벨트?”

“불이 꺼지니까 아늑하고 좋네. 꼭 러브호텔 같아. 함께 데이트나 할까?”

“자네가 왜 여기에? 탐사하러 갈 시간이었을 텐데!”

“응, 그래서 탐사 왔어. 네놈들이 아카데미 지하에서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알아보려고.”


빠지직.

노아는 손에 들고 있던 장치를 땅에 내버리고 발로 밟아 부쉈다. 파편이 어지러이 흩어지며 청량한 금속음을 낸다. 비록 산산조각 나서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게 무언지 직감이 속삭여주었다.


“설마 시르포한테 넘겨준 펄스 장치?”

“그래, 효과 범위가 넓어서 다행이야. 덕분에 그놈한테까지 닿았네.”


고물상이 된 연구소 내부를 쭉 둘러보는 소년. 곧이어 승리감으로 가득한 눈빛에 동정이 서렸다. 그 대상은 아달베르트 교수가 아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눈조차 못 뜨고 죽어버린 생명체들. 자신이 모든 걸 포기하고 구출한 소녀와 꼭 닮아있다.


“미안하다, 저 괴물만 처리하고 싶었는데.”

“자네였군.”


이윽고 아달베르트 교수의 톤이 변했다. 빠드득 하고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섞여 나온다.


“시르포를 죽이고 펄스 장치를 빼앗은 범인이 자네였어.”

“부분정답. 머리를 무스로 떡칠한 여자도 처리했어. 네리오라고 하던가? 아깝다, 이거까지 맞췄으면 100점이었는데.”

“······.”

“갑갑하지 않아? 슬슬 위장용 허물은 벗지 그래? 바알.”


소년 역시 능글맞은 표정을 내버렸다. 손가락이 베일 것처럼 눈매에 날이 선다. 무겁게 깔린 목소리에서는 살기가 피어오른다.


“설마 하니 인간한테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바알은 마침내 깨달았다. 이 소년이 누구인지.

단순히 재능이 엿보이는 유망주가 아니다. 아카데미 내부 랭킹 따위로는 평가할 수 없는 존재.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강적.

뇌리에 떠오르는 후보가 딱 한 명 있었다.


“아스터인가?”

“두목 치고는 머리가 썩 좋진 않네. 어째 말할 때마다 오답인지.”

“그렇다면 환영일세. 하긴, 이미 지옥행 고속열차를 탄 그놈이 살아 돌아올 리가 없지.”


승산이 엿보이자 바알은 체형을 바꾸었다.

골격이 뒤틀린다. 근육이 엉키고 피부의 질감이 서서히 바뀐다. 등이 갈라진 자리에 반투명한 날개 한 쌍이 돋아난다.

소름이 끼치는 변태 끝에 완성된 모습. 그건 인간과 파리를 반반 섞은 괴인이었다.


“흐이이이이익!”


음표를 둥둥 띄운 마법 고양이가 한 발짝 물러났다. 속이라도 나빠졌는지 안색이 창백하다.


“주인님, 똥파리예요!”

“레벨 50, 전 종족치 300······.”


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알고 있던 대로야.”

“조, 좋은 뜻이겠죠?”

“제발 빗나가길 바랐는데. 쉽지는 않겠네.”


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젓는 소년. 곧이어 바알이 큼지막한 눈을 깜빡였다.


“인간의 말을 하다니? 그 고양이, 신기한 재주를 부리는군.”

“부럽지? 공짜 통역기.”

“눈여겨본 보람이 있네그려. 더더욱 갖고 싶어지는 걸? 살 조각 하나만 뜯어내면 매우 훌륭한 재료가 되겠어. 죽여선 곤란하겠군.”


바알은 분홍빛 혀로 털이 북슬북슬한 입가를 핥았다. 그리고 고이 접은 날개를 활짝 펼쳐 퍼덕였다.

그건 위협이나 적의 따위가 아니었다.

살의.


“하지만 노아 라이즈벨트 군, 자네는 이야기가 다르지. 생포 따윈 기대도 말게나.”

“이쪽도 마찬가지다. 곤충 채집은 취미가 아니라서.”

“요, 용서 못해······.”


가식과 이성을 붙잡고 있던 끈이 뚝 떨어졌다. 연배가 엿보이는 말투 역시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이라곤 원초적인 격노뿐.


“절대로 용서 못해―!!! 내 일생일대의 역작을 이 따위로 망가뜨리다니―!!! 핏기로 질척대는 고깃덩이로 만들어줄 테다―!!!”


