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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천 번은 회귀해야 마법진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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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리
작품등록일 :
2023.04.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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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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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뱀파이어와 사제 (3)

DUMMY

"그러니까... S랭크 각성자가 언더문이랑 싸웠는데, 올해 열아홉이고 연고가 없어서 도움을 구하고 있다?"


프레드 케이슬리 대사제는 업속교의 2인자였다.

비록 업속교가 인안나의 지모신 교단처럼 큰 교단은 아니지만.

대중첩 이후 신흥종교 연합체 '서울12교단연합'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는 만큼, 케이슬리 대사제의 위세는 대길드나 대기업의 고위 임원급에 견줄만 했다.


"그래서 우리 교회로 오고 있다고?"

"예. 이미 도착해서 회당에 있습니다."


S랭크 각성자 이완명의 방문은 그런 그조차 단박에 달려올 만한 소식이었다.


"좋구나. 이건 천존부처 님께서 주신 기회야! 우리 업속교의 동량이 될 인재를 보내주신 게야."


언더문의 보호조 하나를 격파하고, 조장은 죽였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 소식에 케이슬리 대사제는 오히려 좋아했다.


"열아홉에 그런 일을 벌였으면, 그건 사고가 아니라 기적이고 업적이지."


어차피 언더문과는 원래 사이가 나쁘다.

업속교에 S랭크 각성자가 들어온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리스크였다.

그것도 실적도 없고 레벨도 낮고 기댈 곳 없는 S랭크 각성자다.

앞으로 얼마나 신실한 교인이 되겠는가? 얼마나 훌륭한 업속교의 무기가 되겠는가?

세속의 법을 어긴 자를 돕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렇게 신이 내린 기회를 놓치는 것이야말로 죄를 짓는 것이다.

그가 서둘러 명령했다.


"다른 행사도 다 뒤로 미루고, 업속의식부터 준비해. 내가 직접 진행할 테니 꼼꼼하게 챙기고!"

"예, 준비하겠습니다."


업속의식부터 치러야 한다. 업속의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는 무조건 교에 더 깊게 의지하게 될 테니.

프레드 케이슬리는 조급하게, 그러나 조급하지 않은 척하면서 회당으로 들어갔다.

오현화 사제가 벌떡 일어나 맞이했다.


"대사제 님! 직접 와주셨군요!"

"오현화 사제, 오랜만일세. 내 항상 악과 싸우다 보니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는구나."

"예.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시니 항상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교단이 여러 일로 바쁜 건 알지만, 이 청년의 상황이 특수한지라...."

"그럼, 도움이 절실한 사람에게 줄 시간이 어찌 아깝겠는가. 그러기 위한 업속교인걸. 오 사제 때도 내가 직접 돕고 의식을 치렀지 않나!"

"맞습니다. 이분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셨더라구요. 제 일 같아서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현화 사제 역시 케이슬리 대사제가 기대하던 인재였다.

12년 전, 업속교에 들어올 때만 해도 20살의 어린 나이에 각성 A랭크라서 잠재력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케이슬리가 직접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었고.

그러나 수 차례 업속의식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트에 들어가면 심각한 불안과 공황 증세가 나왔다. 게이트 내에 있을 때 가족들이 전부 사망했기에 생긴 정신병이었다.

Lv.50을 찍은 것도 진정제를 먹여가며 간신히 찍었을 정도.

레벨을 올리지 못하는 헌터에게 A랭크가 무슨 소용일까. 케이슬리 대사제는 그 이후로 오현화 사제에게 관심을 끊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이렇게 복덩이를 물어 오다니?


'그때 오현화에게 베푼 선행이 되돌아온 것이 분명하구나.'


이것 또한 업보로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잘 인도했네, 오 사제. 잘 인도했어. 아주 훌륭해."


19살의 S랭크의 살인자를 데려왔다.

살인자라니 다행이다. 살인자라면 겁쟁이 오현화와는 다르게, 언제고 써먹을 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쪽이 이완명 씨로군."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잔뜩 위축된, 잘생긴 얼굴과 균형 잡힌 체격의 소년이었다.

업속교의 무기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도 될 수 있겠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속으로 대단히 흡족해하며, 겉으로는 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했다.


"언더문에 용기 있게 대항하다니 실로 놀랍지만, 우리로서도 아무나 도와줄 수는 없네. 선행의 발로인지 악행의 발로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업속의식을 받아보게. 전생의 업보를 알아보고, 이를 현생의 자네가 속죄하는 의식이지."


케이슬리 대사제가 업속의식을 준비하는 단상을 가리켰다.


"자네가 전생의 죄를 인정하고 또한 속죄한다면 어찌 선한 자가 아니겠는가? 이를 중요히 여기기에 우리가 업속교라고 불리는 것이지."


업속은 업보속죄를 뜻한다.

업보속죄 의식은 천존부처께서 계시하여 존다유 에이모스 교주께 알려주신 의식이다.

