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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글쟁이 세피아톤

테이머 아카데미 유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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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20 17:59
최근연재일 :
2022.07.02 1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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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9
추천수 :
763
글자수 :
270,102

작성
22.06.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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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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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탐사 선발전(3)

DUMMY

####




출발은 똑같았다.

첫째 언니는 조그마한 아기새.

둘째 언니는 애완용 로봇.

셋째 언니는 새끼 박쥐.


처음엔 다들 고만고만한 위치였다. 눈높이도 비슷했고 덩치도 거기서 거기라서 스승님 주변을 뽈뽈 돌아다니며 세상의 맑은 공기를 처음 마실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비록 수백 년 전의 일일지라도.

왜냐고? 그때가 제일 행복했으니까.


“너희는 세상의 희망이야.”


우리 네 자매를 나란히 앉혀놓고, 스승님이 부드럽게 건넨 한 마디. 그건 마음 속 깊이 꿈틀거리고 있던 사명감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말할게.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란다. 다시 재앙이 닥쳐도 막을 힘이 없어. 겨우 껍데기만 남았으니까.”

“네?”

“네?”

“네?”

“네?”


우리는 눈이 동그래져서 스승님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했다. 뭐라고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들도 어버버하는데 나라고 별 수 있을 리가.


“머지않아 세상을 집어삼키려 한 악이 부활할 거야. 내 목숨을 바쳐 겨우 억눌러놨지만, 이런 평화가 오래갈 리 없어.”

“야, 아스터!”


처음으로 침묵을 깬 건 첫째 언니. 용감무쌍하게 날갯짓을 하며 바락바락 따지기 시작했다.


“우리 만들 여력이 남았으면, 차라리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서 살아나지 그랬어? 혹시 바보야? 우리보다 네가 훨씬 강할 텐데!”


둘째 언니도 삐리릭 전자음을 내며 사막처럼 건조한 말투를 뽐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소생과 봉인만 반복해도 디아볼로스를 영원히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스터는 어째서 이런 도박수를 둔 겁니까? 실패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굳이 죽이려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셋째 언니는 혼자 울상이 된 채 감성에 젖었다.


“불쌍해······. 디아볼로스가 또 살아나면 사람들이 전란에 고통 받을 텐데.”


화가 잔뜩 난 에델바이스 언니.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바이올렛 언니.

인간들을 가엾게 여기는 로즈 언니.

그 모습을 본 스승님은 다리를 쭈그리고 앉아 우릴 쓰다듬어주었다.


“너희들 말에도 일리가 있어. 디아볼로스를 어둠의 굴레 안에 가두는 건 일도 아니지. 하지만 그래선 이 비극이 끝이 안 나.”

“뭔 소리야?”

“봉인은 임시방편이란 얘기다.”


스승님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근심과 동정이 서린다.


“디아볼로스를 봉인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해. 그동안 죽어나가는 인간들은 어쩌고? 이 사이클이 몇 백 년마다 반복될 텐데, 과연 그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까?”

“마스터.”


끝내 미련을 놓지 못한 둘째 언니가 끼어들었다.


“냉정히 계산하십시오. 봉인에 필요한 시간은 고작 몇 년. 성공률은 100%에 수렴합니다. 반면에 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요.”

“바이올렛.”

“기댓값을 따질 경우, 평균적으로 전자에 소모되는 인간의 목숨이 훨씬 적습니다.”

“잘 들어, 우리 똑똑이.”


스승님이 언니의 매끈한 금속 피부를 쓰다듬으며 어르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의 목숨을 숫자로 헤아리는 법 따위 몰라. 세상은 0과 1로 이루어진 게 아니잖아.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과 공포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야.”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뜻이라면.”


그러자 둘째 언니가 둥글둥글한 본체를 숙이며 납득했다. 그러자 이야기는 순탄하게 진행됐다.


“그럼 우린 뭘 해야 돼, 아스터?”

“여기서 훈련.”


훈련이란 말에 첫째 언니의 눈이 반짝였다.


“뭐야? 그럼 치고 박고 싸우는 거?”

“각자 어울리는 방식으로 힘을 키워나가는 거지. 에델, 너는 그쪽이 어울리겠네.”

“아싸!”


곧이어 스승님은 손가락 두 개를 펴고 설명을 이어갔다.