탁한 검은빛의 파리가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퍼덕이는 날개에선 벌새처럼 요란한 소음이 났다. 그 흉측하고 커다란 눈은 지상에서 멀뚱히 서있는 먹이를 포착했다.

저딴 미물을 죽일 방법은 다양하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지경. 그렇다면 후회와 고통에 싸여,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케 만들기로 했다.


입을 여는 꽁무니. 비교적 둥글한 첨단에서 형광색 액체가 가래처럼 튀어나왔다.

황산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초강산. 유리로도 막아낼 수 없는 독성 때문에, 체내에선 무중력상태처럼 둥둥 띄워 내부 장기를 보호한다. 당연히 인간 따윈 금세 녹아사라질 터.


하지만 그래선 재미없다. 너무나도 자비로운 방식이다. 두개골을 녹여서 뇌를 쏟게 만들어도 분이 안 풀릴 테니.

노린 부위는 다리. 동맥이 통과하지 않고 말초신경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관. 저기부터 마비시키면 도주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눈을 멀게 하자.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되면 알겠지.

일생의 목표를 상실한 자신이 어떤 심정인지.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음?”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맹독은 매끈한 은백색 방패의 표면에 닿아 흩어지고 말았다. 매우 허무하게.


“‘메탈 가디언?’”

“잘했어, 프리지아.”


소년의 곁을 지키던 고양이는 어느덧 형태를 바꾼 뒤였다. 플레이트 아머를 두르고 대형 카이트 실드를 든 장난감 병정. 고작 인간의 허리까지 오는 아담한 사이즈다.

겉보기엔 발로 뻥 차면 데구르르 굴러갈 것만 같다. 하지만 헛웃음을 유발하는 외양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한 잠재 능력이 엿보였다.


“맹독을 정화하는 금속, 푸르가티움인가?”

“눈썰미가 좋으시군.”


노아는 대화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일일이 상성이나 원리를 가르치며 여유를 부리는 건 아카데미 커리큘럼에서의 이야기. 이건 생사를, 아니 인류의 존망을 건 혈투니까.


“메탈 가디언, 【브라이트닝 소드】!”


부우우우웅.

흡사 엔진이 열을 내는 것처럼 뜨거운 소리가 칼날을 감싼다. 뭉툭한 칼끝과 날이 더 이상 우습게 비치질 않는다. 저기에 털끝이라도 닿았다간, 식칼 앞의 순두부 꼴이 될 거란 직감이 왔다.


“이 자식······!”


힘차게 도약한 장난감 병정은 인큐베이터와 기둥을 발판 삼아 날렵하게 뛰어다녔다. 바알은 이를 악물고 날개를 재촉해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좋지 않은 상성이다. 독 속성의 아머를 종족치와 상관없이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 파공음이 귀를 스칠 때마다 섬뜩한 살기를 선사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건 어떨까? 【포이즌 파우더】!”

“프리지아, 컴백.”


회심의 반격을 개시하려는 찰나, 소년이 눈을 번뜩이며 다시 명령을 내렸다.

곧이어 메탈 가디언은 연구소 바닥에 착지해 새로운 형태를 취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엇?”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바알은 외피의 털이 빳빳하게 곤두서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나비.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형형색색의 날개. 그걸 펼치며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곤충. 이 음습하고 악취가 풍기는 지하연구소와는 상반되는 미형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색감이나 각선미 따위가 아니다. 무수한 곤충족 몬스터들 가운데 저 녀석만이 갖추고 있는 고유 능력. 그게 뇌리에 떠오를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정화되어간다.

분말 형태로 실내를 뒤덮으려는 맹독이,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 두어 번에 무해한 가루로 변해간다. 검붉은 빛깔 역시 소금이나 설탕처럼 새하얗게 변색되고 말았다.

피가 튀는 콜로세움에 내리는 눈꽃.

그 아래서 파리 인간이 조용히 분기를 삼켰다.


“뭐야, 네놈?”


저 희푸른 고양이, 여러 가지 몬스터로 변하는 능력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이미 아카데미 관계자들 사이에선 파다하게 입소문으로 퍼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예상 밖의 그림이다. 자기 기술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능숙한 대응. 마치 수백 년간 디아볼로스 군과 맞서 싸운 백전노장을 떠올리게 한다.


“솔직히 말해라! 아스터 말고는 도무지 떠오르는 인간이 없는데?”

“아주 먼 훗날 가르쳐주지.”


소년은 질문을 무시하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이제 말장난 따위는 하기 싫다는 듯이.


“지옥에서 천천히 들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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