전생의 죄를 현생의 내가 직접 속죄함으로써 현생에서 받을 업보를 없애고 복을 받게 해준다.

오현화 사제도 맑은 눈으로 권유했다.


"완명 씨, 신도가 되지 않으시더라도 업속의식은 꼭 받아보세요. 특히나 첫 업보속죄는 다시 없을 황홀한 경험이에요."

"대사제님, 업속의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마침 준비됐군. 어떤 의식인지 궁금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겠는가?"

"보고 싶습니다."


이완명이 흔쾌히 승락했다.


"전생의 여러분은 죄를 지었습니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단상에 올라가 능숙하게 업속의식을 시작했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 지옥에 태어나 고통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게이트, 몬스터, 환경오염, 역병...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이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업속의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업보를 속죄하면 전생의 죄는 모두 씻어내고, 오롯이 복만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어찌 복되고 귀한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의례적인 말과 축사를 하고, 최대한 빨리 첫 번째 업속의식 대상자를 불러냈다.


"김성연 씨, 앞으로 나와 업보의 거울 앞에 서십시오."


사제들이 회당 한 가운데에 손거울과 그 받침대를 가져다 놓았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보라색 손거울은 화려한 수정 받침대 위에 놓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존다유 에이모스 교주가 게이트에서 발견한 1급 아티팩트, '업보의 손거울'이었다.

수정 받침대 또한 3급의 아티팩트다. 수정 받침대로부터 방어막이 생성되어 예기치 않은 공격과 도난으로부터 손거울을 보호했다.

케이슬리 대사제가 거울에 대고 스킬을 사용했다.


"전생의 업보를 대면하십시오."


츠츠츳...


마나가 움직이며 여러 스킬을 한꺼번에 사용했다.

업속의식은 스킬의 연금술이다.

3개의 전혀 다른 스킬이 업보의 거울을 거쳐 특별한 효과를 이끌어낸다.

단순히 세 가지 스킬을 섞은 효과가 아니라, 업보 속죄 의식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효과가 창발創發emergence한다.


"죄인의 전생에 가장 죄가 깊었던 곳을 불러내겠습니다."


먼저 환상 마법사 스킬 <Lv.50 과거투영>의 효과로 회당의 풍경이 바뀐다.


화아악!


교회의 실내가 한국식 궁궐의 풍경으로 변화했다.


"여긴... 경복궁!"


업속의식의 대상자인 김성연이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짚이는 것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갈 때마다 막 가슴이 찢어질 거 같고, 눈물이 주륵주륵 떨어졌는데... 저번 달에 갔을 때도 누가 심장을 부여잡는 것처럼 찢어질 거 같았어요."


김성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가슴이 너무 아리고 눈물이 나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누굴 만나야 하는 것처럼? 너무 미안하고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가 마구 치는 느낌이야... 설마 제가 공주였던 걸까요?"

"봅시다. 죄인의 전생을 불러내겠습니다."


Lv.50의 네크로맨서의 초혼三號招魂Invoke spirits 스킬과 Lv.50의 저승 사제의 원령정화 스킬이 발동하면서 특이한 현상이 생겨났다.


스스슥!


[나니?]


허리춤에 일본도를 찬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초혼된 존재라는 걸 알려주듯 반투명하고 윤곽선이 흐릿했다.

그가 김성연을 보더니 상당히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너는 뭐야? 조선 왕비를 죽이고 있었는데, 넌...]

"...누굴 죽여?"


케이슬리 대사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케이슬리 대사제의 인종은 게르만계 백인이었으나, 대중첩 때 미국으로 돌아갈 길이 막혀 한국에 귀화한 백인의 2세였다. 즉, 한국에서 자라난 토종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죄인은 전생에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일본 낭인 사무라이였군요. 그래서 죄책감에 눈물이 났던 거고요. 과연 죄가 깊습니다."

"...예?"

[넌... 넌 뭐지? 불쾌하게 생겼군. 칙쇼! 참을 수 없이 불쾌해! 어떻게 그렇게 생길 수가 있지?]


스릉!


일본 낭인이 칼을 뽑았다. 이미 눈은 반쯤 뒤집혀 있었다.

업속의식을 받는 김성연도 마찬가지였다.


"뭐라구? 네가 저지른 죄 때문에 내 삶에 이토록 운이 없는데 나한테 화를 내? 너도 존나 못생겼거든?"


처음 1분 정도는 괜찮았으나.

곧 언데드가 생자生者를 증오하듯, 도플갱어가 원본을 증오하듯 압도적인 혐오와 분노에 사로잡혔다.

사실 전생의 영혼이란 게 그 둘을 합친 것과 거의 다름없는 존재였다.

케이슬리 대사제가 말했다.


"전생의 당신이 지은 죄 때문에 현생의 당신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생의 당신은 미안해하기는커녕, 살아 있는 당신을 질투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자... 죄인에게 성창과 성배를 주십시오."


김성연에게 다른 업속교 사제가 창 한 자루와 물이 담긴 성배 한 잔을 건네주었다.