“너희가 어떤 경지에 이를 때마다 모습이 변할 거야. 그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얻게 돼. 그 진화를 두 번 거치면, 디아볼로스와 맞설 수 있는 최강의 몬스터로 거듭날 거야.”

“두 번? 두 번이라고 했지?”


의욕 충만한 에델바이스 언니가 기세등등하게 선포했다.


“1등은 내 몫! 오늘부터 훈련 개시! 항상 최전방에 앞장설 테니까 다들 나만 믿고 따라와!”


곧 바이올렛 언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저는 전용 장비들을 개발해서 다양한 능력으로 보조하겠습니다. 필시 도움이 될 겁니다.”


로즈 언니.


“여러분께 힘을 불어넣고 치유해드릴게요. 몇 번이고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언니들은 포부를 드러내며 뿔뿔이 흩어졌다. 벌써 힘과 능력을 기를 방법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 뒷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과 시기가 샘솟았다.


난 뭘 할 수 있지?

첫째 언니처럼 용감하지도 않아.

둘째 언니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셋째 언니처럼 선량하지도 않지.

그래도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텐데······.





“얼레?”


그러던 어느 날, 평행선 같던 균형에 금이 가고 말았다.


“이거 봐, 얘들아!”


커다란 불사조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수놓았다. 몸에서 가루처럼 휘날리는 불씨와 열기. 꼭 태양이 하나 더 생겨난 것만 같았다.


“나야, 나! 완전 멋지지! 내가 1등!”


에델바이스.

용기를 상징하는 첫째 언니는 그렇게 첫 번째 진화를 이룩했다. 변한 모습 덕분에 잔뜩 흥분한 하이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태도다.

그러나 그 자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도 완성했습니다.”


둘째 언니 바이올렛 역시 훈련의 성과를 보였다.

전신이 금속으로 뒤덮인 이족보행병기.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합금 표면과 날개, 애프터버너는 첫째 언니 못지않게 화려했다. 말을 할 때마다 번쩍이는 눈은 덤.


“어머, 많이들 변하셨네요.”


셋째 언니는 멋이나 위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한껏 덩치를 키워왔다. 흑진주처럼 초롱초롱한 눈이 인상적인 대형 박쥐가 되어서. 순하고 부드러운 인상 덕분에 전혀 징그럽지는 않았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날한시에 이룬 성장. 과연 스승님이다. 열등감을 품지 않도록 시기를 잘 조율한 듯하다.

나만 빼고.


“뭐야, 막내. 너 혼자 그대로잖아.”

“에, 에헤헤.”


나는 쑥스럽게 뺨을 붉혔다.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꾹 참으며.


“아스터가 훈련 안 시켜줬어?”

“어, 그게요······.”

“솔직히 말해 봐. 우리 사이에 비밀이 어디 있다고.”

“네, 저는 가만히 있으래요.”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디아볼로스를 막는 건 언니들만으로 충분하대요. 저는 예비 전력이라면서 뒤로 빠지라던데요.”

“뭐? 아스터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어, 언니!”


분노의 날갯짓을 하려는 첫째 언니를 가까스로 막아섰다.


“스승님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신 거예요! 전 알 수 있어요!”

“너도 참 답답하다. 개무시를 당하고도 화가 안 나?”

“······.”

“그래, 너 알아서 해! 나 모른다!”


퍼덕퍼덕.

그렇게 큰 언니는 열풍을 일으키며 창공 저 멀리 날아갔다. 그 웅장한 풍채는 곧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와. 언니가 맛난 밥 해줄게, 응? 우리 불쌍한 막내~”


셋째 언니는 내 등에 얼굴을 비비며 위로해주다가 천천히 자리를 떴다. 특유의 상냥한 온기가 피부를 오래 데워주었다.


“프리지아.”


마지막으로 남은 둘째 언니가 무뚝뚝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마스터의 표정과 말투를 분석한 결과, 네게 딱히 애정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네?”

“냉정히 말해서······. 사라지길 바라는 모양새다.”


얼음장보다 차갑고 딱딱한 태도.

그 한 마디에 내재된 불만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스승님이 절 심심풀이로 만드셨단 말이에요?”

“······.”

“전 제 방식대로 훈련하러 갈 거예요! 곧 진화도 할 거고요! 두고 보세요!”

“프리지아.”


난 바이올렛 언니를 뒤로 한 채,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 나갔다. 맑은 햇빛을 받은 잔디밭과 폭포가 그날따라 얄밉게 비쳤다. 내 마음도 모르고.


그 이후, 난 무려 수백 년을 홀로 지냈다. 광활한 평지를 힘껏 달려보고, 단단히 뿌리박힌 식물 줄기를 물어뜯어보고, 물속에 머리를 박은 채 숨을 오래 참아보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봤다.

그리고 철썩 같이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간 언니들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고. 나 역시 스승님이 만든 비장의 병기니까.


‘출발선은 중요하지 않아. 결승선만 먼저 통과하면 되는 거야.’


내가 세운 좌우명. 오로지 이 믿음 하나만으로 수백 년을 버텼다. 적어도 언니들이 첫 번째 진화에 그쳤을 때까진 그랬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으니까.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레이스는 이미 끝이 난 상태였다.


“이야, 이거 괜찮은데! 인간의 몸은 편리하네!”

“움직이고 말하기 용이합니다.”

“복장이 좀 부끄럽지만요.”


내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사이, 언니들은 마지막 단계에 다다랐다. 웬만한 몬스터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경지에 올라서.

스승님의 선택이 옳았어. 언니들이라면 가능해. 디아볼로스의 목숨을 끊어내고 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어. 영원히 반복되는 비극의 막을 내릴 때야.

······.

·········.

그런데 나는?


“스승님.”


속으로 꾹꾹 누르고 있던 울분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왜 저는 훈련 안 시켜주세요? 저도 빨리 레벨을 올려서 언니들처럼 되고 싶어요.”

“······.”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800년이에요, 800년. 800년이나 참았단 말이에요. 저만의 능력을 펼치고 싶어요.”

“······.”

“스승님?”


웬일로 딱딱하고 차가운 스승님.

둘째 언니의 그것과는 다르다. 감정은 분명히 느껴진다. 안 좋은 방향으로.


“아직도 포기 안 한 거야, 프리지아?”

“네?”

“슬슬 받아들여.”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대답.

그건 무한한 절망이었다.


“넌 실패작이야. 언니들처럼 될 순 없어.”

“······노, 농담 그만하세요. 하나도 재미없어요.”

“진작 당부했잖아. 언니들한테 너희 사명을 털어놓을 때, 넌 뒤로 빠져있으라고. 그런데 고집 부려서 아득바득 껴놓고 혼자 의욕을 불태운 게 누군데.”

“스, 스승님.”

“솔직히 중간에 내려놓을 줄 알았다. 이제 그만 포기해. 나랑 조용히 평화를 즐기자.”

“아니에요, 아니요, 아니야!”


펑.

800년을 눌러온 뚜껑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저도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의지도 충분하고,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 두고 보세요. 스승님보다 훨씬 좋은 주인님을 만나서 증명해보일 테니까!”

“프리지아.”

“스승님 미워!”


악에 받쳐서 바락바락 언성을 높였다. 이래봐야 떼쓰기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안다. 내 투정 따윈 귀 담아듣지도 않겠지.

실패작이니까.


“도착했구나.”

“네?”


송곳니를 아득바득 갈고 있는데, 스승님이 창공을 올려다보며 중얼댔다.


“세상을 구할 용사가 왔어. 오랜 굴레를 끊어내고 영원한 평화를 선사할 분이. 곧 너희 중에 한 명을 선택하겠지.”

“용사님······.”

“일단은 너도 데려갈 거다. 함부로 그분의 선택권을 좁혀선 안 되니까.”


곧이어 스승님은 바닥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새하얀 원형의 마법진이 생기며 우릴 어떤 공간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따스하고도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기대는 말고.”




####




프리지아를 감싼 빛이 가라앉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너무 창백해서 하마터면 장님이 되는 줄 알았네. 안 그래도 하드 모드를 넘어선 난이도인데, 시야 패널티까지 안았다간 큰일이다.

그런데,


“얼레?”


눈을 가린 손을 치우자,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로.

얼떨떨한 것은 프리지아도 마찬가지.


“주, 주인님. 저······.”


내 파트너는 변해있었다.

더 섬세한 별 장식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훨씬 광택이 나는 눈동자에, 음표들과 함께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마법 고양이로.


“진화했어요! 언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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