성배 안에는 열대 바다 같은 청록빛의 물이 찰랑거렸다.


"업속단물을 마시고 용기를 북돋으십시오. 그리고 성창으로 찔러서 전생의 죄를 현생에서 끊으십시오. 그러면 영혼의 성궤가 열리고, 그대가 받지 못한 복이 나올 것입니다."


김성연은 업속단물을 들이키고, 힘껏 창을 내질러 일본 낭인을 공격했다.


"내 불행의 원인! 죽어!"

[코노야로! 고로스!]


일본 낭인도 반격하려 일본도를 들어올렸다.


"전생의 죄인은 속박의 말씀을 들으라."


키이잉!


[나닛?!]


그러나 케이슬리 대사제가 Lv.25 속박의 저주를 사용했다. 낭인은 손발이 광륜에 묶여 옴싹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우오옷! 난다 고레!]

"그아아앗!!"


푹!


그 틈을 타 김성연이 일본 낭인을 찔렀고, 성스러운 빛이 터져나왔다.


[쿳소오오!]

"낳아라, 나의 행운을!"


파아앗!


동시에 의식이 끝나면서 궁궐의 풍경이 원래의 회당으로 돌아왔다.

케이슬리 대사제가 물었다.


"그대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뭔가 후련해요... 뭔가, 새로 태어난 느낌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사제는 적당한 축복 주문을 걸어주면서 의식을 마무리했다.


"물론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은 아닙니다. 전생의 죄가 하나 뿐인 것도 아닐 테고, 그 전생의 죄, 그 전생의 전생의 죄까지도 하나씩 속죄해나가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업속의식을 진행할 때마다 추가 헌금을 내야 한다.

한 사람의 죄가 끝이 없다는 건 업속교의 성장에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숭고하며 정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불행은 물러가고, 행운이 올 것입니다."

"제가 전생에 이런 죄를 지었을 줄은... 정말 감사합니다! 으흐흑!"


김성연은 첫 업속의식이 주는 고양감과 황홀감, 수치심과 해방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업속교 교인들은 모두 경험해본 일이었기에 김성연을 위로하고 축하했다.


"어떻습니까? 업속의식은."


그러나 케이슬리 대사제는 김성연이 아니라 이완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이완명도 케이슬리 대사제를 보고 있었다.


"흥미롭네요."

"그럼, 이완명 씨. 앞으로 나와 전생의 업보를 대면하십시오."


이완명이 앞으로 나왔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의식을 시작했다.


"좋습니다. 죄인의 전생에 가장 죄가 깊었던 곳을 불러내겠습니다."


화아악!


주변 풍경이 바뀌어나갔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환영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어디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업속의식을 해온 프레드 케이슬리 대사제였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그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황량하고 검붉다.


쇳가루가 섞인 붉은 모래바람이 분다. 콘크리트 도시의 잔해가 사막의 외로운 바위들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녹아내린 철근과 유리 조각, 까맣게 눌어붙은 시체와 타버린 뼈들이 뜨겁고 건조한 태풍에 휘말려 영원히 허공을 떠돌고 있다. 거대한 파괴의 잔해물들이다.


그그그극...


하늘에는 두 개의 장대한 기둥이 태양을 꿰뚫으려는 듯 솟아 오른다.

아니다. 그것은 꿰뚫으려는 게 아니다. 각 기둥의 끝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다.


손은 태양을 움켜쥐려 하고 있다.

식물처럼 천천히, 또한 확실하게, 빛의 근원을 향해서 손을 뻗는다.


케이슬리 대사제는 물론이고 이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풍경.


'2028년 서울.'


이곳은 서울.

다가오지 않고 지나간 미래의 서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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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 업보가 복사가 된다고 (1) 23.07.21 12 0 16쪽
» 16. 뱀파이어와 사제 (3) 23.07.20 13 0 13쪽
15 15. 뱀파이어와 사제 (2) 23.07.18 14 0 15쪽
14 14. 뱀파이어와 사제 (1) 23.07.17 16 0 13쪽
13 13. 고블린 초원 (4) 23.07.14 16 0 19쪽
12 12. 고블린 초원 (3) 23.07.13 17 0 21쪽
11 11. 고블린 초원 (2) 23.07.12 21 0 19쪽
10 10. 고블린 초원 (1) 23.07.12 24 0 17쪽
9 9. 마을 귀환 (3) 23.07.11 29 1 18쪽
8 8. 마을 귀환 (2) 23.07.07 29 0 19쪽
7 7. 마을 귀환 (1) 23.07.07 35 0 16쪽
6 6. 순응시험 (5) 23.07.06 35 0 21쪽
5 5. 순응시험 (4) 23.07.05 39 0 19쪽
4 4. 순응시험 (3) 23.07.04 39 0 21쪽
3 3. 순응시험 (2) 23.07.02 52 0 14쪽
2 2. 순응시험 (1) 23.07.02 48 0 15쪽
1 1. 1000번 째 회귀 +1 23.07.02 7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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